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함께 읽는 하버마스..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그래도 사회철학의 필수교양이라 하니 일단 읽는 수 밖에. 피아제는 예전에 박홍규 교수(다작의 박홍규 말고)가 종종 언급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피아제가 이른바 유아론적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현상학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다면,  합리성의 진전에 따라 분화되는 세계상과 체계와 별도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생활세계 사이에 양자를 변전시키는 수단으로서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이 들어서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현상학의 입장에서는  생활세계 개념이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서론


2. 신화적 세계이해와 근대적 세계이해의 몇 가지 특징


4) 세계상의 탈중심화(피아제). 생활세계 개념의 잠정적 도입(127~138)


 [앞서 다룬] 영국에서 진행된 합리성 논쟁의 결론은 이것이다. 근대적 세계이해의 바탕에 보편적 합리성 구조가 놓여있기는 하지만, 서구의 근대사회는 인지적-도구적 측면에 고착되어 왜곡된, 특수할 뿐인 합리성 이해를 촉진한다. 세계상의 구조는 내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지식증가에로 소급될 수 있는 체계적 변화과정을 겪어 왔을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학습과정은 경험적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될 수 있으며, 동시에 일종의 문제해결로서 파악될 수 있다. 이때 학습과정은 내적 타당성 조건과 관련하여 체계적으로 평가 가능하다. 보편주의적 입장은 세계상의 합리화가 학습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최소한 기본 의도에서는 진화론적 가정을 불가피하게 한다. 가령 매킨타이어는 윈치에게 인지적 발달을 불연속적 형태도약으로 변형하여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다른 한편 보편주의적 입장도 증명부담을 져야 하는데, 근대사회의 학자는 종교적-형이상학적 세계상에서 근대적 세계이해로의 이행을 가능케 했던 학습과정을 재구성해야 한다.


 2장에서 베버의 종교사회학에 의지한 종교적 세계상의 발전은 학습과정으로 파악될 것이다. 이때 학습 개념은 피아제가 의식구조의 개체발생에 관련시켜 발전시킨 개념이다. 피아제는 인지발달의 단계들을 구별하는데, 각 단계는 새로운 내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학습능력의 수준을 통해 규정된다(구조학습과 내용학습의 구분). 새로운 세계상의 출현도 마찬가지이다. 신화적, 종교적-형이상학적, 근대적 사고방식 사이의 휴지부는 기본 개념체계의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극복된 해석들은 내용적 측면과 무관하게 범주적으로 평가절하된다. 설득력을 잃은 것은 이러저러한 개별근거가 아니라 근거들의 종류이다. 이러한 평가절하의 진전은 새로운 학습수준의 이행과 관련된다. 좁은 의미의 인지적 발달은 어린아이가 외적 실재와 대결하면서 획득하는 사고 및 행위의 구조와 관련되나, 피아제는 인지적 발달을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형성과 관련짓는다. 성장하는 어린이는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에 대한 개념을 객체들 및 자신과의 실천적 교섭을 통해 형성한다(객체의 세계와 내적 세계의 경계설정). 도구적 행위를 통한 외적 자연과의 접촉은 지적 규범체계의 구성적 획득을 매개하며, 타인과의 상호 작용은 도덕적 규범체계를 습득하도록 한다. 학습메커니즘, 적응과 순응은 이 두 가지 행위양식을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하여 넓은 의미에서 인지발달 개념은, 외적 세계의 구성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세계와 사회세계를 주관세계와 동시에 경계짓는 기준체계의 구성으로 이해된다. 인지적 발달은 자기중심적 경향의 세계이해가 탈중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위 세 가지 세계 개념의 형식적 기준체계가 분화되는 정도에 맞추어 세계에 대한 성찰적 개념이 형성되고, 공동의 해석 노력을 매개로 세계에 접근하는 태도가 습득된다. 모든 상호이해 행위는 상호주관적으로 인정된 상황 규정을 목표로 하는 협동적 해석과정의 일부로 파악할 수 있다. 생활세계 개념은 상호이해 과정에 대한 상관개념으로 도입된다. 의사소통적으로 행위하는 주체들은 언제나 생활세계의 지평에서 서로를 이해한다. 생활세계는 윤곽이 불확실하고, 항상 문제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배후확신들로 구성되며, 상황규정의 원천 역할을 한다. 생활세계는 이전 세대들이 이미 행한 해석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상호 이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일치에 대응하는 보수적 평형추 역할을 한다. 생활세계 속에 축적된 해석성과들과 비판적 검토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의 관계는 세계상의 탈중심화와 함께 변화한다. 문화적 비축지식을 제공하는 세계상이 탈중심화될수록 비판에 대해 내성을 갖도록 해석된 생활세계를 통해 상호이해의 필요가 미리부터 충족되는 정도는 점점 약해진다. 즉 생활세계의 합리화는 규범적으로 구성된 동의 대 의사소통적으로 성취된 상호이해의 차원에서 특징지을 수 있다. 어떤 타당성 주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가 문화적 전통에 의해 미리 결정될수록, 당사자들 자신이 잠재적 근거들을 명시적으로 만들고 검사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한 사회집단의 생활세계가 신화적 세계상에 의해 해석될수록, 개별 구성원들에게 해석의 부담은 경감되고 비판가능한 동의를 스스로 창출할 기회도 줄어든다.


 따라서 1) 문화적 전승은 객관세계, 사회세계, 주관세계에 대한 형식적 개념을 제공해야 한다. 분화된 타당성 주장들(명제적 진리, 규범적 정당성, 주관적 진실성)을 허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기본태도들(객관화하는 태도, 규범준수적 태도, 표출적 태도)의 분화를 자극해야 한다. 2) 문화적 전승은 자신에 대한 성찰적 태도, 즉 전통에 의해 마련된 해석들을 근본적으로 의문에 부치고 비판적 수정을 가하는 것(제2차의 인지적 활동)이 허용되어야 한다. 3) 문화적 전승의 인지적 구성요소, 가치평가적 구성요소가 전문화된 논증들과 피드백을 이루어 해당 학습과정들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과학, 도덕과 법, 예술 등 문화의 하부체계가 생겨난다. 4) 문화적 전승은 성공지향적 행위가 상호이해의 명령으로부터 해방되고 이해지향적 행위로부터 부분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생활세계를 해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목적합리적 행위의 사회적 제도화, 예컨대 화폐와 권력을 통해 조절되는 하부체계가 형성된다. 막스 베버는 3), 4)에서 언급된 체계형성을 근대의 문화적, 사회적 합리화의 핵심을 나타내는 가치영역들의 분화로 파악한다.


 이렇게 피아제의 탈중심화 개념, 세계상의 구조, 생활세계, 합리적 삶 사이의 내적 연관을 해명하여 다시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에 이르게 된다. 이 개념은 탈중심화된 세계이해를 비판가능한 타당성 주장의 토의적 해결과 관련짓는다. 벨머에 따르면 토의적 합리성은 절차적 합리성이자 메타 차원에서 작용하는 합리성의 형식적 기준이다. 만약 자기중심주의의 개념을 넓게 이해하고 모든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볼 경우, 탈중심화된 세계이해의 수준에서도 어떤 오류가 가능하다. 객관세계의 분화가 사회세계와 주관세계를 합리적 동기에 따른 상호이해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축출함을 의미한다는 환상 말이다. 이렇게 물화하는 사고의 환상에 짝을 이루는 근대의 착각이 유토피아주의이다. 이는 탈중심화된 세계 개념과 절차적 합리성으로부터 동시에 완전히 합리적으로 된 생활형식이란 이상이 획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생활형식의 총체성을 개별적 합리성 측면에서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상적 한계치에 근접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을 필요로 하는 계기들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절차적 합리성 개념으로부터 어떤 좋은 삶의 이념을 도출하도록 오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실체화된 이성적 세계상을 포기한다면, 자본주의적으로 근대화된 사회의 생활형식에 이중적인 왜곡(전통의 실체를 평가절하하고 인지적-도구적인 것에 제한된 일면화된 합리성에 복속시킨 것)을 비판하는 일만 남는다. 이러한 비판에는 의사소통 합리성 개념이 기초가 될 수 있다. 세계이해의 탈중심화와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해방된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말이다. 고도로 발달된 의사소통적 기반구조를 가진 생활세계를 추정하면서 이를 성공한 생활형식의 역사적 표현과 혼동하는 것이 유토피아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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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4-0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라님 공부 열심히군요! ^^

바라 2010-04-08 01:06   좋아요 0 | URL
히인지 이인지 갑자기 헷갈리네요; 일단 이것저것 영양가없이 손대고 있는 중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