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러시아 오페라(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스페이드의 여왕)를 감상한 후, 원래 오페라가 재미있는 것인지 전의 두 작품이 특별히 그랬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여 찾은 것이 국립오페라단의 'My First Opera' 시리즈인 <잔니 스키키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두 작품 모두 단막에 1시간 내외의 짧은 공연 시간이 특징인 소극이라 한꺼번에 공연을 하는데다, 오페라치고는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오페라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기 위한 이런 노력 때문인지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하더니, 과연 공연장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푸치니 3부작(일 트리티코)의 마지막 편이라고 하는 <잔니 스키키>는 한 거부가 남긴 유산을 놓고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이다.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넘긴다는 유서를 남겨 놓은 채 죽어버린 부호 부오조의 친척들은 한순간 절망에 빠져든다. 유산을 상속받아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와 결혼할 꿈에 빠져있던 리누치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잔니 스키키를 불러오고, 잔니 스키키는 자신이 죽은 부오조를 흉내내 새로운 유산을 작성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다만 이런 공모가 발각될 시에는 손목을 잘린 채 추방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친척들이 모두 동의하자 공증인을 불러 새로운 유서를 작성하는데... 소소한 땅은 친척들에게 공평히 나눠주고 가장 중요한 재산은 친구인 잔니 스키키에게 준다는 내용이다. 친척들은 경악하지만 손목이 잘릴 것을 경고하는 잔니 스키키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당하기만 한다. 유서 공증이 끝나자 잔니 스키키는 친척들을 몽땅 내쫓아 버리고, 리누치오와 라우레타는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다.
이 작품은 우리말로 번안하여 공연했다. 간혹 알아듣지 못한 경우가 있지만 가사를 알아듣기에도 곡을 듣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잔니 스키키 역은 경험 많은 바리톤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그냥 대사처럼 짧게 툭툭 끊어지는 노래 부분이나, 부오조의 흉내를 내는 코믹한 연기, (부오조의 목소리로) 유서를 구술하면서 (원래 목소리로) 친척들에게 잘린 손목을 경고하는 부분이나 쉽게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닌 듯하다. 더블 캐스팅 중 메인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내 보기엔 훌륭했다. 다소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친척들도, 철딱서니없이 결혼을 조르는 라우레타도 모두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만 비교적 중심 인물 가운데 하나인 리누치오의 성량이 심히 딸려서 소리가 잘 안 들린게 흠. 우리말이라 내용이 쏙쏙 이해되고 기본적으로 코미디이다보니 절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아니, 엄청 재미있다. 코미디를 좋아하는 신랑이 좋아할 만한 작품.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이 작품의 곡이었다는 걸 알았다는게 또다른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마스카니가 1888년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비극이다. 내용으로 보자면 뭐, 간단히 말해 <사랑과 전쟁>에 나올법한 불륜극이다. 남자(뚜리두)가 군대 간 사이 사랑을 약속했던 여자(로라)는 다른 남자(알피오)와 결혼해버리고, 군대에서 돌아온 남자는 다른 여자(산뚜차)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옛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다. 자신을 내팽개치는 뚜리두가 미워 산뚜차는 알피오에게 둘의 불륜 관계를 알리고, 알피오와 뚜리두의 결투가 벌어져 결국 뚜리두가 죽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심히 뻔한 내용이지만 막상 공연으로 볼 때는 좀 다르다. 시골 마을의 부활절 아침, 동네 광장의 소란스럽고 흥겨운 분위기 사이사이 산뚜차의 신세 한탄과 뚜리두와의 싸움, 뚜리두와 알피오의 긴장이 벌어지는데, 그 흐름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즐거운 곡과 비탄에 찬 가락의 연결이 매끄러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어 공연이라 거의 천정에 붙은 자막을 흘끗거려야 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조차 그다지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극을 끌어가는 인물은 산뚜차이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과 노래를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추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간다. 산뚜차 역을 맡은 배우의 기량이나 목소리도 좋아서 매우 편안하게 들렸다. 그런데 마지막에 인사할 때, 어째서 산뚜차가 아니라 뚜리두가 마지막인지. 여자라고 밀리는 것인지 내가 기분 나쁠 지경.
연주자들이 인사할 때 세 명이 일어서서 의아했는데, 이게 소극장 공연이다보니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엘렉톤이라는 전자 악기를 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듣는 동안 달랑 3대 뿐인 전자 악기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뭐 워낙 음악에 둔하기도 하지만, 그냥 전자음이 아니라 좀 더 풍성한, 여러 악기의 소리가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소극장 오페라에서는 이 악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오, 놀라워라.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생각한건데, 나, 의외로 오페라를 좋아하나보다. 두 공연 다 너무 재미있는거다. 국립 오페라단의 다음 공연은 <맥베드>와 <라 보엠>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봐야겠다. 어제 오늘은 공연 DVD랑 CD를 뒤지고 있었다. 처음 가 본 유투브에서 공연 실황도 몇 개 찾아보고. 아우, 웬일이야, 이런 데 관심을 가지게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