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이 책이 나온 게 작년(2004년)이다. 그는 이제 '책이 나오면 바로 번역에 들어가는' 급의 작가군에 속하게 된 모양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알라딘에만 총 11권(등재는 12권인데, 1991년에 번역된 <우주비행사, 그들의 이야기>는 2002년에 <우주로부터의 귀환>으로 다시 번역된 것 같다)이 올라있다.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91년부터.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2001년에 번역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일 것이다. 나 역시 그를 처음 접한 건 이 책에서였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의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먼저 '뻔뻔하고 당당하다' 였다. 아, 이 사람은 마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기에는 뭔가 있는 게 아닐까.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뻔뻔한 얘기를 잘도 하고 있지만, 그대로 듣다 보면 또 그런대로 제법 그럴듯하다. 이를테면 마초이기는 한데, 만만치 않은, 밉지만은 않은 마초랄까. 아무튼 뻔뻔함도 이만하면 일가를 이뤘다.

 

<사색기행>은 이런 저자의 '여행기'다. 하지만 스스로 "판에 박힌" 기행문은 아니라고 한다. "여행에 얽힌 글이라고 해도 여행기나 기행문 같은 글은 아니다. […] 오히려 여행을 계기로 펼쳤던 다양한 생각을 기록한 글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 그래서 '사색기행'인 것이다(10쪽)."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았다가 아니다. 거기에서 무엇을 생각했다가 더 중요한 기행문이라는 말이겠다. 물론 그렇다고 사상서 풍의 묵직하고 현학적인 기행문은 아니다. 그의 여행이 대부분 언론 쪽의 의뢰와 관계된 취재 여행이었고 보면, 이 책은 실은 일종의 취재기와 취재 후일담, 르포르타쥬 등을 묶은 것이다. 그걸 6개의 부로 나누고, 주제에 따라 몇 편씩 모두 14편의 에세이를 실었다. 각각의 부는 다음과 같다 "1부 무인도의 사색", "2부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 여행", "3부 기독교 예술 여행", "4부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 "5부 팔레스타인 보고", "6부 뉴욕연구". 그래서 분량도 586쪽으로 꽤 두툼하다.

 

하지만 책은 꽤 빨리 읽힌다. 호오, 그랬구나 감탄도 하고, 이건 너무 뻔뻔한 거 아냐 하며 키득거리고 읽다 보면 586쪽도 어느새 끝이다. 과연 저널리스트의 문체랄까. 상당한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14편의 글은 각각, 대상에 대해 상세한 정보나 논리를 담고 있는 탄탄한 녀석들도 좀 있고, 그저 글을 쓰게 된 당시의 정황이나 심경을 쓴 엉성한 것들도 꽤 있다. 열 아홉살 때의 풋풋하고 귀여운 다카시군부터, 비교적 최근에 쓴 뻔뻔하고 기운 넘치는 다치바나 아저씨까지. 68혁명의 기운이 남아있는 유럽과 와인 및 치즈로 넘치는 유럽, AIDS 전의 뉴욕과 AIDS 이후의 뉴욕, 세계의 경계에 있는 몽골과 역사의 경계에 놓인 남미,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의 숨은 뇌관으로서의 팔레스타인. 이 책은 세계 곳곳에 대한 흥미로운 취재기인 동시에 다치바나 다카시는 어떻게 다치바나 다카시가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보고서인 것이다.

 

<사색기행>은 부제가 "나는 이런 여행을 해왔다"다. 저자가 직접 붙인 부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부제 덕분에 나는 <사색기행>을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짝패로 읽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는 제목 그대로 저자의 독서 편력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알라딘의 책 소개를 보면 정확히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문예춘추, 1995)와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 재미없는 책 그리고 나의 대량독서술 · 경이의 속독술>(문예춘추, 2001) 두 권의 저술을 저자의 동의 아래 번역한 것"이라 한다). '책을 읽다'와 '여행을 한다'는 두 문장의 공통점이랄까. 책이라는 세계를 여행하기와 세계라는 책을 읽기. 그것은 타자를 만나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치바나 다카시는 타자로서의 책, 타자로서의 세계라는 자기의 바깥으로 자신을 이동시킴으로써 자신의 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자신을 바꾸어 온 것. 이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별 네 개. 좀 후한가? 확실히 사족이 많고 허술한 구석도 많아 좀 허풍 같은 책이지만, 책을 읽는 이틀 남짓 꽤 유쾌했으니 그 정도의 가치는 매겨주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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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4-2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urblue 2005-04-2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마냐 2005-04-2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아깝네. 책이나 노려볼껄....이렇게 블루님을 즐겁게 한 책인줄 알았다면..추천.

urblue 2005-04-2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도 감사. ^^

비연 2005-04-2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읽고 싶어지는군요^^

로드무비 2005-04-29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제일 먼저 쓰려 했더니!
블루님의 리뷰 읽고나니 빨리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perky 2005-04-2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허풍같은 책.^^ 사실 저는 다치나바 다카시라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어려울 것 같아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

Phantomlady 2005-05-02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을까 말까 묵하 고민중인데.. 아, 더 읽고싶어졌어요!

urblue 2005-05-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얼른들 읽어보세요. 이틀도 안 걸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