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葬送)


히라노 게이치로 장편소설 |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 2005년 10월 24일 발행예정


『일식』 『달』을 잇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삼부작 완결편!

1999년, 당시 만 23세의 어린 나이에 첫 소설 『일식』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의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히라노 게이치로.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중세 유럽의 신학과 연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작품에 걸맞은 장중한 의고체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치밀함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소설 『달』 이후 오랜 침묵에 싸여 있던 그가 내놓은 다음 작품은 200자 원고지 약 5500매에 달하는 초(超)대작 『장송』(전2권). 번역에 걸린 시간까지 합해, 우리에게는 근 육 년 만에 만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작이다.

19세기, 격동하는 파리를 무대로 되살아나는 천재 예술가들의 숨결

소설의 배경은 1848년 2월혁명을 전후한 프랑스 파리. 그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쇼팽과 들라크루아 두 주인공과 준(準) 주인공인 조르주 상드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삶과 고뇌, 사랑과 죽음이 장려하게 펼쳐진다.
『장송』의 첫머리에 놓이는 것은 1849년 10월 30일 마들렌 사원에서 거행된 쇼팽의 장례식 풍경. 장례식장 앞에서 벌어진 군중들의 소란, 쇼팽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지인들의 심경 등이 장중하고도 절제된 문장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소설은 1846년 11월 12일, 쇼팽이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지내던 노앙을 떠나 파리로 돌아온 날로부터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3년여의 시간을 촘촘하게 재구성한다. 심각한 병에 시달리면서도 고국 폴란드에 대한 향수를 안고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는 쇼팽, 하원 도서관의 거대한 천장화를 완성시키고 화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쌓아가는 들라크루아, 쇼팽의 사랑을 저버리고 혁명의 불길에 몸을 던지는 조르주 상드의 인생과 예술이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소설을 쓰기 전부터 쇼팽의 전기와 들라크루아의 일기 등을 읽고 그들의 인생과 예술론에 크게 이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일 년 가까이 방대한 관련자료를 섭렵하고(책의 말미에는 그가 참고한 30여 권의 참고문헌 목록이 덧붙어 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파리와 런던, 스코틀랜드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실제로 관람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거쳤고, 실제 집필에만도 삼 년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 그 결과 『장송』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쇼팽과 들라크루아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섬세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모두 담아낸 치밀하고 방대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소설’

『장송』은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무대로 한 일종의 역사소설이자, 낭만주의 예술철학의 정수를 담은 예술가소설이며,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관계의 미묘한 엇갈림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심리소설, 또 당시 파리의 살롱을 무대로 한 풍속소설이기도 하다. 그 모든 측면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치밀하게 짜맞추어져 『장송』이라는 작품 전체를 구성한다. 게다가 곳곳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독백의 형식을 빌려 표현되는 예술과 역사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색의 정수,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정묘한 묘사는 소설읽기 자체의 흥미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예컨대 작품 곳곳에서, 세면기에 어른거리는 객혈의 붉은빛에 대한 쇼팽의 회상과 눈 내린 파리 정경에 대한 묘사, 예술에서 감성과 지성의 문제에 대한 격렬하고도 풍부한 토론, 쇼팽과 상드, 혹은 들라크루아와 그의 연인 포르제 남작 부인 사이의 조심스럽고도 격정적인 대화, 한겨울 바닷가의 파도에 의탁해 펼쳐지는 들라크루아의 긴 사색 등은 그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읽는 이를 흥분시키고야 만다.
특히 『장송』의 백미라고 할 예술작품 자체의 언어화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1부 마지막 장에서는 자신이 완성한 천장화를 바라보는 들라크루아의 시선을 빌려 하원 도서관 천장화 구석구석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펼쳐지고, 그에 응답하듯 2부 첫머리에는 쇼팽의 연주회 장면이, 그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정도의 분량으로, 그 음 하나하나를 되살려내듯 그려진다. 예술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언어의 근본적인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끝간 데 없이 밀어붙이는 과감하고 놀라운 장면이다.

19세기 정통소설의 정점을 딛고 미래를 내다보다

『장송』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19세기 유럽의 인물과 거리를 그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발자크와 플로베르 같은 19세기의 작가들의 방법론을 철저하게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치밀한 정경 묘사와 심리 묘사를 기초로 하는 정통적인 근대소설의 수법을 도입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그리고 현대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내려 한다.
“그 스타일로 소설을 씀으로써, 소설의 긴 역사를 나 자신의 작가로서의 역사로 소화하려 했습니다. 마치 음악이나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화성학과 데생 공부를 거쳐 그 전통과 맞서듯이요. 그걸 위해서는 소설의 스타일뿐 아니라, 제재도 19세기 프랑스로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장송』의 문체는 이전의 『일식』이나 『달』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방법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품격을 잃지 않는 고풍적인 문체이면서도 『일식』과 같은 고답적인 의고체가 아닌, 단정한 번역소설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문장이다. 그렇게 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철저함에 대해, 그러나 그는 “작품이 그리는 세계에 어울리는 문체를 썼을 뿐, 일상 회화에서도 상대방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는 것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썼다”고 가볍게 답할 뿐이다.

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인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장송』을 『일식』 『달』과 함께 삼부작 중 하나로 구상했다. 이 삼부작의 일관된 관심은 ‘전환기에 해당하는 시대와 장소를 그리는 것’. 『일식』의 배경이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기였고 『달』의 배경이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기였던 것처럼, 『장송』의 시대 배경이 되는 1840년대 후반의 프랑스는 2월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제로의 이행이 이루어진 시기이자, 낭만주의 예술이 꽃을 피우고 보들레르가 거기에서 새로운 ‘현대성’을 발견해낸 전환기적인 시기였다. 그 시기는 곧 현대를 사고할 때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일종의 원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가 작품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당시의 예술이 처한 곤란에 대해 언급할 때, 그 논의는 대중의 취향과 시장의 논리에 복속되어가는 현재의 상황과 그대로 겹친다. 그가 회고적인 취향이 아니라 가장 첨예한 현대의 문제와 다른 방향에서 맞서기 위해 계획적으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음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히라노 게이치로는 신에서 인간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이행해가는 ‘유럽 근대화의 하나의 고비’라고 할 그 시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오늘날의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사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문학의 한 정점

『장송』은 쇼팽과 들라크루아의 내면에 대한 정치한 기록이자 히라노 개인의 총체적인 예술론이며, 또 현대소설에 대한 메타적인 방법론, 그리고 무엇보다 한 편의 종합적인 이상으로서의 ‘소설’이다. 그것은 쇼팽과 들라크루아가 각각 음악과 회화로써 도달하고자 했던 그 지점을 그들에 대한 ‘언어’를 도구로 하여 도달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 너머에 있는 지금-여기의 문학과 앞으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 문학을 조망하는 것이다.
그는 『장송』 이후 현대를 무대로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로지 등 여러 가지 테마를 파격적인 형식 실험을 통해 파헤치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장송』의 출간은, 삼부작의 완결이라기보다 이어지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예고로서의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 출간 예정일 : 2005.10.24

http://www.munhak.com/_renewal/_index.php?munhakdongne=board.php&dbbase=new&page=1&numerals=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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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산문집 | 염은주 옮김
문학동네 | 2005년 10월 24일 발행예정


일본 신세기문학의 기수, 히라노 게이치로 첫 산문집

교토 대학 재학중 사상 최연소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일본문학의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히라노 게이치로, 그의 첫 산문집. 로봇 강아지, 사이비 종교, 낙서, 고질라, 쇼핑, 지진, 광우병, 휴대전화까지, 주변의 일상과 사건에서 얻은 착상을 그만의 냉철한 직관과 분방한 상상력으로 풀어나간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의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나는 흥미로운 기회.

분방한 상상력, 문명의 그늘을 꿰뚫어보는 혜안

인공 애완동물이 살아 있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한 게 아니라, 소유하면서부터 비로소 애정의 대상이 되는 애완동물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혹 창조에 대한 우리 무의식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우리는 생물 그 자체를 모방해 로봇 동물을 만들고, 애완동물에게 쏟는 것보다 더 보편적인 애정을 로봇 동물에게 쏟게 될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문명의 우울』은 히라노 게이치로가 한 일간지에 2년간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주로 시사적인 사건과 현상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소설가로서 그의 강한 자의식은 저널리즘의 관점과는 차별화되는, 그렇다고 신변잡기적인 한담도 아닌 그만의 고유한 에세이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책에는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소설가로서, 또 현대 일본의 젊은이로서―관심과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 전체를 포괄하는 관심은, 말하자면 현대의 과학기술과 여러 가지 현상 이면에 있는 문명 그 자체의 우울.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는 제목 ‘문명의 우울’은 그의 관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로봇 강아지나 인공장기에 대한 그의 논의는 매우 인상적이다. 중세와 19세기와 현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의 분방한 상상력과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은 이십대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세상을 보는 그만의 특별한 눈

그렇다고 『문명의 우울』이 『일식』과 『달』의 산문판인 양 복잡하고 난해한 것은 아니다. 글에 담긴 사유의 깊이는 만만치 않지만, 작가 스스로도 연재글인 만큼 자유로운 스타일로 썼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비교적 평이하고 날렵한 문장으로 씌어져 있다. 때로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게 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나 소소한 사생활을 소재로 삼기도 하는 그의 글쓰기는, 『일식』 『달』, 그리고 『장송』의 작가로서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 그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살짝 ‘배반’해, 마치 똑똑한 옆집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도 한다. 말하자면 『문명의 우울』은, 그의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한번에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그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생각의 여운에 잠기게 하는 빼어난 산문이다.

그의 소설을 읽었다면 반드시 참조할 만한 텍스트

한 가지 덧붙여, 『문명의 우울』에 반영되어 있는 작가 자신의 일관된 관심과 주제는 이 산문집을 『일식』 『달』 『장송』과 같은 그의 작품들의 곁에 놓이는 이른바 ‘파라텍스트’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특히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그가 근작 『장송』을 집필하는 중에 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 그가 펼쳐나간 사유들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만하다. 일단 제목부터가 그렇다.

이 글의 연재와 함께 19세기 중엽의 유럽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어서 진보와 문명이라는 당시 사회를 천천히 뒤덮던 매우 강력한 관념과 세기병으로서의 우울과의 관련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문명의 우울’이라는 제목을 고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후기’ 중에서

또 책의 한 부분에서, 열쇠의 물질성과 그것이 감추고 있는 비밀과의 관련성에 대한 독특하고도 치밀한 논의를 읽은 독자라면, 예컨대 『장송』에서 심상하게 스쳐가는 이런 한 구절,

……그것은 열쇠처럼 확실하게 비밀에 접근하는 수단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열쇠처럼 견고하게 어떠한 복제도 거부하는 것이었다.

라는 비유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그의 꼼꼼한 독자에게만 주어지는 책읽기의 재미가 아닐까. 히라노 게이치로의 팬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일.

목차

장난감과 애완동물 | 가공 기술 | 정체 모를 것 | 나의 현재 위치 | ‘인데도’와 ‘이니까’ | 과학신앙 시대의 인간의 죽음 | 골육론 | 낙서 생각 | 고질라 | 가깝다는 것 | 함께 탄 사람들 | 변덕스러운 쇼핑 | 로봇의 애교 | 천재지변의 신학 | 대량수송 시대의 전염병 | 자물쇠와 열쇠를 둘러싼 이미지 | 꿈의 다이(大)리그 | 모험이라는 퍼포먼스 | 새로운 신체 | 특별한 사람 |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 식탁 위의 살벌한 풍경 | 휴대전화의 연애학


* 출간 예정일 : 2005.10.24

http://www.munhak.com/_renewal/_index.php?munhakdongne=board.php&dbbase=new&page=1&numerals=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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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아 2005-10-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장송>! 정말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네요. 좋은 소식 고맙습니다.

urblue 2005-10-12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

sudan 2005-10-1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없던 기대도 생길 수 밖에 없겠어요.

2005-10-12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