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소설 내에 인용된 하라 다마키(原民喜)의 문장론이 맞아떨어지는 캐릭터와 묘사.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소재가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읽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작 <형태뿐인 사랑>이 묘하게 겹쳐져서 떠오르네-의족을 디자인하게 된 산업디자이너의 이야기.

소재가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주제가 형상화를 넘어 도식화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럼 인물의 내면, 인물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걸까? 두 소설은 모두 그랬다. <양과 강철의 숲>에서는 단정한 캐릭터가 소재와 호응하며 드라마를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깊이에서는 아쉽다.

비슷한 아쉬움을 받았던 <배를 엮다>도 생각나네-사전제작자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이 나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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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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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생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게 웃음을 짓는 것,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실천인 것 같다.˝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체류기. 가벼운 글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꽤 시간이 걸려 읽었다. 90일간의 일기에서 문장 너머 있는 생활을 떠올리다보니 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매일같이 기록하는 동안 변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처럼 사람은 싫든 좋든 누군가로부터,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존재인 것이다.‘ 단순한 하나의 명제를 시간을 들여 관계를 맺으며 새겨나갔다는 생각.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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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를 위해 펼쳐 들었다가 한달음에 완독. 마르크스를 읽자‘가 아니라 세계와 대상을 사유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라고 읽을 정도로 폭넓게 와 닿는 지점이 있었다. 두 학자가 서로가 읽은 마르크스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이시카와 선생의 다른 책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뒤에는 학생들의 강독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했는데 이런 것도 좋다.

서삼독이라고 신영복 쌤이 그러셨는데 저자, 배경, 우리가 읽어나가는 지점을 함께 읽기엔 마르크스가 지금 딱인 듯. 공산주의로써의 맑시즘이 아니라 공동체주의로써의 맑시즘. 이데올로기로써의 맑시즘이 아니라 도구와 실천으로써의 맑시즘.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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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이 있기 이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자본론‘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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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이즈
제임스 설터 지음,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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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에 구입한 책을 오늘까지 세 번째 읽는다. 하여튼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결혼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라 이름이 헷갈릴 때가 있었는데 이번엔 조금씩 생각이 나서 아, 그랬지 하면서 좀 더 수월하게 읽었다. 제임스 설터의 단편집부터 총 네 권의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데 지난 번 미뤄 뒀다 읽은 <스포츠와 여가>는 좀 어수선하고 피곤해서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올 댓 이즈>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시간을 담아 대상을 묘사한 문장들, 인물이 느끼는 감각들이 떠오르는 소설. 물론 <가벼운 나날>을 가장 좋아하지만 이 작품도 수작이라 생각. 설터의 소설에 쓰인 제사와 내용을 겹쳐 읽는 재미도 크다. ˝위로할 길 없는 죽음이 있으므로 삶이 더 아름답다.˝ 모든 사랑이 지나가지만, 또 다른 사랑과 또 다른 파국이 진행되는 동안 작중 화자가 처음 느끼는 감각들을 함께 하는 기쁨을 준다. 거듭 반복되는 리듬에서 자세를,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면 장편으로써 무게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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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알마 인코그니타
오카다 도시키 지음, 이상홍 그림, 이홍이 옮김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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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오카다 도시키. 위트앤시니컬에서 데려온 책인데 집에 도착해서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한달음에 읽었어요. wierdo의 세계가 정련된 언어와 집중력을 만나서 만들어 내는 질감을 드러내는 작품.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실사판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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