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MBC에서 새로 시작한 주말 연속극을 잠깐 보았다. 날라리틱한 여자가 (그 전 주에도 잠깐 보니 거의 꽃뱀 수준인 듯) 웬 돈 많은 남자 차를 타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간다. 아니나 다를까, 한적한 곳에 이르러 남자는 이런 곳까지 따라 왔을 때는 너도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달려들고, 여자는 얻어맞아가면서 남자를 뿌리치고 차에서 뛰쳐나온다. 

 

이런 설정은 어느 드라마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여자가 아무리 꽃뱀에 사기꾼 짓을 하고 다니더라도 남자와 자는 것만은 안 한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그것만은 안 한다. 절대로 안 한다. 가정 교육을 엄청 잘 받은 건지 (콩가루 집안이라도), 학교에서 그런 것만 배웠는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어도), 태어날 때부터 도덕심과 순결 의식을 타고 난 건지 (그래도 사기는 치네), 하여간 그렇다.

 

아니, 사실은 돈 많고 멋진 남자와 결혼하는 법을 제대로 알 만큼 영악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느 날 여자 앞에 멋진 남자가 나타나고, 여자는 그때까지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순식간에 요조숙녀로 변신한다. 돈 많고 멋진 남자는 여자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는다. 사기를 치건 도둑질을 하건, 그 정도는 한 때의 일탈일 뿐이니까. 돈 있는데 또 그러겠어?

 

그러나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한 건, 더구나 동거 정도라면 절대 용납이 안 된다. 만일 여자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면, 저 <애정의 조건>에서처럼, 용서를 하네 마네, 죽네 사네 하는 신파가 필수로 따라붙는다. 온갖 고생을 다 시켰어도 결국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는 무지막지하게, 엄청나게, 죽을만큼 여자를 사랑해서 그렇다는 내용이다. 설사 남자가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인물들도, 시청자들도 남자를 비난하지 않으니까. 반면 여자에게는, 거봐, 니가 잘못 살아서 그렇잖아, 그러길래 잘 하지 그랬어, 라는 비난 겸 위로가 던져진다.

 

아아, 쓰다보니 짜증나네.

 

<아일랜드>는, 사실 좋은 드라마라고 말하기 어렵다. 일부의 마니아가 있다고 해도, 10%를 넘은 적이 없는 시청률은 이 드라마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대개 1,2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실패했다고나 할까. 어느 분이 지적하신 대로 의미의 과잉도 문제다. 의욕이 넘쳤는지, 절제가 되지 않았는지, 작가가 인물들의 입을 통해 쏟아내는 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력 면에서도 썩 흡족하지는 않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시연이라는 캐릭터이다. 에로 배우 시연(김민정)은 유명 감독의 영화에 캐스팅 되기 위해 감독과 잠을 자야 하는 건지 안 그래도 괜찮은 건지를 고민한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국(현빈)의 충고에,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서, 내 꿈은 청소가 아니라 배우거든? 오늘 하루 드럽게 놀아서 앞이 보인다면 나 그렇게 살라구요. 라고 내뱉는다. 영화 촬영 중에는 감독과 잔다. 예쁘다 예쁘다 하는 칭찬에 넘어갔다면서, 자기가 스스로를 속인거라고 말한다. 온갖 나쁜 짓을 다 해도 끝까지 순결한 몸을 지키고 있다가 좋은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사는 다른 드라마의 여자들보다 오만 배쯤 현실적이고, 십만 배쯤 더 예뻐 보인다. 시연의 사연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김민정의 연기가 훌륭해서 일 수도 있겠다. 남자 캐릭터도 비슷하다. 시연의 말을 모두 듣고도 시연을 바라보는 국의 눈과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자의 과거는 자신의 과거일 뿐, 남자가 용서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태 열심히 드라마를 본 것은 시연과 국 때문이었다. 중아(이나영)는 현실감이 없고, 재복(김민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시연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고, 어느새 내 입에서는 시연의 대사 지랄이 맴돈다.

 

오늘 드디어 마지막회. 에로 천사 시연은 행복할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hika 2004-10-2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잘 안봐요. 하지만.. 다들 김민정의 시연연기는 그녀의 연기력을 칭찬하게 한다고 하네요. 마지막회라니 보고싶지만 일이 있어 못보니 아쉽군요. ^^;;

아영엄마 2004-10-2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얼마 전에 한 회 봤어요. 스토커가 위협하는 부분.. 정말 주인공들보다 그녀의 역할이 훨씬 현실적이네요..

플레져 2004-10-2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아의 헤어스타일로 바꾼 후배 (치장에는 담 쌓은 울트라 강적 스타일) 를 보고
그래도 아일랜드가 하나는 해냈구나 싶었어요. ㅎㅎ
1회 부터 보았다는 정만으로도 열심히 보고 있어요.
쫌 아쉬워요...

깍두기 2004-10-2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이나영과 민준이었는데, 점점 시연으로 눈이 쏠리더라구요. 그나마 좀 현실적인 캐릭터라 그런가. 이나영은 워낙 역할이랑 대사가 자연스러운 연기가 어려운 역이 아닌가 싶고, 민준이는 처음에는 건달스러움이 좋았는데 점점 대사가 꼬이는 것이.....저는 이 드라마가 관계에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얘기를 해 주어서 좋아요. 결말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을텐데...

내가없는 이 안 2004-10-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블루님 인용해주신 부분이랑 한 군데 더 본 것밖엔 없는데 가장 인상적인 게, 김민정의 검은 눈물이었어요. 그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빠르게 솟아나면서 검게 뚝뚝 떨어지는데 대사는 어찌 그리 툭툭 끊어서 짧은 문장을 통째로 마음에 메다꽂던지!

urblue 2004-10-2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끝났네요.
어쩌면 작가는 가족 관계의 해체를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연이 지랄스럽게 벌어서 먹여살리고, 국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하는 '가족'이 아니라, 각각 제 자리에 서서, 친근한 이웃처럼 웃으며 바라볼 수 있는 관계.
어쨌든 해피 엔딩.

hanicare 2004-10-22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아 숨쉬는 인물을 만들어야 하나봐요.관념이 아니라.
 
 전출처 : balmas > 형이상학의 해체에서 타자들에 대한 환대로: 데리다의 철학적 삶

데리다가 타계한 뒤 지난 열흘 동안 4개의 추모글을 쓰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국내에 데리다 전문가가 드물다보니 저같은 문외한이 이렇게 고생을 하는군요. 오늘 마지막 글을 써보내면서 일단 한숨은 돌렸는데, 급하게 여러 편의 글을 쓰다보니 글이 제대로 된 건지도 모르겠고 중첩되는 내용들도 좀 있고 해서, 후련한 게 아니라 꺼림칙합니다. 한 가지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짧은 시간 내에 같은 주제로 여러편의 글을 쓰지 말자는 것이라고 할까 ... -_-;;;

그 글들 중에서 비교적 평이하고 분량도 많은 것을 하나 더 올립니다. 지난 번에 가을산님이 데리다 번역본들에 관한 질문을 하셨는데, 마지막 절이 좀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조만간 보충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형이상학의 해체에서 타자들에 대한 환대로: 데리다의 철학적 삶


지난 10월 8일 파리에서 췌장암으로 타계한 데리다는 외국에서의 명성에 비한다면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철학자다. 실제로 데리다는 그가 타계한 직후 발표된 성명서에서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그는 프랑스가 배출한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을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인물이지만, 국내에는 그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始祖)이자 매우 난해한 책들을 쓴 철학자라는 것, 그리고 ‘해체주의’라는 매우 특이한 철학 사조를 창안했으며, 차연(差延, différance)이라는 불가해한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일 국내의 신문들이 쏟아내는 추모 기사들, 때로는 상생(相生)의 철학자로, 때로는 ‘반골 철학자’로, 또 때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로’ 그를 치켜세우는 기사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가 누구이길래 지성과 사상에 인색한 국내의 신문들이 이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과연 그들에게 그를 추모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현전의 형이상학의 해체

 

데리다는 난해한 사상가라는 평판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나 [기록과 차이]([글쓰기와 차이]라는 얼마간 그릇된 제목으로 번역되곤 하는) 같은 그의 몇몇 작품들은 상당히 난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저작들이 6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혀왔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과 글쓰기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음을 입증해준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처럼 매혹시켰을까?

  이는 무엇보다 그의 철학의 전복적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초기) 데리다에게 서양의 철학사는 현전(現前)의 형이상학의 역사다. 생생한 현재 속에서 사태의 의미가 충만하게 의식에 드러날 때, 또는 적어도 그 가능성이 원칙적으로 전제될 때, 비로소 진리로서의 로고스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 또는 로고스를 다른 사람들과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 곧 음성이야말로 참다운 매체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현전의 형이상학의 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반박하는 대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그것은 자신의 타자, 자신의 근원적 한계를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데, 이 타자는 바로 에크리튀르(écriture), 곧 기록이다. 실제로 서양 형이상학은 플라톤에서 루소, 소쉬르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생생한 현재, 주체들끼리 주고받는 음성적 대화를 특권화하면서 기록을 하찮은 것으로 매도해왔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기록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적 토대다.    

  왜 기록이 그처럼 중요할까? 왜 이 주장이 그처럼 전복적이고 혁신적이었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원이나 로고스가 기원이나 로고스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그것들은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원이나 로고스가 일회적(一回的)인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기록이다. 기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보존할 수도 반복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기원도 로고스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록에 의해 비로소 기원이나 로고스가 가능하다면, 현전의 형이상학의 주장과는 달리 기원보다 앞서는 것, 로고스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이 된다. 기원, 로고스의 이면에는 카오스의 검은 구멍만이 존재하며, 이 카오스와 로고스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기록인 셈이다.  


유령론: 타자들에 대한 환대로서의 정의

 

그러나 이렇게 해서 기원과 로고스가 현전의 형이상학 내에서, 서양의 문명 내에서 그것들이 지니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결국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데리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해체 작업에 의해 현전의 형이상학, 더 나아가 기존의 서양 문명의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삶의 질서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하지만 데리다의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현전의 형이상학처럼 기원과 로고스를 근원적인 진리로 가정하게 되면, 더 이상 역사도,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이 기원, 로고스에 담겨 있는 이상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며, 서양 문명의 원리, 로고스의 명령에 충실한 것을 정의로 간주하는 이상, 서양의 문명과 다른 타자들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9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유령들] 같은 저작에서 유령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윤리ㆍ정치사상을 전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닌 유령들이라는 형상은 기원의 부재라는 해체의 원리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이들에게 불의를 바로 잡고 정의를 실행할 것을 명령하는 타자들의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이주노동자들, 인종차별과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들, 사형수들 및 그 외 많은 “약자들”에서 이러한 유령들의 구체적인 현실태를 발견하며, 이러한 타자들의 부름, 정의에 대한 호소에 응답하고 환대하는 일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ㆍ정치적 책임이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9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한 것은 그의 철학사상의 전개과정과 매우 합치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학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원리가 해체된 이후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다른 타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어떻게 타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그렇다면 데리다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로 간주하거나 생뚱맞게 상생의 철학자로 치켜세우는 일은 그의 철학이나 실천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가 이처럼 엉뚱한 오해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저작들 중 제대로 번역된 책들이 매우 드물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80여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들 중 10 종 이상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심지어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에 의해 번역되어, 데리다 특유의 현란한 언어유희나 섬세한 논의를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삶이란 저작들의 삶과 다르지 않은데, 우리에게 데리다는 처음부터 생명을 박탈당한 유령, 환영이었던 셈이다.

  빼어났지만 그만큼 치열했던 삶을 마감함으로써 데리다는 실제로 유령, 망령이 되어 그의 저작들, 그의 기록들 안에서만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그에게서 허망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을 쫒는 대신, 데리다가 그랬듯이, 우리도 그의 기록들 안에 깃들어 있는 타자의 부름에 귀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데리다의 작품들

 

 데리다는 80여권의 저서 및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수백편의 논문들 및 인터뷰 등을 남겼을 만큼 다작(多作)의 철학자다. 국내에 번역된 책도『입장들』(솔, 1991)『마르크스의 유령들』(한빛, 1996),『다른 곶』(동문선, 1995),『에코그라피』(민음사, 2002)『시네 퐁주』(민음사, 1998),『불량배들』(휴머니스트, 2003),『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동문선, 2004), 『법의 힘』(문학과지성사, 2004),『테러 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4) 등 10여종이 훨씬 넘고, 그에 관한 해설서도 여러 권 나와 있다.

  하지만 데리다의 책들은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비전공자들이 마구잡이로 번역하곤 해서 대부분의 데리다 저서들이 심각한 오역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 번역도 괜찮고 읽을 만한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상당히 난해한 데다가 번역에도 약간 문제가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긴 하지만, 데리다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들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입장들』은 초기 데리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며, 『에코그라피』는 90년대 이후 데리다의 작업을 개관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그리고 『다른 곶』『법의 힘』『테러 시대의 철학』은 유럽 공동체, 법과 정의, 테러와 민주주의, 주권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배경으로 데리다의 정치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들이다. 

  데리다 해설서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권하고 싶다.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시공사, 1999)는 데리다 사상 전반을 균형있게 소개하고 있는 개론서이며, 에른스트 벨러의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는 니체, 하이데거 철학과 데리다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데리다 철학의 특징을 간명하게 잘 제시해주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의 작업 중에서는 김상환 교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 1996) 및 이성원 엮음, 『데리다 읽기』(문학과 지성사, 1997)을 추천할 만하다. 좀더 쉬운 입문서를 원하는 독자들은 제프 콜린스의 『데리다』(김영사, 2003)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에레혼 > 사월과 오월의 노래들

백순진 작사,작곡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아 ~ ~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미친듯이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미친듯이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 되면 
화 안 된다 더 가지마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이대로 이별일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 되면 
화 안 된다 더 가지마
이대로 이별일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 되면 
화 안 된다 더 가지마
이대로 이별일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등 불

백순진 작사/작곡

1.비 오는 저녁 홀로 일어나 창 밖을 보니
  구름 사이로 푸른빛을 보이는 
  내 하나밖에 없는 등불을
  외로운 나의 벗을 삼으니 
  축복 받게 하소서
  희망의 빛을 항상 볼 수 있도록
  내게 행운을 내리소서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두운 여행길 너와 나누리
  하나의 꽃을 만나기 위해 긴긴 밤들을
  보람되도록 우리 두 사람은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두운 여행길 너와 나누리 
  하나의 꽃을 만나기 위해 긴긴 밤들을
  보람되도록 우리 두 사람은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사랑의 의지

 백순진 작사/작곡

  그대 나 버린다 해도 나 외롭지 않아요
  그대 가버린다 해도 나 무섭지 않아요
  나는 알고 있답니다
  당신의 온 마음 차지하기에
  나의 마음 너무 적다는 것
  그대 나 싫다고 해도 나 화내지 않아요
  그대 나 원망해도 나 서럽지 않아요

 *나는 알고 있답니다
  당신의 온 마음 차지하기에
  나의 마음 너무 적다는 것
  그대 나 버린다 해도 나 외롭지 않아요
  그대 가버린다 해도 나 무섭지 않아요


 

 

로드무비님의 방에 갔더니, 한때 사월과 오월이란 듀엣을 무척 좋아했는데,  최근에 라이브 주점에 갔다가 그들의 노래가 생각났다는 글이 있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나도 그 노랫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 노래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로드무비님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나는 알라딘 서재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인터넷에서 오직 한글 문서를 작성해 올리고 메일과 메신저 정도밖에는 사용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서재 활동은 놀라운 기술적(?) 도약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의 이미지 크기를 줄여 저장하고 편집해 올리는 정도의 기초적인 포토샵 기술과 음악을 다운받아 저장하고 올리는 것 등 그야말로 양수겸장의 눈부신 발전을 꾀하게 된 것이다.

사진과 그림과 음악 등을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음으로써 서재 활동은 한층 더 즐겁고 풍요로워졌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의 묻혀져 있던 정서가 새롭게 발굴되는 소득이 있었다. 나의 서재에 내 마음에 드는 그림 액자를 걸고, 그 날 그 날 듣고 싶은 음악을 BGM으로 깔고 책을 읽으며 차 잔 마시는 여유를 누리는 행복......

이제 신청곡(?)까지 받아 들려줌으로써 벗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게 됐으니, 두 달 전만 해도 나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작고 따뜻한 행복을 누리게 됐다. 이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로드무비님, 감사!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0-21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21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21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dohyosae > 인디안의 달력

인디안들이 사용하던 달력은 부족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어떤 부족은 일년을 단순히 4-5계절로 나누기도 하고  달이 떠오르는 시기를 월의 구분으로 삼는 부족도 있다. 인디안들이 사용하는 달의 명칭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수식의 1월. 2월..하는 명칭법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새.식물.기후와 같은 현상을 붙인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디안 부족의 달 이름을 자세하게 분석해보면 그 부족이 생활하고 있던 지역의 풍토와 그 부족이 무엇- 사냥 혹은 농사 -에 의지하여 생활했는지도 알 수가 있다.

 달

 부족

 달 이름

 달

 부족

 달 이름

 1월

 수우

 혹한의 달

 2월

 수우

 너구리 달

 쥬니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부러지는달

 오마하

 기러기 돌아오는 달

 오마하

눈이 천막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프에블로

 삼나무 꽃바람 부는 달

 프에블로

 얼음 어는 달

 키오와

 새순이 돋는 달

 체로키

 바람 부는 달

 위네바고

 물고기 뛰노는 달

 3월

 수우

 암소가 송아지 낳는 달

 4월

 수우

 신록의 달

 오마하

 개구리 달

 샤이안

 거위가 알을 낳는 달

 프에블로

 잎 나는 달

 위네바고

 옥수수 심는 달

 체로키

 딸기의 달

 키오와

 잎의 달

 퐁카

 연못에 물이 고이는 달

 만단

 얼음이 풀리는 달

 5월

 수우

 말이 털갈이 하는 달

 6월

 수우

 살찌는 달

 크리크

 뽕나무의 달

 오마하

 황소가 발정하는 달

 오사쥐

 들꽃이 시드는 달

 프에블로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샤이안

 말이 살찌는 달

 퐁카

 더위가 시작되는 달

 위네바고

 옥수수 김 매주는 달

 위네바고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

 7월

 수우

 산딸기 익는 달

 8월

 수우

 기러기 깃털 가는 달

 오마하

 들소가 울부짖는 달

 체로키

 건조한 달

 키오와

 사슴이 뿔을 가는 달

 퐁카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

 크리크

 곡식이 익어가는 달

 크리크

 곡식이 영그는 달

 위네바고

 옥수수 튀기는 달

 오사쥐

 노란 꽃잎의 달

 9월

 수우

 풀이 마르는 달

10월

 수우

 잎이 떨어지는 달

 오마하

 사슴이 땅을 파는 달

 쥬니

 큰 바람의 달

 프에블로

 옥수수 거둬들이는 달

 퐁카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체로키

 검은 나비의 달

 샤이안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

 크리크

 작은 밤나무의 달

 키오와

 혹한의 달

11월

 키오와

 기러기 날아가는 달

12월

 수우

나뭇가지가 똑똑 부러지는 달

 크리크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샤이안

 늑대가 달리는 달

 만단

 강물이 어는 달

 크리크

 한 겨울의 달

 프에블로

 만물을 거둬들이는 달

 아리카라

 큰 뱀 코의 달

 위네바고

 작은 곰의 달

 위네바고

 큰 곰의 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0-20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stella.K > JOANNA AGIS & EWAN FRASE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