빰빠라밤! 빤스맨 1 - 최면반지의 비밀 빰빠라밤! 빤스맨
대브 필키 지음, 이명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될 수 있으면 만화를 잘 안 사주는데도 아이는 친구에게 빌려서도 보고 제 용돈을 모아 대여해서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동화책보다는 만화에 먼저 손이 가고 만화 읽는 시간이 길어진다.
뭐 세상 만화가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엄마 욕심에 만화보다 동화에 눈길을 주기를 바라는 게 당연할 것이다.
재미있는 책으로 만화에 빼앗긴 아이 마음을 되돌릴 생각에 진짜 유쾌하고 신나는 책을 찾다가 제목부터 참 거시기한 책을 만났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많고 많은 맨들을 봐 왔지만 빤스맨이라니....
이름부터 웃기다.
책은 더 재밌고 웃기다.
엄마가 먼저 읽고 아이 앞에 슬그머니 내밀었더니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빤스맨의 복장에서부터 대단한 관심을 갖는 다.
대머리에 하얀 면 빤스 차림에 빨간 망토를 펄럭이며 온갖 폼을 다 잡고 있는 남자가 바로 빤스맨이다.
'신나는 액션' '요절복통 유머' '웃음 속의 교훈들'들이 들어 있다는 책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유쾌한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고 만화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파라락 극장, 최면, 거기다 덤으로 악당 기저귀 박사도 등장한다.

샬랄라 초등학교의 두 악동 깜씨와 꼬불이는 빤스맨이라는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팔기도 하고 미식축구 시합 날에는 치어 리더의 꽃술에는 후춧가루를 넣고 고적대의 악기 속에는 비누 거품을 넣기도 한다.
거기다 선수들이 쓰는  로션에는 가려움 연고를 담아두고 주스 석에는 벌레를 화장실 문에는 접착제를 발라 두어 미식 축구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하지만 두 악도의 만행은 교장 선생님이 설치해둔 감시 카메라에 찍히게 되고 교장 선생님은 테이프를 미식 축구 선수들에게 건네겠다는 협박을 한다.
깜시와 꼬불이는 교장 선생님께 잘못을 빌고 테이프를 축구팀에 보내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1.앞으로는 장난을 치지 않는 다.
2. 절대로 웃지 않는 다.
3. 절대로 놀리지 않는다.
4.앞으로 빤스맨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5.매일 내 차를 닦는다.
6.우리를 잔디를 깎는다.

라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게 된다.
매일 매일 고난에 연속이던 두 개구쟁이는 최면 반지를 구입해 교장 선생님에게 최면을 걸게 된다.
장난 끼가 발동한 두 아이는 교장 선생님을 빤스맨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을 빤스맨이라고 생각한 교장 선생님은 얼떨결에 은행 강도를 붙잡기도 하고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당 기저귀 박사를 물리치기도 한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최면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딱 소리와 함께 언제든지 빤스맨으로 변신하게 된다.

2학년 아들은 아직도 스스로 읽는 것보다 자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누워 듣기를 더 좋아한다.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기 일쑤였는데 이 책은 혼자서 단숨에 읽은 책이다.
뒷정리를 하고 아이 방에 들어갔을 때 엄마를 기다리기 못하고 읽기 시작한 책은  늦게까지 아이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리고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느냐고 매일 물어보는 책이 돼 버렸다.
엄마 자신이 읽는 책은 재미있냐 없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지만 아이가 읽을 책은 한가지라도 배우길 바라며 책을 고른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엄마가 골라준 책은 재미없는 책이 돼버리고 책읽기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나중에 독서를 재미없는 것이 돼버리기도 한다.
가끔씩은 아이가 원하는 만화를 마음껏 읽게 해 주고 싶다가도 그러다가 혹시 만화만 읽게 되지 않을까 싶어 망설이게 된다.
말리다 보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에 심리인데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것 같다.
동화책을 읽으면서도 만화처럼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 보고 싶은 아이에 소망과 만화를 피하고 싶은 부모 입맛에 딱 맞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은 모두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교훈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아이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값을 제대로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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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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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과 관심 없이도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 아침부터 남편을 깨우며 ""그러게, 저녁에 좀 일찍 들어와서 자면 좀 좋아""라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출근하는 뒤통수에 대고는 ""오늘은 제발 일찍 좀 들어와서 애들하고 놀아주고 운전 조심해"" 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일찍 들어오고 싶을 것이고 출근길에도 조심해서 운전했을 것이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들을 깨운다. ""방학이라고 이렇게 늦잠이야? 얼른 일어나. 이 깨끗이 닦고, 세수도 이쪽 저쪽 목도 좀 닦고, 밥 흘리지마. 반찬도 골고루……. ""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난 하루 종일 아이들 뒤를 따라 다니며 텔레비전 좀 그만 봐라. 컴퓨터 게임 또 하는 거야? 피아노학원에서 까불지 말아라. 동생하고 싸우지 마라. 장난감 좀 치워라…….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작된 잔소리는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계속된다. 습관처럼 하는 내 잔소리에 아이들도 지쳤는지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한다. 난 기다렸다는 듯 제발 엄마도 잔소리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응수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잔소리가 없어진다면 모두의 바람대로 행복해 질까?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하루쯤 없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일 것이다.

일요일 저녁 푸셀은 용감하게도 부모님께 이젠 잔소리는 더 이상 듣기 싫다고 잔소리 없는 날을 제안한다. 한편으론 놀라지만 엄마 아빠도 푸셀의 의견을 받아들여 8월11일 월요일 하루 동안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잔소리 없는 날'로 정한다.

일어나자마자 이도 닦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 아침으로는 자두잼을 마음껏 퍼먹기도 한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부모는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다. 학교에도 안 갈까 하다가 친구 올레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간다.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는가 테스트해 보기 위해 무단으로 조퇴하고는 오디오를 사러간다. 하지만 그 일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실패하고 집으로 일찍 돌아 온 푸셀에게 엄마 아빠는 한마디의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잔소리 없는 날을 만끽하고 싶은 푸셀은 파티를 계획하고 친구들을 초대하려 하지만 약속되어 있지 않던 파티에는 한 명도 올 수 없게 된다. 직접 거리로 나가 보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 파티에 참석할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 술주정뱅이 아우구스트씨만이 참석하게 되지만 그는 곧바로 잠들어 버리고 만다. 푸셀에 파티에는 엄마만이 유일한 손님이 된다. 집에 돌아오신 아빠도 잔소리 없이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친절히 대하고 집에까지 바래다준다.

저녁이 되자 엄마 아빠는 잔소리 없는 날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푸셀은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단짝 올레와 자정까지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다. 올레와 함께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밤을 보내기는 쉽지 않고 점점 무서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그림자가 귀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서 다가가 보니 아이들의 야영이 걱정되어서 따라 왔지만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방해를 할 수도 없어 아이들 모르게 지키고 있었던 푸셀의 아빠였던 것이다.

잔소리 못하게 된 부모는 잔소리를 할 때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더 조심스러운 눈길로 아이를 살펴야 하고 잔소리가 없어진 아이도 자유 뒤에 오는 책임 때문에 즐겁지 만은 않은 모양이다. 잔소리는 사랑하고 있고 널 항상 지켜보고 있어 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이 책 한 권으로 한순간 잔소리를 안 하는 엄마나 엄마 잔소리를 사랑에 외침으로 좋게 들어주는 아이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잔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과연 나도 잔소리를 멈추고 지켜볼 수만 있을까? 아이는 잔소리 없는 날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며 보내는 하루를 원 했던 것이 아닐까? 한없는 아량으로 푸셀을 지켜보는 부모에게 존경에 박수를 보내본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많은 잔소리를 듣고 컸다.

""동네 어른들 보면 인사해라.""
""학교 갔다 오자마자 숙제해라.""
""맛있는 것 생기면 할머니 먼저 드려라.""
""형제간엔 우애가 최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잔소리는 나도 모르는 새 내 인생의 지침서가 되 버린 듯 하다. 그때는 엄마 잔소리 좀 안 듣게 얼른 자라서 엄마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요즘은 그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라도 하면 엄마는 여전히 잔소리를 하신다. 하지만 그 잔소리는 더 이상 이 딸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라 사위 걱정, 손자 걱정에서 하시는 잔소리로 변해 있다.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 아닌 하는 입장의 엄마와 아내의 이름으로 살다 보니 어린 시절의 엄마 딸이 되어 엄마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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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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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하엘 엔데의 8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이야기 잘하는 이야기꾼의 입만 바라보며 다음이야기를 기다리는 착한 아이가 돼버린 듯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해보기도 하지만 어느새 깊은 사색을 할 수 밖에 없는 마력이 있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더 많이 생각했고 여러 번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곤 했다.

미하엘 엔데와의 첫 만남은 <모모>를 통해서고 그 뒤로 아이들이 읽은 그림책과 동화책에서도 그의 이름은 심심찮게 목격되곤 했다.

그의 이름을 발견할 때 마다 반가웠고 환상적인 그에 이야기에 찬사를 보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작가라고 생각했던 그가 <자유의 감옥>과 함께 철학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단편이라고 하기엔 다소 긴 <긴 여행의 목표>는 진정한 의미의 집을 갖지 못한 부유한 시릴이라는 남자의 인생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는 전반부를 읽으며 가상이 아닌 존재하는 공간을 다룬 듯한 착각이 들었다.

로마의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은 그 곳은 원근법이 실제로 적용되는 곳으로 그들의 모험이 성공하여 그 끝을 가 볼 수 있을지 과연 그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교외ㅢ 집>은 전편의 이야기의 기사를 보고 독자가 보낸 편지 형식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자신이 경험했던 내부가 없는 집을 소개하며 그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 속에 있었던 사실인 나치 전범들의 증발을 이야기한다.

<추신; 아마도 악의 모든 비밀은..........오로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그 본질이 있나 봅니다.>라는 끝맺음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작은 차 속에 완벽하게 갖추어진 공간들에서 그의 무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던 <조금 작지만 괜찮아>는 가장 유쾌하면서도 엽기적이다.


<미스라임의 동굴>을 읽으면서 나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

이브리와 베히모트의 설전을 들으며 누구에 말이 옳고 어떤 선택이 해야 할지 동굴 속의 그림자들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했었다.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목적 때문에 꿈의 세계를 여행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도 처음에는 작은 문제엣 시작해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인간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와 감옥이라는 상반도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의 <자유의 감옥>은  자유롭게 자신이 선택할 수는 있지만 선택 뒤에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결과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우리 자신은 눈먼 거지가 되어 어떤 문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유의 감옥에 갇혀 있기에 현실같이 않은 이야기가 가장 현실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이야기인 <길잡이의 전설>을 읽으며 신비로운 마술의 세계와 신비로움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엔데의 이야기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해가며 읽다보면 그의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와 인물이 실제처럼 다가옴을 느꼈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 살짝만 비껴간다면 그와 같은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곤 했다.

8편의 이야기가 따로 존재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은 그의 생각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올해는 미하엘 엔데의 10주기가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여러 권의 책들이 출간되었고 내가 10년도 전에 읽었던 <모모>는 TV드라마덕분에 다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판타지소설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듣는 작가였지만 내가 모모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며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만을 위한 조잡한 판타지물이 아님을 깨달게 되었고 진즉 그의 가치를 못 알아본 내 무식을 탓하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의 가치를 이제야 알아본 것도 억울한데 수염이 하얀 천진스러운 이야기꾼의 새로운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프고 억울하다.

다행인 건 그에 부재엔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골수팬들이 지금도 세상엔 가득하고 앞으로 자랄 우리 아이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라리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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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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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김부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9살 어린 나이에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여자가 20년이 지나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살해했던 사건은 그 당시 세상을 들끓게 했다.

그때는 <성폭력>이라는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던 시절이라 피해여성들은 운 나쁜 여자거나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들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라는 말에 대중들은 경악했고 그 사건을 통해 어린이 성폭력이 피해자의 일생을 얼마나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사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성폭행, 아니면 평소에 교류가 있던 소이 친한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지속적인 성폭력이 있다.

어떤 성폭력이  피해자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히는 지는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평상시 믿고 따르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성폭력은 그 믿음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낼 것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 믿고 따르던 주변사람들로부터 입은 상처의 깊이는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가늠할 수조차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성범죄지만 아직까지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현실에서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은 성범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린 시절 유치원 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같은 이름의 두 유진은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정해지는 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큰 유진은 사건 당시의 기억을 평소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배려해주는 부모 덕분에 자신이 가장 사랑받았던 시기로 기억하는 반면 작은 유진은 목욕타월로 자신을 몸을 거칠게 미는 엄마와 우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절규하는 엄마의 모습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다.

큰 유진의 의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찾아낸 작은 유진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내고 방황하게 된다.

다행인 건 함께 아픔을 경험했던 큰 유진과의 여행을 통해 자신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찾아온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새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는 중학교 2학년이 된 두 소녀의 입을 통해 어둡게도 밝게도 진행된다.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이의 입을 통해 어린시절에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모를 둔 큰 유진과 주위 어른들에게 깨진 그릇이라는 말과 그 일을 입에 올리면 너 죽고 나죽는 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란 작은 유진은 꿈 많고 밝기만 한 시절을 아픔과 문득 문득 느끼는 절망감으로 보낸다.

어찌 그 절망의 상처가 아이만이 짊어져야할 상처겠는가?

현실에서의 부모는 큰 유진의 엄마처럼 담대하게 아이의 상처를 바라보며 어루만져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거는 주문처럼 “아무 일도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돌아서서는 피눈물을 쏟으며 작은 유진의 엄마가 되어 딸이 가져가야할 상처를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피해자를 도울 수는 있었지만 정작 내 아들의 여자친구가 될 때는 “그런 일을 당한 애“라는 낙인과 함께 문제가 예고된 애쯤으로 취급하는 건우엄마의 이중적인 행동에도 마냥 야유를 보낼 수만은 없었다.


책 속의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의 작은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특히 작은 유진의 외할머니가 손녀에게 해 주었던 말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을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구 생각했단다.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둥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구 생각했단다.”

하물며 우리 몸에 난 상처도 꽁꽁 싸매어 덧나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아프고 쓰리더라도 바람이 잘 들게 하고 약도 말라야 낫는 것을 마음에 입은 상처 또한 덮어두고 묻어두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주시는 것 같았다.


결혼해서 아들 둘을 키우면서 나는 언제나 성폭력의 문제에서는 방관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보며 내 자신 더 이상 성범죄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내 아이들이 자신의 일생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 일생에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일었다.

이제는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일이 되어 버린 성폭력이라는 조금은 껄끄러운 문제를 햇살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어 우리 모두의 힘으로 그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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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빛나무님, 축하드려요..! 좋은서평 이벤트 2등이네요..^^

울보 2005-10-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두빛나무님 서평읽고 참좋았는데
축하드려요,,

초록콩 2005-10-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울보님...축하 감사드립니다.^^*
 
화가 이응노 - 붓으로 평화를 그리다 예술가 이야기 2
김학량 지음 / 나무숲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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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응노>란 이름은 낯설다.

그분의 이름이 낯 설은 거야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을 매치시켜 알아볼 만큼 미술에 조회가 깊지 않는 나이기에 뭐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미술학도였던 이 글의 작가마저도 이응노란 분을 그분이 돌아가신 해에야 알았다니 의아하기까지 했다.

외국에서는 그분의 그림에 대단한 찬사를 보냈고 또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데 반해 정작 자신의 조국에서는 버림받은 예술가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분의 일생을 읽으며 알게 되었고 읽는 내내 그 시대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 했다.


전형적인 위인전을 읽고 자란 세대인 덕에 위인적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에 싸여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특별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응노>는 특별할 것 없는 충청도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본격적인 그림 공부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김규진>의 제자가 되어 전통 문인화와 서예를 두루 익히게 된다.

스승의 집을 나와 ‘간판점 개척사’를 열고 더욱 그림에 정진하게 된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우연히 비바람이 몰아치는 대무 숲을 보고 실물이 아닌 머릿속에서 꾸민 그림을 그려온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보고 느낀 것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그린 대나무 그림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상을 받게 되고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은 <이응노>는 서른이 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화와 서양화를 배운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중에도 그는 끊임없이 작품 활동하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유롭게 풀어 그린 ‘반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55세에 프랑스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가난이라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고  쓰레기통을 뒤져 구한 신문과 잡지로 만든 작품으로 콜라주전을 연다.

그림밖에 모르던 그에게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리게 되고 1년 8개월에 걸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동안 그는 감옥에서 구할 수 있는 밥알에 헌 신문지를 개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그에게 조국은 다시 한번 철저하게 그에게 등을 돌렸고 빨갱이, 간첩화가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먼 타국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들은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쉼 없이 그린다.

그는 마지막까지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작품만이 조국에 돌아와 성대한 전시회가 열리던 그날 파리의 작업실에서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 해당되겠지만 나에게 있어 특히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인 명언이다.

만약 이응노라는 작가를 알지 못하고 <군상>을 봤다면  단순한 형태의 사람들의 무리인줄 알았을 것이다.

치열한 80년 광주를 함께 보내진 않았지만 광주의 그날의 일이 아직까지도 5월이면 가슴 아픈 현실인 지금 그림 속에 수많은 군상들이 단순한 사람들이 모임이 아닌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을 염원하는 모습임을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뚱뚱한지 홀쭉한지, 키가 큰지 작은지, 건강한사람인지 약한 사람인지, 돈 많은 사람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회사원인지 노동자인지.....>알 수 없는 군상들 속에서 서로를 위하고  감싸고 서로 존중하는 사랑하는 사회를 꿈꾸는 노화가의 간절한 바람 또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시대와 6.25를 겪고 억울한 옥살이에 만신창이가 될 만도 한데  그림을 시작하고는 평생을 붓을 놓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인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에 자식으로 자라며 가장 아쉬웠던 건 예술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사실 그 목마름도 그 당시의 절절한 목마름이 아닌 어른이 된 후에 느끼는 내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기기 위한  억지 목마름이겠지만 그때 그림이라고는 미술책에서 보는 빛바랜 명화들이 전부였고 내가 제대로 된 화집을 보게 된 것도 성인이 되어 대처로 나 온 뒤였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하는 까만 건 글자고 하얀 건 종이다라는 말처럼 나에게 그림은 인물화나 풍경화 같은 사실화가 아니고서는 나도 그릴 수 있는 낙서(?)쯤으로 생각하는 무식함을 과시했었다.

그래서인지 내 자식만은 예술을 제대로 느끼며 그 안에서 평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직은 시작인 우리 아이의 미술이야기에 중심을 차지하게 된 <고암 이응노>선생의 이야기는 글을 쓴 작가의 시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응노 선생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구성 또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 준다.

미술이 어렵고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게  결코 아니다라는 것을 그분이 출감하면서 했던 말에서 찾아본다.


<화가는 그저 벽에 걸어 놓고 보기 좋을 그림만 그릴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에 어떤 모순이 있는가를 알아야 되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지.>


우리의 전통 그림을 현대화하고 세계화하는 일에 힘쓰시고도 이념이라는 족쇄 때문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그가 이제는 그가 꿈에도 그렸을 고국에서 그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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