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
고수경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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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소재,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집의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에 매료되었다. 별 것 아니지만 마음이 쓰이는 사람, 장소, 관계를 마주할 때,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들이 비밀과 거짓말이지 않냐고 알려주는 소설. 스스로를 속이고 다독이는 일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소설을 통해 마주하는 삶은 위태롭고 서늘하다. 그늘과 웅덩이에서 어둠을 읽어낼 때 그 어둠이 제 속의 어둠임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조용조용한 인물들, 자그마한 목소리, 사소한 사건들로 이런 긴장감을. 일상의 커튼 뒤를 들춰보이는 작가의 솜씨가 놀라워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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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 돌봄 소설집 꿈꾸는돌 41
강석희 외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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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제게 익숙한 일이면서도, 낯설게 갱신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단편소설 <녹색광선>의 강석희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 소설집이 딱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조카와 이모, 할머니와 손자, 엄마와 딸, 친구, 반려동물,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이 이렇게 다채롭게, 재미있게 쓰일 수 있다니. 청소년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매력으로 돌봄의 어려움과 희망을 그려냈다.

좋은 돌봄은 타인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연대를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움직이는 사람이 새로운 사건과 기억을,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매끈하게 교환되는 돌봄이 아니라 조금은 불편하고 불리한 관계. 달라서 고유하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 돌봄이 아닐까? 이 소설들이 ‘돌봄’을 통한 ‘관계’와 ‘성장’을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돌봄의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평가되는 지금, 함께 읽고 싶은 책, 함께 말하고 싶은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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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 박멸기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
이진하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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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의 소설이 보여주는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고 독설이기도 한 소설들이 주는 재미가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보는 것 같다.

비정규직 악마의 방문 상담 이야기, 하늘로 떠오르는 아이들, 최종면접 시험장의 고스펙 지원자들, 산타에게 착취당하는 루돌프, 말그대로 소멸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출산 장려 대책, 반려견보다 못한 처지가 된 가장, 외로운 우리를 마주하게 되는 결혼의 실상. 스물일곱 편의 다양한 소설들은 동시대 한국 사회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나아지려고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고꾸라지는데 그 허들의 모양—가부장제, 비정규직, 입시지옥, 양극화-를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슬랩스틱이 더 통쾌하고 우스꽝스럽다.

작가는 뛰어난 유머가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저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넘어지고 있는 것은 그 허들 앞에선 우리들이 아닌가. 유쾌하고 통쾌한 이 유머가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당신의 그런 어느 날에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진하 작가의 위로가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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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과 시 일상시화 5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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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디여린 감수성을 낱낱이 기억해 자주 세세히 돌보기. 추억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을 기억하는 기술로써 지난 경험들을 만끽하며 지내기. 지난날의 좌절과 좌초의 고통들을 기억함으로써, 그것을 얇디얇게 저며놓음으로써, 흔들리는 현재의 기우뚱한 면에 괴어 균형을 잡기. 그렇게 하여 현재를 바로잡기. 나는 이것이 기억술이라고 믿고 있다. 시의 기술이라고도 여긴다. 그리하여 윤리에게 시를 적용해보는 방식이 아닌 시에서부터 새로운 곁가지의 윤리들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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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과 시 일상시화 5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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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안 보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도 아니고, 주된 소통의 통로가 소셜네트워크로 변경되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고유한 얼굴이 눈앞에 있어도 못 보게 되었다. 언뜻 식별 가능한 것으로 이해를 선행하는 방식으로 선을 긋는다. 복잡함을 소거한다.
한 사람의 얼굴에 켜켜이 깃든 경험과 서사를, 한순간에 반영되는 미묘한 표정과 감정을 읽을 이유가 없다. 여유 또한 없다.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인간의 공격성과 폭력성을 증폭시키는 데에 짐작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다.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거리감은, 공격성을 더욱 서슴없고 무자비하게 만든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총으로 쏘는 것보다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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