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번역된 <들뢰즈와 예술>의 저자이며 고등사범학교에서 예술철학을 가르치는 얀 소바냐르그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4일동안 강의했는데 둘째 날과 넷째 날 밖에 가지 못했다. 예술과 철학이라는 제목 하에 이루어진 강연은 주로 들뢰즈의 미학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이 많지만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을 기록삼아 옮겨본다. 여기 적는 건 강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불어였다면 거의 못 알아들었겠지만, 비록 느린 영어로 이루어졌어도 놓친 부분이 꽤 많았고, 그래서 밑의 내용은 꽤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넷째 날 부분은 강연 관련 원고가 있으니 한번 번역을 해봐도 좋겠건만 당장은 힘들 것 같다.

둘째날 강연의 제목은 비평과 진단, 힘의 감응이었다. 초반에는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주체의 이론을 개괄했고, 시몽동에 의한 주체 개념 비판을 다루었다. 강연에 따르면 들뢰즈에게 있어서 시몽동의 개체화 개념은 큰 중요성을 갖는다. 예컨대 선-개체적 독특성이나 비인칭적 개체화 같은 개념. 이후에 <주름>의 번역자이자 소바냐르그 밑에서 들뢰즈를 전공한다는 이찬웅 씨가 잠시 강연을 했다. 일의성(둔스 스코투스)이니 중립적 본질(아비첸나) 같은 중세철학에서 유래한 개념들을 들뢰즈가 어떻게 중요하게 쓰는지, 시몽동의 변조modulation 개념이 들뢰즈에서 매우 중요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고, 다시 소바냐르그의 강연으로 돌아오면, 개체화라는 것은 주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시몽동, 조프루아 생튈레르, 스피노자 등이 개체화 이론을 위해 동원된다. 다소 낯설은 이름의 생튈레르는 뀌비에라는 사람과 논쟁했던 동물학자로서 후자가 동물들은 결국 서로 소통될 수 없는 네 가지 정적인 종으로 환원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친 반면 전자는 오직 하나의 종이 있을 뿐이며 이것이 모든 동물들의 다양한 변이를 가져오는 하나의 도면이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시몽동의 개체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 형이상학의 이분법 도식인 질료-형상 설을 비판한다. 시몽동은 오히려 재료-힘 이라는 새로운 비유기적 조직화 원리를 끌어들이는데, 그에 따르면 개체화 이전에 형이상학적으로 주어진 개체화의 원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개체와 개체화의 원리는 개체화의 과정을 통해서만 동시적으로 구성된다. 가령 거푸집이 일방적으로 진흙을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질료 자체가 나름의 독특한 힘, 비균질적 에너지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질료는 무규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능동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 되고, 형상은 질료적 생명성의 metastable준안정적 상태로 변화할 수 있게 된다(준안정적 상태란 예컨대 과냉각 액체, 0도 이하에서도 계속 액체로 남아있는 물이 약간의 충격만으로 바로 얼어버리는 그런 상태이다. 선개체적 존재는 긴장상태에 있는 이질적인 힘들의 집합에 있고 이 힘들이 위상변화함으로써 다른 상태로 이행한다는 것). 이 질료에 내재한 잠재적 힘들과 이 힘의 지속적인 변이 과정에 대한 표현은 예술의 소관이다. 예술은 언제나 생성 중에 있는 이 잠재적인 힘들의 포획이고 삶에 대한 실험과 실천이다 등등.

넷째 날은 예술과 내재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이 있었다. 소제목으로는 유사성과 반대되는 생성, 생성과 열린 체계, 리좀, 동물 되기와 감응affect의 목록, 힘의 포착으로서 생성, 이미지의 개체화, 운동-이미지와 세 변이태,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이미지로의 이행 등이 거론되었다. 들뢰즈의 이미지 존재론은 본래 무엇보다 베르그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들뢰즈는 이를 영화의 존재론에 끌어들이기 때문에 무엇이 베르그손 고유의 것이고 아닌지 헷갈리는 점이 있다(비단 이건 베르그손 독해만의 경우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들뢰즈의 영화론에 관해서 간략하게만 몇 자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주지하다시피 들뢰즈는 영화에 관한 두 권의 책, <시네마 1권; 운동-이미지>와 <시네마 2권; 시간-이미지>을 썼다. 그는 이미지(물질과 관념의 중간에 위치하는 어떤 것)를 운동과 등치시키고, 이미지들의 총체인 세계에는 중심도 없고 어떤 정박된 주체도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이미지들만이 존재한다. 이미지는 복수적이고 미분적인 힘관계들의 배치agencement이며 유동하고 임시적인 개체화의 장의 탈중심화된 우주를 구성한다. 운동-이미지들의 무한한 집합은 다양한 변이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내재성의 평면이다. 이미지들은 모두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를 갖는데, 여기에 특이한 이미지인 신체가 개입한다. 이때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 어떤 간격이 들어서게 되고, 이 간격은 특정한 면에서만 작용을 받아들이고 반작용을 실행한다. 간격을 통해 선별과 조직화, 변이가 가능해지고, 그래서 이 간격은 ‘비결정성의 중심’이라 불린다. 운동-이미지에서 세 변이가 일어나는데 비결정성의 중심은 이미지들의 총체에서 관심을 끄는 것을 취하는데 이때 중심과 결부된 운동-이미지가 바로 지각-이미지이고, 지각-이미지가 작용하거나 반작용하는 것이 행위-이미지이며, 지각과 행위 사이를 점하는 것이 바로 감응-이미지이다. 이제까지 서술된 내용이 현실적인 층위에서 다루어진 이미지론이고 시간의 도입과 더불어 잠재적인 것의 층위에서 다루는 이미지론이 나오게 된다. 영화의 탁월성은 영화가 정박이나 지평의 중심없는 탈중심화된 이미지의 세계, 순수 운동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영화의 역량은 현실적 이미지, 운동-이미지뿐만 아니라 시간-이미지도 준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이때 시간-이미지는 운동-이미지의 감각-운동 도식을 파괴하는 순수 시지각적 ․ 음향적 이미지, 기억-이미지, 꿈-이미지, 결정체-이미지 등으로 분류된다. 시간-이미지를 통해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상호공존과 식별불가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기존의 사유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새로운 지각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현상학적인 1인칭 주체의 관점을 비판하고 비인칭적, 선개체적인 잠재적 힘들의 차원을 개방할 것이다.

일단 예전에 들뢰즈를 드문드문 읽어보았을 때의 독서들은 주로 칸트나 니체, 베르그손, 스피노자에 관한 그의 책들과 <차이와 반복>이나 <의미의 논리> 같은 책들을, 그나마 제대로 이해도 못한 상태에서 읽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주로 강연 대상이었던 <감각의 논리>나 <천개의 고원>, <시네마> 등은 아예 읽어보질 못해서 이해가 어려웠다;; 들뢰즈에 과문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강연에서 주워들은 생각들을 바탕으로 말해보면 확실히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물질, 동물, 괴물 등등) 사이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체는 언제나 강도적인 종합, 힘의 합성의 산물이며 인간은 ‘국가 속의 국가’, 능동적 주체나 실체가 아니라 스피노자가 말하는 양태, 언제나 여러 우연적인 마주침의 과정에서 구성되는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인간 개체의, 또는 인간 의식의 자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선개체적 차원에 주목하기. 그래서 이 존재론은 어떤 강도적 존재론이지만, 전통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일자는 아니고 뭔가 ‘이상한’ 일자로부터 다수적인 존재의 동등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인간은 언제나 미리 주어진 선개체적 개체화의 장 안에서 어떤 관개체적 존재이고 어떤 무엇에서 다른 무엇으로 이행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물론 이 힘은 물리적, 화학적 차원의 힘이 아니다. 그 힘, 역량은 니체가 말한 Macht, 스피노자가 말한 puissance일 것인데, 이는 언제나 들뢰즈에게서는 무엇보다도 일종의 유희, 그러니까 예술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의 잘 알려진 캐치프레이즈인 일의성, 다수성, 차이, 복수성, 내재성, 독특성, 생성, 창조, 기쁨! 철학의 조건들이 과학, 정치, 예술 등이 있다고 할 때, 들뢰즈에게는 가장 탁월한 조건이 바로 예술일 것이며 그의 철학을 이끄는 가장 주요한 충동도 니체적인 예술 충동(“이 모든 것은 오직 미학적으로만 정당화된다”)일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의 철학, 그러니까 시종일관 하나의 미학일 어떤 철학을 어떤 사람들이 시도하는 것처럼 정치철학적으로 논의하려 할 때, 그게 누군가가 보기에는 커다란 가능성일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커다란 한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치에서는 창조와 차이만큼이나 습관과 안정, 균형과 지속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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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10-01-24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바냐르그의 강연이 있었군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ㅠㅠ

바라 2010-01-24 20:28   좋아요 0 | URL
네ㅠ 람혼님이 오셔서 들었으면 좋으셨을텐데 아쉽네요ㅜ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저보다야.. 프랑스철학 전공하는 선생님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오시고 미학과 학생들도 꽤 많았어요.

2010-01-24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