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묵이라는 생선을 아는가.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난을 떠나 음식이 궁할 때 한 어부가 ‘묵’이라는 생선을 바쳤다. 생선을 너무나 맛있게 먹은 선조는 그 자리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와서, 예전에 먹은 생선 맛이 그리워 다시 찾았으나, 생선은 이미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 선조는 ‘도로 묵이라고 해라.’라고 했단다. 도로 묵이 변해서 도루묵이 되었다고 한다.
還目魚 환목어(도로묵)
이식 李植 (1584(선조17)~ 1647(인조25))
有魚名曰目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海族題品卑 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라
膏유不自潤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形質本非奇 그 모양새도 볼 만한 게 없었다네.
終然風味淡 그래도 씹어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
亦足佐冬시 겨울철 술안주론 그런대로 괜찮았지.
國君昔播越 전에 임금님이 난리 피해 오시어서
艱荒此海수 이 해변에서 고초를 겪으실 때
目也適登盤 목어가 마침 수라 상에 올라와서
頓頓療晩飢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드렸지.
勅賜銀魚號 그러자 은어라 이름을 하사하고
永充壤奠儀 길이 특산물로 바치게 하셨다네.
金輿旣旋反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玉饌競珍脂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嗟汝厠其間 불쌍한 이 고기도 그 사이에 끼었는데
거敢當一匙 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네.
削號還爲目 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斯須忽如遺 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賢愚不在己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 없고
貴賤各乘時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名稱是外飾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委棄非汝疵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洋洋碧海底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自適乃其宜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고향에서 도루메기라고도 부르는 이 생선은 어릴 때만 해도 발에 채일 만큼 흔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시장 주변을 뛰노는 아이들 발에 쌓아놓은 생선이 걸리곤 했을 정도다. 고등어나 가자미보다 이 놈을 더 많이 먹고 자랐다. 사실 도루묵은 맛있는 생선이 아니다. 우리들 하는 말로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것이, 담백하다고 하기도 뭐하고, 그저 밍숭밍숭하다. 다만, 가슴쪽에 가득 든 알만은 일품이어서, 밥상에 도루묵이 오르면 동생이나 나나 알만 빼 먹곤 했다. 또 시장에 나가면, 호떡 장수가 있듯이, 도루묵 알만 쪄서 파는 아주머니들이 몇 명씩 있었다. 하나 50원에서 100원 정도였는데, 아이들에게 그만큼 훌륭한 간식거리도 없었다. 입에 넣으면 제법 굵은 알들이 투두둑 터지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게 그만이다. 한참 뛰어놀다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생각난 듯 한 두개씩 사 들고 오도독 씹으며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장에서 알들 팔던 아주머니들이 사라졌고, 밥상에도 더 이상 도루묵이 오르지 않았다. 도루묵 알 먹고 싶다고 아버지를 조르면 (우리 집에서 생선을 사오는 건 늘 아버지 몫이었다. 새벽에 항구에 나가서 가장 싱싱한 걸로 골라오시곤 하셨다.), 돌아오는 건 일본 사람들이 도루묵을 좋아해서 잡히는 대로 수출한단다, 라는 대답 뿐이었다. 그렇게, 고향에서 도루묵이라는 생선은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서울에 올라온 후에도 도루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강남 어딘가의 식당에서 찌개 한 그릇에 몇 만원 한다더라 하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 놈을 다시 만난 건 몇 년 전이다. 집에 내려갔더니 엄마가 도루묵 찌개를 내 놓으셨다. 이게 웬 거야, 라며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했는데, 그 즈음 다시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단다. 일본 사람들이 더 이상 도루묵을 좋아하지 않게 된 건지, 더 많이 잡히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선조와는 달리 동생이나 나는 도루묵을 엄청 맛있게 먹었다.
지난 주 동생이 집에 다녀오면서 도루묵을 갖고 왔다. 알이 실하게 담긴 놈들을 엄마가 깨끗하게 손질해서 비닐 팩에 예쁘게 담아 얼려 보냈다. 어제 그 놈들을 해동해서 찌개를 끓였다. 도루묵은 별로 맛이 없기 때문에 구이보다는 조림이나 찌개가 어울린다. 간장에 고춧가루와 마늘, 파만 넣고 찌개를 끓이면, 심지어 내가 만들어도 맛이 썩 훌륭하다. 어제도 오늘도 그 찌개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엄마가 이번엔 두 두름 사 놨다고 가져가라 하신다. 한 두름에 10,000원 정도 밖에 안 한단다. 주말에 집에 내려가서, 엄마가 끓여주는, 만 배는 더 맛있는 도루묵 찌개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흐뭇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