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에는 전경차가 빼곡했다.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농성 중인 시위대의 숫자가 얼마였길래 서울 시내의 온갖 경찰서에서 그렇게나 많은 전경들을 내보냈는지. 시위대 대부분이 계산원 '아줌마'들인 걸로 아는데, 헬멧과 방패로 무장한 전경들은 또 뭐냐구. 그들이 홈에버 입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막상 농성 중인 사람들을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대신 들려온 건 찬송가 소리. 월드컵경기장에서는 십만이 모인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다. (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707/09/nocut/v17368574.html)

이랜드는 최근에 교회에 십일조로 백삼십억인가를 냈다고 한다. 기독교기업임을 자처하는 이랜드는 사원을 뽑을 때도 개신교 신자를 우대하고(나 마나 대부분이 신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한창 입사시험을 보러 다닐 때 이랜드에 입사 지원서를 내고 1차 시험을 봤던 친구는 기독교 관련 서적을 들고 돌아왔다. 그 책이 2차 시험의 주제였다.), 회식 대신 기도회를 하고, 직원 휴게실 대신 기도실을 갖춰 놓는, 그런 기업이다. 그러면서 뉴코아, 킴스클럽, 홈에버 등 차례로 인수한 유통사업부문에는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으로 채워넣었고, 이제는 그나마 비정규직을 전부 해고하고 용역업체로 돌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주변에서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을 보면 뭐랄까, 교회라는 건 일종의 피트니스 클럽 같다. 아, 이것도 딱 맞는 비유는 아니다.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면서 운동 열심히 하면 몸이라도 건강해질텐데,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건, 자기자신을 위해 뭔가 하는 건 맞지만, '정신적 건강'과는 또 별개인 듯 하니까.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한 이명박 같은 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보고선 종교, 특히 기독교의 의미가 어떤 건지 절대 모르겠다. 

작금의 이랜드는 비정규직을 착취하여 얻은 이윤을 제멋대로 교회로 빼돌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보아온 기독교인의 전형에 가깝다고 하면 모든 기독교인을 모욕하는 것이 되려나. 

어제 열린 부흥회에 모인 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로 아래층에서 찬 바닥에 누워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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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07-07-09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저는 어제밤에 강건너로 상암경기장에서 잠시하는 불꽃놀이만 나가서 보고 좋아라 했는데..
낮에는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치만 Urblue님 반가와요~~ 너무 오랫만이시라..)

urblue 2007-07-09 17:55   좋아요 0 | URL
예, 불꽃놀이도 하더군요. 그래서 더 심사가 뒤틀렸나 봅니다. -_-
새집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뭔가 쓰기가 어렵더라구요. 이제서야 겨우 새 글 올려봅니다. ^^

2007-07-09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0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a95 2007-07-0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독교에 부정적이라서인지 블루님 들에 공감이 가네요. 물론 제 주변에 좋은 기독교인들도 많습니다만...

urblue 2007-07-10 09:38   좋아요 0 | URL
아마 전 좋은 기독교인을 주변에 두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나 봅니다. ^^

비로그인 2007-07-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회만 다닌다고 기독교인은 아닐겁니다.
(저같은 인간은 포함하여)
참된 기독교인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행하는 분들이 많죠.
아마 이랜드사태는 비기독교인보다 기독교인들이 더 가슴 아파하고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구요.

urblue 2007-07-10 09:40   좋아요 0 | URL
예, 교회 다닌다고 다 기독교인은 아닐테고 참된 기독교인들도 많을 테지요.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종교의 의미가 뭔지,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뭔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春) 2007-07-1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합니다. 이랜드.. 헐~ 속 터져요.

urblue 2007-07-10 09:42   좋아요 0 | URL
어떻게 해결이 될지 두고봐야겠지요. 집 근처라 상암 홈에버를 가끔 이용하는데, 불매 운동에 동참해야할 것도 같습니다.

chaire 2007-07-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성수 사장이 처음 이랜드를 창업할 때, 저도 열심히 교회 다닐 무렵이었는데, 그때 교회들에선 박성수처럼 살아야 한다, 신앙과 삶, 이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박성수 씨가 쓴 신앙고백이며 에세이며 하는 따위들이 마구 읽혔더랬죠. 좀 갸우뚱하면서도 그때는 그분이 '진정한' 기독 공동체의 대안을 기업에서 찾으려나 보다, 당연히 그 기업은 기독 공동체의 유토피아가 될 것이니, 모든 직원은 곧 하나님의 형제자매들인즉 차별 없이 공평하고 행복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고 생각했고 이랜드에선 사장도 사원과 똑같이 일한다는 사실(형광등을 간다나 뭐라나..)이 벤치마킹의 요소가 되었던 걸로도 기억하는데 역시나 이랜드와 박성수의 말로는 이렇습니다. 하여 씁쓸하면서도 그러면 그렇지 싶습니다. 워낙에 미국식 교회란 게 그런 속성을 갖기는 했다지만, 점점 더 자본주의화해가는 걸 보자니 참..

urblue 2007-07-10 09:47   좋아요 0 | URL
아, 이랜드에 입사 지원했던 친구가 들고 왔던 책이 말씀하신 종류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 기독교공동체라는 것이 기업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악질 자본, 악덕 기업이라는 호칭이 일반 기업에도 좋은 소리가 될 수 없는 이상 기독교공동체를 표방하는 이랜드 같은 그룹에도 마찬가지겠지요.

2007-07-1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0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7-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이런 일도 있군요.
"이랜드" 하면 사회복지사업을 많이 하는 기업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입안이 써 옵니다.

urblue 2007-07-10 15:06   좋아요 0 | URL
저는 어째 이랜드하면 재고를 신제품으로 속여 파는 등 나쁜 것만 기억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