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왜 사회주의인가?
앨런 마스 & 하워드 진 지음, 유정.이원웅 옮김 / 책갈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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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

: 대선패배의 힐링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틀 전,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진 지지자들은 멘붕 상태에 빠져있다. 이번 대선의 프레임은 보수 대 진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보후보는 왜 패했을까? 그리고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진보후보를 지지했을까? 진보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다. 이 의미를 따르면, 문재인 후보와 그 지지자들은 사회 발전을 원하는 마음으로 서로 연결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책갈피, 2012)투쟁 없이 진보 없다.”고 단언한다. 누군가가 선출되는 것만으로는 어림없다는 말이다. 책의 저자인 앨런 마스(Alan Maass)는 미국의 사회주의 조직 중 하나인 국제사회주의자단체(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의 활동가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다. 한국정치가 점차 미국과 같이 양당정치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현실은 우리에게 꽤 참고가 될 듯하다. 사실 미국과 같은 양당정치는 서구민주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경우인데, 공화당과 민주당 말고는 전국적 규모의 정당이 부재하고, 또한 같은 말이지만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때문에 미국의 급진주의,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데, 소극적이게는 보수적인 공화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냐의 문제이고, 적극적이게는 민주당을 통해서 개혁을 추구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한국에서도 전자의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건재했을 때는 선거 시 사표 논란으로, 후자의 문제는 진보 인사들의 민주당 입당이나 야권연대 논란으로 비슷하게 재현된 바 있다. 이런 선택, 문제들과 관련해 앨런 마스의 입장은 단호하다.

 

공화당과 그들의 추악한 말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우파를 저지하고자 하는 심정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인 듯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 잘못된 방법이다. 사람들은 공화당이 발의한, 희생자를 비난하는 잔인한 법안들이 싫어서 클린턴에게 투표했지만 민주당 대통령은 공화당과 똑같은 조처를 취했다. 사람들은 조지 W 부시가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전쟁에 신물 나서 버락 오바마에게 투표했지만, 똑같은 전쟁 정책을 더 조리 있게 설명하는 말만 듣게 됐을 뿐이다.” (128p)

 

,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째서일까?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바로 악을 잉태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진정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이다.

 

1자본주의는 왜 고장났는가?”2그리 자유롭지 않은 땅”, 3전쟁의 참상에서 저자는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인 제프 패럴, 애디 포크, 바버라 하비 등과 그리고 이라크의 파라 파드힐 등이 겪은 잔인한 삶을 전하며 어쩔 수 없는 빈곤과 억압,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빈곤과 억압, 전쟁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4사회주의란 무엇인가?”는 아래의 문장들로 시작하며, 대안을 설득한다.

 

사회주의의 기본 사상은 간단하다. 사회의 자원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이룩한 엄청난 성과는 소수의 사람들을 부자와 권력자로 만드는 데 쓰일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빈곤과 억압, 폭력에서 벗어나 풍요롭고 보람찬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하는 데 쓰여야 한다.” (95p)

 

그렇다면 체제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과 같은 제목의 5장에서 저자는 개혁을 추구하겠다던 오바마의 말 따로 행동 따로행각, 그리고 공화당과 다르지 않은 민주당을 폭로하고, 이어서 선거로 체제를 고쳐 쓸 수 없는 까닭을 밝힌다. 20세기 초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당신이 워싱턴에 가서 정부 관리를 만났다고 치자. 당신 이야기를 공손히 듣고 있는 그 관리가 실제로 받아들이는 조언은 금융계·제조업계·상업계 거물들의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의 주인은 미국 자본가와 제조업자 전체다.” (132p)

 

20세기 초의 미국정부와 21세기의 미국정부, 그리고 현재의 한국정부가 얼마나 다를까? 다르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런데 진정 달라진 게 있다면, 이는 투쟁에 의해서만 그렇게 됐다. 6장의 제목은 바로 투쟁 없이 진보 없다이다.

 

"학교에서는 정치적·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평화롭고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고 가르친다. 불의에 대한 반감을 조직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 체제가 작동해서 문제가 해결될 테니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세기 전반기에 미국 남부와 북부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 남부 노예제를 가만 놔두더라도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틀렸다. 면화 생산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노예제는 점점 더 강력해졌다. 이 참상을 끝내는 데는 남북전쟁이 필요했다.

미국 역사에서 벌어진 운동들을 보자. 공민권운동, 여성참정권 운동, 8시간 노동제 운동, 반전운동 등 모든 운동은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온건하게 행동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마틴 루서 킹은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랫동안 나는 기다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흑인은 이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입니다. 기다려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결코 안 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너무 오래 지연시키는 것은 정의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저명한 법조인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다리지않기로 작정한 활동가들의 결단력이 공민권운동이 승리한 비결이다.” (144p)

 

마지막 장인 사회주의와 투쟁 그리고 여러분에서는 잘못된 세계와 쟁취할 세계 사이에 놓인 길을 말한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분노와 저항 사이의 간극을 이어 줄 지름길은 없다. 기성 체제를 대체하는 데 필수적인 지지와 광범한 동원 기반을 가진 사회·정치 운동(공민권운동처럼 현재 상태를 정말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운동)은 완전히 성숙한 형태로 갑자기 출현하지 않는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역사는 이런 운동이 하나하나 차분히 건설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로자 파크스가 195512[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내주기를 거부하다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처럼 투쟁에는 절정의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절정 이전의 순간들도 기억해야 한다. 로자 파크스가 몽고메리에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지부를 만들었을 때, 테네시 주의 하이랜더 포크 스쿨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해서 투쟁의 미래를 토론했을 때, 인종 격리 반대 시위들에 참가했으나 시 전체의 흑인 반란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때 같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이런 순간들이 다가올 절정의 토대를 놓았다.” (175p)

 

우리가 진정으로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바란다면,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일은 모든 빈곤과 억압, 폭력에 반대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항들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기다리지 말고 지금 불의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없어도, 투쟁이 없어도, 기성 제도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약속을 믿는 대신 나의 참여와 행동으로 새로운 세계를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대선에서 정말로 진 걸까? 그것은 정말로 우리의, 우리를 위한 싸움이었나? 지금 우울하다면 힐링의 시작이 될 이 질문에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 왜 사회주의인가?가 답해줄 것이다.

 

 

- 붉은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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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안내서
존 벨라미 포스터 & 프레드 맥도프 지음, 황정규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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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서평

: 완전한 사회주의 = 완전한 생태주의

 

 

1. 생태주의자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사상이 반생태적이지는 않더라도 현대 생태주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황정규 동지를 통해서였다. 노동해방실천연대가 2009년에 발간한 사회주의 강령을 토론하자!3호에 실린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황정규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 속에 생태주의적 인식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생태주의적 인식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자 하였다.”고 평가하며 폴 버켓과 존 벨라미 포스터의 연구를 소개했다.

 

폴 버켓과 존 벨라미 포스터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초기의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자연은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과의 지속적인 [교호] 과정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활이 자연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이 자기 자신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라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필수 불가결한 관계를 중심으로 한 유물론 철학을 표현한 바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자신의 유물론을 후기에까지 심화 확대시켰는데, 당대에 자본주의 농업이 야기한 토양 비옥도 상실과 도시의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분석에서, 독일의 화학자인 리비히의 연구에서 착안해, 환경문제를 물질대사의 균열로 표현했다. 유기체가 외부의 환경과 물질 및 에너지를 교환하는 메커니즘을 의미하는 물질대사의 개념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하여, 자본주의에 의하여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에 균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결국 인간과 자연도 함께 파괴된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연과학에서 물질대사 개념을 빌려오면서, 여기에 자신의 유물론적 역사파악을 더하여 독창적으로 변형해냈다.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의 관계는 역사의 기초이고 토대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각 사회구성체마다 서로 다른 고유한 형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노동인데, 이 노동이 역사가 발전해오며 함께 근본적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의 특징은 무제한적 이윤과 자본축적에의 종속과 이로부터 비롯하는 인간 소외인데, 그 결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들과 자본주의적 생산 사이에 극심한 모순이 발생하고, 파멸을 인식하면서도 폭주를 멈추게 못하는 소외된 인간이성의 무기력함이 증대한다. 따라서 인류 생존의 위기를 부르는 물질대사의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균열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나아가 자본주의에 의해 소외돼온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의 재개와 이에 의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재정립과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황정규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토막을 길지만 옮겨본다.

 

인간 개개인의 다방면에서의 발전이 진행될 때에만 물질대사의 균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의 발전과 이 지식을 올바로 이용할 수 있는 인간본성의 발전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연의 맹목적 힘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지식이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자연과 공존하는 관계를 맺는데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이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또한 이는 인간이 자연과 맺고 있는 노동의 형태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인간발전과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맑스는 인간노동이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변화시키는 과정인 동시에 스스로의 본성 역시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보았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노동이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는 인간의 발전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에 치유하기 힘든 균열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인간발전을 왜곡시키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극복하는 것이 인간해방을 자신의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전망은 위의 인용문에서 인간의 완전한 발전”,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체로서 발전시키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전망은 모든 억압과 착취의 극복과 노동의 소외의 극복이라는 사회주의 본연의 목표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복원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함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는 완전한 인간주의=완전한 자연주의라는 1844년 초고에서의 맑스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황정규는 이 글 이후에도 마르크스의 생태학’, 그리고 다른 생태주의 사상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는데, 그 노력 중 하나가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의 번역이다.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일상 중에서도 책을 번역한 노고에 감사한다. 또 이론과 실천을 함께 겸비한 사회주의자에 의해, 어느 범용한 교수들과는 다르게 인간해방의 이상을 위해 분투해온 존 벨라미 포스터와 프레드 맥도포가 공저한 글이 번역된 것에 다시 감사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2.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최선의 안내서

 

책은 서문과 6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고, 어렵지도 길지도 않다. 그러면서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의 핵심은 모두 녹아 있다. 한 마디로 간명하며, 때문에 마르크스의 생태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여행하기 위한 최선의 안내서라 할 만 하다. 앞서 말했듯이 마르크스의 생태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의 관계에 자본주의가 어떻게 균열을 내고 있는지의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생태학에 대한 최선의 안내서는 동시에 환경에 치유할 수 없는 충격을 가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본성에 대한 최선의 안내서이기도 하다. 실제로 책의 부제는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안내서이다.

 

1장의 제목은 지구의 생태위기이다. 저자들은 최근 지구시스템과학에서 과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발전시킨 것 중 하나가 행성 경계라는 개념”(14p)이라며, 행성 경계의 개념에 근거해 생태위기의 심각성을 전달한다. 행성 경계란 인간이 야기한 다양한 환경변화들이 이미 넘어섰거나 코앞에 둔 각각의 마지노선들로서, 만약 그 경계를 넘어설 경우 돌이킬 수 없이 인간과 다른 생물종들에게 지극히 적대적인 새로운 환경에 직면해야 한다. 행성 경계의 대표적인 예들이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 성층권 오존의 소진 등인데, 해양 산성화의 경우 과학자들이 제시한 경계는 2.75인데 산업화 이전에는 3.44였던 것이 현재는 2.90이다. 이와 같이 1장에서는 생태위기가 단지 수사가 아니라 이미 우리 문 앞에 도착해 노크하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2현행유지 : 행성파괴에 이르는 길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현재의 경제체제를 유지한다면 금세기 내에 맞이하게 될 파멸을 말한다. 그런데 이 전 지구적 경제체제는 파멸로 치닫게 하는 경제성장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성장의 잠정적 목표에 도달하기 이전에 지구는 완전히 거덜 나고 말 것이다. “허먼 댈리는 전 세계가 미국 수준의 일인당 생산과 소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불가능성의 정리라고 불렀다. 이를 위해서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6개나 필요하기 때문이다.”(43p) 그런데 현행유지가 행성파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엄청난 수준의 불평등이 함께 유지되는 것도 의미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생태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빈자들에게 그 곤경을 전부 떠넘긴다. 바로 자본주의를 통해서.

 

3자본주의와 성장지상주의는 생태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한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소유자(자본가)가 직접 생산자(노동자)가 발생시킨 잉여생산물을 전유하고, 이를 통해 소유자가 자본축적(투자 및 부의 축재)을 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체제다. 생산은 이윤의 발생과 축적의 촉진을 목적으로 시장을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 물질적 형태를 취한다. 이 체제에서 개인들은 자기이익을 추구하며, 오직 자신들 간의 상호경쟁과 시장의 비인격적 힘들을 통해서만 제재를 받는다.”(51p)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충돌하는 면에서 자본주의를 고찰하면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자본주의의 추동력과 동기는 이윤과 축적을 향한 끝이 없는 추구다. 두 번째, 경쟁 때문에 기업은 지속적으로 판매의 증가와 시장점유율의 상승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56p) , 더 큰 이윤을 향한 갈망으로 현재의 이윤을 새로운 자본으로 투자하는 내적 본질과, 경쟁을 낳고 패자를 도태시키는 시장에서 가해지는 외적 강제에 의해 자본은 성장과 축적을 멈추지 않고, 그 결과 경제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그런데 체제로서 자본주의는 더욱 경제성장에 매달리게 되는데, 성장이 멈추는 순간 체제의 취약성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를 저자들은 미국경제의 통계를 들어 “GDP 성장률이 노동인구의 증가보다 실질적으로 더 크지 않다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81p)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체제의 취약성을 줄여 줄지는 몰라도 환경에는 몇 배나 더 파괴적이다.

 

4환경과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주의가 환경에 가하는 충격의 구체적인 양상들을 살핀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업들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자원과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펼친다. 그리고 기업은 인류의 보편적 관점과 공익이 아니라 오직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만 작동하고, 자연을 이윤 생산의 수단으로만 취급하며, 마치 자연에는 한계가 없다는 듯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더 많은 폐기물을 투기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거의 멸종 지점에 다다른 수많은 해양 어종의 감소는 어떻게 재생가능한 자원조차도 고갈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남획으로 인해 상업 어종의 1/3이 이전의 잠재어획량 중 단 10퍼센트만을 겨우 생산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상업 어종이 21세기 중반까지 이렇게 될 것이다.”(97p)

끝없는 성장 추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정부의 환경 관련 행위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탐욕과 이기심을 숭배하며, 이를 인간본성으로 여긴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에 사실상 포획돼 있는 지경이며, 기업과 성장 앞에 놓인 장애를 치워주는 역할에 충실하다. “따라서 지금의 체제가 지닌 본성 중에는 너무 늦기 전에 체제를 한 걸음 물러서게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132p)

 

5자본주의는 녹색이 될 수 있는가?저탄소 녹색성장’, ‘지속가능한 발전등의 표어가 대변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생태위기에는 기술적&시장 기반의 해결책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논박한다. 기술의 발전이 문제의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팽창을 본질로 하는 경제체제는 오히려 역설적인 결과를 발생시킨다. 에너지, 자원 저감 기술이 단위생산비용을 줄여줌으로써 실제로는 자본축적을 가속화시키고 소비총량을 더 증가시키는 식이다. 또한 탄소거래제 같은 시장적 해결책,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기업 자율에의 의존도 환상에 불과하다. 저명한 보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회사의 주주들이 봤을 때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환경 관심사를 추구한다면, 그때는 그가 부도덕한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148p)

이러한 상황에서 증식 핵반응로나 탄소격리 같은 재앙을 초래할지 모르거나 불확실한 하이테크놀로지까지 무책임하게 대안으로 선전되고 있다. 이런 해결책들에 공통된 심리는 이런 것이다. “자본주의가 환경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따라서 환경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구해야 할 대상은 지구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가 된다.”(143p)

 

반대로 자본주의가 아니라 지구를 구하는 길은 무엇인가? 6생태혁명, 가능성을 현실로는 자본주의 안에서 생태위기를 경감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현실적이지 못하며,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생태혁명만이 유일한 출구라고 웅변한다. “생태혁명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 대한 착취의 악순환을 끊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206p)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제한된 태도는 그들의 서로에 대한 제한된 관계를 결정하며, 그들의 서로에 대한 제한된 태도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제한된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혁명은 인간해방의 사회주의를 전제하며, 그 기본원칙에 생태적 성격을 가미한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소유가 아닌 사회적 이용, 연합한 생산자들이 행하는 자연과 인류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질대사의 합리적 규제, 현재와 미래 세대를 포함하는 공동체의 필요 충족”(197p)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내버려두지 않으면서도, 생태혁명의 전망 안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도 지구적 생태위기에 맞선 급진적 운동들이 등장하고 성장하고 있다!

 

 

3. 지속가능한 미래를 말하는 오래된 신념

 

황정규는 역자 후기에서 마르크스의 생태학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연유에 대해 다음같이 전달하고 있다. “2000년 존 벨라미 포스터의 마르크스의 생태학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 전반에 걸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반생태적이라는 기존의 견해를 완전히 논박했다. 포스터는 책을 구상하는 초기 단계에서 책 제목을 마르크스와 생태학으로 정하려 했으나,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야말로 핵심적인 생태사상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책 제목을 마르크스의 생태학으로 바꾸었다고 한다.”(269p)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가 생태주의적 인식과 비전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라는 인식 기반이 생태위기에 대한 고찰에 얼마만큼의 날카로움과 비타협적 투쟁성, 한결 같은 원칙, 총체적 대안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책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책의 논리를 간단한 형태로 음미해보자.

 

인간이 야기한 다양한 환경변화들이 현재와 같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틀림없이 파멸에 이르는, 그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로 몇 년 안에 들어설 것이다.

자본주의는 제한 없는 팽창을 본성으로 가지며, 이로 인해 자연은 인간에 의한 착취의 관계 아래에 놓이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의 관계에 균열이 일어난다.

생태위기에 기술적&시장 기반의 해결책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경제팽창과 자연 착취를 멈추지 않고서도 지구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믿음이다.

물질대사의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착취를 매개로 하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서로를 제한하지 않으며 하나의 발전이 다른 하나의 발전에 전제가 되는 생태혁명, 사회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에 대해서는 모든 환경주의자가 동의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환경주의자들은 생태위기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알리고 반대의 행동을 조직하는 데 앞장서왔다. 그러나 파멸적인 환경변화들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서 기인하며, 때문에 이런저런 수선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사회경제체제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 , 에 대해서는 환경주의자들 사이에서 공통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세 가지 명제들이야말로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비타협성이 없이는 이 말하는 비현실적인 믿음으로 퇴보할 것이며, 이는 결국 지구를 파괴하는 길이다. 그리고 지구를 파괴하는 길로 자신도 모르게 들어서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빨간불이 돼주는 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와 그 생명력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느 사상보다도 자본주의에 대한 일관되고 총체적이며 근본적인 비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를 노동자계급과 화해 불가능한 체제로 규정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의 노동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의 세계와 흔히 비견되는 아담 스미스의 세계를 보자. 스미스는 재화를 교환하려는 성향이 인류의 본성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즉 교환하려는 본성을 제약하는 장애물들이 제거될수록 교환의 빈도와 범위가 늘어나고, 또한 이로 인해 분업이 발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분업의 발전은 생산성을 향심시킴으로써, 교환의 확대는 결국 국가의 부를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사회에서 부의 형태는 상품이다. 저마다 각자가 생산한 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이를 타인의 소유물과 일정한 비율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일정한 비율을 교환가치 또는 가격이라고 한다. 경제주체는 바로 이 교환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생산활동에 종사하는데,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은 동시에 타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용가치이기도 하기 때문에, 각자의 이익을 위한 상품생산이 결국 사회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게 된다. 시장은 이기심을 이타적 역할로 이끈다. 스미스는 바로 이 조화로운 손이 국부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웅변한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영원불변한 인간의 본성 같은 게 아니라 스미스가 문제 삼지 않는, 오히려 시장사회의 건전한 기초로 파악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라는 특수한 사회제도로부터 시작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계급은 대부분의 핵심적인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배제된 노동자계급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계급에게 판매한다. 노동력도 어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교환가치를 갖게 되며, 이 노동력의 교환가치가 바로 임금이다. 자본가는 임금 비용의 지출을 통해, 즉 노동력 상품의 구매를 통해 비용 이상의 이득을 취한다. 가장 먼저는 상품생산의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이윤을 획득한다. 이윤은 일단 형성되면 자본의 생산성이든, 경영의 생산성이든 환상적인 외관을 취하지만, 그 근원은 노동력 상품의 구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연이 정한 노동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시간은 숱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만약 노동시간의 길이가 겨우 건물, 기계, 도구, 원료, 연료 등의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를 충당할 정도의 상품가치밖에 생산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이윤이 유일한 목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성 상, 자본주의도 임노동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은 결국 그 이상으로 연장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임금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의 연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윤은 바로 이 노동시간의 연장, 초과노동의 흡수로부터 나온다. 자원과 기술, 경영 등 무엇도 노동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상품을 결코 생산해내지 못한다. 반대로 노동도 자원과 기술, 경영 등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무엇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동이 어느 생산요소와 같지 않고 다른 점은 자유의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 생산요소들은 자본의 의도에 철저히 종속되며, 그 사용가치가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 자본의 일부로 기능한다. 이에 비해 노동은 자본의 일부이면서 일부가 아니다. 노동은 어느 때든지 인격체로서, 자유의 존재로서 자본에 대립한다. 때문에 이윤은 오직 노동을 노동시간의 형태로 물적 존재화해 자본에 통합시키는 정도, 즉 경제적 강제에 의해서만 비로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윤은 노동에 대한 착취자로서의 자본의 승리와 지배, 그리고 생산수단의 독점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의 표현이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사회에서는 착취와 이윤이 사라지고 공동의 소득에서 얼마를 분배하고 얼마의 잉여를 다음 해의 투자를 위해 남겨놓을 것인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새로운 사회과정이 대신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노동을 착취하는 권력, 자본과 노동 사이의 지배-피지배의 사회적 관계로 일반화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비판력을 피워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마르크스에 대해서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노동착취의 이론은 인정할 수 있지만 자연착취에는 맹점을 갖는 것으로 비판해왔다. 이러한 오해에 통렬한 반박을 내놓은 게 바로 버켓과 포스터 등의 연구업적인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바를 다시 강조하자면, 마르크스가 놀랍게도 시대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착취라는 문제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던 바탕은 그의 유물론 철학 덕분이었다. 인간과 자연을 서로 다른 두 원리로서 파악하는 이분법적인 관념론 철학과는 반대로, 마르크스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그리고 자연을 인간의 확장된 몸으로 파악하였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자기 이전의 유물론을 따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을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인간의 실천에 의해 변화 발전하고, 다시 역으로 자연의 변형이 인간 역사에 새로운 가능성과 제약을 제공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다는 점에 마르크스의 고유성이 있다. 즉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는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창조하는 기초가 된다. 이처럼 자연을 역사를 갖는 존재로 파악하면서 마르크스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라는, 자연의 원래적 의미를 초월한다. 이 초월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즉 노동(생산)이 역사를 창출한다는 유물론적 역사파악의 전제가 마련된 것이 하나이고, 또 인간에 의한 자연의 새로운 변형이 인간과 자연에 부정적인 변화를 낳을 수도 있다는, 오늘날 가장 시급한 인식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마르크스는 실제로 후자의 인식을 당대의 자본주의 농업이 낳은 토양 비옥도 상실과 도시의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분석으로 구체화시켰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자연착취에는 맹점을 갖고 있다거나 생태주의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깊은 오해인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사상이 단지 생태주의적 인식을 포함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확고한 생태적 비전을 제공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생태위기는 바로 자본주의에 의한 물질대사의 균열이다. 즉 인간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자연을 이용하고 개발하면서 인류가 생존하고 번성하는 토대 중의 토대인 생물들 사이, 생물과 비생물 사이의 물질 순환이 파괴되고, 이로 인해 환경은 인류는 물론 대다수 생물종에게 적대적인 시공간으로 변해왔다. 따라서 생태위기의 극복이란 물질대사 균열의 치유이고,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방식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바로 자본주의라는 총체. 자본은 노동을 착취함으로써만 이윤을 생산하고 축적할 수 있다. 그런데 자연으로부터 재료를 취하게 되는 생산수단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의 수단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자본의 도구가 된다. 자본은 노동을 흡수하기 위한 도구와 촉매로써 생산수단을 운동시킨다. 더 많은 착취와 이윤을 위해서는 상응하는 더 많은 생산수단이 투입돼야 한다. 이에 더해 자본주의 특유의 노동절약 기술의 발전은 노동 한 단위 당 생산수단 양의 비를 비약적으로 늘림으로써 생산수단의 투입과 집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왔다. 저항이 아니고서는 노동의 착취에서 제한을 모르는 자본은 역시 자연의 착취에서도 한계를 보지 못한다. 자연이 노동 착취의 도구로 전도되는 자본주의에 물질대사 균열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당연히 자본주의의 극복을 말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생태적 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관계 균열의 뿌리를 보았듯이, 마찬가지로 물질대사의 치유는 반드시 새롭고 평등한 사회적 관계의 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완전한 사회주의만이 완전한 생태주의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가 형성되고 발전하면서 새로이 만들어가게 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생적 관계는 다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등과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촉진할 것이다. 완전한 생태주의만이 완전한 사회주의를 가능하게 한다. 마르크스의 생태적 비전은 동시에 사회적 비전이며, 사회적 비전이 곧 생태적 비전이다. 이러한 인식과 대안에서의 총체가 바로 마르크스를 자본주의와 투쟁한 불온한 사상가로뿐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와 그 원리를 그려낸 선구적 사상가로 미래의 세대가 기억하게 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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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Russia`s War』 리뷰

 

 

소련의 성공은 이 모든 요인들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 그 요인들이란 대중의 애국심과 타고난 인내심, 스탈린의 역할, 계획 수립 및 동원의 정치 환경, 그리고 창의성과 노력의 일시적인 만개 등이다. 마지막 요인은 매우 강력해서 대숙청 이후 사회를 괴롭혀 온 복종할 팔자를 타고났다는 암울한 풍조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전쟁 수행 노력은 단지 자신들이 속해 사는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만 지탱되지 않았지만, 소비에트 국가, 그 지도자, 당의 산물도 아니었다. 두 요소가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독일의 공세가 부과한 상호 필요성으로 말미암아 한데 결합되어 불안정하게 공생하면서 작동했다. 대가를 더 적게 치르고, 더 인간적으로 덜 억압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데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소련이 치른 전쟁의 비극이었다. 고통받은 한 민족의 희생이 승리를 가져왔지만 해방은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상실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승전의 순간에.”

 

위 글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의 마지막 문단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들 중 하나가 인상적이다. “고통받은 한 민족의 희생이 승리를 가져왔지만 해방은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 문장이 책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이 말만큼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소련 인민의 운명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어 보인다.

 

 

예상을 뒤엎은 승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의 원제는 Russia`s War이다. 한국어판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다르게, 나치 독일의 침공을 이겨내고 승전하기까지의 소련의 전쟁수행과정만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인 리처드 오버리는 책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요약한다.

 

소련은 거의 공통된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두었다. 구소련에서 전쟁 초반에 두드러진 터무니없는 무능과 의미 없는 억압에 퍼부어진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련 체제는 가장 혹독한 시험을 통과했다. 이것이 역사가들에게 아주 풀기 어려운 문제를 내놓는다. 즉 소련은 전쟁에서 당연히 패했어야만 하는데, 의기양양하고 포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p435)

 

리처드 오버리는 아주 풀기 어려운 문제에 답을 내놓는 데 능숙해 보인다. “대중의 애국심과 타고난 인내심, 스탈린의 역할, 계획 수립 및 동원의 정치 환경, 그리고 창의성과 노력의 일시적인 만개 등의 승리의 요인들을 전쟁의 일련의 장면들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그러면서도 단지 설명과 분석에 그치지 않고 전쟁수행과정에서 소련 인민이 피와 땀으로 치룬 가혹했던 희생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발휘하는 최고의 장점이다.

 

인터넷에서 책의 제목으로 검색하면 전쟁사 마니아들이 이 책을 추천해놓은 여러 글들을 읽어 볼 수 있다. 그런데 독소전쟁사를 다루고 있는 일부 마니아들의 관점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들은 마치 전쟁의 이성전략 전술적 합리성의 관점으로만 독소전쟁을 취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의 과정에서 단지 전쟁수행기구의 일 도구로서만 취급된 일개 군인, 국민들의 생명과 삶에 대한 짓밟힌 권리와 그들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그러나 그 의미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서사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영웅화된 전쟁기계들의 행위들에 매겨지는 평가에 대한 관심은 과다하다. 특히 당시 가장 선구적이고 파격적이며 효율적이었던 전쟁기계로 평가받는 독일군에 대한 관심에는 애정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이 전쟁기계가 어떻게 하여 망가지고 부셔졌는지에 대한 고통 어린 호기심이 독소전쟁사에 대한 관심을 지배하는 듯 보인다.

 

 

 

 

 <진격하는 독일 탱크들. 나치 독일군의 놀라운 성공은 탱크와 비행기라는 새로운 기술이 가진 군사적 가능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최초로 구사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행기의 종심 타격력과 결합한 집단을 이룬 탱크의 진지선 돌파와 신속한 기동, 종심타격은 적군의 전선 수습, 군대 재전개 능력과 시간까지 일시에 파괴할 수 있었다. 한니발이 기병의 적후방전개능력을 극대화시켜 극적인 섬멸전을 완성했듯이, 나치 독일군에게 한니발의 기병은 기갑군이었다.>

 

독일 국방군과 전격전에 호의적인 전쟁사 마니아들이 내놓는 독인군의 패배에 대한 진단의 핵심은 히틀러의 책임이다. 히틀러의 어리석고 광기 어린 군사작전에 대한 개입, 지도가 독일군의 궤멸과 패주를 낳았다는 것이다. 1941년에 수중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던 레닌그라드를 함락시키는 게 아니라 포위케 함으로써 북부집단군의 전력을 허비한데다가, 결국 소련의 반격을 허용하고 연합국의 소련에 대한 보급로도 터주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42년에는 주공을 모스크바가 아니라 남방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스탈린 정권의 붕괴를 노리지 않은 점.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에서 6군의 후퇴를 허용치 않아 궤멸시킨 점. 이후 소련군의 반격에 맞서 만슈타인 원수의 기동방어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재앙과 다름없었던 현지방어만 고집한 점 등이 히틀러 비난의 근거들이다.

 

이러한 진단은 그들에게 내재된 관점의 논리적인 귀결로 보인다. 그들에게 독일 참모부는 전쟁이성과 전략전술적 합리성의 결정체인 두뇌로, 또 독일 국방군은 그 두뇌의 지시를 정교하게 실천하는 강인한 육체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쟁 패배의 원인은 그 두뇌와 육체의 밖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러나 소련군은 그 원인이 될 수 없다. 독일군보다 우수한 두뇌와 육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군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근육을 무력화시킨 독일 내부의 적,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된다. 이러한 시각은 전쟁사 마니아들이 2차 세계 대전의 최고 명장으로 꼽는 만슈타인 원수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말한 변명과 일치하기도 하다.

 

 

 

 

<왼쪽부터 히틀러, 괴링, 괴벨스, 헤스>

 

내 생각이 거친 요약이며, 전쟁사 마니아들의 자부심 어린 글들을 지나치게 폄하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식의 주장들에 대해서 리처드 오버리는 이렇게 평가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 독일 장군들은 재빨리 히틀러의 변덕스러운 지도 방식과 장비 부족으로 패배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독일이 전쟁에 진 것이지 소련이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견해는 사실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1941년에 독일 장군들은 무식한 반()아시아전사들인 러시아 인들, 그리고 제정 러시아 장군들……보다 훨씬 덜 위협적인소련 지휘관들을 상대로 한 승리는 (기껏해야 8주 내지 10주가 걸릴) 시간 문제라는 자신감에 차서 출전했다. 이런 판단은 일어난 시건들로 거의 입증되었다. 독일군이 패하려면 독일 지도자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그 어떤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소련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군대를 개혁하고, 출중한 자질을 지닌 지도자들을 양산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독일은 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련은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p435)

 

즉 리처드 오버리는 1941년의 대패배를 딛고 일어선 소련의 역량과 이를 가능케 한 소련 내부의 혁신을 독일 패배의 참된 원인으로 바라본다. 혁신된 소련군에 독일군은 패배해야만 했다. 그리고 리처드 오버리는 소련에게 가해진 충격과 이로 인한 불가피한 변화를, 위기 앞에 선 초인적인 이성과 합리성의 단선적인 실현 과정이 아니라, 실수와 패배를 반복하며 배우며, 그 교훈을 인민의 희생이라는 토지 위로 고통스럽게 뿌리내리는 모순적이고 총체적인 과정으로서 묘사한다.

 

역사는 아무리 막대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개인이라 할지라도 그 책임을 모두 질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다. 반대로 역사는 그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거대하고도 복잡한 구조물이며, 또한 허물어지고 새롭게 지어지는 영속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쟁을 몇몇 장군들과 지도자들의 머릿속 수읽기 정도로 환원시킴은 역사상에 실존했던 거의 모든 구조와 과정을 생략하는 오류일 뿐이다.

 

만약 히틀러의 잘못된 지도가 독일군을 패배로 몰아넣었을지라도, 히틀러를 전혀 견제치 못하고 그 전제를 허용한 체제의 취약성과, 이러한 취약성을 낳은 일련의 역사적 국면들에서 나치를 용인했던 모든 이들에게 책임이 나누어지는 법이다.

 

반대로 소련의 승리를 스탈린 개인의 업적으로 치환하는 개인숭배적 발상에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체제의 성공과 이러한 성공을 낳은 일련의 역사적 국면들에서 과업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을 제치고 스탈린만을 치켜세우는 데 지금 누가 동의하겠는가?

 

 

소련 인민의, 인민에 의한 승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 영광을 돌리는 이들은 다름 아니라 이름 없는 자들, 바로 소련 인민들이다.

 

(독일을 결정적으로 패퇴시킨) “1943년의 승리들은, 비록 희생이 1년 전보다도 훨씬 더 적기는 했지만, 영웅들을 많이 잃는 큰 희생을 치르고 거두었다. 스탈린그라드는 소련군 군인과 항공대원 470,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독일군 진지선은 다시 183,000명을 잃고 돌파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엄청난 수치였다. 두 달 동안의 싸움에서 붉은 군대는 미국과 대영 제국이 전쟁 전체 기간에 잃은 군인과 거의 같은 수의 군인을 잃었다. 소련 인민에게 부과된 희생의 수준은 다른 사회를 작동 불능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소련 인력의 엄청난 대량 출혈은 두 해 넘게 지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4,700,000명이 죽음을 당하고 수백만 명이 불구가 되거나 상처를 입었다. 이 손실은 1943년의 가을철 공세 무렵에 소련군의 사단 병력이, 비록 대포와 탱크의 대규모 증강으로 강화되기는 했지만, 2,000명으로까지 내려갈 정도로 막심한 것이었다. 전쟁 동안 소련군 부대에서 노동과 자본 간의 대차 대조가 노동의 대량 투입에서 자본의 대량 투입으로 이동했다. 소련이 동부에 무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서 인력을 빨아들였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신화다. 동부에는 사람보다 공간이 더 많았다. 소련은 오로지 소련 여성의 2/3를 동원해서 공장과 농장을 운영했기에, 그리고 더 이상 그저 무턱대고 병사의 숫자에 의존할 필요 없이 미군처럼 대량 생산되는 무기에 의존할 수 있도록 군을 현대화했기에 살아남았다.” (p289)

 

 

 

 <소련과 독일의 전시 생산 비교. 소련은 석유를 제외한 다른 자원의 생산 능력에서 독일에 뒤지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량의 항공기와 탱크, 포는 점차 소련군이 독일군을 압도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다.>

 

위 내용의 요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소련이 독일에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기까지 막대한 인명피해를 치렀으며, 이는 다른 사회였다면 그 작동을 멈추게 했을지도 모를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소련 사회는 자신에게 가해진 대파괴를 견디어냈다. 소련 인민이 무한에 가까운 인내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죽은 이들의 자리를 대신해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련이 가진 힘이 단지 무한의 인력과 인내심에 불과했다는, 소련군의 승리에 대한 무지에 가까운 통상적인 설명에 대한 반박이다. 소련은 인적 물적 자원의 대량 파괴와 국토의 큰 상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하게 재생된 것이었다. 소련군은 현대화, 기계화되었고 이에 투입된 군장비들은 새롭게 조직된 경제에서 산출되었다. 그리고 군대가 치룬 가혹한 희생 못지않게 경제의 재조직화 과정에서도 소련 인민은 다른 국민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희생을 감내했다.

 

“‘총력전이라는 용어가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 용어는 틀림없이 독일과의 전쟁이 한창일 때 소련을 묘사하는 말일 것이다. 그토록 많은 국민을 전쟁 수행 노력을 위한 작업으로 내몬 다른 국가는 없었으며, 사람들에게 그토록 과중하고 기나긴 희생을 요구한 다른 국가도 없었다. 후방 국민의 삶은 전쟁이 벌어지는 전선의 고통스러운 싸움을 빼닮은 분투였다. 1943년 이후에 거둔 승리들은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얻었다. 소련을 단일 전시 병영으로 바꾸겠다는 스탈린의 약속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전쟁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지배했다. (중략)

 

하루하루의 삶은 농촌에서 가장 가혹했다. 시골 마을은 자기 마을 장정들을 군대에 내주었다. 1944년 무렵에는 집단 농장에서 일하던 남자의 거의 3/4이 사라졌다. 남은 남자들은 병자나 노약자, 또는 전선에서 불구가 된 농부들이었다. 도시와 싸움이 벌어지는 전선에 극히 중요한 공급 식량을 생산하는 일 대부분을 러시아 여자들이 했다. 여성이 1941년 농촌 노동력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1944년 무렵에는 그 수치가 거의 4/5였다. 그들의 일상은 혹독하고 비참했다. (중략) 그들에게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릴 농기구와 말이 없었다. 그들은 막대기와 나뭇가지로 땅을 파헤쳐 씨를 뿌렸으며, 여자들이 조를 짜서 쟁기를 끄는 모습이 낯익은 광경이 되었다. 어떤 농민들은 하루의 작업 시간을 마치면 지역 벌목조에 가담해서 여름이건 겨울이건 종종 먼 거리까지 나무를 끌고 가서 도시에 극히 중요한 땔감을 공급해야만 했다. 많은 농민들이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생산한 식량과 땔나무가 부족해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중략)

 

도시의 삶은 가혹했지만,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견디기가 더 쉬었다. 일을 하면 먹을 것을 얻었다. 완전 고용된 모든 사람들에게 배급표를 받을 자격이 주어졌다. 일하지 않으려고 들거나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얹혀살든지 아니면 굶어 죽었다. 1942, 전쟁 기간 중 가장 암울했던 수개월 동안 가장 약한 사람들이 죽어 갔다. 이것에는 잔인한 합리성이 존재했다. 일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보상을 받았다. 나머지는 없어도 되는 존재들이었다. (중략) 새로운 노동 조건이 정해졌다. 주당 66시간 일하고 한 달에 하루 쉬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휴가는 중지되었다. 초과 근무 의무제가 도입되었다. 공장 노동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기에 충분할만큼 나이가 들기를 기다리는 소년들이었다. 과중한 노동 시간, 기껏해야 기초 수준인 공장의 안전 기준, 가혹하게 부과되는 작업 기준량은 한결같이 그들의 건강을 해쳤다.” (303-5)

 

 

 

 

 <집단농장의 점호 장면. 자신들의 두 팔과 막대기가 여성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생산수단이었다.>

 

소련이 발휘한 힘은 인력의 규모가 아니라, 한정된 인력에 지어진 무한한 요구의 감내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소련 인민의 희생을 온전히 열정적이고 자발적이었던 것으로 낭만화화지 않는다. 그토록 영웅이었던 희생은 소련 인민 스스로 원했던 게 아니었다. 그것은 스탈린주의 체제가 인민에게 가한 억압과 테러에 의해 상당부분 지탱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아연실색할 정도로 스탈린주의 체제의 내부를 향한 테러가 멈추지 않고 열거된다. 과장되고 날조된 태업과 반역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수많은 살상을 낳은 소수민족의 집단이주, 막대한 규모의 유형과 노동수용소 등.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 그치지 않고, 억압과 테러에 의한 동원의 과정에서, 단지 동원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어떤 요소들이 체제를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싸움터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피난민과 이주민이 흘러들고 먹을 것과 생필품을 구하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노동 관리 체제가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후방은 계속 굴러갔다. 그것은 서구에서 흔히 국가 계획이라는 서툰 손에 지배되기에 단순하고 취약하다고 간주된 체제로서는 비상한 집단적 성취였다. (중략) 천천히 더 확정적이고 중앙 집권화된 계획 체계가 수립되었다. 이 체계는 전시 조직화라는 특수 상황이 쉽사리 적응할 수 있음이 입증된 평시 경제 체제에 기반을 두었다. 여러 차례의 5개년 계획으로 관리들과 생산자들은 전국 차원의 계획과 자원 할당에 익숙했다. 침공 뒤에 존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다른 어떤 체제가 식량이나 무기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계획이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중략) 그러나 식량, 물자, 노동력이 심하게 부족한, 쭈그러든 경제가 더 번영하고 생산성이 높아 보이는 적보다 더 많은 생산을 해낼 능력을 소유했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감안해 볼 때, 오로지 희소 자원과 그 자원 할당을 통제하는 힘을 유지하는 소비에트 국가의 해당 능력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p308)

 

전쟁을 지휘했던 소비에트 국가가 단지 억압적이기만 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당과 국가는 전쟁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잠재된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국가기구들 중 특히 소련 군대의 혁신은 놀라운 것이었다.

 

(1944년의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소련군이 독일의 중부 집단군을 쳐부수었다는 사실은 전쟁 초반 2년이 준 교훈을 얼마나 잘 배웠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아마도 전쟁 동안 실시된 소련군 작전술의 가장 훌륭한 사례였을 것이다. 그 전역은 1930년대 초에 투하체프스키가 최초로 윤곽을 그린 집단을 이룬 항공기와 장갑 무기의 종심 작전과 아주 흡사했다. 먼저 619일 밤에 파르티잔 부대들이 독일군의 교통망에 체계적인 공격을 개시해서 운송 목표물 1,000군데에 맹타를 가하고 독일군의 보급 체계와 재전개를 불능으로 만들었다. 이 뒤에 엄청난 강도를 지닌 항공 공격이 이어졌다.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기념일 전날인 621일에 소련 폭격기들이 공조해서 독일군의 후방 지대에 항공 타격을 개시했다. (중략)

 

드디어 623일에 전면 공격이 독일군 돌출부 북쪽에서 시작되어 다음 이틀 동안 남쪽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모종의 공격이 있으리라는 징후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방어자들은 자기들을 치는 것의 규모와 강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이 닥치고 있는가를 독일군에게 경고했을지도 모르는 통상적인 일제 포 사격이 총공격을 위해 줄어들자, 보병, 탱크, 포병이 어두음을 틈타 한꺼번에 전진했다. (중략) 독일군의 방어가 허물어져서 뒤따르는 기계화 부대가 그 틈새를 벌리고 다음 목표물로 이동할 공간을 남겨 놓았다. 이번에는 소련 지휘관들이 독일군의 저항 고립 지대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진지선이 공고해지기 전에 돌진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1939년과 1941년 사이에 독일군이 구사해서 매우 놀라운 성공을 거둔 바로 그 전술이었다.” (p326-7)

 

소련군이 도리어 독일군을 상대로 전격전을 벌일 만큼 변모했던 것이다. 소련군의 현대화는 손쉬운 모방 같은 게 아니었다. 그것은 소련 사회가 전쟁의 고통을 감내하며 쥐어짜내고 성취해낸 모든 결실들, 참패의 연속 중에서 고통스럽게 배운 교훈들의 극적인 종합, 완성이었다. 전쟁 초기에 막대한 규모의 손실은 입은 붉은 군대를 보충하기 위해, 후방에서의 전쟁수행을 위한 핵심인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남자들이 징집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농장과 공장에서 남자들을 대신해 노동력을 제공한 건 여자와 아이였다. 이들이 지탱한 소련의 경제는 독일보다 적은 경제자원을 가지고서 더 많은 무기를 군대에 제공했다. 이를 위해 후방에 남겨진 이들은 단지 먹고 일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제외한 모든 소비품을, 또 모든 사적인 시간을 희생했다. 이 정도의 동원과 사회재조직은 소련 정치 경제체제에 고유한 능력의 발휘를 제외하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소유제도와 국가가 자원들을 할당하고 운용하는 중앙집중식 계획경제, 국가에 순응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조건, 하나의 당과 한 명의 영도자만이 존재하는 일괴암적인 국가권력, 이것들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또한 국가기구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절대시하는 국가이성의 의지를 집행하는 데 자국민에 대한 테러조차 서슴없이 자행할 정도로 일사불란함을 흔들림없이 유지했다. 이처럼 가혹한 조건에서도 인민으로 하여금 계속 싸우고 일하게 하기 위해 소련 당국은 독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자는 애국심에 호소했다.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계급투쟁이라는 소비에트 이념보다는 민족과 전래의 토지를 지키자는 전통적인 애국적 호소가 인민의 희생을 유지하는데 더 유효했다. 그리고 소련 인민은 자신에게 지어진 운명을 감내하기 위해 동유럽 봉건주의의 오랜 지배에서 길러진 특유의 숙명론적 심성에 기대었다.

 

 

 

<어머니-러시아가 그대를 부른다!>

 

그리고 소련군 지도부는 쥐어짜낸 인력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운용하는 법을 깨닫고 적용했다. 폭격기들과 탱크로 전략단위를 이루어 신중하게 선정된 지점들을 집중적으로 타격해 적을 마비시키고 파열구를 냈다. 그리고 기계화된 운송수단으로 병력과 장비를 실어 나르는 부대가 뒤를 따라 적역을 가로지르는 회랑을 만들어내고 넓혔다. 마지막으로 닦여진 회랑으로 기동한 보병사단이 남겨진 적을 포위하고 섬멸했다. 작전은 수천킬로미터에 걸쳐진 전역에서 계획에 따라 정교하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군대의 기능이 분화하고 각 부대는 서로 유기적으로 기능했다. 전투기와 탱크를 모는 조종사들, 수리하는 정비사들, 새로운 개념의 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하고 수행하는 장교들, 이들을 신뢰하며 현대전을 수행하는 병사들이 빠르게 길러지고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독일군을 어떤 운에도 기대지 않고 압도할 정도로 능숙해졌다.

 

 

영웅을 기다린 가혹한 운명

 

가장 중요한 점은, 승전의 조건들이 위로부터의 강제와 인민의 순응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동력은 그 반대의 사실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리처드 오버리는 말한다.

 

원시적이라고 비난을 받은 한 체제가 보여 준 현대적 능력은 그저 NKVD(내무 인민위원회의 약자로 국가테러기구)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사실, NKVD가 개입한 곳에서 나타난 결과는 전쟁 수행 노력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저해하는 것이었다. 소련식 계획 체제는 그 관료적 이미지에 어긋나는 유연성과 조직력을 보여 주었으며, 엄청난 다수 국민을 단일한 공동 목표에 동원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과시했다. 전쟁이 끝난 뒤 낡은 버릇이 되돌아왔다. 당도 관료제도 사회주의 낙원을 계획할 수 없었다.

 

이 명백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해석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 전쟁 동안 비상 사태로 수많은 소련 관리, 경영자, 군인들이 수동성의 분위기,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한 퇴역 군의관은 1941년 이후에 사람들이 어쩔 도리 없이 여러 경우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맡아야만 했던’ ‘자연 발생적 탈스탈린화시기가 왔다고 회상했다. 마침내 1942년 가을에 일선 정치 기관원이 강등되고 장교들이 매 시간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점검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행동할 수 있었을 때 군에서 개인의 책임감이 고양되었다. 1990년 승전 기념일에 소설가이자 참전 용사인 뱌체슬라프 콘드라티예프는 마치 오로지 그대만이 러시아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전쟁이 개개 군인들에게 커다란 책임을 부여했다고 회상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런 도취적인 의무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콘트라티예프는 이어서 내가 있든 없든 만사는 어느 때처럼 굴러간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후방에서도 전쟁이 가져온 해방감이 존재했다. 레닌그라드 봉쇄에서 살아남은 시인 올가 베르그골츠는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자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썼다.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었기에 그런 자유를 자극했고, 그 자유는 자연 발생적인 융통성, 삶의 강렬함, 섬뜩한 극기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p437)

 

자유와 책임의 자연발생적인 확대에 뒤따른 개인의 주체화가 체제 아래서 숨죽여 있던 힘을 활성화시켰다는 논지이다. 이러한 논지의 타당성을 따져볼 수 있는 경험자료의 제시는 부족해 보인다.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스탈린주의 체제가 자국민에게 저지른 테러들에 대한 서술에 비해, 당과 국가 내부에서 또는 그 밖에서 자발적이고 독창적으로 수행된 전쟁수행노력에 대한 서술은, (스탈린의 용인 하에) 스탈린의 간섭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전략들을 입안했던 소련군 사령부에 대한 부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화적이고 빈약하다.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 모순적인 현상들, 즉 한편에서는 억압과 테러가 다른 한편에서는 창의성과 노력의 만개가 어떠한 모습으로 공존할 수 있었는지, 그 창의성과 노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리처드 오버리는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 즉 그의 마지막 명제는 일종의 가설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히 개개인에게 자율과 책임이 주어질 때가 그렇지 않은 때보다 더 큰 에너지와 열정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는 바이다. 의사결정이 상부로 집중될수록, 또 하부의 재량권이 축소될수록 하부는 상부의 판단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게 되며, 상부는 숱한 자잘한 것들까지 일일이 보고받고 검토하고 판단해야 하는, 자기 능력 이상의 일로 과부하에 걸린다. 이에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변해가는 현장에 대해 대체로 무지한 채로, 일률적이고 과거 결정을 반복 참조하는 착오적인 것이 되어간다. 그러면서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무기력해져간다.

 

비극적인 것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 소련 사회가 실제로 화석화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스탈린주의가 다시 소련 사회를 뒤덮기 시작했다. 지배의 사슬이 사회를 옮아 매고, 체제는 늘어난 사슬의 무게를 못 이기며 침체로 빠져들었다. 승리를 가져다준 인민의 희생을 배반하고 다시 족쇄를 채웠던 체제는, 그러나 두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어찌 되었던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인류사 최악의 재앙이었고, 그 중 대부분의 피해가 독소전쟁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소련 인민이 겪은 참화를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소련 인민 앞에 놓인 직접적인 위협은 무엇보다 나치 독일이었다. 히틀러가 동방에서 일으킨 전쟁은 클라우제비츠 식의 정치의 연속 같은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한 인종을 전래의 토지에서 몰아내고 노예화시키고 절멸시키기 위한, 총과 포가 존재하는 가장 확실한 목적-살상을 한 점의 의심없이 실현한 학살이고 파괴였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생활권을 위해 슬라브 인종이 거주하는 우랄 산맥 서편의 땅과 자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새로이 건설될 동방의 식민지에는 게르만 민족을 위해 봉사할 노예화된 인구 외의 슬라브인들은 절멸되거나 시베리아로 내동댕이쳐져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동방계획을 독일군이 소련 영토로 진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실행에 옮겼다. 유태인과 공산당원을 골라내 총살에 처하고 가스실로 보냈고, 수백만 명의 노동력을 강제로 징발해 독일의 공장에서 혹사케 했다. 나치의 식량과 물자 징발은 피점령민들을 고의로 기아로 내몰아 절멸시키려 했던 것이 진지하게 고려됐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될 정도다. 이처럼 자신들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려고 온 나치 독일 앞에서 소련 인민에게는 흥정의 여지가 없었다. 앉아서 죽던지, 아니면 싸우다 죽던지 뿐이었다.

 

그런데 총부리가 앞에서만 겨누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무제한적 희생을 요구하는 스탈린주의 체제 역시 소련 인민에게는 사실상 또 다른 위협이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싸우고 일할 수 있는 자라면 누구나 전장으로, 공장으로, 토지로 내몰렸다. 어쩔 수 없는 전시상황이었다고는 하나, 이 체제는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자국민들을 혹독하게 취급했다. 개개인들은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자신들에게 지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의문을 표하는 순간, 그는 고문실로 끌려가거나 총살을 당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일상적인 테러의 위협이 소련 전시사회를 지배했다.

 

소련 인민은 한 편에서는 절멸과 노예화의 대상으로, 다른 한 편에서는 국가이성의 무자비한 실현의 도구로 여겨졌다. 어느 곳에서도 그들은 편히 누울 수 없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위대했던 건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었던 그 혹독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하고 결의에 찬 투쟁을 시작하고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성공으로 독일군이 레니그라드와 모스크바 앞에까지 이른 1941) “9월 중순 무렵의 분위기는 침울하고 절망적이었지만, 모스크바의 공황 같은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그들이 해야만 하는 희생을 상기해 줄 필요가 없었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증언에서 소개 대상이 된 사람들 중 다수가 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들은 가족과, 아내는 남편과 함께 남았다. 주민들의 공포와 나란히 쥬코프가 훗날 보통 사람들의 용기, 인내심, 강인성이라고 기억한 것 또한 함께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19419월은 평생 기억에 남았다고 회상했다.” (p150)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 가는 동안 시 당국은 조직화된 생활 비슷한 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공장은 가능한 한 오래 계속 가동해서, 시 방어자들을 위한 장비를 생산해 냈다. 7월부터 12월까지 공장들에서 탱크와 전투용 차량 1,100대 이상, 박격포 10,000, 포탄 3,000,000발이 생산되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굶주리는 레닌그라드 노동자들이 모스크바 방어에 사용할 대포와 박격포 1,000문을 만들어 냈고, 이 무기들은 독일군 진지선을 넘어 레닌그라드 밖으로 공수되었다. 그 유명한 키로프 공장은 전선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공장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잠을 잤고, 작업 시간은 독일군의 소이탄으로 난 불을 끄거나 공장 방어 훈련을 하느라 중단되어 있었다. 공장들은 더 궁색한 가정생활에서 벗어나 먹을 것, 동지애, 심지어는 인정마저 발견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다.” (p154)

 

저널리스트 앨리그잔더 워스는 1944년에 우크라이나의 소도시 우만의 시장으로 임명된 중년의 러시아 인 파르티잔 대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피부가 창백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넘긴 단신의 자하로프 시장은 자기를 찾아온 손님에게 고생스러운 파르티잔 생활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작은 무리였고, 그들은 비니차 숲에 들어가 숨었다. 무기가 빈약해서 그들은 계속 큰 피해를 입었다. 자하로프는 19417월에 부상을 입었고, 독일군에게 사로잡혔다. 탈출을 한 그는 우만 밖의 파르티잔과 합류했다. 그는 1942년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고, 게슈타포는 그를 혹독하게 고문하고 때리고 등을 부러뜨렸다. 그는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고, 숲에서 파르티잔 대원들은 그를 그저 미챠 아저씨라고만 알았다. 거기서 그는 철도 공격을 주도하는 한편, 그의 부대는 독일에게 고용된 카작에게 시달렸다. (중략)

저항은 이해하기가 더 쉽지 않다. 저항에는 엄청난 위험이 따랐으며, 파르티잔은 소련의 전쟁 수행 노력의 가미가제였다. 파르티잔에 가담한 사람들 일부는 소비에트 체제가 복귀했을 때, 또는 복귀할 경우에,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가담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순수한 신념에서 파르티잔에 가담했다. 자하로프 시장은 자신의 선택을 내 나라가 잘되라고 일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자국민에게 그같이 무거운 짐을 부과한 체제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정치적 이상주의에 회의를 품기 쉽지만, 그 이상주의를 내버려서도 안 된다. 소박한 애국심은 많은 파르티잔의 말과 행동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우리에게는 그것을 무시할 이유가 없다.” (p211-2)

 

 

 

 <처형당하는 파르티잔 여성 대원>

 

“1942년과 43년의 소련의 군사적 소생은 난타당한 공업 경제의 회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소련의 전쟁 수행 노력은 오직 1941년에 독일군의 공격을 받은 지역에서 기계, 설비, 인력이 극히 경이로운 대탈출을 했기에 구원을 받았다. 독일 공격 이틀 뒤 계획 입안자와 관리 85명의 직원을 가진 소개 위원회가 세워졌고, 그 책임자는 당에서 스탈린의 총애를 받는 라자르 카가노비치였다. 그는 그 심각한 비상시국에 대처하지 못하고 7월에 노동조합 지도자 시베르닉으로 교체되었다. 소개는 이례적인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졌다. 항공기의 공격을 당하면서, 몇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에 독일군이 있는 상황이 자주 빚어지는 가운데 수천 명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개미처럼 공장에 달라붙어 기계를 뜯어내고 설비와 주요 물자를 가장 가까운 철도 수송 종점으로 운반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기 위해 종종 인력을 이용해서 무개 화차 위나 유개 화차 안에 짐을 실었다. 가능한 곳마다 각 열차는 한 공장과 그 공장 노동자를 통째로 운반했다. 노동자들은 줄지은 침대와 난로 하나가 갖추어진 화차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우랄 산맥, 카자흐스탄, 또는 시베리아에 있는 목적지에 이르러 그들은 화차에서 쏟아져 나와 작업장을 재조립하는 고된 일을 시작했다.” (p235)

 

보통 사람들이 발휘했던 영웅적 행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 더 말해져야 한다. 이것들이 독일에 맞서 소련이 발휘했던,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던 전생수행능력의 진정한 비밀이다. 소련 인민은 국가기구가 파괴되고, 허물어지던 절망적인 패주의 상황에서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며 스스로 저항을, 반격의 조건을 조직했다. 동원과 테러만으로 그들의 분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소련 인민 사이에서 스스로 생겨난 노력들이 국가가 부과하여 이뤄내려 했던 어떤 것들보다도 더 적절하고 강했음이 틀림없다. 소련 인민의 자생적인 노력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소비에트 국가는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두들기던 1941년 그 순간에 포화에 녹아내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 인민의 영웅적인 투쟁의 귀결은 씁쓸한 것이었다. 모순적이게도 자신들을 억압해오던 체제를 최대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 억압적 성격을 전혀 바꿔내지 못한 채로. 소련 인민 위에 군림하던 운명은 그 가혹함을 거두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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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처럼 일한다는 것 - 위기에서 빛나는 스티브 잡스의 생존본능
리앤더 카니 지음, 박아람.안진환 옮김 / 북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스티브 잡스가 죽고 이를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처음으로 스티브 잡스에 대한 흥미가 일어,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집어온 책이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책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무협지를 읽는 정도의 집중력이면 적당한 책이다. 누가 극찬했다던 지 어디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표지의, 얄팍한 일반화로 도출되고 분류된 몇 개의 교훈들이 각각의 장들을 이끌고, 일화와 인터뷰가 주를 이루며, 찬양으로 도배된 그런 책들 말이다.
 
  그래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유익한 지식들도 있었다. 잡스가 어떤 이유들로 찬양받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잡스는 불황에 빠졌던 IT업계를 향후 30년은 먹여 살려줄 ‘디지털 라이프’ 시장을 개척했으며 이 새로운 시장에서 기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사용자 경험의 최우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통합’, ‘일관 제품군’ 등의 개념들을 통해 보여주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혁신을 이끌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접근법이었다.
 
  “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디자인이 외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사실 작동 방식을 의미하지요.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외관을 의미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작동 방식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적절하게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본질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애기입니다. 무언가를 그냥 꿀꺽 삼키지 않고 철저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열정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잡스에게 디자인은 (신)기술을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러한 접근법에 따르면, 제품으로 구현되기 이전의 기술은 전문가만의 영역에 속하며, 일반 소비자에게는 그 복잡성으로 인해 사용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을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외관의 문제를 넘어서며, 사용자가 제품의 작동원리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동작시키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잡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탁월했다.
 
  이전에는 전문가들이 직접 부품을 조립해 사용해오던 컴퓨터가 플러그만 꽂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의 형태로 처음으로 시장에 등장한 게 애플Ⅱ였고, 초소형 하드디스크와 디지털음원 재생기술은 이미 존재해왔지만 비로소 CD플레이어보다 쓸 만한 간편한 휴대용 음악재생기로 변환시킨 게 아이팟이었다. 또한 매킨토시가 최초로 구현했던 GUI 역시 복잡한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는 수고 대신 작고 귀여운 아이콘들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으로 대신하여 사용자 이용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잡스식 디자인의 한 사례다. 즉 디자인은 외관 더하기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그런데 잡스가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은 외관과 인터페이스를 통일적인 것으로 다룬 점이다.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시킨 매킨토시의 디자인은 모니터와 본체를 코드로 직접 연결해야 하는 사용자 수고를 덜고 플러그 앤 플레이라는 애플Ⅱ의 정신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잡스의 디자인 정신은 애플의 독특한 경영방식으로 확대 적용되는데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여 소비자가 애플의 제품을 쉽고 편안하게 사용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요소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사실 잡스의 디자인관이 얼마나 훌륭한 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그의 디자인관이 확인해주는 다른 사실은 잡스가 헨리 포드에 견줄 수 있는 탁월한 제품기획자였다는 점이다. (헨리 포드는 잡스가 존경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IT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 잡스는 이를 대중적인 제품과 돈으로 바꿔내는 데에 탁월했던 것이다. 마치 헨리 포드가 혁신적인 T형 자동차로 떼돈을 벌었듯이 말이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점은 헨리 포드와 스티브 잡스의 차이점이다. 포드가 자동차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에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과 생산성연동임금제라는 노동과정 상의 혁신이 필요했고, 이러한 혁신을 최초로 확립시킨 포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단순반복노동으로 악명 높은 포드주의라는 새로운 생산규범을 후대에 남겼다. 반면에 우리는 다행이라고 할지 잡스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낼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그렇다고 IT산업의 번창에 생산과정 상의 혁신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애플이 제품 제조를 폭스콘에 통째로 하청 주었듯이 현대 IT산업 번영의 이면에는 ‘생산의 세계화’가 존재한다. 후발공업화지역의 값싼 인력과 병영식 공장 없이는 첨단기술이 값싼 IT제품으로 손쉽게 둔갑해왔을 리가 만무하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 대해서 보도했던 대부분의 언론에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언론은 애플의 혁신적 제품에서 잡스 개인의 창의력만을 보려 하고 그가 이룬 성공의 정당성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안다.
 
  “누가 일곱문을 가진 도시 테베를 건설하였는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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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 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서점가 1위 자리를 휩쓸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일으킨 지각변동이 서점가로도 퍼져가고 있는 셈이다. 장하준이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2008년 금융위기의 재앙은 “결국 따지고 보면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 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그 원인이 있다.” 또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유시장 정책은 금융위기 전부터 대부분의 나라에 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이제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자본주의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다.”

자유시장 이념에 대한 장하준의 23가지 비판 중 첫째가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다. “오늘날 시장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시장과정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의해 시장에서 제외되었다. 인간을 비롯해 공직, 판결, 투표권, 대학입학 자격, 무허가 약품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즉 시장은 시장참여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이 규칙과 한계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 또는 역사적으로 형성돼온 사회규범(인권, 보통선거권, 공정성, 건강권 등)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개입이 거의 언제나 시장의 효율적인 자원배분 기능을 왜곡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실상 “규제를 통해 보호될 권리들을 부정한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신자유주의의 거짓과 기만을 알아채게 돕는 데에 굉장히 유용하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대안적 논리와 역사적 경험, 실증자료, 재치있는 비유를 통해 저변에서부터 무너뜨려간다. 그리고 그의 문체는 많은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다. 장하준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위협적인 신자유주의 저격수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장하준에게는 시장경제의 심장에까지 펜을 겨눌 배짱은 없는 것 같다. 장하준은 윈스턴 처칠의 명언인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정치제도를 제외한다면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제도이다.”를 언급하며,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다는 것이지만.”이라고 말한다. 장하준은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라고 하지만,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제까지 가장 나았던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인류가 앞으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반문해왔다. 물론 이러한 반문에 대해 장하준 같은 이들은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그 가치를 격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하준과 우리의 이상주의 사이의 거리만큼 장하준의 경제학과 자본주의의 실제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준이 시장주의자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점 하나는 “20세기에는 특히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려면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 나라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나 재능보다 공동체 차원에서 효율적인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경제발전의 사회적 성격을 정당하게 지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가 쌓고 있는 막대한 부와 권력은 자본의 소유를 통해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이 점이 장하준은 말하지 않지만 역사상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말해왔던 자본주의적 ‘착취’이다. 자본주의 비판가들은 이러한 착취가 어떻게 경제발전이 가져다준 인간성의 전면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억압하는지를 말해왔다. 또한 이들은 단지 소수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자신들의 집단적 노력의 성과를 고루 전유할 수 있는 사회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인간해방의 이상주의가 헛것이 아니었다는 점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약진과 복지국가의 건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회주의 운동이 서구민주주의와 복지국가 발전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인정한 책은 넘친다). 실은 장하준 자신도 반자본주의 운동 가운데서 제기된 아이디어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를 그나마 더 낳게 만들어온 동력은 ‘착취 없는 사회’라는 이상과 정의에 대한 많은 이들의 헌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치경제학자가 되기에 장하준은 보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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