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작사 : 김남주(시) 작곡 : 없음 편곡 : 윤민석(편집) 가수 : 김남주(낭송) 사슬로 이렇게 나를 묶어놓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는 벽으로 이렇게 나를 가둬놓고 주먹밥으로 이렇게 나를 목메이게 해 놓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부자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개처럼 묶어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짐승처럼 가둬 놓고 사람을 이렇게 해 놓고 주먹밥으로 목메이게 해 놓고 잠자리에서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그럴 사람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나와서 이 사람을 보아라 사슬 묶인 손으로 주먹밥을 쥐고 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 사람 앞에서 묶인 팔다리 앞에서 나는 자유다라고 어디 한 번 활보해 봐라 이 사람 앞에서 굶주린 얼굴 앞에서 나는 배부르다라고 어디 한 번 외쳐 봐라 이 사람 앞에서 등을 돌리고 이 사람 앞에서 얼굴을 돌리고 마음 편할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있어 봐라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먹고 배부를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노래이야기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동안, 이 민족의 기상과 정기를 꺾어보겠다는 헛된 일념으로 이 나라 곳곳에 박아 놓았던 쇠말뚝보다 더 악랄하고 집요한 국가보안법이라는 쇠말뚝이 우리 모두의 정수리마다 박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그저 주린 배만 채울 수 있다면 친일도, 쿠데타도, 구린내 나는 수 많은 부정과 비리와 부패도, 천부의 권리라는 인권에 대한 유린과 고문과 조작과 폭압도 용인되던 가슴아픈 시절은 끝났다고, 이젠 정말 끝난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세기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그 놈의 국가보안법이라는 서슬퍼런 칼로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농락하며 민족의 아픈 상처위에 걸터 앉아 호의호식하며 제 배 불리던 자들이 청산되기는 커녕 국가보안법이라는 쇠말뚝을 뽑아내면 안된다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아픔을 이용하며 외세가 이 나라를 희롱하고 비웃어도 이남의 모든 이들은 여전히 정수리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쇠말뚝의 저주를 박은 채 끝끝내 서로 증오하고 싸우고 헐뜯고 대결해야 한다고 악다구니하는 저들을 보면서... 오늘, 지난 번에 이어 다시 한 번 김남주 시인의 시를 빌어 우리 자신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정녕 자유로운지를... 송앤라이프 바로가기
Magdalene Reading, Van Der Weyden 1445
이 그림에서 막달렌의 두 눈은 범접할 수 없는 슬픔의 빛을 띠고 있다. 그녀는 읽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영혼의 깊은 세계에 침잠한 것처럼 보인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에서, 영혼이 담긴 얼굴의 예로 든 그림이라 찾아보았다.
손 가야 하는 일은 이제 대충 끝났다.
원래가 닥쳐야 일을 하는 성격이므로, 내일의 할 일은,
오늘 아무리 시간이 많이 남더라도, 기어코 내일 하고야 만다.
게다가 오늘은 사무실 사람들 전원 외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 여섯시까지 전화 받으며 뭉개다가 퇴근하면 된다.
맛있는 커피 한 잔 타 놓고, 책이나 읽어야겠다.
햇살이 따스하니, 좋다.
마네의 그림이 전시되었던 당시의 신문 만화
Jean Dubuffet, Shock of the Nude (Manet's Olympia) 1950
Mel Ramos, Manet's Olympia 1974
Julie Rrap, Untitled (after Manet's 'Olympia') 2002
마네, 올랭피아 (1865)
<올랭피아>는 전시되자마자 예술계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고 즉시 외설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색채 중심 화풍의 전통적 조화로움을 저속한 모델의 포즈로 패러디하고 희화했다는 비난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정말로 비평가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그림의 형식적 반란이라기 보다는 모델인 빅토린 모렝의 기묘한 얼굴 표정이었다. 여자 누드 예술의─남성적인─역사는 그때까지 거의 항상 고혹적이고 순종적인 자세만을 고집해왔다. 내실에서 혹은 고전적인 정원에서 여자는 벌거벗은 채 남성이 성희를 시작하기를 기다리면서 순진한 15세 처녀의, 천진스럽고 안온하면서도 매혹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외관상 감상자는 단지 위대한 예술 앞에서 사색에 몰두하는 듯 보이지만, 프로이트 이전 시대에 그런 활동과 결부시켰던 갖가지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감상자는 아름다운 님프 앞에서 침을 흘리기 마련이었다. 전통적 회화의 전형이었으며 마네도 젊은 시절에 스케치하기도 했었던 이탈리아 화가 티티안의 <우비노의 비너스>는, 부드럽고 순결하지만 보는 사람이 느끼기에 따라 분명 성교의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의 그림이었다. 감상자는 시선으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언제든 한가할 때 그녀를 범할 수 있고 그녀의 욕구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올랭피아는 전혀 다른 경우의 그림이었다. 여기에 묘사된 것은 분명 다소곳하게 움츠린 제비꽃같은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알고 떳떳해하는 여자였다. 행여 어떤 일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감상하는 남자가 아니라 바로 그녀에 의해서일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과 입가에 비친 표정은 그녀가 크기와 행위에 대해 한두 가지─그녀에겐 재미있고 남자에겐 아찔한─농담을 던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따금씩 에릭의 눈에 감지되는 앨리스의 힘도 빅토린 모렝의 표정에 담긴 위협적 분위기와 흡사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 그것은 성적 위협이 아니라 정서적 위협이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까요?'나 '왜 당신은 사랑하는 동안 나를 바라보지 않는 거죠?'와 같은 질문을 퍼부으면서 그의 보호막인 핑곗거리를 벗겨 내려는 그녀의 욕망이었다.
─ 알렝 드 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