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葬送)


히라노 게이치로 장편소설 |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 2005년 10월 24일 발행예정


『일식』 『달』을 잇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삼부작 완결편!

1999년, 당시 만 23세의 어린 나이에 첫 소설 『일식』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의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히라노 게이치로.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중세 유럽의 신학과 연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작품에 걸맞은 장중한 의고체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치밀함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소설 『달』 이후 오랜 침묵에 싸여 있던 그가 내놓은 다음 작품은 200자 원고지 약 5500매에 달하는 초(超)대작 『장송』(전2권). 번역에 걸린 시간까지 합해, 우리에게는 근 육 년 만에 만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작이다.

19세기, 격동하는 파리를 무대로 되살아나는 천재 예술가들의 숨결

소설의 배경은 1848년 2월혁명을 전후한 프랑스 파리. 그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쇼팽과 들라크루아 두 주인공과 준(準) 주인공인 조르주 상드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삶과 고뇌, 사랑과 죽음이 장려하게 펼쳐진다.
『장송』의 첫머리에 놓이는 것은 1849년 10월 30일 마들렌 사원에서 거행된 쇼팽의 장례식 풍경. 장례식장 앞에서 벌어진 군중들의 소란, 쇼팽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지인들의 심경 등이 장중하고도 절제된 문장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소설은 1846년 11월 12일,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지내던 노앙을 떠나 파리로 돌아온 날로부터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3년여의 시간을 촘촘하게 재구성한다. 심각한 병에 시달리면서도 고국 폴란드에 대한 향수를 안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는 쇼팽, 하원 도서관의 거대한 천장화를 완성시키고 화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쌓아가는 들라크루아, 쇼팽의 사랑을 저버리고 혁명의 불길에 몸을 던지는 조르주 상드의 인생과 예술이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소설을 쓰기 전부터 쇼팽의 전기와 들라크루아의 일기 등을 읽고 그들의 인생과 예술론에 크게 이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일 년 가까이 방대한 관련자료를 섭렵하고(책의 말미에는 그가 참고한 30여 권의 참고문헌 목록이 덧붙어 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파리와 런던, 스코틀랜드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실제로 관람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거쳤고, 실제 집필에만도 삼 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 그 결과 『장송』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쇼팽과 들라크루아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섬세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모두 담아낸 치밀하고 방대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소설’

『장송』은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무대로 한 일종의 역사소설이자, 낭만주의 예술철학의 정수를 담은 예술가소설이며,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관계의 미묘한 엇갈림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심리소설, 또 당시 파리의 살롱을 무대로 한 풍속소설이기도 하다. 그 모든 측면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치밀하게 짜맞추어져 『장송』이라는 작품 전체를 구성한다. 게다가 곳곳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독백의 형식을 빌려 표현되는 예술과 역사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색의 정수,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정묘한 묘사는 소설읽기 자체의 흥미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예컨대 작품 곳곳에서, 세면기에 어른거리는 객혈의 붉은빛에 대한 쇼팽의 회상과 눈 내린 파리 정경에 대한 묘사, 예술에서 감성과 지성의 문제에 대한 격렬하고도 풍부한 토론, 쇼팽과 상드, 혹은 들라크루아와 그의 연인 포르제 남작 부인 사이의 조심스럽고도 격정적인 대화, 한겨울 바닷가의 파도에 의탁해 펼쳐지는 들라크루아의 긴 사색 등은 그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읽는 이를 흥분시키고야 만다.
특히 『장송』의 백미라고 할 예술작품 자체의 언어화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1부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이 완성한 천장화를 바라보는 들라크루아의 시선을 빌려 하원 도서관 천장화 구석구석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펼쳐지고, 그에 응답하듯 2부 첫머리에는 쇼팽의 연주회 장면이, 그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의 분량으로, 그 음 하나하나를 되살려내듯 그려진다. 예술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언어의 근본적인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끝간 데 없이 밀어붙이는 과감하고 놀라운 장면이다.

19세기 정통소설의 정점을 딛고 미래를 내다보다

『장송』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19세기 유럽의 인물과 거리를 그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발자크와 플로베르 같은 19세기의 작가들의 방법론을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치밀한 정경 묘사와 심리 묘사를 기초로 하는 정통적인 근대소설의 수법을 도입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그리고 현대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내려 한다.
“그 스타일로 소설을 씀으로써, 소설의 긴 역사를 나 자신의 작가로서의 역사로 소화하려 했습니다. 마치 음악이나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화성학과 데생 공부를 거쳐 그 전통과 맞서듯이요. 그걸 위해서는 소설의 스타일뿐 아니라, 제재도 19세기 프랑스로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장송』의 문체는 이전의 『일식』이나 『달』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방법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품격을 잃지 않는 고풍적인 문체이면서도 『일식』과 같은 고답적인 의고체가 아닌, 단정한 번역소설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문장이다. 그렇게 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철저함에 대해, 그러나 그는 “작품이 그리는 세계에 어울리는 문체를 썼을 뿐, 일상 회화에서도 상대방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는 것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썼다”고 가볍게 답할 뿐이다.

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인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장송』을 『일식』 『달』과 함께 삼부작 중 하나로 구상했다. 이 삼부작의 일관된 관심은 ‘전환기에 해당하는 시대와 장소를 그리는 것’. 『일식』의 배경이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기였고 『달』의 배경이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던 것처럼, 『장송』의 시대 배경이 되는 1840년대 후반의 프랑스는 2월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제로의 이행이 이루어진 시기이자, 낭만주의 예술이 꽃을 피우고 보들레르가 거기에서 새로운 ‘현대성’을 발견해낸 전환기적인 시기였다. 그 시기는 곧 현대를 사고할 때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일종의 원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가 작품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당시의 예술이 처한 곤란에 대해 언급할 때, 그 논의는 대중의 취향과 시장의 논리에 복속되어가는 현재의 상황과 그대로 겹친다. 그가 회고적인 취향이 아니라 가장 첨예한 현대의 문제와 다른 방향에서 맞서기 위해 계획적으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음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히라노 게이치로는 신에서 인간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이행해가는 ‘유럽 근대화의 하나의 고비’라고 할 그 시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오늘날의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사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문학의 한 정점

『장송』은 쇼팽과 들라크루아의 내면에 대한 정치한 기록이자 히라노 개인의 총체적인 예술론이며, 또 현대소설에 대한 메타적인 방법론, 그리고 무엇보다 한 편의 종합적인 이상으로서의 ‘소설’이다. 그것은 쇼팽과 들라크루아가 각각 음악과 회화로써 도달하고자 했던 그 지점을 그들에 대한 ‘언어’를 도구로 하여 도달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 너머에 있는 지금-여기의 문학과 앞으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 문학을 조망하는 것이다.
그는 『장송』 이후 현대를 무대로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로지 등 여러 가지 테마를 파격적인 형식 실험을 통해 파헤치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장송』의 출간은, 삼부작의 완결이라기보다 이어지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예고로서의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 출간 예정일 : 2005.10.24

http://www.munhak.com/_renewal/_index.php?munhakdongne=board.php&dbbase=new&page=1&numerals=15

-----------------------------------------------------------------------------------------------------

 

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산문집 | 염은주 옮김
문학동네 | 2005년 10월 24일 발행예정


일본 신세기문학의 기수, 히라노 게이치로 첫 산문집

교토 대학 재학중 사상 최연소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문학의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히라노 게이치로, 그의 첫 산문집. 로봇 강아지, 사이비 종교, 낙서, 고질라, 쇼핑, 지진, 광우병, 휴대전화까지, 주변의 일상과 사건에서 얻은 착상을 그만의 냉철한 직관과 분방한 상상력으로 풀어나간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의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나는 흥미로운 기회.

분방한 상상력, 문명의 그늘을 꿰뚫어보는 혜안

인공 애완동물이 살아 있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한 게 아니라, 소유하면서부터 비로소 애정의 대상이 되는 애완동물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혹 창조에 대한 우리 무의식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해 로봇 동물을 만들고, 애완동물에게 쏟는 것보다 더 보편적인 애정을 로봇 동물에게 쏟게 될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문명의 우울』은 히라노 게이치로가 한 일간지에 2년간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주로 시사적인 사건과 현상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소설가로서 그의 강한 자의식은 저널리즘의 관점과는 차별화되는, 그렇다고 신변잡기적인 한담도 아닌 그만의 고유한 에세이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책에는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소설가로서, 또 현대 일본의 젊은이로서―관심과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 전체를 포괄하는 관심은, 말하자면 현대의 과학기술과 여러 가지 현상 이면에 있는 문명 그 자체의 우울.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는 제목 ‘문명의 우울’은 그의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로봇 강아지나 인공장기에 대한 그의 논의는 매우 인상적이다. 중세와 19세기와 현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은 이십대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세상을 보는 그만의 특별한 눈

그렇다고 『문명의 우울』이 『일식』과 『달』의 산문판인 양 복잡하고 난해한 것은 아니다. 글에 담긴 사유의 깊이는 만만치 않지만, 작가 스스로도 연재글인 만큼 자유로운 스타일로 썼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비교적 평이하고 날렵한 문장으로 씌어져 있다. 때로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게 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나 소소한 사생활을 소재로 삼기도 하는 그의 글쓰기는, 『일식』 『달』, 그리고 『장송』의 작가로서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 그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살짝 ‘배반’해, 마치 똑똑한 옆집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도 한다. 말하자면 『문명의 우울』은, 그의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한번에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생각의 여운에 잠기게 하는 빼어난 산문이다.

그의 소설을 읽었다면 반드시 참조할 만한 텍스트

한 가지 덧붙여, 『문명의 우울』에 반영되어 있는 작가 자신의 일관된 관심과 주제는 이 산문집을 『일식』 『달』 『장송』과 같은 그의 작품들의 곁에 놓이는 이른바 ‘파라텍스트’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특히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가 근작 『장송』을 집필하는 중에 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 그가 펼쳐나간 사유들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만하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다.

이 글의 연재와 함께 19세기 중엽의 유럽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어서 진보와 문명이라는 당시 사회를 천천히 뒤덮던 매우 강력한 관념과 세기병으로서의 우울과의 관련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문명의 우울’이라는 제목을 고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후기’ 중에서

또 책의 한 부분에서, 열쇠의 물질성과 그것이 감추고 있는 비밀과의 관련성에 대한 독특하고도 치밀한 논의를 읽은 독자라면, 예컨대 『장송』에서 심상하게 스쳐가는 이런 한 구절,

……그것은 열쇠처럼 확실하게 비밀에 접근하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열쇠처럼 견고하게 어떠한 복제도 거부하는 것이었다.

라는 비유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그의 꼼꼼한 독자에게만 주어지는 책읽기의 재미가 아닐까. 히라노 게이치로의 팬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일.

목차

장난감과 애완동물 | 가공 기술 | 정체 모를 것 | 나의 현재 위치 | ‘인데도’와 ‘이니까’ | 과학신앙 시대의 인간의 죽음 | 골육론 | 낙서 생각 | 고질라 | 가깝다는 것 | 함께 탄 사람들 | 변덕스러운 쇼핑 | 로봇의 애교 | 천재지변의 신학 | 대량수송 시대의 전염병 | 자물쇠와 열쇠를 둘러싼 이미지 | 꿈의 다이(大)리그 | 모험이라는 퍼포먼스 | 새로운 신체 | 특별한 사람 |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 식탁 위의 살벌한 풍경 | 휴대전화의 연애학


* 출간 예정일 : 2005.10.24

http://www.munhak.com/_renewal/_index.php?munhakdongne=board.php&dbbase=new&page=1&numerals=1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간아 2005-10-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장송>! 정말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네요. 좋은 소식 고맙습니다.

urblue 2005-10-12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

sudan 2005-10-1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없던 기대도 생길 수 밖에 없겠어요.

2005-10-12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1회 홍대로 뮤직 페스티벌


모두가 기다리던 바로 그 축제!!!!

홍익대학교의 주최, 홍대로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주관하여
오는 10월 14일 금요일 대한민국 문화의 선두 공간인 홍대지역에서
진정한 예술과 젊음이 어우러진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 합니다!

행사명 : 홍대로 뮤직 페스티벌
시간 : 10월 14일 금요일 낮 2시부터 9시까지
장소 : 홍익대학교 정문앞 부터 극동방송국 까지

참여 뮤지션 : 자우림/ 크라잉넛/ 럼블피쉬/ 내귀에 도청장치/ 노브레인 
                        타카피/ 가이즈/ 재주소년/ 브런치/ 훌리건/ 락 타이거즈

                    슈퍼키드/ 쿨에이지/ 홍대지역 출신 밴드3팀, 홍익대학교 소속 3팀

 

* 본 페스티벌은 무료로 진행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10-11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5-10-1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빨리 가야 7시. 이런 걸 주말에 해야지. 참.
 
 전출처 : 히피드림~ > 중세 시대, 나의 직업 알아보기~

중세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테스트는 현재 자신의 인성과 기질, 가치관 등을 토대로, 지금보다 모든 것이 훨씬 단순했던 시대였지만, 최소의 사회시스템은 갖추고 있었던 중세 시대로 돌아가서 자신이 가지게 될 지위와 직업을 알아보는 것이다.

http://www.wjthinkbig.com/kingdomality

심심풀이로 해보세요.

 

신의 인성 성향은 ‘백기사(White Knight)’이다. 백기사는 중세에 번성했던 대부분의 왕국에 존재했던 역할이다. 백기사의 전형으로는 돈키호테와 잔 다르크, 론 레인저(Lone Ranger: 미국 TV나 영화 서부극의 주인공) 등을 들 수 있다. 백기사인 당신은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선행을 행하지는 않는다.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기증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의 부와 시간 그리고 인생을 타인과 나누는 익명의 자선가이다. 주는 것 자체에서 보상을 찾는 당신은 진실로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당신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정과 동정심이 많고, 타인에게 늘 도움이 되는 영웅적 존재라는 점이다. 부정적인 측면은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쉽고, 감정에 이끌려 방향을 잘못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당신의 인성 성향은 오늘날의 기업 왕국에도 잘 들어맞는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5-10-1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기사 새롭습니다^^;;; 저는 공학자래요 ㅠ.ㅠ

urblue 2005-10-1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님 글도 봤습니다. ^^

클리오 2005-10-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흑기사'는 알고보면 나쁜 사람인가요? ^^;; 흠, 저는 '자애로운 군주'랍니다... ^^

urblue 2005-10-10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도 자애로운 군주. 이런이런...군주들만 있으면 어쩝니까.

히피드림~ 2005-10-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윗 글을 보니 남에게 관대하고 늘 선행을 실천하시는 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나저나 알라딘에 왠 군주가 이렇게 흔하답니까. urblue님 모셔야 될 주군들이 넘 많으시군여. (썰렁~~)^^;;

sudan 2005-10-1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도 이 테스트 해보려다가 포기했어요. 순위를 매기라는데, 순서 정하는 거 어렵더라구요. 귀찮기도 하고.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게으른 사람은 뭐가 나올까요? 중세시대라 했으니, 혹시... 음유시인?(이런 결과도 있던가. -_-)
적어놓고 보니 음유시인이 중세시대 직업이 맞는건가? 긁적.

urblue 2005-10-1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음유시인이라...좀 어울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님도 공학자 뭐 이런 거 나오는거 아닌가. 흠.

punk님, 에구구, 별로 저한테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
많은 군주들을 모시기에는 이 몸이 너무 허약하야..큭..

瑚璉 2005-10-1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주가 이리도 많다니... 그럼 도대체 제가 양을 몇마리나 쳐야한다는 말입니까 (-.-;)?

urblue 2005-10-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양치기란 말이십니까? 오~ 그런 직업도 나오는군요.
전 백기사니까, 제가 먹을 양도 부탁~ ㅎㅎ
 

금요일 저녁, <서양 근현대미술의 거장전>을 보러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찾았다. 9시까지 전시라 8시 전에 입장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녁 먹고도 7시 반쯤에는 들어갈 수 있었고, 전시 작품 수가 많지 않아 느긋하게 오래오래 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점. 넓지 않은 전시장에 네다섯명 쯤의 도슨트들이 서 있다. 아무나 붙들고 물으면 바로 작품 안내를 시작한다. 도슨트마다 전공이 틀린 듯. 한 명이 전시장 전부를 도는게 아니라 부분 부분만 설명한다. 이런 럭셔리함이라니! 기존 전시장에서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다만 좀 버벅거리는 사람도 있었다는게 흠이라면 흠.



전시회 팜플릿. 빠닥빠닥한 종이에 전시 작품 대부분이 인쇄되어 있다. 그림 크기가 좀 작지만 상당히 만족스럽다. 표지는 저 유명한 모네의 <대운하>. 경매 추정가 $12,000,000~16,000,000란다. 몇몇 아이들이 뛰거나 부산스레 움직일 때마다 경비원들은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에 유리액자도 없으니 당연하겠지.

제일 좋았던 작품은 달리의 <기억의 메아리>와 베이컨의 <자화상을 위한 3개의 연구>. 어째서 그림을 직접 봐야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인터넷 갤러리에서 찾다찾다 못 찾았다. 수많은 갤러리에 달리의 수많은 작품들이 올라와 있는데, 유독 이 작품만큼은 어디에도 없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고 그러더니, 사실인가보다. 가운데 마당과 저 안쪽으로 보이는 쪼그만 마당의 밝은 기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음산한 느낌을 준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앞쪽에 기대어 있는 맹인이 달리 자신을 표현하는데, 자신은 어둡고 절망적인 삶을 살지만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빛이 비치는 안마당처럼, 자신의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고 한다. 사실인지 어떤지 알 수는 없다. 흠.

 



이 작품은 실제로 보는 것과 차이가 너무 심하다. 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 저 얼굴에 찍힌 파랗고 빨간 선은 칠판 지우개로 찍은 것처럼 선명한데 팜플릿에서는 다 뭉개진 것처럼 보인다. 바탕의 검은색도 저렇게 어둡지 않고 좀 더 맑은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난 베이컨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는 듯.

친구는 몇 주 연속 로또 당첨되면 저 작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아, 어디 갤러리 페이크 같은 데 없나. 나한테 싼값으로 진품 팔아 줄. 말도 안되나.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udan 2005-10-1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네다섯명의 도슨트라니! 저 베이컨과 달리의 작품은 실제로 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드네요.(호오라, urblue님의 안목)
서재이미지 바꾸셨군요. 예술적 경험을 한껏 하고 오셔서는 그 귀여워하던 마빈을 배신하셨나요? 헷.

sudan 2005-10-1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야겠다고 맘 먹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전시가 오늘까지였군요. 어흑.

urblue 2005-10-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토요일쯤 쓰려고 했어요. 다른 분들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그치만, 게으름은 어쩔 수가 없군요. 집에 디카가 없기도 했고.
배신이라니. 가을 분위기 좀 타는거죠.
님은 마빈 미워한 거 아니었어요? ㅋㅋ

히피드림~ 2005-10-1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전에도 왔으면 좋겠네요. 잘 봤습니다. 유아블루님~^^

urblue 2005-10-1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
지방에도 가면 좋을텐데, 그럴 계획은 없는 것 같더군요. 이게 소더비로 넘어가기 전에 들른 거라고 했던가요, 아마.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옮긴이 모름

 장날이 되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가축들이 울부짖는 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 장돌뱅이 깡부르는 소리에 난장판이었다. 장터를 가로질러 한복판쯤 파고 들어갈라치면 쇠붙이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었다. 낫을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한 농부들이 낫을 고르는 것이다. 상점 문턱받이 돌에다 낫을 퉁겨본다. 떵, 떵, 떵… 칭, 칭…, 쨍그렁, 쨍그렁! 돌에 부딪치는 쇠소리가 하루 종일 장터에서 끊일 새가 없었다.
 땅을 파먹고 사는 사람들이란 원래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도 미리 걱정하는 법이 좀체로 없다. 일단 발 밑에 불이 떨어졌을 때야 비로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참을성 있게 죽어라 해대는 것이다. 낫 하나 골라 사는 것도 이런 일 중의 하나다.
 꼭두새벽 집에서 출발하여 까마득히 험준한 비탈길을 걸어 장터 마을로 내려온 비토미르는 갖고 온 낟알을 팔아치우고 나니 따뜻한 봄낮 한나절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낫 한 자루만 사면 볼일은 다보는 것이다.
 그는 우선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쭉 줄지어 선 철물상 앞을 지나가며 두리번두리번 공짜 구경을 한참 하고 난 다음 마침내 안면 있는 상점에 발을 들여놓았다. 무엇을 찾느냐고 상점 주인이 묻자, 그는 서슬이 등등해서 말없이 입을 다문 채 낫을 찾으면서 천정에 걸려 있는 상품들을 한 차례 쭉 훑어보는 것이었다. 무엇을 찾는 손님인지 알지 못해 주인이 한참 얼떨떨해하자 점원녀석이, 흔히 칼을 포장할 때처럼, 삼베포(麻布)로 한 겹 싸고, 그 위에 피나무 껍질로 질끈 동여매 놓은 날 한 묶음을 비토미르 앞에 내놓았다.
 농부는 한 자루 한 자루 낫을 풀어 놓고는 날의 휜 모양과 빛깔과 강도(强度)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손가락을 슬쩍 칼날에 대어보기도 하고, 또 두 손으로 받쳐 들어보는가 하면, 이것을 뺨에 슬쩍 갖다 대었다가 금세 무엇을 베어보기나 하듯 낫등을 지그시 노리며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는 쇠에다 침을 퉤 뱉어서는 손톱으로 문질러놓고 혀 끝을 대보기도 했다. 앞니 몇 개가 빠진 점원녀석이 한참 동안 좌우로 훑어보았다. 그의 조그만 눈에는 이미 순진한 빛이 사라지고 껌벅이는 눈으로 곁눈질치는 것이었다.
 비토미르는 그 중에서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두서넛 골라 한 옆으로 가려놓고는 곧 이것을 들고 상점 밖으로 나가서 하나하나 여유있게, 조심스럽게 발받이 돌에다 퉁겨보기 시작했다.
 점원녀석이 따라나와 연상 물건을 지키고 있다. 농부는 점원녀석만 성가시게 쫓아다니지 않는다면 돈을 좀 더 주고라도 살 심산이었다. 하기야 이렇게 해보면 흠 있는 데를 곧 발견해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린 점원녀석과 그 녀석의 눈치가 못마땅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 정신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마치 음차(音叉)를 다루는 것처럼 날을 발받이 돌에다 땅하고 때려서는 곧 이것을 귀에다 갖다 대고 어느 손님보다 오랫동안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의 얼굴 표정은 넋빠진 사람 같았다. 그 소리에만 정신이 빠져 버린 그는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장터에 와 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들판으로 달려가서 자루를 해박은 바로 이 낫을 휘두르며, 뱀이 풀숲을 뚫고 나가듯 삭삭 풀을 베어 나가 비탈진 초원을 한 고랑 베어 제쳐 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상점 앞을 지나가던 농부들이 발길을 멈추고 서성거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귀를 기울여 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몇 마디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아무리 두들기고 찬찬히 살펴보아도, 전처럼 그 품질 좋던 바르카르 상표(商標)가 붙은 낫은 이제는 살 수 없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귀띔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비토미르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마다 치사를 해주었지만 귀를 대고 다시 소리를 들어보고 자신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가 낫을 퉁겨보고 또 엎어보고 제쳐보고 있으려니, 참다못한 상점 주인이 문 밖으로 달려나와 약간 노기 띤 음성으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한 묶음 가운데서 추려놓은, 두서넛 중에서 골라 보라는 것이다.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염려할 건 없어요. 비토미르, 다 괜찮다니까”
 "예” 하고 농부는 대답했다. 사실이 그렇다느니보다 그저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상점 주인의 말에 구애없이 마음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어떤 날에는 큼직한 글자로 공장표지를 한 금장표가 박혀 있었다. <Boehme & Son,Wiener Neustadt>.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금장표라고 불렀다. 다른 종류로는 그 쇠가 불을 먹여 푸르스름해진 것으로, 일명 티롤 제(製)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에는 깨알 같이 잔 글씨로 새겨져 있고 클로바 네 잎의 그림이 박혀 있었다. 역시 은장으로 박은 것이었다.
 "거 뭘, 그렇게 골치 쓸 필요 없다니까요” 상점 주인이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당신 보라고 글자하구 클로바 자호가 게 있지 않소”
 "그렇군요. 그래요” 농부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 "소위 글발깨나 읽는다는 작자들도 종종 잘 속더라. 물건은 보지 않고 자호만 보고 샀다간 망신당하는 때가 많단 말이야”
 농부는 이렇게 생각했다.
 "네” 농부는 다시 한번 대답했다.
 그는 상점 주인과는 더 이상 말을 않고 다만 마음 속으로 지껄이면서 날과 손이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이것저것 모두 생각해 보았으나 다른 것은 다 볼 필요도 없었고, 오골보골 들끓는 쌩쌩이 장터에서는 좀 미안하지만 염치불고하고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되는 것이었다.
 "난 그따위 것은 모른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글자나 자호는 참 예쁘게 새겨져 있지만, 나와 그것들과 무슨 상관이 있담. 더구나 일단 물건값을 치르고 난 다음에야 하등의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야? 그런 건 생각도 할 필요없지. 그 따위 글자들은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말이야. 그런 것 때문에 골치를 앓게 되거든. 돈을 더 받기 위해 그따위 것을 박아 놓았지. 골치 아프게시리. 결국 손해 보는 쪽은 우리거든. 그 멋들어진 글자와 금장표가 사람을 망하게 만들어 놓지. 내겐 그 따위 것들은 소용도 없어. 그래도 사긴 하나 사야지. 디카부 마을의 억센 풀이 글자를 알 리 없지. 오직 필요한 것은 낫뿐이야. 낫만 있으면 되고말고. 이놈의 집에서 처음 낫을 사는 것은 아니야. 그래도 나는 다 알고 있어. 그 꿍꿍이속을 말이야. 누가 봐도 여기서 볼 때는 참 멋진 군도(軍刀)같이 볼 테지. 그러나 이놈을 일단 사들고 그 육시랄 디카부 마을 밭으로 올라가 보란 말이야. 자루를 해박고 풀을 베기 시작해 보지. 마치 고드름 녹아 떨어지듯 풀포기에 날이 푹푹 닳아 버리고 또 숫돌질엔 영 맥을 못춘단 말이야. 나는 이런 걸 다 알고 있지 그럼”
 비토미르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여전히 하나하나 문지방 발받이 돌에다 두들겨 보는 것이다. 판에 박힌 듯 한결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봄으로써 낫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내기 위하여 낫을 달래는 것이었다. 
 다시 그는 날을 골라잡고 하나하나 여유있게 음미해 보았다.
 그 꾸부정한 날의 모양과 검푸르고 또 금장표의 빛깔은 마치 낫 하나하나의 내력과 운명을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저 낯모를 세상에서 디카부 마을의 농삿군인 그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경로 말이다. 그는 마치 보기나 하는 듯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광석을 캐낸 광산에서 이것을 녹이는 용광로로, 또 거기에서 물건의 모양과 이름을 붙여주는 철공소에 이르기까지. 그는 속으로 이 물건이 한 다리 한 다리 거쳐온 경로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루마니아 세멕이 들어오기까지 다른 나라들을 통해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실어 날라서는 또 부리고 싣고 해서 수입업자들의 손을 거쳐 대리상으로, 또 거기에서 비엔나와 사라예보의 도매상에 들어와 마차에 실려 꼬불꼬불 비세그라드에 들어오기까지의 일들을 생각했다.
 이렇게 손과 손을 거쳐 들어오는 도중에 물건이 상하게 마련이다. 즉 어느 것에나 조그마한 흠이 지게 마련이다. 어느 것에나 흠이 있지 그럼!
 비록 비토미르가 상식적으로 모든 것을 어림쳐 생각한 것이라도 마치 몸이 아플 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었다. 이 물건을 사서 닳아빠질 때까지 써먹을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였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인 것이다. 별 도리가 없었다. 
 "젠장 요놈의 것이” 화가 치밀어 오른 비토미르는 이렇게 투덜대며 날을 들어 발받이 돌에다 대고 힘껏 내리쳤다. 계산대 뒤에 있던 상점 주인이 휙 고개를 돌렸다. 아차 정신을 차린 그는 어쩔 줄 모르고 서성댔다.
 만져 보고 흔들어 보고 한참 고르고 난 그는 찬 물 속에 뛰어 들어가는 사람처럼 선뜻 단김에 마음을 결정했다.
 그런 후에도 상점 주인과 옥신각신 흥정이 길어졌다. 
 돈을 치르고 낫을 들고 나온 비토미르는 나귀 등에 올라탔다. 그가 산 물건은 뒤쪽에 있는 길마에 매놓은 빈 자루 속에 찔러 넣었다.
 주막에 다다르자 말에서 내린 그는 브랜디 한 잔을 시켜 목을 축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게 되니 잡담이 오고가게 마련이다. 그는 주로 자기가 산 낫에 대해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교부(敎父) 두 사람도 만났다. 은근히 군침을 다시는 것을 눈치챈 그는 술을 몇 잔 더 시켜 왔다. 그는 잔을 떼지 않고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보통 주량을 넘게 마신 것이다. 이게 다 그놈의 낫 때문이지. 그는 이렇게 혼자 뇌까려 보는 것이다.
 그는 땅거미가 짙어지고 얼마 있다가 마을을 향해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믿음직스러운 늙은 나귀는 딱정벌레처럼 가파른 비탈길을 기어 올라갔다. 띵 하던 비토미르의 머리는 점점 맑아졌다. 술이 정신을 흐리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는 브랜디가 노곤한 사지에 힘을 돋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 같았다. 쌓이고 쌓였던 모든 상념이 치솟아 올라 목청을 돋구어 소리지르고 한바탕 노랫가락이라도 뽑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이 또렷하게 선명해져옴을 느꼈다. 어느 정도 정확하게 낫에 불을 먹여서야 된다는 것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또 상점 주인 양반에게 말해야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런데 늘 이 모양이었다. 마을로 내려가면 늘 얼떨떨해지기가 일쑤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일과 사사건건에 어쩔 수 없이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생지옥 같은 장터를 빠져 나와 디카부 마을을 향하여 산길을 기어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원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자신 속에 깃들인 신념과 능력과 믿음이 다시 그에게 찾아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가도 다음 장날이 오면 또 맹추가 되어 버린다. 또 전처럼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제나 염통이 곪아 터질 지경이었다.
 말에 박차를 가하고는, 오늘 무척 애를 먹였고 많은 돈을 잡아먹은 낫을 돌아보았다. 지금 자기 뒤에 매달려 있는 낫이야말로 두말할 것 없이 마누라가 자기 것인 것처럼 자기의 소유물인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사람이 생명이 없는 물건의 성질과 진가를 판단해 볼 수 있을까? 제일 좋은 낫을 골랐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또 바가지를 썼는지 안 썼는지를 누가 안단 말인가? 최종적으로 물건값이 결정되었을 때 그는 상점 주인의 표정을 살폈던 것이다. 그리고도 낫에 새겨져 있는 상표문제보다는 오히려 낫 그 자체가 수수께끼 문제 같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뒤적거려 봤지만, 그래도 흠이나 결점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그의 물건이 비록 크고 쨍쨍한 소리를 울렸지만 고르다가 놓아 버린 물건이 더 좋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제는 다 끝난 일이다. 이미 다 고른 물건이다. 그러나 꺼림칙한 생각이 그를 괴롭혀주었기 때문에 그는 못 미더운 듯 연상 힐끗 눈알을 굴리며 나무라는 눈으로 그가 산 물건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오른쪽 어깨 너머로 넘겨다 보면 시커먼 낫 머리가 보이고 왼쪽으로 넘겨다보면 날 끝이 드러나 보였다. 쇠로 만든 초생달같이 생긴 것이 싱싱하고 밝은 빛을 내며 창공을 솟아오르는 진짜 달같이 보였다. 안장에 앉아 몸을 한번씩 뒤퉁거리면서, 어떤 때는 부드러운 말로, 또 어떤 때는 투정섞인 말로 새로 산 자기의 소유물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실컷 바람이나 마셔 봐라. 너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너와 인연을 맺을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 알게 될 거라. 너는 시집을 오는 거란 말이야! 만일 그 예쁜 너의 글자를 곱게 모셔둘 것이라고 생각했다간 정말 큰코 다치지. 그럼, 어림도 없는 노릇이지. 내 말해준다만 그 산뜻하고 아담한 글자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을 거란 말이야. 하기야 저곳에서는 너나 풀이나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호락호락 놀고 먹게 놓아두지는 않을 거란 말이야. 나는 아직까지 나의 할아버지 리스탠 어른의 일을 기억하고 있지. 꼴을 베어 오라고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내보냈지, 솥에 넣어 들들 볶듯 부려먹었단 말야. 애녀석들은 파리새끼처럼 픽픽 쓰러졌었지, 아낙들은 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그를 붙들고 애걸복걸했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욱 아우성만 질렀지. ‘제 할일이나 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아!' 이렇게 호통을 치셨어. ‘아직도 너희들 근력이 정정하지 않느냐 말이야. 개도 안 뜯어먹을 그놈의 몸뚱이를 아끼는 꼴을 죽어도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사족을 놀려 일하지 않고, 먹지도 않으려면 무엇하러 세상에 태어들 났느냐 말이야…' 나는 죄다 기억하고 있지. 흥, 그것보다 더한 일까지도 기억할 수 있단 말야…”
 비토미르는 낫을 보고 싱긋이 웃음지었다. 달빛을 받은 낫의 광채가 그에게로 되비쳤다.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다문 채 심각한 듯 뇌까렸다.
 "좋아 요것아. 내일 아침 한 번 시험해 볼 테야. 자루를 해박아 갖고 번개같이 휘둘러서 들판과 온 골짜기에다 본때를 보여줄 테니까 두고 봐라. 너를 숫돌 위에 놓고 석석 갈기 시작하면 디카부가 어떤 동네인지 너는 알게 될 거라! 네놈 빤들한 맵시도 마술에 걸린 것처럼 뭉턱뭉턱 닳아 떨어질 테니. 두고 보라니까. 이게 바로 산이라는 거야. 험준한 큰 산이지. 네가 있던 물렁물렁 하고 밋밋한 평지와는 다르단 말야”
 희미한 달빛을 뚫고 앞을 내다본 비토미르의 눈에는 ‘서나무 작은 동네’라고 불리는 분지가 보였다. 
그는 곧 자기 마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자 목청을 힘껏 돋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도, 이렇다 할 가락도 없다. 그저 높은 소리가 축 처져 흘러퍼질 뿐이다. 마치 원수를 불러다가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 출처 ㅡ [풀씨](2001년 여름) http://www.fulssi.or.kr/book/

* 이 작품은 이보 안드리치에 대한 정보를 찾아헤매던 어느 날 운좋게 건진 것입니다. 퍼온 곳, [풀씨]에서는 <낫>이라는 번역제목만 있을 뿐 원제목을 병기하지 않았더군요. 슬라브어를 모르므로 제목의 원어를 병기하지 않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