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제들*
Theses

1. 실천은 복수의, 모두 물질적인 의미들로, 즉 노동, 과학적 인식, 정치로 이해된다(그 외에도 다른 것들이 아마 더 있을 것이다). 인 과성은 단일한 의미로, 즉 실천들의 다수성에 내재하는 하나의 구 조의 필연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인과성은 이러한 다수성 자체 를 포섭하는 어떤 모델에 의해서도 표상될 수 없다.

2. 이데올로기는 진리의 장소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진리의 다른 이름은 항상 이미 진리의 하 나의 이름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민주주의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진 리의 서로 다른 이름들이 무한히 있는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자들 은 철학자들이다. 그들에게는 교통의 진리가 하나의 선험이 아니 라 하나의 문제인 것이다.

3. 무한한 모순 : 과학들의 진리효과는 절대적 진리의 현존도, 상대 적 진리들의 축적도 아니고, 이데올로기의 장소에서의 개념의 회 귀효과, 명증을 증명으로 대체하는 계속된 단절이다.

4. 무한한 모순 : 계급들의 투쟁은 계급들의 구성 자체, 국가적 조 절 그리고 사회적 계획을 초과한다. 그것은 역사의 정치적 물질성 속에서의 화해불가능성의 심급이다. 바로 이 때문에 현실적 변혁 들이 있지만 그러나 보편적 주체도 역사의 종말도 없다.

5. 대중은 그들이 당하는 폭력만큼이나 그들 자신의 폭력을 두려 워한다. 그렇지만 대중의 인식에 대한 욕망 속에는 종교와는 다른 어떤 것이 항상 잠재되어 있으며, 그 행동할 수 있는 역능 속에는 정념과는 다른 어떤 것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예 속은 결코 확정적이 아니다. 대중의 양면성은 정치의 재료이다.

6. 정치는 사회에 대한 것도 국가에 대한 것도 아니며, 사회와 국 가의 제도적 분리가 정치의 소외가 투영되는 공간을 구성한다. 이 러한 사실로 인해 정치는 그것이 스스로 야기되는 장소에서 제도 화되지 않는 것이다. 혁명적 정치는 대중운동의 위험을 무릎쓰면 서 사회와 국가의 한계를 전위시킨다.

7.교통은 신비주의적 일치(공동사회 Gemeinschaft )로도 상품적 교환 (이익사회 Gesellschaft)으로도 스스로 제한되지 않는다. 상효유용성의 지적 형식들을 스피노자는 "통념들"이라고 부르고, 맑스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고 부른다. 현실적 교통의 모든 체계는 정치적 개인성을 구성한다. 그것이 실존하는 국가와 양립할 수 있는지 여 부는 경험의 문제이다.

8. 시민성에 대한 초자연적 정의는 없다. 항상 시민성의 역사는 운 동하는 이율배반들의 역사였던 것이다. 도시에의 소속은 본래적 평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에서의 권리들(혹은 유효 한 힘)의 행사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두 측면들의 불안정한 균 형이, 시민들이 그 자신들이 종속되어 있는 권력장차에 대해 행사 할 수 있는 집단적 통제의 효력을 결정한다.

9. 이론적 인종주의는 허구적 종족성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국민 주의(민족주의)의 보편성의 보충물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의 이론 적 휴머니즘, 즉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정치를 인 간학적 보편성들 위에 기초지우는 하나의 방식이다. 국민(민족)공 동체의 투영적 공간 속에 모순을 도입하고 정치적 제도에 대한 대 중의 또 다른 관계를 실현하는 하나의 실천적 휴머니즘은 실제로 반인종주의일 수 밖에 없다.

10. 자본주의, 식민지화, 탈식민지화는 상품 형태의 확장에 의해 지 배되는 세계-경제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생활조건들과 표현 조건들이 실천적으로 통약될 수 없는 대중으로의 인류의 분열에 의해 무한정으로 왜곡되는, 정보의 선택적 순환 공간인 세계-정치 로 창출했다. 이 공간 내에서 과소인간들과 과잉인간들의 분할은 따라서 구조적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11. 공산주의는 복수의 의미들로, 즉 잉여노동의 제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의 종언, 시민성과 국민성(민족성)의 구별의 종언 으로 이해된다(그 외에도 더 있을 것이다). 맑스가 말한 바대로 공 산주의는 인류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운동이다.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여야 한다. 보증없는 운동이라고.

* Raison Presente, no. 89, 1989. 1987년 12월 11일 철학박사 학위 취득을 위한 업적들을 소개하면서, 네덜란드 Nimegue 대학의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테제들. 윤소영 엮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민맥,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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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재론)








엘리엇의 ꡔ이론의 우회ꡕ(1987, 국역: 새길, 1992)는 반(反)-반(反)-알튀세르주의라는 입장에서 알튀세르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는 재판(2007년 예정) 서문에서 반-반-알튀세르주의의 모호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알튀세르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고집하고 있다. 그의 입장은 결국 마오주의로 인한 트로츠키주의의 ‘무시’ 또는 ‘곡해’라는 쟁점을 제기하려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캘리니코스의 입장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캘리니코스는 반-알튀세르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클리프 그룹의 일반적인 경향에 반대하여 반-반-알튀세르주의를 주장한다(캘리니코스와 리즈 사이의 논쟁은 ꡔ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ꡕ, 갈무리, 1995를 참조하시오). 참고로, 만델 그룹도 반-알튀세르주의로 특징지어진다는 데서는 마찬가지다(그러나 만델 그룹의 초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뱅상은 네그리와 연대하여 ꡔ전미래ꡕ를 창간하기도 한다).  

캘리니코스가 주장하는 ‘알튀세르 효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긍정적 효과는 헤겔주의 비판이다. 그러나 헤겔주의 비판(특히 루카치와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을 구체화하는 경제학 비판이나 이데올로기 비판은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헤겔주의 비판의 동기로서 스탈린주의 비판도 무시하고 있다. 반면 부정적 효과로는 특이하게도 알튀세르에 대한 니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알튀세르의 철학을 모종의 ‘차이의 철학’(또는 다원주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으로 간주한다.

그런 평가를 근거로 해서 캘리니코스는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을 부정하고 인식론과 최종심(특히 생산력)의 복권을 주장한다. 전자를 위해서는 바슐라르와 스피노자 대신 라카토스에게 주목하고, 후자를 위해서는 마오주의 대신 코언이 주창하는 분석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한다. 참고로, 또 다른 트로츠키주의자 브레너는 분석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면서 이른바 ‘정치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한다(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치 또는 계급투쟁의 의미는 아주 모호할 따름이다).

엘리엇과 캘리니코스의 입장에 대해서는 알튀세르적인 스탈린주의 비판이라는 맥락에서 이미 자세하게 비판한 바 있다(윤소영, 「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ꡔ문학과 사회ꡕ, 1988년 겨울 참조). 여기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유효성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그들의 반-반-알튀세르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비판해보려고 한다.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1960-65), ꡔ‘자본’을 읽자ꡕ(1965)


알튀세르의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에 붙인 서문(1996)에서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철학을 절단과 토픽, 구조인과성과 과잉결정성, 이데올로기라는 세 가지 개념 또는 질문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 (아미앵의 주장)」(1975)에서 알튀세르 자신이 인식과정, 최종심, 이론적 인간주의 비판에 대한 테제를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초기 알튀세르가 강조하는 인식과정(또는 ‘이론적 실천’)의 이론은 넓은 의미에서 경험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인식론(인식을 ‘법적으로’ 보증하는 전통적 철학)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알튀세르는 전자와 후자를 ‘épistémologie’와 ‘théorie de la connaissan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튀세르의 이런 시도는 마르크스를 (뉴튼이나 다윈이 아니라) 갈릴레이와 동일시함으로써 결국 실증주의적 방법론으로 회귀하는 델라 볼페의 시도와도 구별되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인식론 비판은 바슐라르의 ‘역사인식론’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과학의 역사’에 대한 ‘과학의 철학’의 우위로 특징지어지는 역사인식론을 변형시킨다. 발리바르가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rupture)과 알튀세르의 인식론적 ‘절단’(coupure)의 구별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From Bachelard to Althusser: The Concept of 'Epistemological Break'"(1977), Economy and Society, August 1978, 국역: ꡔ이론ꡕ, 1995년 겨울 참조).

참고로, 바슐라르는 과학활동의 중심을 연구로 설정하고, 실험(기술)과 교육은 그 응용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캉기옘이 지적하듯이 과학적 연구 이전에 이미 실험(기술)과 교육이 존재하는 의학의 경우에는 응용이 아니라 융합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실제로는 바슐라르가 준거하는 물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알튀세르가 지적하듯이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관계도 응용이 아니라 융합으로 특징짓는 것이 옳다.

바슐라르의 역사인식론과 구별되는 인식론 비판을 위해서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인식개선론」)의 방법에 주목한다. 즉, 먼저 도구(개념)를 갖고 있어야 그것으로 새로운 도구(개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알기 위해서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즉 먼저 진리적 관념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Habemus enim ideam veram)].” 따라서 진리적 관념에서 그 자신[동시에 오류적 관념]에 대한 관념이 발생한다. 즉 “진리는 그 자신[동시에 오류]의 지표(index sui)다”.  

게다가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와 스피노자의 인식과정론을 마르크스(1857년 「서론」)의 방법과 결합한다. 즉, 추상에서 구체로 상승하는 개념의 전개(즉 이론)에 의해 사고구체물은 현실구체물을 영유 또는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런 결합의 결과가 바로 G I(인식의 대상)과 G II(수단)와 G III(생산물)로 구성되는 인식과정에 대한 셰마다. G I은 스피노자의 가상 또는 마르크스의 표상(예: 상품 일반 또는 단순상품생산), G II는 개념(특수 상품으로서 화폐와 노동력), G III는 새로운 개념(자본 또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가리킨다.

G I과 G III 사이에서 인식론적 절단이 발생하는데, 이런 절단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G II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G II가 G III와 마찬가지로 개념이라는 사실인데, 이미 지적한 대로 이것은 스피노자의 방법에 충실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G II를 ‘문제설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개념의 현존이 아니라 부재를 강조한다. 그가 ‘징후적 독해’를 통한 문제설정의 이행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마르크스의 문제설정에 대한 징후적 독해의 결과이고, 발리바르의 이데올로기론은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에 대한 징후적 독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인식과정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알튀세르는 G I, G II, G III를 스피노자(ꡔ윤리학ꡕ)가 말하는 1종, 2종, 3종의 인식과 동일시한다. 그는 특히 3종의 인식을 (이성과 가상의 결합이 아니라) 보편과 특수의 결합으로 해석하면서 G III와 동일시하지만, G II도 보편과 특수의 결합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스피노자를 따라 인식(‘이론적 실천’)을 생산적 노동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식과정론과 방법론의 차이가 모호하게 된다).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이 인식과정론으로서 철학이라는 정의를 투쟁과 봉사로서 철학이라는 정의로 정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인식과정론의 짝이 되는 것이 바로 구조인과론이다(‘인식 효과’와 짝이 되는 ‘사회 효과’). 그는 경제라는 최종심을 갖는 생산양식이라는 구조에 주목한다(사실 이런 용어법은 약간 혼란스러운데, 생산양식 대신 사회구성체, 경제 대신 생산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더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에는 지배심도 있는데, 착취에 경제외적 강제가 필요한 경우 정치(노예제) 또는 이데올로기(봉건제)가 지배심이 된다. 그리고 착취에 경제적 강제만 필요한 경우에는 경제(자본주의)가 지배심이 된다. 즉 알튀세르에게서 구조는 ‘지배심을 갖는 구조’(structure à dominante)다.

구조인과론은 데카르트적인 기계적 인과론과 라이프니츠적인 표출적 인과론 또는 헤겔적인 유기체적 인과론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우선 기계론은 부분(예: 경제)을 원인으로 간주하는데, 그러나 원인은 전체(사회구성체)다. 반면 유기체론은 전체를 원인일 뿐만 아니라 본질(‘총체성’(totalité)으로서 전체)로 간주하는데, 그러나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본질과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스피노자(ꡔ윤리학ꡕ)처럼 실체(신=자연)와 속성(연장과 사고) 또는 양태(물체와 관념 또는 육체와 정신)의 관계라고 해야 한다(따라서 전체는 부분에 내재하는 원인이다). 이렇게 해서 구조인과론은 기계적 인과론과 유기체적 인과론의 단순성(또는 선형성)을 비판할 수 있다. 즉 구조인과론의 특징은 복잡성(또는 비선형성)이다.

구조인과론은 카우츠키와 스탈린의 경제주의(또는 생산력주의 또는 진화주의)는 물론이고 포이어바흐와 청년 마르크스의 인간주의(또는 의지주의)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스탈린주의(즉 카우츠키주의의 ‘사후 복수’로서 스탈린주의)와 그것에 대한 우익적 비판으로서 인간주의(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스탈린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기 위해서 알튀세르는 레닌과 마오를 매개로 하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익적 비판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핵심이 바로 헤겔 변증법에 대한 비판인데, 경제주의와 인간주의는 헤겔 변증법의 역사주의(즉 절대정신의 역사철학)를 전도할 따름이기 때문이다(‘빈자의 헤겔주의’로서 경제주의와 ‘부자의 경제주의’로서 인간주의).

구조인과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잉결정론을 상대화한다는 데 있다. 즉 과잉결정론은 구조인과론의 복잡성을 의미할 따름이다(인과론과 결정론 사이의 관계는 일단 논외로 하자). 이런 문제는 특히 재생산과 이행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정세에 따른 모순들의 전위(또는 발산 또는 분리)와 응축(또는 수렴 또는 결합)으로 특징지어지는 과잉결정성으로서 구조인과성에 따라 재생산과 이행을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고유한 난점이 있기 때문이다.

재생산과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한 것은 사실 발리바르다. 그는 먼저 ‘역사의 동력’으로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1859년   「서문」)과 계급투쟁(1848년 ꡔ공산주의자 선언ꡕ) 사이의 긴장에 주목한다. 나아가 그는 공시성과 통시성이라는 구조주의적 개념을 이용하여 재생산과 이행을 설명한다. 그는 공시성과 재생산을 정역학으로 특징짓는 레비-스트로스와 달리 동역학, 즉 구조적 경향으로 특징짓는다. 또 통시성과 이행을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구조의 변혁으로 특징짓는다. 그런데 공시성‧재생산과 달리 통시성‧이행에 대한 설명은 이중적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비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이행적 생산양식론(예: 매뉴팩처)과 (필연적) 발생이 아니라 (우연한) 출현으로 특징지어지는 계보학(본원적 축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설명의 난점은 우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비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매뉴팩처에서 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기계제대공업으로의 이행에 대한 설명이 목적론적이라는 것이다(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비조응이 헤겔 변증법처럼 내용과 형태의 모순일 따름이라고 비판하면서 알튀세르가 새로이 제안하는 생산양식의 접합론에도 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본원적 축적, 즉 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봉건제에서 비조응으로 특징지어지는 매뉴팩처로의 이행에 대한 설명에서는 재생산과 이행이 분리된다(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유비되기 때문에 더욱 곤란한 문제다). 특히 ‘구조 그 자체라는 한계’(Schranke)가 아니라 ‘구조 내부에서의 변화의 한계’(Grenze)를 분석하는 동역학(예: 이윤율 또는 지대율 하락이라는 구조적 경향)에서 구조의 변혁으로서 이행의 조건을 도출할 수는 없다. 



ꡔ철학과 과학자의 자생적 철학ꡕ(1967), ꡔ레닌과 철학ꡕ(1968),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연구노트)」(1969)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필연성을 인식하기 위해서 먼저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ꡔ‘자본’을 읽자ꡕ 이후의 연구 계획을 살펴보자. 1965년에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ꡔ‘자본’을 읽자ꡕ를 출판한 다음 알튀세르는 마슈레, 바디우, 마트롱과 함께 스피노자를 주제로 하는 1966-67년 연례세미나를 계획한다. 동시에 발리바르(가능하다면 에스타블레)와 함께 ‘절단의 저작’으로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에 대한 저서의 집필도 계획한다.

그러나 1966년 가로디와의 인간주의 논쟁에 프랑스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개입하면서 세브(그리고 보카라)가 새로운 이론가로 부상하자, 트로츠키주의와 마오주의(스탈린주의적 분당파)에 대항하여 1964년에 창간된 ꡔ마르크스-레닌주의 잡지ꡕ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랑시에르, 랭아르, 르쿠르 같은 마오주의적 경향의 제자들이 탈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례세미나 및 집필 계획은 무산되지만, 그러나 알튀세르는 1967년 봄에 ‘스피노자 그룹’이라는 비공개 연구회를 결성한다(또 1963년부터 구상해오던 ꡔ이론ꡕ의 창간도 계획한다). 1969년까지 존속한 이 연구회에는 알튀세르, 발리바르, 마슈레, 에스타블레, 뒤루와 함께 바디우, 토르, 베틀렘, 그리고 알튀세르의 죽마고우인 고드마 등이 참여한다. 또 알튀세르는 1967년 가을부터 1968년 5월 직전까지 발리바르, 마슈레, 바디우를 필두로 해서 페쇠, 레노, 피샹과 함께 ‘과학자를 위한 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공개강좌를 개최한다.

스피노자 그룹의 연구성과가 바로 알튀세르 자신의 재생산 및 이데올로기론, 에스타블레의 학교 비판, 베틀렘의 사회주의 비판이다. 알튀세르가 발리바르, 마슈레, 뒤루, 바디우와 함께 집필하려던 ꡔ변증법적 유물론의 요소들ꡕ(‘우리의 ꡔ윤리학ꡕ’)은 완성되지 못하지만, 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철학의 정의에 대한 정정, 철학의 대상으로서 토픽에 대한 최초의 소묘가 제시된다("Notes sur la philosophie"(1967-68), in E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I, Stock/IMEC, 1995 참조).

참고로, 1968년 5월 이후 알튀세르와 분리되는 랑시에르, 랭아르, 르쿠르는 나중에 ‘신철학’을 제창하는 글뤽스만과 함께 사르트르 및 푸코와 연대하여 ‘프롤레타리아 좌파’라는 새로운 초자유주의 정파를 결성한다. 또 사회당(분당파) 소속이던 바디우는 1970년 이후 알튀세르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마오주의 정파를 구성한다. 랑시에르나 바디우와 달리 랭아르와 르쿠르는 1970년대 초반 알튀세르에게 복귀한다. 마슈레는 1975년 이후 아카데미즘에 몰두하면서 알튀세르에 대해서는 ‘유보’와 ‘침묵’을 고수한다.

알튀세르의 최초의 자기비판은 1966년 문화혁명과 1968년 5월 사이에 시도된다. 우선 ‘과학자를 위한 철학 강의’의 서론인 ꡔ철학과 과학자의 자생적 철학ꡕ에서는 과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을 다시 정의한다. 즉 철학은 더 이상 인식과정론이 아니라 유심론 및 관념론의 과학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의미에서 과학에 대한 봉사로 특징지어진다(나중에 이런 시도를 발전시킨 것이 바스카의 ‘과학적 현실주의’이다). 즉 과학에 대한(de) 철학에서 과학을 위한(pour) 철학으로의 이행이 시도되는 것이다(철학을 ‘이론의 이론’으로 정의하는 스탈린주의의 원천에는 플라톤주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의 이런 자기비판은 ꡔ레닌과 철학ꡕ에서 계속되는데, 특히 정치(la politique, 계급투쟁)와의 관계가 추가된다. 즉 과학과의 관계에만 주목하는 ‘일방적’ 정의가 과학과 동시에 정치와의 관계에 주목하는 ‘쌍방적’ 정의로 정정되는 것이다. “철학은 이론에서 정치를 대표하고 정치에서 과학을 대표한다.” 즉 철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을 통해 정치에도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스피노자의 인식과정론 대신 ‘주체 없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의 헤겔 변증법이 마르크스의 ‘비판적인 동시에 혁명적인’ 방법에 적합한 것으로 복권된다.

캘리니코스와 엘리엇은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을 (마오주의를 매개로 하는) ‘이론주의’에서 ‘정치주의’로의 후퇴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철학적 대상에서 절단의 우위가 토픽의 우위로 이행한다는 데 주목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중적 지위를 인식하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토픽이란 경제와 정치(le politique, 국가)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의 인과율 셰마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주의와 달리 ‘토픽을 갖는 과학’(science à topique)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의 조건은 노동자운동과의 융합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는 과학이기도 하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핵심은 1968년 5월에 대한 비판적 평가 속에서 제시되는 재생산 및 이데올로기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와 라캉을 따라서 이데올로기 일반의 메커니즘을 ‘현실에 대한 가상화’로 정의한다. 이제 알튀세르는 상징의 문제를 고려하는데, 이데올로기 일반의 메커니즘은 큰 주체가 작은 주체를 호명하는 ‘[현실에 대한] 상징의 가상화’이기 때문이다.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라캉의 ‘현실(R)-상징(S)-가상(I)’이라는 셰마를 전도시키려는 시도다.

참고로, 경제(또는 생산양식)가 생산수단을 매개로 하는 생산관계로 특징지어진다면, 이데올로기(또는 주체화양식)는 상징을 매개로 하는 교환관계 또는 오히려 교통관계로 특징지어진다. 이데올로기적 실천 속에서 주체는 감정을 교통한다. 따라서 스피노자(ꡔ윤리학ꡕ)가 지적하는 대로 이데올로기(가상과 감정)에 대한 과학적 비판(현실에 대한 지식)은 무력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학‧예술적 비판, 특히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남는 문제는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만으로는 감정을 치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문학‧예술적 비판으로도 감정을 소멸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윤소영, 「베토벤에 관한 11개의 테제」(1997) 참조).

그러나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실천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의해서 지지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데올로기 일반과 구별되는 역사적 이데올로기에도 주목할 수 있다.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학교와 가족(여기서 민족주의가 유래한다)을 핵심으로 해서 미디어와 문화(여기서 상업화된 오락으로서 대중문화가 유래한다)를 포괄한다. 반면 억압적 국가장치는 군대와 경찰과 관료제를 핵심으로 하는 행정부를 가리킨다. 정당제도를 핵심으로 하는 입법부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속하고, 사법부는 억압적 국가장치에 속한다. 

엘리엇이나 캘리니코스처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기능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경제와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되는 사회구성체라는 전통적인 토픽이 재생산이라는 새로운 토픽으로 대체된다는 사실, 게다가 이제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 때문에 재생산은 이행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Appendice: Du primat des rapports de production sur les forces productives",  in Sur la repro-

duction (1969), PUF, 1995 참조). 요컨대 재생산 및 이데올로기론에 의해 구조인과론의 우위는 과잉결정론의 우위로 변화된다(발리바르, 「이행의 아포리아들와 맑스의 모순들」(1987), ꡔ맑스주의의 역사ꡕ, 민맥, 1991). 또 이행은 경제적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모순의 과잉결정 또는 해후(우연한 결합)로 인식된다(「비동시대성」(1988), ꡔ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ꡕ, 이론, 1993 참조).

참고로, 정치(계급투쟁)가 자율성을 상실하면서 이데올로기(주체화양식)가 경제(생산양식)와 함께 그것의 또 다른 원인(또는 제약이라는 의미에서의 보편상수)이 된다. 경제와 이데올로기는 서로 존재조건이 되는 동시에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사회구성체는 최종심과 지배심을 갖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사회구성체는 스피노자적 실체가 아니고, 경제와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평행론’으로 특징지어지는) 속성 또는 양태가 아니다.



재생산과 이행

                       

생산관계의 우위 아래 생산력의 발전으로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 생산관계의 재생산으로서 소유법칙의 영유법칙으로의 반전

생산양식의 동역학으로서 이윤율의 하락과 고정자본의 로지스틱 성장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 즉 이행의 계기로서 경제적 모순)

↓↑

생산력 발전‧생산관계 재생산‧생산양식 동역학의 조건으로서 주체화양식 또는 인권의 정치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 즉 이행의 계기로서 이데올로기적 모순)


알튀세르는 1968년 5월을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 즉 이데올로기적 모순과 경제적 모순의 해후로 특징짓는다. 그리고 이런 해후가 이행(응축)이 아니라 재생산(전위)으로 귀결된 이유를 프랑스공산당과 노총이 학생운동의 급진주의(레닌이 말하는 ‘좌익소아병’)에 대해서 잘못 평가한 데서 발견한다. 이것은 오페라이스모의 급진주의를 평의회노조주의로 수용하고 동시에 레닌주의와 평의회주의의 모순을 지양하는 이탈리아공산당과 노총의 경험과 대조되는 것이다. 참고로, 엘리엇은 이 시기의 알튀세르에게 마오주의와 유로공산주의가 공존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아마 1968년 이후 문화혁명이 쇠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메커니즘을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닌데, 이는 인권의 정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아직 지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이고 가상적인 보편성으로서 인권의 정치는 지배자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상징과 가상을 보편화한다. 이 때문에 인권의 정치에 모순이 있고 또 자유주의 및 민족주의적 공화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및 국제주의적 노동자연합의 반역이 가능한 것이다(이렇게 볼 때 1968년 5월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갖는 초자유주의적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ꡔ존 루이스에 대한 답변ꡕ(1972), ꡔ자기비판의 요소들ꡕ(1972),

「아미앵의 주장」(1975)


1968년 5월 이후에도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을 계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의 이중적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해서 ‘가상적’ 정통(스탈린주의와 구별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또는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적이고 레닌주의적인 전통’)의 재구성에도 몰두하게 된다. 그가 불가결한 역사적 사례 또는 준거로서 현실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명시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이 때문에 그는 트로츠키주의의 유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알튀세르를 따라 발리바르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익적 비판을 구체화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예를 들어 그는 생산력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라는 관점에서 경제학 비판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통일성을 복원시키고, 사회주의적 생산양식(국유화 및 계획화)과 그 논거로서 국독자(보카라)를 비판한다. 1980년대 후반 피디(PD)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에게 주목한 것은 특히 이런 맥락에서다(「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앞의 글 참조).

현실사회주의와 공산당에 준거해서 가상적 정통성을 재구성하려는 이 시기를 ‘외화내빈’으로 평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자기비판이 모두 무효인 것은 아니다. 우선 알튀세르는 계급투쟁을 더욱 부각시키고 철학을 ‘최종심에서 이론적 계급투쟁’(또는 ‘비철학적 철학’)이라고 정의하면서 절단에 대한 토픽의 우위를 더욱 강조한다.

동시에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서문에서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알튀세르는 인과성의 ‘임계’이자 이행의 ‘유산’으로서 과소결정에 주목한다. 그는 응축(이행)과 구별되는 전위(재생산)를 과잉결정과 구별되는 과소결정으로 부각시킨다. 게다가 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공개강의에서 운(fortuna, 우연)과 덕(virtus, 원인 또는 결정)의 해후를 강조하면서 우연 속에서 필연의 생성이라는 의미에서 ‘우연의 필연’(또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위기의 저작’(1977-78)


그러나 알튀세르는 곧 자기비판을 중단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을 제시한다(따라서 이제 스탈린주의 비판이나 트로츠키주의와의 논쟁도 무의미해진다). 그는 현실사회주의라는 준거를 기각하고 가상적 정통의 재구성을 포기한다. 게다가 그는 공산당을 ‘계급투쟁의 잠정적 조직형태’로 상대화한다. 그러나 그가 탈당을 고려하는 것은 아닌데, 대신 ‘두 개의 중심의 분리’라는 엥겔스의 테제에 근거하여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하는 모순, 즉 마르크스의 곤란(경제학 비판)과 공백(이데올로기 비판)에 주목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그 쇄신의 기회로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을 알튀세르의 자기파괴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만(발리바르, 「알튀세르의 침묵」(1988), ꡔ루이 알튀세르, 1918-1990ꡕ, 민맥, 1991), 그러나 알튀세르의 현재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인식할 수도 있다(「알튀세르의 대상」(1991), ꡔ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ꡕ, 앞의 책; "Structural Causality, Overdetermination, and Antagonism"(1990), in Postmodern Materialism and the Future of Marxist Theory: Essays in the Althusserian Tradition, Wesleyan University Press, 1996).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절단에 대한 토픽의 우위와 구조인과론에 대한 과잉결정론 및 과소결정론의 우위로 귀결되는 자기비판의 유효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개념의 개조(상징의 가상화, 그러나 동시에 반역의 가능성)와 주체(인간학, 그러나 동시에 인간학 비판으로서 인권의 정치)의 복권을 위한 1980-90년대 발리바르 자신의 작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The Infinite Contradiction"(1993), Yale French Studies, No. 88, 1995).

참고로, ‘해후의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론과는 조금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윤소영, 「알튀세르의 철학적 유산」의 부록 「알튀세르를 위한 강연」(1994), ꡔ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알튀세르를 위하여ꡕ, 문화과학사, 1995 참조). ꡔ마르크스를 위하여ꡕ 서문에서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해후의 유물론을 과잉결정(‘우연의 필연’)에 대한 과소결정(‘우연의 우연’)의 우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후의 유물론은 인과론과 결정론을 상대화하는 ‘우연의 유물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발리바르를 비롯한 알튀세르의 제자들은 대체로 자서전 ꡔ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ꡕ와 함께 우연의 유물론을 엘렌의 파괴에 뒤이은 자기 자신의 파괴로 해석한다. 그러나 네그리는 이것을 (포스트구조주의로의) ‘방향전환’(Kehre)이라고 해석한다. 또 불연속성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강조하는 모피노(투르케토 계열)와 라티넨의 해석에 찬성하는 엘리엇은 ‘굴절’(또는 ‘변곡’, 말하자면 1계 도함수가 아니라 2계 도함수의 부호 변화)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2006. 4.




보론: 인과론과 결정론








인과론(causalism)과 결정론(determinism)을 둘러싼 논쟁사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붕헤(Mario Bunge, Causality and Modern Science (1959), 3rd ed., Dover, 1979)가 참고할 만하다. 그의 설명은 고전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그렇지만 물론 한두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용어법


먼저 인과론의 용어법을 정리해두자. 인과작용(causation)이나 인과관계(causal relation)가 현실의 대상을 가리킨다면, 인과성(causality)과 인과율(principle of causality)은 사고의 대상을 가리킨다. 좀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인과관계‧인과작용은 존재론적 개념이고 인과성‧인과율은 인식론적 개념이다.

결정론의 용어법도 마찬가지다. 결정작용(determination)과 결정관계(determinate relation)는 현실의 대상을 가리키는 존재론적 개념이고, 결정성(determinacy)과 결정률(principle of determinacy)은 사고의 대상을 가리키는 인식론적 개념이다.

붕헤는 원인(cause)이 효과(effect)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의 상이한 양상을 통해 인과성과 결정성을 구별한다. 인과성은 항상적(constant)이고 유일한(unique), 즉 좁은 의미에서 필연적(necessary)인 메커니즘을 의미하고, 결정성은 유일하지는 않지만 항상적인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즉 인과성은 결정성의 특수한 형태라는 것이다.1)     

그러나 붕헤와 반대로 결정성을 인과성의 특수한 형태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고, 또 알튀세르처럼 인과성과 결정성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결정성과 인과성을 구별하지 않기로 한다.2)


인과작용의 존재 → 인과성‧결정성‧법칙성‧필연성

인과작용의 부재 → 비결정성‧우연성



논쟁사


인과론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이다. 그는 존재의 원인으로서 형상인(formal cause)과 질료인(material cause), 생성의 원인으로서 목적인(teleological cause)과 작용인(efficient cause)을 구별한다. 의학‧의술에 유비하자면, 육체의 형상으로서 건강이 형상인, 건강의 회복이 목적인이고, 질료인은 육체가 영유하는 질료로서 약, 작용인은 약의 처방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질료인에 대해서 형상인, 작용인에 대해서 목적인이 우위를 갖는다. 또 생성에 대한 존재의 우위에 따라 형상인‧질료인이 목적인‧작용인에 대해서 우위를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4원소 중 땅과 물 같이 무거운 것이 하강하는 운동이나 공기와 불 같이 가벼운 것이 상승하는 운동의 원인은 형상의 완성과 목적의 달성에 있다.3)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론은 중세 가톨릭신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스콜라철학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스콜라학파의 모토가 ‘원인에 의한 지식’(scientia per causas)인 것은 이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학파의 인과론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 바로 갈릴레이의 운동학(kinematics)이다. 갈릴레이는 목적인을 폐기하고 작용인만 인정한다. 또 그는 존재에 대한 생성 또는 운동의 우위에 따라 형상인과 질료인도 폐기한다.4) 그러나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따라 작용인을 외재적 힘으로 이해한다. 또 그는 데모크리토스 이래 원자론적 전통에 따라 관성력을 내재적 힘으로 이해한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갈릴레이의 운동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해서 충격이라는 작용인을 특권화한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또한 데모크리토스적 전통에 따라 접촉작용(action by contact)을 특권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력이라는 작용인의 효과로서 운동, 즉 중력의 작용에 의해서 운동이 생산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 뉴튼의 동역학(dynamics)이다. 그러나 중력의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을 둘러싸고 라이프니츠를 포함하는 데카르트주의자와 논쟁이 전개된다.5)

로크의 현실주의는 뉴튼의 동역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다. 로크는 ‘원인=근거‧이성’(causa sive ratio)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따라 인과성을 인식론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로크에게서 인과성이라는 인식론적 개념은 인과작용이라는 존재론적 개념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붕헤는 로크의 현실주의를 ‘주체도 기원(또는 목적)도 없는 과정’으로 특징짓는다. 즉 창조자에 의한 무로부터의 생성(또는 무로의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  

로크 이후 인과론을 둘러싼 현대적 논쟁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에 의해 개시된다.7) 흄과 칸트의 경험주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작용을 기각하고 인식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성만 수용한다. 또 데카르트를 계승하는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도 결국 인과율을 근거율(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로 대체한다.8)

반면 콩트와 마흐의 실증주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작용과 인식론적 개념으로서 인과성을 모두 기각한다. 게다가 비엔나학파의 논리‧실증주의는 근거율을 논리학, 심지어 수학으로 환원한다. 이로써 과학은 현실의 원인(인과작용‧인과관계)에 대한 지식(인과성‧인과율)으로서 근거‧이성을 추구하는 설명(why)이 아니라, 실용주의적‧조작주의적 지식으로서 수학적‧통계학적 모형(기능주의‧상관관계)을 특권화하는 묘사(how)로 환원되고 만다.



구조인과론과 과잉결정론9)

 

알튀세르의 구조인과론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에서 유래한다. 스피노자는 양태와 양태 사이의 외재적(타동적) 인과성과 달리 실체와 양태 사이의 인과성은 내재적(구조적)이라고 주장한다. 구조인과성은 관계, 나아가 모순을 원인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인과론이 뉴튼의 동역학과 로크의 현실주의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피노자의 내재적 힘은 갈릴레이의 관성력과 홉즈의 코나투스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10)

반면 과잉결정론은 프로이트 또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차용되는 것이다. 다수의 원인의 단일한 효과를 의미하는 과잉결정성을 다음과 같은 셰마로 표현할 수 있다.



라는 두 개의 독립변수(원인)에 라는 하나의 종속변수(효과)가 대응하는 함수(메커니즘) 가 존재한다는 것이다.11)

예를 들어 기본모순(생산 내부의 모순, 즉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과 파생모순(생산과 실현‧분배 사이의 모순)처럼가 독립적이 아닐 때, 이차적 원인은 상대적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일차적 원인으로 환원될 수 있다.



알튀세르가 ‘최종심의 결정’(일차적 원인으로서 경제과 이차적 원인으로서 이데올로기)이나 ‘사회구성체’(경제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구조)라는 개념을 지양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경제적 모순(이윤율의 하락으로 표현되는 생산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모순(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역으로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처럼가 독립적일 때, 진정한 의미에서 과잉결정이 존재한다. 또 두 모순의 작용이 수렴할 때 혁명(공산주의적 이행), 발산할 때 반혁명(자본주의적 이행)이 발생한다. 이제 과잉결정성의 셰마를 다음과 같이 좀더 구체화해볼 수 있다.


    


두 모순의 수렴(+)과 발산(-)은 우연일 따름이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12)

다수의 원인의 우연한 결합, 즉 해후(encounter) 때문에 해방‧변혁‧시빌리테라는 삼중적 의미에서 혁명이 가능하다.13) 필연적인 동시에 우연적인 조건으로서 운명(destiny)과의 대결, 그러나 승리에 대한 보장이 존재할 수 없는 대결로서 혁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숙명론(fatalism)과 우연론(fortuitism)은 혁명을 배제한다. 초월적 원인으로서 숙명(fate)과 초월적 우연으로서 행운(fortune)은 무조건적이기 때문이다. 숙명론과 우연론은 라이프니츠의 변신론(theodicy) 또는 그것과 친화성을 갖는 헤겔의 목적론(teleology)과 양자에 반대하는 벤야민의 종말론(eschatology)으로 귀결될 따름이다.

   

2006. 6.



베토벤에 관한 11개의 테제






            

1. 온갖 키치 예술과 포스트 증후군으로 특징지어지는 ‘문명의 질병’(Unbehagen in der Kultur)은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에 적합한 윤리와 그것을 형상화하는 문학과 음악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세기 초 ꡔ장 크리스토프ꡕ(특히 5장 「광장의 시장」)에서 로맹 롤랑의 시도가 그 선례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게서 현대의 이념‧이상과 ‘감정의 치료’에 적합한 베토벤의 음악적 언어에 대한 해석을 배울 수 있다.

2. 그렇지만 불레즈가 지적했듯이, 베토벤을 ‘착취’했던 음악사의 사례들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한다. 슈만‧멘델스존‧브람스의 낭만주의 음악이나 그들과 친화성을 갖는 리츨러‧셴커‧레티의 베토벤 비평은 ꡔ합창ꡕ 교향곡으로 히틀러의 생일을 축하한 푸르트뱅글러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를 기념한 번스틴의 ‘소극’으로 되풀이된 바 있다.

3. 이에 대해 베를리오즈‧리스트‧바그너‧슈트라우스‧말러의 낭만주의 음악, 베커‧아도르노‧부쿠르슐리에브의 베토벤 비평이나 클렘페러‧뵘‧레보위츠‧바렌보임의 ꡔ합창ꡕ 교향곡 연주는 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불레즈의 포스트바그너주의적 모더니즘 음악과 친화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해답이 없다는 것은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또는 오히려 쇤베르크와 아이슬러 사이의 불화에 의해 반증된다.

4. 따라서 (후기) 베토벤 자신에게서 (베토벤) 음악의 ‘전화’ 가능성을 찾는 것이 더 나은데, 이를 위해 솔로몬이 시도하는 베토벤의 양식적 시기구분을 ‘전회’(Kehre) 또는 ‘절단’, 나아가 ‘해체’라는 두 가지 계기에 주목하면서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절단’의 물질적 토대로서 낡은 ‘음악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후원 양식의 추구(아카데미(collegia musicae)와 종신연금), 급진 민주주의적 또는 유토피아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예술 창고’(Magazin der Kunst)), 나아가 결혼(‘영원의 여성’) 대 독신주의(‘자유결합’) 사이의 정신적 갈등이라는 음악외적 요인들은 베토벤 음악의 ‘토픽’을 구성하는 주요한 심급들이다. ‘무상(無償)의 포이에시스’ 또는 ‘자유로운 테크네’로서 예술을 상징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플루타르크의 스토아주의나 쉴러의 칸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ꡔ빌헬름 마이스터ꡕ에서 괴테가 추구했던 ‘정신의 교육’(Bildung)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면서 ꡔ정치론ꡕ에서 스피노자가 당면했던 민주주의와 에로스 사이의 아포리아를 투쟁으로써 해결한다(ausfechten).

5. 나아가 베토벤의 ‘토픽’은 음악적 위기와 창조력의 전개를 추동하는 모순들과 그것들의 과잉결정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베토벤은 포스트계몽주의적 반동기의 ‘피상적‧외양적 기쁨’(surface of gaiety)과 ‘자포자기적 경박함’(desparing frivolity)에 대응하는 후기 모차르트‧후기 하이든의 ‘전성기’ 비엔나 고전주의 양식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베토벤의 ‘후기’ 고전주의 양식을 특징짓는 ‘영웅적 양식’(ꡔ에로이카ꡕ 교향곡)은 비극으로서 ‘소나타 형식’에 의해 프랑스 혁명 음악의 ‘장엄 양식’을 영유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모차르트‧하이든과 베토벤 사이에는 음악사적 ‘전회’ 또는 ‘절단’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돌프 마르크스의 에두아르드 한슬릭 비판이 시사하듯이 베토벤의 음악에는 낭만주의 미학 또는 비평에 대한 비판도 함축되어 있다.

6.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기에 ‘비극적 장엄함’이라는 아우라를 상실한 ‘영웅적 양식’(교향곡 ꡔ웰링턴의 승리ꡕ)은 하나의 ‘풍자’(parody)와 ‘소극’(farce) 또는 ‘냉소주의’(cynicism)로서 스스로 종언을 예고한다. 결국 고전주의를 해체하는 후기 베토벤의 ‘포스트고전주의’ 양식은 소나타 형식을 해체하는 푸가와 변주에 의해 ‘영웅 없는 영웅주의’, ‘영웅주의 없는 영웅성’으로서 계몽주의적 이상의 비(非)동시대적 ‘부활’ 또는 오히려 ‘현성화’(顯聖化, transfiguration)를 실현한다. 로맹 롤랑이 주목했듯이 베토벤의 ‘윤리적 미’ 또는 ‘승화된 에로스’는 낭만주의나 바로크주의(또는 그것들의 모더니즘적 변형)의 ‘미학적 종말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피카로적‧디오니소스적’이 아닌 ‘프로메테우스적’인 베토벤의 주체화양식).

7. 19세기 내내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나 ꡔ합창ꡕ 교향곡은 아주 난해한 작품으로 간주되었다. 그 잠재력을 이해한 리스트나 바그너는 오히려 규칙을 반증하는 예외였던 셈이고, 바로 이 작품들 때문에 베토벤의 후기 음악 전체는 낭만주의 음악이나 미학, 비평에 의해 제대로 수용될 수 없었다. 그러한 ‘몰인식’(méconnaissance)은 결국 ꡔ합창ꡕ 교향곡의 피날레인 「기쁨의 노래」에 대한 아도르노의 ‘부정적 긍정’(dénégation)으로 이어졌다(‘공동체 음악’ 또는 오히려 ‘초개인성의 음악’이라는 이상을 포기한 음악의 사회에 대한 ‘평행성’ 또는 ‘미학적 자율성’).

8. 솔로몬과 커먼‧타이슨에 따르면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의 ‘불가사의함’은 단지 ‘연주의 불가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르고로 시작하는 피날레의 푸가는 거의 즉흥적으로 삽입된 이 단 하나의 악상에 의지해 ‘소나타의 정신으로부터 푸가의 재탄생’, ‘푸가의 시(詩)로의 생성’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베토벤이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헨델식으로 지양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전개부를 대체하는 푸가에 의해 해체된 소나타 형식은 ꡔ디아벨리 변주곡ꡕ에서는 ‘일반성과 특이성의 비(非)동시대적 접합’을, 나아가 「기쁨의 노래」에서는 ‘에로스의 승화’를 실현한다. 리트 ꡔ멀리 있는 연인에게ꡕ에서 시도된 서정적인 ‘민요양식’(Volksweise), ꡔ장엄미사ꡕ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랜드 오라토리오’는 이렇게 포스트민족적 국제주의를 위한 ‘인류의 라 마르세예즈’로서 「기쁨의 노래」에서 ‘윤리적 미’로 완성되는 것이다.

9.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와 ꡔ합창ꡕ 교향곡으로 상징되는 베토벤의 후기 음악 또는 오히려 그의 ‘한계양식’(로젠)을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의 유비에 따라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후기 베토벤의 ‘지혜‧지식’(Witz)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ꡔ파우스트ꡕ)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하는 마르크스(ꡔ자본ꡕ) 또는 스피노자(ꡔ윤리학ꡕ)의 그것과 친화성을 갖기 때문이다.

10.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의 딜레탕트적인 예술관에 반대하여 아주 스피노자적인 예술관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청년 베토벤은 어떤 작품을 난해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실은 최상의 칭찬인 셈이라고 하면서, 난해한 것은 또한 미적인 것, 선한 것, 위대한 것 등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년의 베토벤은 예술과 과학만이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고, 이는 그것들만이 우리에게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1.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베토벤 대신 재즈와 로큰롤을 수용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부르주아 문화의 긍정적 기만을 폭로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예술적 승화에 대한 원한에 찬 거부는 문화산업의 더 많은 이윤 추구와 야만 행위에 대한 고의적이고 분별 없는 변명거리를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이슬러가 말했듯이, 건강한 주거, 훌륭한 식사, 2세의 교육, 노후의 보장 등이 그런 것처럼, 베토벤 역시 투쟁해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음악에서 가장 긴급한 임무는 전문가 운동으로, 음악의 문맹을 절멸시켜 고전 음악가의 가장 복잡한 음악까지도 인민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997. 6. 10.                      



‘음악의 프로메테우스’ 베토벤


메이너드 솔로몬의 ꡔ베토벤ꡕ(공감, 1997)은 베토벤에게서 음악의 전화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대의 이상과 감정의 치료에 적합한 베토벤의 음악적 언어에 대한 이런 해석은 지난 세기초 ꡔ장 크리스토프ꡕ에서 로맹 롤랑의 시도를 선례로 한다. 이 점을 부연하기 위해 ‘절단’과 ‘해체’라는 두 계기에 주목하면서 베토벤 음악의 양식적 시기구분을 베토벤 음악의 ‘토픽’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다.

절단의 물질적 토대로서 새로운 후원 양식의 추구(아카데미와 종신연금), 급진 민주주의적 또는 유토피아 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음악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예술 창고’), 나아가 결혼 대 독신주의(‘영원의 여성’ 대 ‘자유결합’) 사이의 정신적 갈등이라는 음악외적 요인들은 베토벤 음악의 토픽을 구성하는 주요한 심급들이다. ‘무상(無償)의 포이에시스’ 또는 ‘자유로운 테크네’로서 예술을 상징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플루타르크의 스토아주의나 쉴러의 칸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다. 동시에 베토벤은 괴테가 ꡔ빌헬름 마이스터ꡕ에서 추구했던 ‘정신의 교육’(Bildung)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스피노자가 ꡔ정치론ꡕ에서 당면했던 ‘민주주의와 에로스’ 사이의 아포리아를 투쟁으로써 해결한다.

베토벤의 토픽은 음악적 위기와 창조력의 전개를 추동하는 모순들과 그것들의 과잉결정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베토벤은 포스트계몽주의적 반동기의 피상적 기쁨과 자포자기적 경박함에 대응하는 후기 모차르트와 후기 하이든의 전성기 고전주의 양식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베토벤을 특징짓는 후기 고전주의적인 ‘영웅적 양식’(ꡔ에로이카ꡕ 교향곡)은 ‘비극으로서 소나타 형식’에 의해 프랑스 혁명 음악의 ‘장엄 양식’을 영유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모차르트‧하이든과 베토벤 사이에는 음악사적 절단이 있다. 동시에 에두아르드 한슬릭에 대한 아돌프 마르크스의 비판이 시사하듯이 베토벤의 음악에는 낭만주의 미학 또는 비평에 대한 비판도 함축되어 있다.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기의 영웅적 양식은 비극적 장엄함이라는 아우라를 상실한 일종의 냉소주의적 풍자(교향곡 ꡔ웰링턴의 승리ꡕ)에 의해 스스로 종언을 예고한다. 결국 고전주의 자체를 해체하는 포스트고전주의 양식(ꡔ합창ꡕ 교향곡)은 소나타 형식과 푸가, 변주, 특히 ‘민요 양식’(Volksweise)의 결합에 의해 ‘영웅 없는 영웅주의’, ‘영웅주의 없는 영웅성’으로서 계몽주의적 이상의 비(非)동시대적 부활 또는 오히려 현성화(顯聖化)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승화된 에로스의 윤리적 미’는 낭만주의 또는 그것의 모더니즘적 변형의 ‘미학적 종말론’에 대한 비판을 예상하고 있다. 즉 베토벤의 주체화양식은 ‘피카로’나 ‘파우스트’도 아니고 ‘디오니소스’나 ‘자라투스트라’도 아닌 ‘프로메테우스’ 또는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셈이다.


인터뷰


―  마르크스주의자가 갑자기 베토벤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성격 논쟁’에 대한 회고를 통해 약간 우회해 보겠습니다. 당시 논쟁에 개입하면서 제가 제시했던 ‘피디’라는 입장은 알튀세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롤랑이나 솔로몬의 베토벤 해석을 재구성하면서도 저는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해석에 특징적인 ‘토픽’이나 ‘절단’ 같은 개념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베토벤 사이의 철학적 친화성에 주목하면서 일체의 반동에 반역하여 현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적 베토벤 상(像)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80년대 문예운동의 주류였던 인민주의적 ‘민족음악’이나 90년대 들어와 운동권 출신 포스트주의 평론가들에 의해 복권된 록이나 재즈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발본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과 마르크스, 또는 선생이 강조하시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저로서는 온갖 포스트주의 증후군으로 특징지어지는 ‘문명(Kultur)의 불안’이라는 세기말적 상황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베토벤 음악을 이러한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에 적합한 감정의 치료, 즉 이성으로서 ‘로고스’와 접합되는 정념으로서 ‘미토스’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의 딜레탕트적 예술관에 반대하여 예술과 과학만이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줌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토벤의 ‘지혜‧지식’(Witz)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ꡔ파우스트ꡕ)가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하는 마르크스(ꡔ자본ꡕ)나 스피노자(ꡔ윤리학ꡕ)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베토벤에게 주목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누구보다도 아도르노를 꼽아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먼저 ‘레닌과 베토벤’이라는 화두를 숙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크룹스카야의 회고에 의하면, 일찍부터 베토벤의 열렬한 애호가였던 레닌은 1913년 어느 음악회에서 현악 4중주를 듣고 나서 아주 깊은 파토스에 빠졌다고 합니다. 스토아주의적 금욕과 칸트주의적 숭고에 철저했던 그는 이후 베토벤을 더 이상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포스트나폴레옹적 반동에 대한 반역을 상징하는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나 ꡔ합창ꡕ 교향곡을 듣고 감정의 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다면, 레닌은 과연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솔직히 「인터내셔널」보다는 흔히 「환희의 송가」로 불리는 ꡔ합창ꡕ 교향곡의 피날레 「기쁨의 노래」가 ‘인류의 라 마르세예즈’라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ꡔ함머클라비어ꡕ 소나타나 ꡔ합창ꡕ 교향곡을 그렇게 강조하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베토벤의 후기 음악을 대표하는 이 작품들은 로젠이 말하듯이 그의 ‘한계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포스트민족적 국제주의를 상징하는 「기쁨의 노래」는 클림트가 「기쁨이라는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 온 세상에 보내는 이 키스」라는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승화된 에로스의 윤리적 미’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19세기 내내 아주 난해한 음악으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그 잠재력을 이해한 리스트나 바그너는 오히려 규칙을 반증하는 예외였던 셈이지요. 이러한 몰인식은 결국 「기쁨의 노래」에 대한 아도르노의 고통스러운 부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말하는 음악의 미학적 자율성 또는 고유성이란 ‘초개인성의 음악’이라는 이상을 포기한 대가라고 하겠습니다.

  베토벤은 역시 베토벤입니다. 그를 음악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베토벤은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야만의 이례성’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불레즈가 지적했듯이, 베토벤을 착취했던 사례들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합니다. 특히 베토벤을 자신들의 ‘순수음악’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슈만‧브람스의 낭만주의 음악이라든지 그것과 친화성을 갖는 리츨러의 베토벤 비평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세계전쟁 와중에 히틀러의 생일을 축하하며 ꡔ합창ꡕ 교향곡을 연주한 푸르트뱅글러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베를린 장벽에서 ꡔ합창ꡕ 교향곡으로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를 기념한 번스틴의 소극으로 되풀이된 바 있습니다.

  그런 베토벤 해석에 반대한 조류는 없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리스트‧바그너‧슈트라우스‧말러의 낭만주의 음악, 베커‧아도르노의 베토벤 비평, 클렘페러‧뵘‧레보위츠‧바렌보임의 ꡔ합창ꡕ 교향곡 연주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의 해석은 베토벤 음악에서 쇤베르크의 포스트바그너주의적 음악을 예상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도르노 미학의 결함에 대해서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지만, 게다가 쇤베르크의 모더니즘 음악과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 음악 사이의 대결이 있었고, 음악의 사회적 유용성을 거부하는 쇤베르크에 대한 그의 제자 아이슬러의 이의 제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우선 베토벤 자신에게서 음악의 전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토벤 음악의 한국적 수용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시지요.

  이번에 제가 번역한 솔로몬의 평전을 읽고 베토벤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해석한 점에 대해 항의한 어떤 음악 애호가가 생각납니다. 베토벤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그의 음악은 딜레탕트적 ‘취미판단’을 넘어 현대정치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에 내포된 반역적 사상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오히려 유명 연주자나 희귀 음반에만 열광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본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마르크스나 스피노자가 갈파한 대로 ‘무지’가 역사에 도움이 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ꡔ한겨레 21ꡕ, 1997. 7. 24.)



마르크스주의자가 생각하는 베토벤

                                        

얼마 전에 ‘6‧10 시민항쟁’ 10주년을 기념하는 범국민적인 의례가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약간의 후일담이나 무용담도 곁들여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에서 80년대의 죽음과 투쟁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온갖 키치(Kitsch) 예술로 드러나는 포스트주의적인 ‘허약한 사고’ 또는 ‘미학적 종말론’이 논쟁의 지반을 변경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세기말적인 ‘니힐리즘’(니체) 또는 ‘문명의 질병’(프로이트)에 반대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일반화하고 또 그것에 적합한 문학과 음악이라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선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일반화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의 음악을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에 적합한 ‘감정의 치료’, 즉 이성으로서 로고스와 접합되는 정념으로서 미토스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메이너드 솔로몬의 ꡔ베토벤ꡕ(공감, 1997)은 지난 세기 초 ꡔ장 크리스토프ꡕ(특히 5장 「광장의 시장」)에서 로맹 롤랑의 시도를 계승한다. 우리는 롤랑과 솔로몬에게서 현대의 이상에 적합한 베토벤의 음악적 언어에 대한 해석을 배울 수 있다. 그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베토벤의 음악은 주관주의적 ‘취미 판단’을 넘어 현대정치사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음악을 손쉬운 오락이 아니라 연구해야 마땅한 고귀하고 승화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베토벤이 자신의 반역적 사상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오히려 유명 연주자나 희귀 음반에만 열광하는 음악 애호가들을 본다면 무어라고 말했을까. 베토벤은 칸트나 헤겔에게서 비롯되는 딜레탕트적 예술관에 반대하여 예술과 과학만이 더 높은 삶에 대한 암시와 희망을 줌으로써 인간을 신의 수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베토벤의 지혜 또는 지식은 칸트를 전도하는 괴테(ꡔ파우스트ꡕ)가 아니라 오히려 헤겔을 전도하는 마르크스(ꡔ자본ꡕ)나 스피노자(ꡔ윤리학ꡕ)의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

이제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성격 논쟁’에 대한 약간의 회고가 가능할 것이다. 당시 내가 제시했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라는 입장은 알튀세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근거로 하는 것이었다. 롤랑이나 솔로몬의 베토벤 해석을 재구성하면서도 나는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해석에 특징적인 개념들(특히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는 ‘토픽’이나 ‘절단’ 같은 개념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스피노자나 마르크스와 베토벤 사이의 철학적 친화성에 주목하면서 일체의 반동에 저항하면서 현대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로메테우스적 베토벤 상(像)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렇게 해서 80년대 문예운동의 주류였던 인민주의적 ‘민족음악’이나 90년대 들어와 운동권 출신 포스트주의 평론가들에 의해 복권된 로큰롤이나 재즈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발본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ꡔ중앙일보ꡕ, 1997. 9. 23.)


1) 붕헤는 원인이 효과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까지 결정성 개념을 확대한다. 즉 우발적(accidental)이고 불확실(uncertain)하지만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경우를 확률적‧통계적 결정성이라고 부른다. 반면 우발적이고 불확실하면서 계산과 예측이 불가능한 경우, 즉 좁은 의미에서 우연적(contingent)인 경우를 비결정성이라고 부른다. 결정성과 비결정성은 계산‧예측가능성이라는 의미에서 ‘법칙성’(lawfulness)의 존재 여부에 따라 구별된다는 것이다.


2) 인과성‧결정성‧법칙성‧필연성과 비결정성‧우연성의 경계를 가리키는 확률적‧통계적 결정성도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3) 참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식의 대상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4)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가능성(potentiality, dynamis, potentia)과 현실성(actuality, energeia, actus)은 각각 질료인과 형상인을 특징짓는다. 그러나 물론 갈릴레이와 뉴튼의 과학혁명 이후 가능성과 현실성은 전혀 다르게 인식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에게서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이윤율의 하락이라는 작용인이다. 참고로, 독어에는 현실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Realität’(reality) 외에도 ‘Wirklichkeit’(actuality)가 있는데, 그것은 작용을 의미하는 ‘Wirkung’(action)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5) 이런 논쟁은 질료 또는 오히려 물질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해결된다. 패러디와 맥스웰은 물질 개념을 확장하는 역선(line of force) 또는 장(field)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질량과 관련되는) 중력과 (전하와 관련되는) 전자기력을 구별하는데, 뉴튼의 동역학과 호이겐즈의 광학을 통합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론은 여기서 출발한다. 특수상대성론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는 시공간 개념에 의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상대화하는데, 이것이 바로 운동에 의한 ‘시간의 지연’과 ‘길이의 단축’이라는 효과다. 그러나 특수상대성론은 상대주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이 이론은 광속이라는 아인슈타인 보편상수 c를 고려하여 뉴튼의 ‘운동의 법칙’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반면 뉴튼의 ‘힘의 법칙’을 일반화하는 일반상대성론은 운동의 원인으로서 중력장을 질량에 의한 시공간의 형성과 변형, 즉 시공간의 곡률(curvature)로 인식함으로써 원격작용의 난점을 해결한다. 붕헤가 지적하는 것처럼, 관성력과 마찬가지로 중력도 외재적 힘이 아니라 내재적 힘으로 인식되는데, 내재적 원인 또는 오히려 제약(constraint)으로서 중력을 표상하는 것은 물론 뉴튼 보편상수 G다.


6) 사실 예술에서의 창조라는 것도 작가나 비평가의 가상일 따름이다.


7)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반대하는 생기론으로 특징지어지는 셸링과 베르크손의 반(反)과학적 낭만주의는 논외로 하자.


8) 원인이 존재론적인 동시에 인식론적인 개념이라면, 근거(reason)는 인식론적인 개념일 따름이다. 또 원인의 결과가 효과라면, 근거의 결과는 결론(consequence)이다.


9) 마르크스주의적 인과론과 결정론에 대한 붕헤의 설명은 문제가 있는데, 그러나 과잉결정론에 대한 설명은 참고할 만하다.


10) 참고로, 스피노자의 인간학은 고전경제학에 선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인간학이 전제하는 효용가치론은 로크의 노동의 인간학을 계승하는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에 미달한다. 스피노자의 인간학이 개인성(individuality)보다는 특이성(singularity)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 단일한 원인의 단일한 효과(붕헤의 인과성)는 , 단일한 원인의 다수의 효과(결정성)는 로 표현할 수 있다.


12) 알튀세르의 ‘해후의 유물론’이 인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는 것은 그가 원용하는 데모크리토스적 전통에는 관성력만 존재하고, 게다가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는 관성력에 대한 클리나멘(clinamen, 偏倚)의 우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면서 역사과학의 ‘임상적’ 지식을 물리과학의 ‘실험적’ 지식과 달리 일반법칙이 아니라 보편상수로 특징지으려는 알튀세르의 시도도 별로 근거가 없다. 역사과학의 보편상수로서 계급적 착취는 이윤율의 하락이라는 일반법칙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13) 물론 ꡔ공산주의자 선언ꡕ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적하는 대로 ‘투쟁하는 두 계급의 공멸’이라는 파국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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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회진보연대

잔혹성의 지형학에 관한 개요: 세계적 폭력 시대의 시민성과 시빌리티

에티엔 발리바르


나는 이런 젠 체하는 제목으로 내가 이미 여러 번 다루었던 이론적이며 철학적인 문제들의 연계에 관한 탐구를 지속하고자 한다. ‘잔혹성’ (cruelty) 이라는 용어는 극단적 폭력의 형태들을 지칭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그러나 학문적 관련성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는데, 그것들은 의도적인 것이든 체계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 하지만 이러한 구별은 우리가 극단성의 선을 넘어서는 바로 그 때 미심쩍게 된다 - ‘죽음보다 더 나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해, 잔혹성의 현실적 또는 가상적 위협은 정치에게, 특히 ‘세계화’라는 맥락에 있는 오늘의 정치에게 정치의 가능성 그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결정적인 실험을 의미한다는 게 나의 가설이다. 나는 정치에 대한 정치 (politics of politics) 또는 2차적 정치라는 사변적 관념을 가리키기 위해 ‘시빌리티’ (civility) [시민적 예절] 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에는 실제로 많은 다른 사용법들이 있다). 시빌리티는 공적인 일들에 대한 집단적 참여로서의 정치가 가능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지지 않도록 일련의 조건들을 창조하고, 재창조하며,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빌리티’는 분명히 모호한 용어지만, 나는 그것의 함의가 다른 용어들 예컨대 문명화, 사회화, 도시행정과 질서유지 (police and policing), 공손함 (politeness) 등등 보다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빌리티’는 사회 내의 ‘갈등’과 ‘적대’에 대한 억압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갈등과 적대가 항상 폭력의 선구자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1) [오히려]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극단적 폭력의 상당수는 ―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 사실상 ‘합의’와 ‘평화’에 대한 맹목적인 정치적 선호의 결과며, 세계적 범위에서의 법과 질서라는 정책들의 실행에 관한 맹목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러한 쟁점들을 ‘지형학’ (topography) 이라는 관점에서 토론할 것이다. 나는 그 용어를 통해서 구체적․공간적․지리적 또는 지정학적인 전망과 - 이를테면 ‘북반구와 남반구’, ‘중심과 주변’, ‘국경의 이쪽 편 또는 국경의 교차점’, ‘세계적인 것과 지방적인 것’ 등과 같은 변화하는 구획들을 고려한다 - 추상적․사변적 전망을 동시에 이해한다. 이는 극단적 폭력의 원인과 결과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무대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면들’ 또는 ‘무대들’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장면 또는 무대는 각각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 또는 ‘허구적인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상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보다 덜 물질적이거나 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 글은 1999년 11월 제네바 대학의 인도주의적 행동(Humanitarian Action) 대학원 과정의 개강 때 요청 받은 강연에 기초한다. 이 글은 세계화된 세계질서에서의 시민권과 인종분리, 난민과 이주, 대량빈곤과 집단학살 등이 왜 이러한 논의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가를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오늘의 세계에서 민주적 시민성 (citizenship)이 시빌리티의 구체적 형태와 전략을 발명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가 위치를 부여하고 연결시켜야 할 결정적인 ‘코스모폴리탄적인’ 쟁점들이다. 

나는 두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전형적으로 유럽적인 것으로, 포스트-민족적 통합과 ‘유럽의 시민성’의 도입의 부정적 반향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단지 ‘공동체주의적’ (communitarian) 요구와 ‘동일성의 정치’의 부활뿐만 아니라, 나아가 특히 준-아파르트헤이트적인 사회적 구조와 기관들이 발전이다. 그것은 하나의 모순적 유형을 형성하는 데, 그 유형은 이제 많은 측면에서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세계적인 것이다: 그것은 지배의 구조들을 변혁하려는 집단적 해방운동을 예방하기 위해 극단적 폭력과 대중의 불안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그리고 또한 토마스 홉즈가 ꡔ리바이어던ꡕ에서 예방적 대항폭력을 염두에 두고 묘사한 국가 형성의 유형을 참조로 해서 ― 나는 세계적인 예방적 반혁명 또는 반봉기의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러한 ‘정치’는 현실적으로 반정치적이다. 왜냐하면 허무주의적인 방식으로, 그것은 하나의 정체 (polity) 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들 그 자체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전쟁과 일종의 ‘인도주의적’ 행동 또는 개입이 결합하여 발전하는 것을 목도한다. 많은 경우에 그러한 행동과 개입은 정확히 고통을 낳은 바로 그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두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서, 국경들이라는 전통적 제도가 ― 나는 그것이 현대 시대에서 민주주의 그 자체의 ‘주권적’ 또는 ‘비민주적’ 조건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로 안전의 통제, 사회적 분리, 생존수단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의 수단으로 작동하며, 종종 생과 사의 제도적 분배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적 폭력의 초석이 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국경의 민주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것은 단지 국경의 개방뿐만 아니라 (이는 국경의 일반적인 철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경의 일반적인 철폐는 많은 경우에서 경제적 세력들간의 야만적 경쟁이라는 형태로 부활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으로 귀결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인민들 (물론 이주한 인민들을 포함한다) 그 자신이 국경의 기능을 다자적으로, 협상에 의해서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단순히 ‘영토적’이지 않고 결코 순수하게 ‘민족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대의기관이 세워져야 한다. 이는 내가 시민성과 시빌리티가 밀접히 결합되는 ‘인권의 세계정치’ (cosmopolitics) 라고 부른 것의 일부다.


시민성과 시빌리티: ‘권리들을 가질 권리’의 문제


두 가지 일련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세부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나는 우리가 인권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반성이라는 더 광범위한 시각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약간의 철학적 도구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작업이 필수적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 그리고 나도 이러한 관점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그녀로부터 끌어올 수 있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ꡔ전체주의의 기원ꡕ에 나오는 제국주의에 관한 논의에서 그녀는 모든 시민적․공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국가 없는’ 인민들의 문제를 제기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증가했다.2) 이들에 대한 논의에서 그녀는 정치철학이라는 전망을 이중적인 방식으로 전도한다.

첫 번째, 그녀는 [인간이라는] 종의 단순한 대표물로서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배제의 형태와 극단적 폭력의 상황을 시민성과 정치 체제에 관한 논쟁의 중심으로 재도입한다. 그녀의 목적은 정의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인간주의적 기준을 주장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가 오직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한 해법을 발견함으로써만 공적 영역, 즉 인민 운동들의 관리와 사회적 갈등의 통제 (policing)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정치적 행위 (또는 실천(praxis)) 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최근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기원 바로 그 직후부터 정치적 영역 내에서 만인에 대한 평등한 자유의 척도는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몫’, 즉 공공선 (commonwealth) [국가 또는 공동체] 내에서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당한 몫을 주는 것 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인정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이는 차별 받는 범주들의 배제의 과정이 ‘도시’ 또는 ‘정치조직’으로의 포함의 과정으로 능동적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 이는 그리스 도시에서 이소노미아 (isonomia)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권을 적용시킨 원칙] 가 의미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관점에서, 강한 의미의 ‘정치’는 아마도 아렌트가 로자 룩셈부르크로부터 물려받은 통념인 ‘영구 혁명’과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평등한 자유의 법률적 형태는 분명하게 제거되지 않지만 완전히 재가공되어야 한다. 현대의 인간주의와 보편주의라는 원칙의 측면에서, ‘권리 없는 인간’이라는 통념은 용어 자체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명목상 권리 없는 인간은 없으며, 심지어 아동이나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를 들어 우리가 브라질의 무소유 (propertyless) [무토지] 농민들의 권리 주장 ― 그들의 모토는 ‘권리 없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justice for rightless) 인데,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위협하는 준군사집단들이 법정에서 심판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4) ―  또는 공식적 서류발급을 거부당한 것에 항의하며 무적자 (undocumented) 의 합법적 거주를 요구하는 프랑스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면,5) 우리는 저항과 폭력에 대한 거부에 기초한 이러한 요구들은 권리들의 창조 과정, 즉 ‘인민주권’ 또는 민주주의라고 인정되는 정치적 헌정질서 (constitution) 를 허용하는 역동적인 과정의 부분적이지만 직접적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시민성에 대한 아렌트의 반성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교훈들의 한 가지 측면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은 더욱 더 오늘날 현실에 적합하다. 나는 민주적․민족적 혁명의 시대 이후부터 국제적 갈등의 일반화와 제국주의의 발전에 이르는 민족국가의 역사가 ‘인권’과 ‘정치적 권리’ (또는 인권과 시민권)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역전시켰다는 점을 보여준  [그녀의] 유명한 논증을 생각하고 있다. 인권 일반은 더 이상 주어진 민족적․주권적 국가의 경계들 내부에서 제정되고 보존되는 정치적 권리들을 위한 단순한 전제이자 추상적 기초로 간주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법률적인 것에 대한 정치적인 것의 지배에 대한 제한으로도 간주될 수 없다. 20세기의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비극적 경험은 그 반대가 진실이 되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평등한 시민성의 현실적 승인이자 조건인 정치적 권리는 생존, 즉 단순한 생명의 유지와 관련된 가장 초보적인 권리들부터 시작하여, 인권에 대한 정의와 승인을 위한 진정한 토대다. 정치적 동물 (zoōn politikon) 그 자체에 새롭고 ‘비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어떤 국가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되고 결국 실천적으로는 더 이상 인간으로 승인되고 간주되지 않게 되었다. 시민의 능동적인 제도적 권리들이 파괴될 때 ― 예를 들어, 시민성과 민족성이 밀접히 결합되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개인들과 집단들이 그들의 민족적 소속에서 쫓겨나거나 또는 단순히 억압받는 민족적 ‘약소자’의 상황에 처하게 될 때 ― ‘자연적’ 또는 ‘보편적으로 인간적’이라고 여겨지는 기본적 권리는 위협 당하고 파괴된다: 우리는 이른바 과소인간 (Untermenschen) 과 과잉인간 (Überrmenschen) 이라고 여기지는 ‘인간’ 사이의 구별이 확립되는 극단적 폭력의 형태를 목도한다. 이는 결코 우연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오늘의 정치에서 공통적인 것이 되고 있는 비가역적 과정의 결과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일신해야 한다는 긴급한 임무를 부과한다. 여기서는 정치의 본질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생명, 교통, 문화의 사회적․자연적 토대 위에 서 있는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의 진정한 개념은 인간들간의 특정한 공동체의 가능성 자체와 이미 관련되어 있다. 즉 그것은 해후를 위한, 다양한 구성 부분들과 집단들 사이의 적대의 표출과 변증법적 해결을 위한 공간을 건설하는 것과 이미 관련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아렌트가 제안한 ‘권리들을 가질 권리’라는 결정적 통념은 헌법에 의해 보호되어야 할 법률적․도덕적 요구들로 구성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최소의 준거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최대에 관한 이념이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통념은 인간이 ‘공통의’ 실존 영역 (그리고 따라서 노동, 문화, 공적․사적 발언의 영역) 에 소속되는 것을 최소한 승인하는 것이 이미 권리들의 총체를 수반하는 ― 그리고 가능하게 하는 ― 연속적 과정에 준거를 둔다. 나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봉기적’ 요소라고 부른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또는 공화주의적 국가의 모든 헌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국가는 정의상 위로부터 부여된 지위와 권리로 구성될 수 없다 (또는 그것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 그것은 데모스 (dmēos) [인민, 시민권을 혈통적인 방식이 아닌 이소노미아에 따라 성취한 인민] 의 직접적 참여를 요구한다.

아렌트의 논증은 민주주의적 시민성을 구성하는 평등주의적 또는 봉기적 요소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녀는 또한 그것을 시빌리티의 정치와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개념화한다. 이는 극단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곧 시민성이 부정됨으로써 또한 자동적으로 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인정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단지 이상적인 헌정 모델에 대비하여 역사적 제도들을 평가하는 이론적 기준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오늘의 정치사회들 내에서의 ― 아니, 그들의 일상생활의 핵심에서의 ― 극단적 폭력의 현실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단지 외견상으로만 역설적이다: 칼 슈미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한계 또는 ‘예외 상태’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진부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민주주의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체계들의 기능에 침투해 있다. 그것은 그 체계들이 권력에 부여한 이익의 연속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체계의 생명력에 대한 영구적 위협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시민성의 권리에 대한 접근 [이용할 수 있는 권리] 과 그것에 대한 부정 사이의 ― 더욱 일반적으로는 포함의 (inclusive) 정치적 질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의 ― 선택을 사변적 쟁점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구체적인 도전이다. (민주주의적) 정치질서는 내생적으로 깨어지기 쉽거불확실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시빌리티의 정치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경들 국경 내부에서 또는 국경을 가로질러 또 다시 ‘전쟁 상태’로 전화할 것이다.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 국경의 폭력


우리는 아렌트의 논증이 유럽 역사의 ‘파국’의 경험, 즉 나치즘, 2차 세계대전, 유럽의 유대인․집시․여타 집단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절멸주의 등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것의 ‘기원’을 민족형태의 제국주의로의 진화에서 밝혀내려고 했지만 동시에 [유럽의] 고유성을 주의 깊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가의 민족적 구성이 우리를 덫에 빠뜨렸던 치명적인 순환을 말함으로써 그녀의 생각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권과 '불가능한‘ 권리를 인식하기 위한 유일한 긍정적 또는 제도적 지평이었으며, 그것이 지지해온 보편적 가치들의 파괴를 낳았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동일한 조건 속에서 생활하며 행동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가 오늘의 정치에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민족형태가 단순히 쇠퇴한 것은 아니더라도,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권력의 물질적 분배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의 조건들이 점점 더 초민족적으로 되어간다는 사실을 관찰할 때, 이러한 문제는 첨예해진다. 세계화라는 일반적 틀 내에서 ‘포스트-민족적’ 국가 또는 준-국가 기구가 출현해왔고, 여기서 ‘유럽 공동체’는 특권적 사례가 되었다. 우선 이러한 과정의 모순적이고 우려되는 몇몇 측면들을 살펴보자. 사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런 측면이 훨씬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공식적인 ‘유럽적 시민성’의 발전과 함께 현실의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결정적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 또는 오히려 단기적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적인 유럽 공동체의 건설에 장애물 또는 차단물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전체적으로 유럽의 통일을 막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세계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초강대국에 필적할 수 있는 권력의 축적 또는 지역 권력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 할 지라도, 비스마르크식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성취되는 민족-이상적 (supranational) 공동체의 진정한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민족적 헌정질서와 비교해볼 때, 민족-이상적 유럽 공동체는 오직 그것이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적 잉여 (democratic surplus) 를 창조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두 가지 대칭적 문제를 제기하여 쟁점을 더욱 명확히 해볼 수 있다: 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왜 유럽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왜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를 말하는가?


이는 단지 외국인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의 일부 범부들, 주로는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유럽의 부유한 ‘문명’을 보호하는 국경을 건너 동구나 남반부에서 온 이주 노동자와 임시수용소를 찾는 사람들, 이런 측면에서 발칸 지역은 외부성의 두 형태의 일종의 조합을 보여준다) 권리를 덜 승인 받기 때문일 수 없다. 유럽적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어야만 한다. 1993년 마하스트리히트 조약 이후로 유럽 건설의 새로운 전개는 실로 그러하다. 유럽의 모든 민족국가들에서, 시민성 또는 민족성에 대한 불균등한 접근권을 강요하는 차별 구조가 존재하였고, 특히 이는 식민주의의 과거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유럽경제공동체 이후 막 바로 등장한) 유럽 연합의 탄생으로 추가된 사실은 유럽 시민 (civis europeanus) 의 지위가 점차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인적․집단적 권리는 점차 유효성을 획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각의 민족 정부와 법에 반하여 유럽재판소 (European Courts) 에 호소할 수 있는 가능성).

이제 결정적 문제가 시작된다: 누구를 위한 새로운 권리인가?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유럽의 인구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좀더 제한된 유럽 인민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여기서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고 인민 (Volk) 과 주민 (Bevōlkerung) 사이의 구별을 둘러싼  딜레마를 확장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유럽의 모든 나라들에서 이러한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으며, 독일의 논쟁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럽 헌법을 위한 상징적․법적․물리적 기초로서 유럽 인민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곤란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마하스트리히트 조약은 하나의 입헌 민족국가에서 이미 시민성 (즉 민족성) 을 소유한 사람들, 오직 이 사람들만이 자동적으로 유럽적 시민성을 보장받는다고 진술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내에서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 이미 하나의 방향을 결정한다. 유럽에서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양적․질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프랑스의 정치학자 까뜨린느 위똘 드 웬뎅은 이들을 ‘16번째 회원국가’라고 불렀다),6) 그것은 포함의 기획을 배제의 프로그램으로 즉각적으로 변형한다. 이는 세 가지 변태로 요약될 수 있다.


1. 외국인 (foreigner) 에서 [이질적인] 이방인 (alien) 으로 (이는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2등 계급의 거주자들을 의미한다).

2. 보호에서 차별로 (오스트리아의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이는 민감한 쟁점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는 정도와 언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유럽의 일반적 문제다: 정치적 시민성이 허용되지 않은 이주 노동자의 일부가 약간의 사회적 권리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즉 그들이  ‘사회적 시민성’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복지와 사회보장 또는 이와 유사한 것들에서 추방하는 것은 보수주의 세력에게 결정적인 정치적 쟁점이자 강박이 된다 ― 프랑스의 민족전선 (National Front) 은 이를 ‘민족 우선’ (national preference) 이라고 부르지만, 민족적 제도들 내에 이미 그러한 우선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유럽 우선’이 될 수 있다).

3. 문화적 차이에서 인종적 낙인으로. 이는 포스트-식민적 그리고 포스트-민족적 ‘새로운 인종주의’의 창조 과정의 중심에 있다.


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와 유사한 것을 제안하는가? 이는 단지 쓸데없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정말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아프리카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이제 유럽에서 (그리고 아마도 다른 곳에서) 재출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 ‘제국의 역습’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었다고?7) 우리는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다른 역사적 사례들과의 비교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아는 것처럼 미국은 ‘짐 크로우’ [흑인 일반, 또는 흑인차별주의] 체계를 완전히 망각한 적이 결코 없으며, 보수적 정책이 의제에 오를 때, 주기적으로 그것을 재창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독일 동료인 헬무트 리트리히 (Helmut Detrich) 는 유럽의 ‘동쪽 국경’에서의 난민과 이주자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는데, 그는 유럽제국의 새로운 배후지 (Hinterland)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하나의 또는 다른 체계에 의해 창조되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라는 문제는 제쳐놓고 대신에 그 구조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아프리카, 아시아 또는 유럽의 여타 지역 출신의 이주자들이 과거에 생활하던 지역의 상황과 남아프리카적 의미에서의 자치구 (homelands) [남아공 흑인 반투족의 자치구] 사이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적 사례로부터 최소한 교훈을 빌어 오기 위해 두 가지 보충적 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국경의 한쪽 편에서 그들의 생활을 ‘재생산’하고 또 다른 쪽 편에서 ‘생산’하며, 따라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부자도 아니고 외부자도 아니거나 또는 (우리들 다수에게) 공식적으로는 외부자로 간주되는 내부자인 중요한 노동자 집단의 상태가 ‘안전’ 통제의 규모와 그 폭력을 점차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전’ 통제는 상당히 오래된 ‘인종적 프로파일링’ (profiling) 을 신원확인과 기록의 현대적 기술과 결합하면서 사회의 모든 곳으로 확산되고 ‘유럽적’ 영토 전역에서 경계선들을 세분화한다. 쉥겐 (Schengen) 협정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EU 회원국간의 국경을 철폐하고 출입국수속을 없애기 위해 1986년 룩셈부르그의 쉥겐에서 체결된 협정]. 두 번째 보충적 근거는 이주자 가족 (그리고 그들의 구성, 그들의 생활방식) 의 존재는 이주 정책과 여론의 진정한 강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 가족은 분리되어야 하는가, 통합되어야 하는가 (즉 재통합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국경의 어느 편에서, 어떤 종류의 가족이 (전통적 또는 현대적), 어떤 종류의 친척들과 (부모 또는 자식), 어떤 종류의 권리를 갖고?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가족 정치, 또는 더 일반적으로 계보의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 인종주의의 결정적인 구조적 생산양식이다. 물론 민족적인 것이 다민족적 공동체가 될 때에도 이는 진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인종분리를 폐지하는 유럽, 즉 민주주의적 유럽은 결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사실상 상황은 훨씬 더 모순적인데, 왜냐하면 두 가지 방향의 경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마지못해 인정되는 역사적 교차점에 서 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생각을 주장하고 싶은데, 이는 다음 논지로 넘어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즉 이러한 쟁점들이 전형적으로 하나의 세계적-지역적 (‘세계-지역적’(glocal)) 문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부착된 유럽적 시민성’ (또는 법률-지위적․귀속적 시민성)8) 의 모순적․진화적 모형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화의 현실적․가상적 효과에 대한 반작용이다.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역사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효과의 단순한 투영이다.


세계적인 예방적 반봉기: ‘국경 없는 폭력’


나는 이제 내가 말했던 중심 주제인 ‘세계적 반봉기’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국경의 폭력이 아니라 국경 없는 또는 국경을 넘어선 폭력이다.

나는 로잔 대학의 피에르 드 세나르클랜이라는 스위스 전문가가 출판한 인도주의적 행동에 대한 최근 저작을 인용할 것이다. 그는 오늘의 폭력에 대한 공식적 정의의 중요성과 ‘인도주의적인 개입’의 범위와 의미를 확대하기 위한 정당화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1981년, UN 총회는 새로운 국제 인도주의적 질서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 직후, 총회는 저명한 인사들을 모아놓은, 국제적인 인도주의 문제들에 관한 독립위원회의 창립을 지지하였다... 위원회의 1986년 보고서는 환경파괴, 인구변화, 인구이동, 인권침해, 대량살상무기, 북반구-남반구의 양극화, 테러리즘, 마약 등과 같은 이 시대의 주요한 정치적․사회적 도전을 인도주의적 기획 내부에 포함시켰다.9)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 “우리는 인도주의를 동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을 규정하기 위해 참고해야할 틀로서 그리고, 해결을 위한 처방으로서 고려해야 한다.” 이후 저자는 1989년 이후 “양대 진영”이라는 냉전 체계의 붕괴가 어떻게 초강대국들 사이의 대치로 인해 정치적 폭력에 부과되었던 한계를 무너뜨리고, ‘전쟁’과 ‘평화’ 사이의 경계선을 흐리게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냉전의 빠른 종말의 서곡이었던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예견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국제적 구조의 변형과 그에 따르는 폭력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50건 이상의 새로운 군사분쟁이 있었고, 이러한 분쟁들은 본질적으로 내전이었다. 이 중 특정 분쟁들―르완다, 유고슬라비아, 체첸 또는 알제리의 분쟁들―은 폭력과 잔혹성, 파괴의 광범위함, 그리고 분쟁이 야기한 인구이동이라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국제사회는 단 한번도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많은 희생자를 낸 이렇게 많은 전쟁을 대면한 적이 없었다.10)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대량폭력과 극단적 폭력의 다면적 현상이 일반적으로 국가들 사이의 내부적․외부적 세력관계를 포함하는 정치를 대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우리는 정치와 폭력 ― 합리적 조직이 결여되어 있으며, 자기파괴를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는 폭력 ― 의 영역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할 수도 있다. 정치와 폭력은 점차 상호 침투해왔다.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인도주의적 행동’ 또는 ‘개입’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정치의 필수적 보충물이 되어버린 바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정치와 폭력의 상호 침투가 일어난다. 나는 이 같은 변이의 모든 측면을 논의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정치 그 자체의 개념에 있어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질문을 간략히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는 ‘전례 없는’ 극단적 폭력 (또는 극단적인 것의 폭력) 의 확산에 직면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싶다. 이 문제는 ‘과거의 전쟁과 새로운 전쟁’이라는 쟁점에서부터11) 왜 그리고 어떻게 역사 속에서 벌어진 ‘집단학살들을 비교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도 전례가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극단적 폭력의 새로운 가시성일 것이다. 특히 매체의 포괄 범위와 텔레비전 방송과 이미지 변형 등의 현대적 기술이 ― 마침내 우리가 사상 최초로 걸프전 동안 거대한 규모로 ‘가상 현실’이 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 극단적 폭력을 하나의 로 변형하고,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이 쇼를 펼쳐놓는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가시성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기술의 효과가 (앙골라나 시에라리온에서 수백 명의 불구가 된 아이들의 모습과 같은 진정으로 끔찍한) 어떤 폭력적 과정들 또는 끔찍한 장면들은 드러내 보이고 (바그다드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똑같이 끔찍한) 다른 것들은 덮어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단적 폭력에 대한 [매체의] 보도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법적․도덕적이지만 거의 정치적이지 않은 개념의 무차별적 사용을 통해 냉전 동안의 ‘공포의 균형’이 ‘희생자들 사이의 경쟁상태’로 정치적으로 이행했다는 매우 단순한 관념을 믿게 만들 때, 우리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작용한다는 의심을 품는다. 결국 우리는 일상적 공포의 이미지들에 대해 말하고 그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특히 인류 중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보호받는 지역 내에서 매우 양가적인 효과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동정심과 함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이처럼 인류가 질적으로 다른 문화 또는 문명으로 실제로 분할되어 있으며, 이러한 문화 또는 문명은 오직 그들간의 ‘충돌’을 초래할 것이라는 관념을 강화한다.12)

나는 이러한 모든 곤란함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현실은 ‘전례 없는’ 어떤 것이라는 통념의 이면에 놓여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아마도 수많은 절멸의 이질적 방법들 또는 과정들 (나는 이를 통해 어떤 개인들이 객관적 또는 주체적 집단들에 속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 개인들로 구성된 대중을 제거하는 것을 지칭하고자 한다) 이 스스로 ‘세계화’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즉, 그것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점차적으로 하나의 ‘연쇄’를 형성하며, 20년 전 E. P. 톰슨 (E. P. Thompson) 이 ‘절멸주의’라는 이름으로 예상했던 것에 완전한 현실성을 부여한다.13) 이러한 일련의 연속된 과정들 속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은 포함해야 하는데, 정확히 왜냐하면 그것들이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것들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원인’을 갖고 있지 않지만 누적된 효과를 생산한다.


1. 전쟁 (‘내전’과 ‘외국과의 전쟁’ 양자 모두, [하지만] 유고슬라비아나 체첸과 같은 많은 사례들에서 이런 구별은 쉽지 않은 일이다).

2. 인종적 또는/그리고 종교적 ‘정화’(cleansing)의 이데올로기를 동반하는 [보통 ‘인종청소’라고 부르는], 공동체에서의 폭동.

3.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경제의 파멸로 야기된 기근과 다른 종류의 ‘절대’ 빈곤.

4. 외관상 ‘자연적인’ 대재앙들. 그러나 그것들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구조들로 과잉결정 되었으므로 실제로는 대규모의 살인이다. 여기에는 발전된 시민적 보호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세계적 유행병 (예를 들면, AIDS의 분포와 치료 가능성은 유럽․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가뭄, 홍수 또는 지진 등이 포함된다.


결국 나는 다양한 종류의 극단적 폭력의 ‘세계화’가 ‘세계화된’ 세계를 점차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로 분할하고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들 지대 (심지어 그것들은 하나의 나라 또는 도시의 경계 내에서 복잡하게 중첩되고 빈번하게 재생산된다) 사이에, 결정적이고 깨지기 쉬운 초국경 (super-border) 이 존재한다. 이는 인류의 통일과 분할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 현대 유럽의 세계 정복 초기에 존재했던 ‘친선의 경계선’ (amity line)과 유사한 세계적․지역적 ‘증오의 경계선’ (enmity line) 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14) 영원한 쇼의 대상이자 동시에 개입과 불개입을 위한 뜨거운 지역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초국경이며 증오의 경계선이다. 우리는 현재의 국제 정치에서 가장 우려되는 측면이 ‘인도주의적 개입’인지, ‘일반화된 불개입’인지, 아니면 후자 이후의 전자인지 토론할 수 있다. 


우리는 극단적 폭력을 시장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 경제’) 관점에서 ‘합리적’이거나 ‘기능적’이라고 간주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 사실 나는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 회피될 수 없다. 따라서 이는 또한 지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도전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매우 명백하지만 자주 범하는 그릇된 추리를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결과와 목표 또는 목적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체계들을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토론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한가? 다른 한편, 우리는 자본주의와 같은 어떤 구조의 내재적 목적 또는 ‘논리’에 대한 반성을 회피할 수 있는가?) 매우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난점은 대량폭력의 연쇄 ― 예컨대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한 전제조건들의 창조를 빈민에 대한 폭력적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묘사하면서 시초 축적 (primitive accumulation) 이라고 부른 것과 비교될 수 있다 ― 의 출현에 기원을 둔 두 가지 대립적인 ‘세계적 효과’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그 효과들 중 하나는 수백만 명의 잠재적 노동자들의 물질적․도덕적 불안전 (insecurity) 을 일반화하는 것, 즉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화 또는 재프롤레타리아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불안전이 ‘프롤레타리아적 조건’의 핵심에 위치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다소간 벗어났던 프롤레타리아 상태로의 복귀를 결정적으로 포함하는 프롤레타리아화의 새로운 국면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과 또한 인류의 이동성이 증가된 것과 동시대적이며, 그리고 그 때문에 이는 국경을 가로질러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과정은 또한 몇 개의 정치적 변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


1. ‘북반구’에서 그것은 내가 ‘민족적 사회적 국가’라고 부르는 복지국가가 창조한 사회정책과 사회적 시민성의 기관들의 부분적 또는 심층적 해체를 포함하여, 따라서 복지에서 근로연계복지 (workfare) [노동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가가 공적인 부조를 베푸는 것]로의 폭력적 이행과 사회적 국가에서 징벌 국가 (penal state) 로의 폭력적 이행을 포함한다 (루익 와깡이 최근의 에세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증한 것처럼, 미국은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15)

2. ‘남반구’에서 그것은 ‘발전주의적’ 프로그램과 정책들의 파괴와 전도를 포함한다. 발전주의는 대체로 희망했던 [경제적] '도약‘을 낳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지만 빈곤화에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보여주었다. 

3. 이매뉴엘 월러스틴의 범주를 빌려오면, ‘반주변부’에서 그것은 ‘현존 사회주의’라고 불렸던 독재 구조의 붕괴와 연관되었다.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는 결핍과 부패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다시금 특정한 한계들 내에서 부와 빈곤의 양극화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제안하고자 한다. 노동력의 재프롤레타리아화로 귀결되는 이 모든 과정들의 공통적인 형식적 특성은 그것들이 국가장치 바로 그 내부에서 [역사를 만드는] 기층 민중 (subaltern) 의 대표 형태와 가능성을, 또는 당신이 이 표현을 더 선호한다면, 다소 유효한 대항권력의 가능성을 억압하거나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주목함으로써 우선 주로 ‘경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과정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는 다른 장면, 즉 대량폭력이 야기한 다른 종류의 결과들을 살펴볼 때, 정치적 측면은 훨씬 더 결정적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원인과 결과의 메커니즘은 지극히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이 현실적이다. 나는 훨씬 더 파괴적인 경향, 즉 복지나 전통적 생활양식에 대한 파괴의 경향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 그 자체에 대한 그리고 결국 '생명 그 자체‘에 대한 파괴적 경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16) ‘생을 명령하는’ 정치와 ‘죽음을 명령하는’ 정치라는 두 가지 종류의 정치를 대비시키곤 했던 미셸 푸코에 대해 생각해보자.17) 내가 인류의 ‘죽음의 지대’라고 불렀던 곳에서 펼쳐지는 극단적 폭력 또는 잔혹성의 다양한 형태들의 누적된 효과에 직면하여, 우리는 현재의 생산 및 재생산 양식이 제거를 위한 생산의 양식이자, 생산적으로 활용되거나 착취되기보다는 오히려 항상 이미 불필요한 잉여 (superfluous) 가 되는 인구의 재생산 양식이 되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인구는 ‘정치적’ 또는 ‘자연적’ 수단을 통해 제거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이른다―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사회학자들은 도발적으로 이들을 세계 도시 밖으로 ‘내던져진’ ‘쓰레기 인간’ (poblacion chatarra) 이라고 불렀다.18) 이것이 사실이라면, 또 다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한 것의 합리성은 무엇인가? 또는 우리는 비합리성의 완벽한 승리를 대면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지만 (왜냐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축적 규모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합리적이다 ― 또는 더 적절히 말하자면, 그것은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사실상 역사는 단순히 순환적인 방식으로 즉 축적의 연속적 국면들의 순환 유형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19세기와 20세기에 경제적․정치적 계급투쟁이 출현했고, 그 결과로 착취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세력 균형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말하자면, 체계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체계는 (그리고 아마도 그 체계의 이론가와 정치가의 일부는) 계급투쟁이 없는 착취는 없고, 착취 받는 자들의 조직과 대표가 없는 계급투쟁은 없으며, 정치적․사회적 시민성을 향한 경향이 없는 대표와 조직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현재의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세계의 일부에서 실현된 ‘민족적 사회적 국가’에 상응하는 ‘세계적 사회적 국가’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내 뜻은 정치적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세계적 사회적 국가’를 향한 모든 움직임에 대한 [현재 자본주의의] 정치적 저항이 존재하며, 게다가 그러한 저항은 매우 폭력적이다. 기술혁명은 현재적 또는 잠재적 노동력의 탈프로레타리아화를 위해 긍정적이지만 불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바로 이 때, 직접적인 정치적 억압 또한 불충분할 것이다. 가능한 한 ‘수동적으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능동적으로’ 제거 또는 절멸이 일어나야 한다: 상호 제거가 ‘최상’이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조장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세계적 폭력의 경제’가 기능적이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그것의 내재적 목표는 실로 모순적이다) 목적론적 (teleological) 의미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나의 세 번째 질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동일한’ 인구가 광범위하게 목표물로 삼아진다 (또는 역으로 목표물로 규정되지 않은 인구는 점점 동화되며, ‘동일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된다). 질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외연적 의미가 아니라 내포적 의미에서 질적으로 ‘탈영토화된다’. 그들은 항구적인 제거의 위협을 받으면서 도시의 변두리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역으로 그들이 그들의 본국 내부로 고정될 때에도 그들은 ‘유목민’처럼 생활하고 또 그렇게 인식된다. 즉, 그들의 실존 그 자체, 그들의 양, 그들의 운동, 권리와 시민성에 대한 그들의 잠재적 요구가 ‘문명’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결국, ‘극단적 폭력’은 ‘세계적 체계’를 형성하는가?


폭력은 고도로 ‘비정치적’일 수 있다―이는 내가 제안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폭력의 다양한 형태가 서로를 강화한다면, 그리고 그 다양한 형태들이 그 자신의 연속과 잠식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한다면,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들이 잔혹성과 절멸의 확산을 예방하거나 그 효과만을 제한하려는 행동들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인간 (주의) 적 파국’의 연쇄를 확립한다면, 폭력은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거나 또는 ‘체계적인’ 것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목적 없는 목적론은 내가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예방적 반혁명’으로 또는 아마 더 나은 표현으로 ’예방적 반봉기‘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것은 외양상으로만 ‘홉즈적’인데, 왜냐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 대항하여 사용되는 무기는 또 다른 종류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ꡔ르 몽드ꡕ는 최근에 콜럼비아를 국가와 마피아에 의해 수행된 ‘사회에 대한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언급했다).19) 이는 반정치로서의 정치이지만, 폭력의 이질적 형태들 사이에 수많은 연관으로 인해 하나의 체계로 나타난다 (국가예산에 필수적인 무기거래는 부패를 동반하며, 부패는 범죄행위를 동반하며, 마약․장기매매․현대적 노예무역은 독재를 동반하고, 독재는 내전과 테러를 동반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형상을 그리기 위해서 모든 형태의 폭력을 혼돈하게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정치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인도주의적 개입은 종종 여기에 참여한다), 방송과 개입 양자 모두를 수익성 있는 사업의 원천으로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경제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깨지기 쉬운 경계선을 갖는 생명의 지대와 죽음의 지대 사이의 분할에 대해 말하였다. 그것은 세계화의 ’전체주의적‘ 양상에 대해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분명히 그것만이 아니다. 인류가 경제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로는 문화적으로 ’통일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인류는 폭력적 방식을 통해 ’생-정치적으로‘ (bio-politically) 분할되었다. 시빌리티의 정치 (또는 인권의 정치) 는 파괴된 통일성에 대한 가상적 대체물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모든 곳에서 그리고 특히 국경 자체에서 평등이라는 쟁점을 정치적 행동의 지평으로 재도입하는 일련의 주도성이 될 수도 있다. 


결론


‘진정한’ 결론은 없을 것이고, 단지 몇몇 민감한 쟁점에 관한 직접적 반성과 토론의 시도들만이 있을 뿐이다: ‘대항폭력’이라는 쟁점, 국제법이라는 쟁점, ‘시민성’에 대한 접근이라는 쟁점, 그리고 내가 ‘봉기’라고 부른 것 등.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시빌리티 전략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전략들의 실현 가능한 토대와 실행에 관한 논의는 또 다른 에세이에서 다룰 문제다. 나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극단적 폭력 또는 잔혹성의 연계 속에서 현실적 측면과 가상적 측면이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를 다른 것에 비해 특권화하는 태도를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정치적 행위에 관한 고전적 개념들이 항상 행해왔던 것이다: 고전적 개념들은 주로 공동체들과 공동체적 감정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리고 나는 모든 역사적 공동체들이 일차적으로 ‘상상된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에 확실히 동의한다),20) 또는 더 유물론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 즉 사회적 구조들, 특히 지배와 착취의 구조를 변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는 전형적인 사례다). 나는 오늘의 정치에서 극단적 폭력이라는 쟁점의 핵심적 특징은, 이러한 이중적 양상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상들의 요구와 제약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결합하기 위해 실천적․구체적으로 노력함으로써, 그러한 이원성의 지양을 탐색하고 발명하는 것을 훨씬 더 긴급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예를 들어, 나는 국제법이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시빌리티의 정치의 토대가 국제법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만족하지 않는다. 예컨대 위르겐 하버마스는 그 [국제법] 이면에 있는 교통 (communication) 의 윤리에 대한 강조를 덧붙이면서 일관되게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여왔다.21) 그러나 하버마스는 ‘교통’의 관문들이 때로는 강제에 의해서, 때로는 폭력적 방식으로 열려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잠겨진 채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여기서 국제법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반대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어렴풋이 나타나고 있는 대량폭력의 반혁명적 또는 반봉기적 특징은 혁명이라는 관념의 갱신으로서 ‘반-반봉기’ (counter-counterinsurrection) 를 요청한다고 제안할 수 있으며, 이를 옹호하는 충실한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 이 때 아마도 진정한 ‘세계혁명’은 폭력과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최근 ‘제국’22)이라고 부르는 것 등을 연계시키는 바로 그 세계적 구조에 대항하는 방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은 정치적 수단과 목표가 바로 그 [자본주의, 제국주의, ‘제국’과 똑같은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대칭성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회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최초의 혁명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하려한 이래로, 정치적 수단과 목표는 극단적 폭력이 해방의 정치의 핵심에 구축되는 데 일조했고, 20세기가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23)라 부른 것이 되는 것에 일조했다. 국가경제뿐만이 아니라 혁명 그 자체가 ‘문명화’되거나 ‘시민적’ (civil) 이게 될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 많은 곳에서 그러한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적극적으로 탐색되고 있지만 분명히 발견되거나 제시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좀 더 조심스럽고 아마도 아포리아에 가까운 방식으로 네덜란드 정치학자 헤르만 판 군스테렌의 최근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자 한다.24) 나는 모든 정치적 공동체들 ― 여기에는 근린에서부터 도시, 국가, 대륙, 지구 그 자체에 이르는 (가야트리 샤크라보티 스피박은 이런 맥락에서 행성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25) 또는 ‘영토’에서 ‘네트워크’에 이르는 가상적 공동체들이 포함된다 ― ( [위대한 결말을 암시하는] ‘숙명’ (destiny) 과는 반대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비극적으로 투쟁할 수는 있는] 운명 (fate) 의 공동체라는 판 군스테렌의 제안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공동체들은 이미 차이와 갈등을 포함하며, 그 곳에서 이질적인 인간과 집단들은 역사와 경제에 의해 ‘함께 내던져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이익이나 문화적 이상은 자연발생적으로 수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호파괴 (또는 외부 세력에 의한 공멸) 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완전히 분기될 수도 없다. 인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비판 (그리고 또한 1796년 칸트의 에세이 ‘영구 평화를 향하여’의 정식, ‘그들은 ... 결국 서로 가까이 있는 것을 참아야 한다’)26)에서 영감을 얻어서, 판 군스테렌은 모든 집단의 모든 개인에게는 그 또는 그녀가 ‘시민’으로 인정되는 적어도 하나의 ‘장소’가 세계 내에 존재해야만 하고, 따라서 인권을 누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메타정치적 (metapolitical) [정치에 대한 정치라는 차원의] 원칙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그 원칙을 넘어 단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이 원칙은 다른 의미에서는 단지 우리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한 장소는 어디인가? 공동체가 ‘운명의 공동체’라면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급진적인 것이다: 개인들과 집단들이 속한 어느 곳이라도 그러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어디든 그들이 ‘우연히’ 살게되고, 그래서 일하며 아이를 기르고, 친척을 부양하고, 모든 종류의 ‘친교’를 위해 동료를 찾는 모든 곳이 그러한 장소다. 오늘날의 세계화되고 잔혹한 세계의 ‘지형학’에 대해 내가 제안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권에 대한 승인과 제도는 실천적으로 인권의 발전을 명령하며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배타적 소속 (membership) 을 넘어 조직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국경 위에’ 위치해야 하는데, 우리의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실제로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불안정한 상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정확한 요구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판 군스테렌은, 내가 ‘시빌리티’의 관점이라고 부른 것에 입각해 볼 때 중요한 문제는 단지 시민성과 따라서 인간성에 대한 소속의 자격이 아니라 항구적 접근권이라는 (또는 그가 쓴 것처럼 ‘형성 중인’ 시민성이라는) 관념을 타당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법적 지위라기보다는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시민적 과정이다. PSSP


1) Étienne Balibar, "Three Concepts of Politics: E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y", in Politics and the Other Scene, trans. Christine Jones, James Swenson, and Chris Turner (London: Verso, 2002), pp. 1-39.


2) Hannah Arendt,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San Diego Harcourt, 1968), book 2, "Imperialism", ch. 9.


3) Jacques Rancière, Disagreement: Politics and Philosophy, trans. Julie Ros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


4) "Letter ouverte en mémoire de 19 paysans sans-terre massacré à El Dorado dos Carajas le 17 avril 1996", Réseau contre l'impunité au Bresil: Justice pour les sans-droits.


5) 이 책의 3장을 보라, 그리고 처음에 출판되었던 것은: Étienne Balibar, Jacqueline Costa-Lascoux, Monique Chemilllier-Gendreau, and Emmanuel Terray, Sans-papiers: L'Archaïsme fatal (Paris: La Découverte, 1999)


6) Catherine Wihtol de Wenden, La Citoyenneté européenne (Paris: Presses de la Fou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1997), p. 99


7) 다음을 보라.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The Empire Strikes Back: Race and Racism in the 70s Britain (London: Hutchinson in association with the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y, University of Brimingham, 1982).


8) 다음을 보라. Roger M. Smith, Civic Ideals: Conflicting Visions of Citizenship in U.S. Histor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7)


9) Pierre de Senarclens, L'Humanitaire en catastrophe (Paris: Presses de la Foundation nationale des Sciences politiques, 1999), p. 65.


10) Ibid., p. 70.


11) 다음을 보라. Mary Kaldor, New and Old Wars: Organized Violence in a Global Era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9) [이 책의 5장(세계화된 전쟁경제)이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3년 5월호에 번역되어 있다.]


12) Samuel P. Huntington, The Clash of Civilization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96)


13) Edward P. Thompson, et al., Exterminism and Cold War (London: Verso, 1982)


14) 다음을 보라. Carl Schmitt, The Nomos of the Earth in the International Law of the Jus Publicum Europaeum, trans. G. L. Ulmen (New York: Telos Press, 2003).


15) Loïc Wacquant, Les Prisons de la misère (Paris: Raisons d'agir/Darantière, 1999)


16) Giorgio Agamben, Homo Sacer: Sovereign Power and Bare Life, trans.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


17) Michel Foucault, "Society Must Defended": Lecture an the Collège de France, 1975-1976, ed. Mauro Bertani and Alessandro Fontana, trans. David Macey (New York: Picador, 2003), pp. 240-41.


18) 다음을 보라. Bertrand Ogilvie, "Violence et représentation: La Production de l'homme jetable," Lignes 26 (October 1995): 113-42.


19) Daniel Pécaut, "En Colombie, une guerre contre la société," Le Monde, October 22, 1999, p. 15.


20) Benedict Anderson,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 on Origins and Spread on Nationalism (London: Verso, 1983)


21) 많은 책 중에서도 다음을 보라. Jügen Harbermas, Between Facts and Norrms: Contributions to a Discourse Theory of Law and Democracy, trans. William Rehg (Cambridge, Mass.: MIT Press, 1996).


22)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Empir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23) Eric Hobsbawm,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World, 1914-1991 (New York: Vintage Books, 1996)


24) Herman R. van Gunsteren, A Theory of Citizenship: Organizing Plurality in Contemporary Democracies (Boulder, Colo.: Westview Press, 1998).


25) Gayatri Chakravorty Spivak, Imperative zur Neuerfindung des Planeten/Imperatives to Re-Imagine the Planet (Frankfurt am Main: Passagen Verlag, 1999)


26) Immanuel Kant, "Toward Perpetual Peace," in Practical Philosophy, trans. and ed. Mary J. Gregor, in The Cambridge Edition of the Works of Immanuel Kant, ed. Paul Guyer and Allen W. Woo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329 (Third Definitiv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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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자유무역협정 비판


윤 소 영


6월 5-9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1차 공식협상이 개최된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가 광범하게 전개되고 있다. 주요 사회운동단체들이 발간한 자료집들만 보더라도, 범국민운동본부의 ꡔ한‧미FTA 저지를 위한 국민교양 자료집ꡕ(40쪽), 민주노동당의 ꡔ한‧미FTA의 문제점ꡕ(112쪽), 민주노총의 ꡔ새로운 한‧미관계 구축을 위한 미국의 전략: 한‧미FTA 추진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ꡕ(18쪽), 한국노총의 ꡔ한‧미FTA 자료집ꡕ(130쪽), 전농의 ꡔ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민족은 망한다ꡕ(27쪽) 등이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경우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이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한 나열이나 묘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1)


경제위기‧세계화‧지역화‧통치성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에 따라 세계화와 지역화를 분석해야 한다(더 자세한 것은 윤소영, ꡔ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ꡕ, 공감, 2006, 2-3장을 참조하시오). 마르크스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이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을 절약하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를 분석하는데, 여기서 그가 도출하는 결론이 바로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경제법칙이자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불리는 고정자본의 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하락이다.

경제위기를 특징짓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금융화는 생산성과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실물적 축적이 금융적 축적으로 변모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2) 금융화의 주요한 형태는 이윤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고정자본투자(마르크스가 말하는 집적)와 달리 이윤의 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증권투자(집중)다. 1990년대 이후 초민족자본(법인자본 및 기관투자가)이 금융화의 주체가 되면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동시에 지역적 조건에 따라 세계화를 구체화하려는 지역화가 모색된다. 말하자면 세계화와 지역화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금융화가 경제위기에 대한 부르주아적 대응인 셈이다. 

초민족자본이 추진하는 세계화와 지역화를 지지하는 다양한 국제경제기구들이 있는데, 그들간의 분업과 협업이 세계적‧지역적 ‘통치성’(지배구조)을 구성한다.3) 세계화를 위한 국제경제기구들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이 있다. 세계무역기구가 초민족자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한다면,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은 초민족자본의 이익을 간접적으로 대변한다. 세계무역기구가 1970년대 금융의 자유화, 1980년대 농업‧서비스의 자유화를 추진하던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을 계승한다면, 1970년대초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이후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추진한다.

지역화를 위한 국제경제기구들을 대표하는 것이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인데,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유럽연합의 핵심은 공동시장과 화폐동맹이다. 공동시장과 자유무역협정은 상품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즉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를 추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공동시장이 공동의 경제정책을 통해 ‘폐쇄적’ 지역화를 추구한다면,4) 자유무역협정은 공동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지 않는 ‘개방적’ 지역화를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공동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공동통화 유로를 채택함으로써 공동시장과 화폐동맹을 결합하는 유럽연합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은 노동의 신축화(유연화)이지만, 공동통화를 채택하지 않는 자유무역협정에서는 노동의 신축화 외에도 평가절하라는 또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참고로, 공동통화를 채택하는 화폐동맹은 이른바 ‘통화대체’의 일종이다. 화폐동맹은 유럽의 독일처럼 지역 헤게모니가 존재하는 경우에 가능한데, 이런 의미에서 유로는 마르크의 확대판인 셈이다. 통화대체의 또 다른 종류는 중남미처럼 지역 헤게모니가 존재하지 않아서 세계 헤게모니 미국의 달러를 공용화하는 달러리제이션이다. 달러리제이션은 1990년대 러시아처럼 비공식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지만, 1990년대 아르헨티나처럼 공식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족화폐는 유지되지만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과 태환이 보장된다. 민족화폐가 완전히 폐지되는 극단적인 달러리제이션은 중남미에서조차 아주 예외적이다.

문민화 이후 남한경제의 세계화와 지역화


이제 문민화 이후 남한경제의 세계화와 지역화를 설명해보자(더 자세한 것은 ꡔ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ꡕ, 위의 책, 1장을 참조하시오). 1986-88년간 이른바 ‘3저 호황’ 이후 새로운 경제위기가 예고된 것은 1990년이었는데, 당시 이윤율은 1979-80년 수준으로 하락했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무역기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으로써 세계화를 개시한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재벌을 주체로 하는 세계화는 오히려 반도체‧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 등에서 고정자본투자의 급증과 이윤율의 급락을 초래함으로써 1997-98년 경제위기(및 외환위기)로 귀결되었다.

1997-98년 위기를 계기로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의 지도 아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추진하면서 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지속했다. 50% 정도에 달하는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재벌의 경쟁력이 회복되었지만, 그러나 재벌에 대한 초민족자본의 금융적 지배도 심화되었다.5) 또 김대중 정부 이후 남한경제는 장기침체에 진입했는데, 재벌이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시도하면서 국내 고정자본투자가 정체되었고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재벌의 세계화를 지역적으로 구체화하려고 시도한다. 남한경제도 유럽경제처럼 공동시장과 화폐동맹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도 없다. 남한경제를 비롯한 동아시아경제가 대미 상품수출을 통해 성장해왔고 또 노동의 신축화와 함께 평가절하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7-98년 위기 이후 동남아시아경제를 희생한 중국경제의 성장이 단적인 사례다. 중국경제의 추월 가능성에 대한 재벌의 경고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된다.

게다가 남한경제와 동아시아경제는 수출달러의 환류와 자본도피를 통해 미국으로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미국경제의 달러시뇨리지(발권이익)와 이중적자를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동남아시아경제를 포함하는 ‘중화경제권’에 대한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이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으로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적일 것이다.

따라서 경제위기(및 외환위기)에 대한 남한 부르주아지의 대응으로서 평가절하(및 수출달러환류‧자본도피)를 보충하려는 시도가 바로 한‧미자유무역협정인 셈이다.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로 인한 평가절상 압력 때문에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를 오히려 가속화시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미봉책일 따름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남한경제의 장기침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예를 들어 경상수지흑자가 감소할 것인데,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6)

보론: 농업 및 서비스 개방


세계화와 지역화의 부정적 효과가 집약되는 부문이 농업과 서비스이기 때문에 한‧미자유무역협정에서 농업과 서비스 개방이 쟁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농업 개방의 핵심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농산물시장 개방이 아니라 초민족자본인 농업메이저가 추진하는 ‘녹색혁명’에 대한 종속에 있다. 그리고 물론 녹색혁명에 대한 종속은 농산물시장 개방 이전으로 소급되는 남한농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예를 들어 중남미농민과 달리 남한농민은 농업메이저에 의해 포섭되어 자기착취 당하는 자영농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7)

서비스 개방의 핵심은 법률, 회계, 재무, 마케팅과 관련된 컨설팅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과 관련된 컨설팅서비스도 포함하는 이른바 ‘사업서비스’에 있다. 그리고 물론 사업서비스 개방은 김대중 정부 이후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의 핵심이다.8) 또 사회서비스(공공서비스)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초민족적으로 활동하는 제약회사‧보험회사와 관련되는 보건의료 개방이 핵심이고, 반면 학교가 아니라 유학이나 ‘두뇌유출’과 관련되는 교육 개방은 부차적이다.9)

참고로, 세계화와 지역화가 진행되면서 공기업이 항상 사유화(민영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두자(게다가 공기업의 사유화는 초민족자본이 아니라 민족자본에 의해 주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통‧통신과 관련된 공기업과 달리 전기‧석유가스(에너지)‧수도와 관련된 공기업을 사유화해서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통치성을 훼손하는 아주 곤란한 사회‧정치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사유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제휴나 탈규제를 통해 경쟁원리를 도입하기도 하는 것이다.10)


2006. 6. 10.


1) ꡔ민중언론참세상ꡕ이나 ꡔ프레시안ꡕ 같은 인터넷 신문을 통해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에 가세하는 지식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조차 ‘제2의 IMF 위기’, 심지어 ‘제2의 한‧일 합방’ 같은 역사적으로나 정세적으로나 별의미 없는 유비를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2) 경제위기를 특징짓는 또 다른 현상은 대량실업과 궁핍화다. 보통 비정규직화와 양극화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대량실업과 궁핍화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양극화는 재벌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사이의 격차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다.


3) 물론 세계적‧지역적 통치성이 국제경제기구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통치성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세계화가 필수적이고, 지역적 통치성에는 나토(미‧유럽군사동맹)와 미‧일군사동맹 같은 지역적 군사동맹이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지역화도 ‘블록화’(식민지화)는 아니다. 유럽연합헌법조약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유럽연합이 세계화에 대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인경‧박정미 외, ꡔ인민주의 비판ꡕ, 공감, 2005 참조.


5) 법인자본과 달리 재벌이 금융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하고 순환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6) 이 때문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재벌‧공기업노조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변모시키자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코파가 이미 지난 수 년간 주장해왔던 세계무역기구‧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투쟁도 그런 변모를 추동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캠페인에 그칠 따름이다. 대안세계화‧대안지역화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관련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윤소영, ꡔ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ꡕ, 공감, 2004를 참조하시오.


7) 농민운동이 농산물시장 개방만을 쟁점으로 제기할 때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처럼 남한에서도 ‘농촌의 휴양지화’가 진행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제이슨 무어 외, ꡔ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생태론ꡕ, 공감, 2006 참조.


8)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기준에 따르면, 금융 및 사업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기반경제에는 교통‧통신과 관련되는 항공‧우주‧정보‧통신산업이나 보건의료와 관련되는 생명공학산업 같은 첨단제조업도 포함된다.   


9) 이 때문에 보건의료운동은 공공성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약사 등 전문직정책운동이나 병원노조운동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 교육운동도 교원노조로서 전교조운동에서 탈피해야 한다. 비센트 나바로 외, ꡔ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ꡕ, 공감, 2006; 윤종희‧박상현 외, ꡔ대중교육: 역사‧이론‧쟁점ꡕ, 공감, 2005 참조.


10) 따라서 공공성은 방어투쟁의 구호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전국민중연대를 토대로 지난 3월에 구성된 범국민운동본부가 채택한 이른바 ‘공공성 강화’는 아주 잘못된 구호인데, 오히려 사회운동단체들의 코퍼러티즘적 경향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국유화로 환원하는 오류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코퍼러티즘적 국유화론에 대한 더 자세한 비판은 ꡔ역사적 마르크스주의ꡕ, 위의 책을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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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기자회견문]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 파병반대국민행동

http://www.peacekorea.org/main/board/view.php?id=notice&no=227

 

[기자회견문]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2006-07-21 14:24 | VIEW : 43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 공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 공격으로 현재까지 1백여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310여 명의 레바논인이 죽었고, 사회기반시설이 초토화됐다. 급기야 지난 19일 레바논 남부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돼, 하루만에 57명을 살해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한 공격이 자국 병사의 납치에 따른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한다. 이갈 카스피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모든 것은 그들이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이미 이번 공격이 있기 전부터 이스라엘은 걸핏하면 레바논을 공격해 왔다.

1996년 이스라엘 군대는 ‘카나’라는 마을을 폭격해 1백 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또, 2000년에는 점령에 맞선 레바논인들의 저항을 응징하기 위해 전투기를 동원해 발전소를 폭격했다. 2000년 5월 헤즈볼라가 주도한 저항에 밀려 레바논 남부에서 쫓겨난 뒤에도 이스라엘은 주기적으로 레바논 폭격을 거듭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경제 봉쇄와 자금 지원 차단을 이용해 하마스 정권 붕괴를 획책해 왔다. 유엔에 따르더라도 올해 초부터 지난 6월 25일 샬리트 상병 납치 전까지 무려 5천 발이 넘는 미사일과 포탄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떨어졌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지지한 데 대한 ‘집단적 보복’ 조처였다.  

이갈 카스피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최근 “이란, 시리아가 헤즈볼라를 지원해 사태에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이란․시리아로부터 받는 지원은 이스라엘이 서방 강대국들로부터 받는 지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50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받고 있고, 지금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투기와 미사일 역시 대부분 미국산 무기들이다. 지금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지지하며 헤즈볼라, 이란, 시리아에게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 모든 참사의 진정한 뿌리는 다른 데 있다. 중동 지역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위협을 제거하려는 이스라엘 나름의 제국주의적 욕구와 이를 부추겨 온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야말로 이 모든 비극의 뿌리인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레바논․팔레스타인 공격은 중동 전역에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집트, 쿠웨이트, 요르단 같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지역 동맹국들에서도 수천 명 규모의 대중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전역과 영국에서도 시위가 벌어질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시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 정책에 맞선 이러한 국제적 저항의 일부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싸울 것이고, 오는 9월 24일 훨씬 더 큰 규모의 저항과 시위를 조직할 것이다.

― 이스라엘은 레바논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2006년 7월 21일 파병반대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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