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년만의 페이퍼....가 아니구나. 
 

1. 

무료진료를 갔다. 장소는 무등경기장. 3일동안 치뤄지는 아마 야구였는데 경기가 치뤄지는 내내 의료진이 한명 있어야 한단다. 우리병원에 의뢰가 왔고, 스케줄이 정해진 후에 결정된 탓에 꿀 같은 휴식의 오프자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택되었다. 마지막 3일째날은 일요일이었고, 오프자는 나였다. 나에게 주말 오프가 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주말이 필요한 분들은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는 선배님들의 차지. 난 결혼도 안했고, 애도 없고, 근무한지 10년이지만 뒤에서 두번째인 막내급이었다. 난 야구를 좋아하지만. 그것도 굉장히. 아주~~ 많이 좋아하지만. 아마 야구는 거의 보지 않는다. 거기에 일요일 오프를 반납할 정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다녀와라. 너 야구 좋아하잖아. 팀장님의 말에 네. 대답을했다. 거절을 할 수가 없다. 난 결혼도 안했고, 애도 없어서 일요일 오프는 정말 나오기가 힘든데 그것마저 이렇게 반납할 수는 없어요. 라고 어떻게 말을 하겠어.  

아침 일찍 일어났다. 혹시나 타이거즈 선수들을 만날까봐. (그럴일은 없을것이다. 부산에서 열심히 거인들과 싸우고 있을테니까) 아이라인도 했다. 아이팟을 챙기고, 마실 물을 챙기고, 눈치보며 볼 책도 챙겼다. 경기가 세 경기니 한권으론 부족할테니까. 담당자와 통화후 경기장에 도착했더니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으로 날 데려간다. 의료진은 한명. 나 한명. 아는 사람 전혀 없는 곳이라 어쩔수 없니 드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평소보다 배는 더 웃고 있던 참이었다. 노력과는 상관없이 바들거리는 경직된 입술을 부비고 있으려니 어느새 나를 귀빈석으로로 데려다놓는다. 엄훠낫~   

 

   

 빵빵한 에어컨에 한기마저 드는 곳이었다. 정면에는 야구장
 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앉아 있는 곳이 위쪽이어서 전광판
 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아쉬웠다. 경기보는 내내 아래
 쪽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오시는 야구 원로님들 때문에 있는 자리마저 뻇길 위
 험에 처한터라 입 꾹 다물고 앉아 자리 유지하는데 온 힘
 을 쏟았다.


책상에 앉아 의료물품은 아래쪽에 내려놓고, 책과 아이팟 그리고 핸드폰을 차례로 올려놓는다. 혹시 몰라 수첩과 연필도 꺼내놓았다. 아가씨가 야구 좋아한다는 그 아가씨요? 나보다 먼저 와서 앉아계시던 분이 묻는다. 더운 날이었지만 너무 강하게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손가락이 굳으려는 참이었다. 그 분 직업이 뭐에요? 경기가 끝난후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차안에서 관계자에게 물었다. 전 야구인이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네. 아마도 그 아가씨가 저 일거에요. 웃으며 전 야구인에게 대답을 했다. 먼저 온 아가씨는 홈런이 뭔지도 모르던데. 푸핫~ 웃음이 터졌다. 그 선배님은 한이닝에 아웃이 10번이 되야 바뀐다고 말해도 믿을겁니다. 그래도 아마야구는 잘 안보지 않아? 본적 있어? 그분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예전에 정영일이 연장전까지 엄청난 공을 뿌릴때 봤었죠. 몇년전인지는 생각이 잘 안나는데. 그때 좀 이슈였잖아요. 정영일도. 그 경기도. 대화가 끊기고 경기가 시작됐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관계자도 전 야구인도 앞을 쳐다봤고, 나 역시 두팀이 인사를 위해 힘차게 가운데로 달려가는 걸 보며 화이팅을 외쳤다. 

총 3경기 중에 집중을 해서 본 경기는 처음 펼쳐진 중학부의 결승전이었다. 책을 펴 놓긴 했지만 웬지 다른 분들의 눈치가 보여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던 중이었는데 포수를 보고 있던 자그마한 선수가 눈길을 끈다. 중학부지만 선수인 탓에 모두들 키가 장신. 웬만한 대학생보다 좋은 몸을 가진 선수들 사이에서 튈수밖에 없는 아직 자라는 중의 선수였다. 포수 장비를 둘러메고 있는 게 상당히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 선수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안타치고 나간 1루의 타팀 선수를 향해 빠르게 견제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내야 수비수들에게 연신 사인을 보내며 수비위치를 변경해준다. 연속으로 볼을 뿌리는 투수에게 어깨를 들썩이며 힘을 빼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얼씨구?

잘 보이지 않는 전광판을 보기 위해 엎드려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포지션을 찾아 그의 이름을 찾는다. 오잉? 남들보다 아직 자라는 중의 그는 3번이다. 무려 중심타자. 놀라움의 연속이다. 프로선수들처럼 동료들을 독려하는 것도, 중심타자라는 것도. 그 선수만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이닝.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역전 주자가 나간 만루상태의 투아웃. 타자는 놀랍게도 그 선수다. 팔짱을 끼고 옆 사람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쳐라. 쳐라. 제발 쳐라. 쳐라. 그리고 이겨라. 투 스트라잌 상태에서 투수가 힘차게 뿌린 공에 그는 강하게 배트를 휘두른다. 볼은 포수 미트에 꽂혔고, 상대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아 이런.

그가. 그냥 봐도 자기 얼굴에 커보이는 헬멧은 바닥에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무릎에 댄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나와 정렬을 하는데도 땅에 놓은 헬멧만. 햇빛에 그을려 자신의 얼굴과 팔만큼이나 검은 헬멧만 주시한다. 호흡이 거칠다. 어깨는 힘이 빠져 아래로 쳐져있다. 얼굴을 타고 땀이 흘러내린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헬멧을 집어들고 허리를 편다. 그리고 동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상대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더웠다. 더운 날씨였다. 그의 어깨가, 그의 뒷모습이 더웠다. 평소보다 훨씬 더울 것이다. 몸도 마음도. 그는 들을수 없는 내 마음으로 물었다. 뭐했니? 무슨 생각을 했던거니?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가 아쉬워서 그러니? 아니면 중요한 찬스를 날려버린 너에게 화가나서 그래서 분해서 그런거니? 아니면 경기를 곱씹으며 앞으로의 네가 할 일을 생각한거니?

경기가 끝나고 장비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그 아이를 보며 수첩 한구석에 이름과 등번호, 속한 학교를 적었다. 

아이 호랑이야. 커라. 무럭무럭 자라라. 아쉬움도 화남도 분함도 모두 갖고 무럭무럭 자라라. 네가 훌륭히 자라서 타이거즈에 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난 너의 팬이 되줄께. 네 이름을 꼭 기억해서 설사 네가 야구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더라도 나중에 내 아이에게도 말해줄거다.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얼마나 열심히 집중했는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흐뭇하게 했는지. 얼마나 분해하며 아쉬워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멋졌는지. 오늘이 쉬는 날이어서, 파견을 오게되서 그래서 너를 알게되서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 해 줄게.   

 

2. 

읽고 싶어서 보관함에 놔두지만 막상 사려면 망설여지는 책이있다. 나에겐 차이나 미에빌의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이 그랬다. 꽤나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겨있었고, 결제 할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기지만 결국엔 다시 보관함으로 빠져나가는 책.
그런데 이벤트를 한다. 작가의 또다른 소설 "언런던" 을 구입하면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을 준단다. 헐. 그러니까 늘 장바구니에서 맴돌다 보관함으로 들어가던 그 책은 이렇게 이런식으로 구입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 책은 살때만 망설여지는 게 아니라 읽을 때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하나의 비닐에 묶인 4권의 책은 그 뒤로 두 어번의 다음 결제가 있었음에도, 그리고 뒤에 도착한 책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한몸으로 묶여있다. 이게 그러니까. 읽을 것이다. 읽어야 한다. 당연히, 결국엔 읽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는 말이지. 같은 운명의 "세상 종말 전쟁" 은 1권의 중간부분까지 색이 바래있기라도 하지(읽다가 관둬서 다시 읽는 바람에) 이녀석들은 껍질(?)도 못 벗고 있단 말이지. 비닐을 못 벗기겠어. 때 탈까봐. 언제 읽을지 장담을 못 하는데 희망고문을 주어선 안돼. 그럼. 그럼. 


3. 

 
여동생이 일어났다. 난 쉬는 날이었고, 여동생은 일을 나가야 한다. 그녀가 갑자기 바닥에서 몸을 틀더니 괴이한 (상당히 괴이한) 자세로 몸을 꼬아 위를 올려다 본다. 너 뭐하니? 책장 보는거야. 눈꼽 낀 눈에 힘을 주어 책장을 살핀다. 여전히 괴이한 자세로. 찾는거 있어? 아니 언니가 나 보라고 한 책 있었는데 생각이 안난다. 쉬는 날이라 느즈막히 일어나도 되건만 이 녀석 때문에 졸지에 새벽밥 먹게 생겼다.

몸을 일으켜 "극락컴퍼니"를 빼들었다. 재미있어? 동생의 물음에 응 나름 볼만하다. 무엇보다 쉽게 읽히니까. 네가 읽기 편할꺼야. 가벼우니까 휴가지에서도 읽기 좋겠다. 동생은 잠자코 가방에 책을 넣는다. 가방안에는 벌써 큰 부피를 가진 "왕좌의 게임"이 들어있었다. 아직도 읽고 있는거야? 응 그래도 이젠 2권이야. 너랑 막내는 재미있다고 하는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러면서도 "왕좌의 게임" 위에 "극락컴퍼니"를 올려두곤 기꺼이 큰 무게를 감당한다. 착하다. 웬지 예뻐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4.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장소는 지리산 온천. 식구들 근무 후에 가는 거라 도착 시간이 저녁 10시였는데. 다음날 여섯시부터 아버지는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갈려면 어서 지금 몸 담그러 가자. 다 일어나! 난 야근 후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나왔고, 동생들도 각각 직장과 학교에서 지치도록 활동을 하고 온 상태.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찜질복을 받아들고, 야외 온천으로 나갔다. 당연히 사람은 없고, 몇개의 탕은 오픈도 안 한 상태. 넓은 야외 온천이 우리 가족 차지였다. 막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부모님은 온천보다 모처럼 나들이에 기분이 좋으셨나보다. 연신 좋다를 외치며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근다. 막내가 식구들을 모았다. 둥글게 서서는 카메라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사진을 찎는다. 머하는거냐? 목소리가 높아진 아버지의 말에도 꿋꿋하게 자세를 잡으며 셔터를 누른다. 발 사진 찍는건데요. 가족 발 사진.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야단을 치는 아버지가 사진 확인을 하곤 입을 다무신다. 아무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ㅎㅎ 

발가락이 닮았네~ 



 

 

 

 

 

 

 

 

다른 사진보다 크게 뽑아 거실 텔레비전 옆에 두었다. 동생이 액자를 사올텐데 거기에 끼워 백년만년 거실을 장식할 것이다.

그런데... 내 발이? 내 발은 어디있을까요? ㅎㅎ  


5. 

나는 가수다에 새로 자우림이 합류한답니다. 개인적으론 좋지만. 나의 이승열은 어디에?
어디선가 카더라 통신은 이승열이 대기중이라고 그렇게 말하던데. 시즌 2가 나온다던데. 혹시 거기에?
조수미의 노래를 부른 박정현이 최고의 득표율이 나왔데요. 오옷~~
김조한과 윤도현 박정현이 부른 데스페라도를 들으셨나요? 오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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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7-2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죠,퍼디토스트리트 정거장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언런던도 바로 구입했는데...얜 또 쉬이 읽히진 않네요.
살짝 귀뜸해 드리자면...퍼디토스트리트 정거장을 먼저 읽으셔요~^^

버벌님의 발은 말이죠, 왼쪽 위요~!

양철나무꾼 2011-07-23 11:41   좋아요 0 | URL
아니다, 프로필 손가락 사진 보고 바꿨어요.
왼쪽 아래요~^^

버벌 2011-07-23 18:47   좋아요 0 | URL
지금 비닐을 뜯었어요. 그리고 퍼디도.. 1권을 꺼내놨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 읽으면 양철님 댁에 보고하러 갈게요. ㅋㅋㅋ 그런데 발은... 저도 어느것이 맞는지 헛갈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발은 어디에? 미궁속으로~~ 두둥~ ㅋㅋㅋㅋ

다락방 2011-07-2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벌님의 발은 맨 아래 가운데요!!

버벌 2011-07-24 01:46   좋아요 0 | URL
꺅~~~~ ㅜㅜ 누가 봐도 남자 발이잖아요~~ ㅜㅜ

다락방 2011-07-24 10:00   좋아요 0 | URL
그런가... 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 그가 "나는 가수다"에 나왔으면 한다.  순전히 내 눈을 위해 그리고 나와 같은 눈을 가진 분들을 위해. 

이승열 - 그들의 Blues  (feat. 한대수)

 

요즘 난 왜 이런 목소리가 좋지? 강하게 지르는 목소리보다 그냥 담담하게 말하듯 부르는 톤. 
엇그제 무한도전에서 10cm가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를 부르던데. 익숙한 음악에 갑자기 기분이 업.
담백한 원곡도 10cm의 목소리도 다 좋더라.
음악은 좋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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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6-1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버벌님. 저도 저도 이승열 나오면 지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흐흐 순전히 제 기준으로 ㅋㅋㅋ

버벌 2011-06-13 13:36   좋아요 0 | URL
꺄. 그쵸 그쵸? ^^ 오오 저와 같은 눈을 가지셨어요`~~ 악수!! ㅎㅎ

Forgettable. 2011-06-1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승열 왕팬!!!!!!!!!

버벌 2011-06-15 09:18   좋아요 0 | URL
덥석~ (두손 꽉) 사랑합니다. ㅎㅎㅎㅎ

노이에자이트 2011-06-1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런 목소리를 좋아하는군요...강산에와 바비김을 합한 것 같은 목소리...

버벌 2011-06-15 09:21   좋아요 0 | URL
저런 목소리를 좋아하고, 저런 분위기도 좋아하고 그렇죠. 특별하게 어느 톤이 좋다는 건 없습니다. 내 귀에 좋으면 좋은거에요 ㅎㅎ 이승열이 나는 가수다 대기 가수래요. -> 확실한건 아닌데 그런 소문이 떠도네요. 연우님과 옥양때문에 한동안 멀어져있던 나는 가수다에 다시 컴백하려합니다. 이승열 등장과 동시에 본방사수입니다~~ ㅋㅋ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6-15 16:02   좋아요 0 | URL
옥주현 누나도 서른이 넘었으니 옥양이라고 하기엔 무리인 나이...걸그룹도 세월이 지나면 다 서른되고 마흔 되는 이치는 어쩔 수 없죠...

다락방 2011-06-19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3, 총 3256 방문

으응? 새벽 세시가 가까워 오는데 나 말고도 두명이 오늘 왔다갔네요, 버벌님.

버벌 2011-06-21 20:17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들어왔어요.
요즘 머가 그리 바쁜것도 없는데. 들어오는게 쉽지가 않네요. ㅋㅋ

새벽에 첫번째로 제 발자국을 찍어드릴게요.
락방님
쉽지는 않겠지만요. ㅡㅡ;; ㅋㅋㅋㅋ
 

1. 

여전히 두드러기는 돋고 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춰 음식관리를 안하면 바로 복수를 한다. 이참에 살을 빼면 되겠네. 팀장님 말에 흐응~ 콧 소리를 냈다. 그리고 짜증을 냈다. 누구든 제 걱정 좀 해주세요. 후배가 근 3달을 두드러기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걱정된다는 소리를 들어보질 못했어요. 왜 다들 살 이야기만 하는거죠? 그래서 몇 키로가 빠졌는데? 팀장님이 묻는다. 나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는데! 나는 화가 단단히 났음을 깡총 깡총 뛰며 온 몸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2키로? 그거보세요. 옆에 선배가 말한다. 3개월 고생했는데 겨우 2키로에요. 드디어 이 녀석도 굶어서 빠질 나이는 지난거에요. "더이상" 말이에요. 난 깡총 깡총 더 높이 뛰었다. 이젠 "더이상" 굶어서 빠지지 않은 단단한 살들을 가져버린 나에게 화가나서.  

 

2. 

여동생이 11월에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난 "더이상" 굶어서 살이 빠지지도 않는 슬픈 사람인데 노처녀 히스테리로 보일까봐 "더이상" 여동생에게 짜증도 못 내는 두드러기가 돋은 더~ 슬픈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동생이 남동생에게 묻는다. 신혼여행을 파리로 가고 싶다고. 만약 가게 된다면 같이 가겠느냐고? 남동생은 당연히 거절한다. 말도 안돼~~ 하지만 옆에 듣고 있던 난 귀가 솔깃하다. 이럴땐 어떻게 신혼여행을 따라가냐? 물으며 고개를 젓는 남동생이 정답일텐데. 난 본능이 앞서고야 말았다. 난 "더이상" 짜증도, 굶어서 살도 빠지지 않는 슬픈 사람인데 눈치는 밥 말아 먹은지 오래 된 얼굴 두꺼운 슬픈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래도 돼? 염치없이 묻고 만다. 망설임도 없이. 내가 갈께. 내가 가도 되나?  

여동생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그냥 해 본 소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대답에 약간의 시간을 두고 응. 상관없지. 오빠가 괜찮다고 하면 가자. 분명히 괜찮다고 할꺼야. 라고 대답을 한다. 분명히 당황했다. 난 그걸 알았는데 모른체 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주먹을 불끈쥐었다. 그리고 출근해서 팀장님에게 11월에 휴가를 내도 되느냐 물을 것이다. 여동생 신혼여행을 따라가겠다고. 일단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파리로 간다면 나는 기필코 따라간다. 난 자존심도 없고, 염치도 따라서 가출했다.  

 

3. 

월급이 나와서 책 결제를 했다. 보관함에 담아 두었던 것과 여기저기 페이퍼로 알게 된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카드를 긁는다. 쉬익~ (인터넷 결제니까 실제로는 띵똥) 결제 시간이 9시전이었는데 이 시간이면 당일 배송이 된다고 문구가 뜬다. 지방에 있는 난 당연히 안 올줄 알았다. 왜? 지방이니까. 그런데 오후 5시가 넘어 택배가 왔다고 벨이 울린다. 응? 문을 열었더니 보기에도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들고, 택배원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낸다. 감사합니다. 택배 상자를 받아들며 허이차~ 기합을 넣는다. 거실에 내려놓고, 테이프를 뜯고, 알라딘에 감사하며, 책 읽으며 마실 커피물을 끊이기 시작했다. 영수증을 보고 뒷목을 잡고, 결제된 할부에 그나마 나눈다고 할부도 길게 나눴네. 쓴웃음을 짓고. 아니지 내가 지금 카드 한도를 꽉꽉 채워놔서 더이상 쓰지도 못하는데. 다음 카드 갱신까지는 2주가 남았다. 지금 남아있는 현금이? 이번달 결혼식은 두건이고, 다달이 내던 회비가 내가 4달이 밀렸으니까? 음음. 화장품이 거의 떨어졌... 어? 화장실에 여성용품도 다 떨어졌.... 어? 가만? 가만? 가만? 가만?   

 

4. 

최근에 읽은 책들. 

 

 

 

 

감상은 머리가 좀 개인 후에. 

읽고 있는 책들. 



 

 

 

여동생이 필리핀으로 놀러갔다. 가는 길에 여행용으로 가벼운 책을 원하는 그녀에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줬다. 영화로 봤다는 그녀에게 그냥 봐! 라고 했다. "벌집에 키스하기" 정도가 여행
 용으로 딱 좋을것 같다는 그녀에게 그냥 가져가! 라고 했다. "미국의 송어낚시" 어때? 묻는 그녀에게
 너 결코 그거 다 못 읽는다. 그냥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가져가라고. 짜증을 냈다.
 난 이 책을 전혀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고, 질리지도 않게 읽었다.
 머뭇거리는 여동생에게 물었다. 그거 읽었어? 아니. 그럼 뭘 고민해? 그냥 가져가라니까.
 여동생은 마지못해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아쉬운 눈으로 새벽차를 타러 집을 나간다.   
 난 이책은 여행용으로 딱 좋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이 돌아와서 다 읽지 못 했고, 재미없었어. 라는 말을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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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05 0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깡총 깡총 뛰는 버벌님이 예쁠 것이다라고 상상하는 저는 이상한건가요?? 암튼 신혼여행을 가는 여동생을 따라가는 버벌님의 마음 이해해요. 저도 파리라면 따라 갔을거에요. -.- 그런 기회를 놓치기에는 인생이 짧잖아요.

결제하신 책 중 고양이 대학살은 저도 읽은 책인데요. 전 좀 어렵더라구요. ^^ 즐거운 독서하시기를 깡총 깡총 뛰시면서 푸훗!

버벌 2011-06-07 02:56   좋아요 0 | URL
이상하지 않아요. 전혀요. 나 예쁠... 지도 모르거든요. (아아악~~~~~) 고양이 대학살은 이번이 아니라 산지가 좀 오래되었어요. 예전에 날림으로 한번 봤는데 저도 어려웠답니다. 최근에 새로운 책들도 보고있지만 책장을 둘러보면서 읽은 책들중 손에 잡히면 다시 읽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렇게 잡고 있는게 고양이 대학살과 강철군화인데. 진도가 잘 안나가요. 분명히 읽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읽었지?


다락방 2011-06-0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에요. 여행길에서 그 책을 읽게 된 동생은 아아, 이래서 언니가 나에게 이 책을 가져가라고 했구나, 라고 깨닫게 될거에요. 역시 우리언니는 멋져, 라는 생각도 동시에 할테구요. 특히 장미꽃잎으로 만든 요리를 먹은 주인공의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때는 어서 빨리 신혼밤이 찾아오면 좋을거라는 기대도 하게 될것 같아요. 샤워하던 중에 온 몸의 열기로 불타오를 것 같아서 발가벗고 뛰던 그 여자를, 멀리서부터 말을 달려와 그 언니를 낚아채서 말 위에 태웠던 그 장교를, 그들의 사랑을, 동생은 아마도 읽으며 가슴속 가득 열정과 사랑을 담을 수 있게 될거에요.

버벌님, 정말 훌륭한 선택이에요. 새로이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도 또한 사랑을 더욱 굳건히 가꿔나가려는 사람에게도, 저 책을 추천하는건 정말 똑똑한 행위에요. 잘했어요.

버벌 2011-06-07 03:03   좋아요 0 | URL
욱. 칭찬 받았다아~~~~ 민음사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비교적 초반에 읽었습니다. 1984와 함께 세계문학은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준 책이죠. 부디 여동생이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요. ㅎㅎ 새로이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인 저 역시 (물론 상대방이 없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가슴 속 가득 열정과 사랑을 담겼는데. 그래도 혼자면 너무 슬프겠다아~ ㅠㅠ
 

 

 

 

 

 

 

두시의 데이트를 듣고 있는데 노래가 흘러 나왔다. 몇달째 잡고 있던 영원의 아이를 드디어 마치던 참이었다. 미용실에서 장시간 머리를 할때 주로 읽었던 책이라 읽는 중간에 늘 덮곤 했던 불운한 책. 처음부터 다시 읽기만 이번이 4~5번째 되는 것 같은데 오늘 드디어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나오는 노래는 joe cocker의 unchain my heart

마음이 뒤죽박죽이라 요즘 페이퍼도 못 쓰고 있었는데 쾅쾅 울리는 음악에 머리가 저절로 개이는 느낌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를 검색하고, 흘러나오는 노래가 끝나갈 무렵 난 공연 라이브 영상으로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 한다. 옆집 아저씨 같은 구수한 인상의 아저씨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노래를 부른다. 갑자기 얼마 전에 본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생각난다. "여러분"을 부르기 전에 마이크로 오면서 고개를 젖히고 한 손에는 물통을 들고 나오던 호랑이 포스의 임재범. joe cocker는 그런 호랑이 같은 포스는 없다.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래와 가수의 매치. 허름한 그의 옷차림 마저도 멋있게 보이는 게 참으로 신기할 뿐. 원래 이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거야하고 알려주는 것 같다. 

라이브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중독 된 듯 가사를 따라 했다. 아.. 손뼉을 치며 리듬을 타는 관중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누군가 불러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노래. <unchain my heart>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가수는 윤도현이지만 웬지 박정현이 불러줬으면. 그냥 그녀라면 잘 소화 해 낼 것 같다.

요즘 나는 가수다 말 많다. 아~ 오랫만에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쓸데없는 잡음에 프로그램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연우님이 떨어져서 이미 충격이 크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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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1-06-13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좀 자주 써주세요 ㅋㅋㅋ

버벌 2011-06-13 13:11   좋아요 0 | URL
엇. 이 글 하나에 저 오늘 기분이 엄청 업이에요 ^^
 

며칠 전 도착한 택배를 어제야 개봉했다.
내용물을 차례로 책상 위에 올려 놓았더니 오잉? 

 

 

 

 

 

 

 


시리즈도 아니고 제목들이....  딱히 의도한 건 아니고 평소에 사고픈 걸 담은건데 요렇게 됐다. ㅎㅎㅎ
그래서 어제 저녁 상황은 이렇게. ㅎㅎ
만화책 일리어드는 위의 "역사"가 책 속에 잠깐 등장했던 것이 생각나서 기억이 맞는지 확인키 위해 꺼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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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묘한 배치인데요. 서로 문학 스타일과 내용도 틀린데 인간이란 제목을 주제로 쓴 책들이 저렇게 오다니 말이죠. ㅋㅋㅋ 그나저나 널부러진 펜들과 읽다만 듯한 인간 3종 세트,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

버벌 2011-05-14 16:51   좋아요 0 | URL
오오잉~~~ 고급스러운가요? ㅎㅎㅎㅎㅎㅎ

지금 인간의 대지를 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은 무언가 이유가 있나봐요. 한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읽고 있어요. 뇌 용량이 따라줄진 의문입니다만. 한번에 쑤욱~ 읽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네요 저에겐 ㅠ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다 해도 읽기 힘든책도 있는데 마음에 들어 다행입니다. 어린왕자 말고는 달리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다시 봤어요. 생텍쥐페리에 대해서. 아직도 전 갈길이 머네요. (아직도 하루키는 힘들어요. 아 왜그러지~ 왜그럴까~ 왜이러니~ 왜이러니!!)


루쉰P 2011-05-14 23:24   좋아요 0 | URL
넵 고급스러워요. 저 책장과 방바닥...왠지 부럽네요. 자꾸 보니까 이상하게 정말 부러워요 -.-

저도 인간의 대지는 읽지를 못 했어요. 전 사실 어린 왕자도 읽지 않은 고상한 저질 문학 취미를 가졌기에 저보다는 그래도 읽으시는 버벌님의 뇌용량이 더 클거라 추측합니다. ^^ 생텍쥐페리든 하루키든 뭔가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냥 제가 느끼는 하루키이거든요. 그게 하루키가 무슨 의도로 쓴 책이든 저에게 제 삶에 아무런 의미도 없고 충격도 주지 못 한다면 그냥 전단지나 다름없죠 뭐 헤헤 아마 하루키가 읽으면 굉장히 건방진 싸가지 없는 독자라 여길겁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5-1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증명 속편인 야성의 증명도 재밌어요.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대단한 작가죠.지금은 나이가 80가깝네요.

버벌 2011-05-15 21:54   좋아요 0 | URL
옷 작가에 대해선 이름만 알았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네요. 인간의 증명 읽고 나면 야성의 증명도 읽어볼게요.

pjy 2011-05-1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중의 인간의 증명 읽었습니다^^ 참, 좋았는데요~ 야성의 증명도 한번 읽어볼까요^^

버벌 2011-05-19 19:10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인간의 증명 읽고 있어요. 야성의 증명도 바로 결제를 해버렸지요~ ㅎㅎㅎ
같이 읽어요~

양철나무꾼 2011-05-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진 배치네요.
전 인간시리즈는 앞의 두권만 읽었어요.
인간 실격은 어찌나 번역이 껄끄럽던지...툴툴거리면서도 꾸역꾸역 다 읽었어요.

전 필통, 필기구에도 좀 홀릭하는 경향이 있어서...한참을 침 흘리며 쳐다봤어요~^^

버벌 2011-05-26 02:07   좋아요 0 | URL
아 인간실격이고, 인간의 대지. 참 읽기 힘들어요. 재미가 없다기 보다 한번에 읽기가 힘드네요.
전 지금 꾸역 꾸역 읽어나가고 있답니다.

ㅎㅎㅎ 저역시 필통과 필기구에 침 흘려요. 연필을 특히 좋아하죠. 지우개 연필엔 아주 뽕~~ 갑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