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26.04.23. 작성


  202631(이란 기준, 한국 시간 32)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다. 전쟁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정치자도자의 선택을 넘어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가 낳은 역설과 제국주의적 경쟁의 문제가 드러난다.

 

이들을 어찌하오?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에서 비롯됐다는 건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이다. 트럼프가 대표하는 MAGA 프로젝트가 얼핏 해외문제 불개입으로 읽힐 수 있는 미국 우선주의(국내문제 우선)를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마두로 납치와 쿠바 위협, 이란 공격의 최근 연이은 결정들은 자기모순으로 보인다. 상호관세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판결, 그리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계속 낮아지는 지지율 추이 같은 정치적 위기 상황을 일련의 군사적 모험으로 타개하려 한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트럼프 일가가 이란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설득이 유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타냐후부터가 뇌물 수수와 배임 혐의로 인한 사법적, 정치적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해왔다는 비판을 받는 정치인이다. 2023년 하마스 전쟁부터 헤즈볼라와의 충돌과 이란 공습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멈추기보다는 저항의 축을 완전히 부러트린다는 위험한 도박으로 이스라엘을 거칠게 몰아 왔다. 도박에 걸린 판돈에 자신의 사면까지 포함돼있다는 듯이 말이다.


  트럼프가 전 세계에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고 고집하는 동안 미국 의회가 어떤 제동도 걸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충격적이었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위태한 민낯이 드러났는데, 얼마 전 계엄 선포를 겪은 한국에서는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복원과 확장이라는 의제가 다시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이 실패를 부르다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의 한 축이 이스라엘 건국으로부터 시작한 네 차례의 중동 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라면, 다른 한 축은 이란-이라크이다. CIA 공작에 힘입은 친위쿠데타 이후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왔던 팔레비 왕조가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몰락하면서, 이란은 반서방 이슬람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를 틈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기회주의적 공격으로 1980년부터 8년 동안 이란-이라크 전쟁이 지속됐다.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미국은 겉으로는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비밀히 이란도 지원했는데, 균형 유지를 통해 신뢰할 수 없는 양면을 함께 약화시키려 했던 것 같다. 미국의 의도대로였는지 오랜 전쟁으로 약해진 두 국가가 자신의 취약성에 대응하기 위해 행한 결정들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사담 후세인은 8년 동안 잃어버린 판돈을 한 번에 되찾으려는 듯 다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아버지 부시에게 패배하고, 12년 후인 2003년에는 아들 부시에게 이라크를 빼앗기고 처형당했다. 후세인이 사라진 이라크에서는 중앙정부가 힘을 잃으며 IS가 준동하고, 시아파 민병대는 독자적인 친이란 세력을 이룬다.


  반면 이라크와의 전쟁 및 혁명 수호 과정과 이어진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서 이란은 사회를 더 옥죄는, 군사화되고 경직된 국가로 변모해왔는데, 경쟁하던 이라크가 부시 부자에 의해 붕괴된 공간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적대하는 이슬람주의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이란으로부터 시작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지금은 몰락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축이 형성됐다.


  저항의 축이 견고해지고 이스라엘이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 상시 분쟁을 겪으면서, 이와 같은 이란발 안보 위기를 이란을 직접 타격함으로써 최종 종식시킨다는 게 이스라엘의 전략이 되었다. 한편 미국은 불량 국가가 튀어 오르면 이스라엘을 앞세우거나 직접 나서서 두드린다는 해묵은 습관을 이번에 다시 꺼내든 셈인데, 지난 역사에서 보듯이 미국의 개입은 단기적으로 성공할지라도 결국은 새로운 적들과 저항에 부딪쳐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기적 성공조차 거두지 못할 것 같다.

 

제국주의 전쟁


  미국은 왜 중동에 개입해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은 보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오래된 친교가 암시하듯 이스라엘과 미국내 유대인 사회의 미국 정가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비설을 음모론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게 국제정치학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이루어져 온 주제이며, 국제정치이론 중 공격적 현실주의의 대가인 미어샤이머 교수가 공저한 <이스라엘 로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연구 중 하나다.

  

  다른 설명은 미국의 석유 통제 야망이다. 석유는 현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플라스틱과 비료의 원료이다. 저렴한 석유는 경제성장에 필수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서방 중동 왕정국가들이 달러로만 석유를 팔고, 벌어든 달러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미국 패권에 크게 기여해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라크 점령과 이란 제제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목적에 논리적으로 부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경제가 탈제조화·금융화되고, 셰일혁명에 힘입어 에너지 생산이 증가하면서 중동 석유의 중요성이 감소한 까닭에 이란 전쟁은 석유 통제의 목적 때문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반박하면서 더 포괄적인 관점이 있는데, 제재를 우회하여 중국으로 값싸게 팔려나가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석유를 미국이 통제할 수 있을 경우 중국의 에너지 수입망을 손에 쥐고 압박할 수 있다는 기회에 주목한다.


  트럼프의 최근 일련의 군사 행동을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맥락으로 읽다 보면 불안한 미래로 이어진다.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관세와 공급망 분리에 이어 군사력 사용으로까지 수단을 넓혀가고 있다. 상대가 우위를 점하는 지역으로 침투하고 세력권을 넓히려는 패권 경쟁이 혈투로 번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곳은 대만이 될 수도,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식민지와 금융자본의 세력권을 분할·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으로 규정했었다. 제국주의는 자본 가운데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금융자본(금융을 매개로 산업자본이 결합하여 독과점적 지위에 도달한 자본 형태를 말한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팽창적·군사적 국가체제이다. 그래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본을 멈추고 조국을 뒤엎으라고 했다. 이러한 접근법이 현재에도 유효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단일 패권이 저물고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지금의 세계는, 과거의 제국주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불안을 남긴다. 이 불안과 혼란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보려 할 때, 몇 권의 책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박노자의 <전쟁 이후의 세계>, 존 리즈의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니콜라이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그리고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같은 책들이다. 이 책들이 당장의 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양극화에 대한 치유없는 환상 : 재벌개혁

 

 

재벌개혁론과 민주노총, 그리고 새사연

 

오늘 822일과 23일에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가 개최된다. 각 사업장과 지역, 산별에서의 현장토론을 거쳐 정책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의 새로운 20을 만들어갈 조직혁신전략안을 채택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중앙은 현장토론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전략투쟁 및 조직강화, 조직확대, 정치전략 방안이 담겨있다. 이글에서는 이중 전략투쟁 방안에서의 재벌체제 극복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의 담론을 비판한다.

 

토론자료에서는 재벌체제 극복의 방향으로 전략산업에 대한 공공 개입구조 확보 및 재벌 통제 강화, 세습 타파, 사내유보금 환수와 함께 재벌개혁 정책 실현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는데, 다른 요구와 달리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이 내용은 2012년에 민주노총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함께 개최한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토론회 발제문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당시 토론회 발제문의 작성자는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이었다.

 

재벌개혁의 문제의식과 본질

 

발제문에서 김병권은 재벌개혁을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을 강력히 규제”(이하 따옴표 안은 발제문에서 인용)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재벌이 막강한 경제 권력으로 등장하여 이익을 독식하고 중소기업을 포함한 여타 경제주체들의 생존환경을 파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절히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그리고 출자총액제 확대, 계열분리 명령제, 재벌세 신설 등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런 대안의 본질은 재벌을 부인하는게 아니라 무차별하게 국민경제를 독식하려는 재벌체제에 대해 일정한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것이다.

 

모두 기억하다시피 2012년은 대선이 있었던 해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공약에 국민들이 낚시질을 당했었다. 현재 경제민주화 약속은 완전 휴지조각이 됐고, 새누리당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함께 춤을 추던 자칭 민주진보세력은 어떤 진전된 논의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왜 경제민주화 담론이 말짱 도루묵이 됐는지 성찰은 없이 함께 헛들떠 떠들던 이야기를 새로운 20을 준비하는데 호출한 건 직무태만이다.

 

환상으로의 투항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나서 서둘러 경제민주화를 망각한 건 그것이 한국경제의 정상적인 작동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점을 누군가가 올바로 일깨워준 이유도 있을 것 같다. 한국경제를 국민경제균형의 틀로 바라보아서는 그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재벌이 지휘하는 생산체제이고, 이 생산체제는 글로벌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사회를 모두 씹어 삼키고 있으며, 또 그래야만 증식해나갈 수 있다. 대기업에게 자원(우수인력, 자금, 사업기회 등) 몰아주기, 쥐어짜내기 좋은 하청구조,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운동 봉쇄, 해외진출 목돈 마련 또는 해외손실 보전에 편리한 국내시장 등 이런 것들은 재벌체제가 원할하게 성장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정상적인 풍경이다. 이제까지 한국경제가 남달리 성장해온 방법이고, 이러한 양극화·불균형은 재벌체제의 자연스런 일부이다. 그런데 양극화 없는 재벌체제? 균형 잡힌 동반성장? 이는 칼로리 없는 음식에 대한 욕망과도 같다.

 

진리는 전체다. 양극화를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재벌체제는 한국자본주의의 성장논리가 도달한 현재 모습이며, 재벌과 양극화는 동일한 실체의 양면이다. 따라서 규제되고 개혁된 재벌, 그래서 양극화 없는 재벌체제에 대한 요구는 환상으로의 투항이다.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해체이고, 사회화와 노동자통제가 해체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운영원리에 대한 상상력이 지난 30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고, “생산의 주역이며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주체라는 민주노총의 선언을 실현하는 길이다.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20은 자본주의 극복과 노동해방의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이 많아짐으로써만 실제로 가능하다. 그러나 재벌개혁론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계급의식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구를 위한 양적완화인가?

 

 

한국판 양적완화의 출현

 

세계경제를 쓸어버릴 것 같았던 2008년 금융위기를 저지했던 건 미국 연준(FRB)의 양적완화였다. 연준은 달러 발권력을 동원하여 악성채권을 제한 없이 사들이는 방법으로 금융기관들의 파산을 막아주었다. 그간 중앙은행의 역할은 기준금리를 정하거나 정부의 재정적자를 지탱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금융상품을 사들인 건 초유의 사태가 만들어낸 비전통적인행동이었다.

 

2016년 한국, 조선 해운 구조조정이 이슈가 되자 한국판 양적완화가 해법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양적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부 채권을 인수할 수 있게 하여 기업과 가계부채의 구조조정을 돕는다는 정책이었다.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426일 박 대통령은 언론에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말을 처음 꺼냈다. 이에 안철수 당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라고 이죽거리자 대통령의 다른 말실수처럼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조선 해운 구조조정 실탄을 한국은행 발권력으로 마련한다는 구상으로 청와대가 한은을 압박하면서, 양적완화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속셈

 

정부가 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가 원판과 다른 점은 심각한 경기후퇴를 막기 위한 무제한적 화폐공급이 아닌, 구조조정이 긴요한 부문에 대한 제한적 수혈이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구제금융이라고 부르면 될 것을 양적완화라고 이름 붙여 불필요한 논란을 낳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굳이 양적완화라고 표현하는 건 구제금융 자금을 정부가 부담했던 이전의 방식과는 달리 한은이 직접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추경예산을 편성(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하지 않아도 되고, 향후 구조조정의 성패에 대한 책임도 한은과 나눌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정부의 계획에는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한데 꼼수에 야당이 호락호락 동의해줄 것 같지 않다. 또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의 정책목표에 따라 이리저리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예사가 되면, 화폐가치의 안전성 유지를 위해 독립성을 보장받은 한국은행의 위상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2008년 이후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동하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입장이다. 보다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손실의 사회화에 대해 비판한다. 화폐가치 하락이라는 전국민적 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재벌이 저질러놓은 손실을 메워주겠다는 친기업적 발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

 

양적완화와 관련한 논쟁에서 기발한 참고점이 있다. 바로 영국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이 주창하고 있는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이다. 코빈은 민간 금융기관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의 미국과 EU의 양적완화가 실물경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점을 비판하며, 대규모 공공투자에 직접 화폐를 공급하는 방식의 양적완화를 주장한다. 양적완화라는 경제현실을 인정하되,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말하는 셈이다.

 

중앙은행이 자신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양적완화는 그간 경제시스템에서 일종의 금기였지만, 전통적인 경제조절기제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한계 즉, 국가부채 폭증과 제로금리에 도달해서도 경제를 살려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호출되었다. 뉴딜정책 이후로 정부지출 없는 자본주의가 가능하지 않게 된 것처럼 앞으로는 양적완화 없는 자본주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이다. 복지 확대와 긴축 사이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이 앞으로는 양적완화로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할지를 놓고 새롭게 벌어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가역적 변화와 민주적 통제라는 관점 하에서 우리도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를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선거구 재획정과 구닥다리 정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3일에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에 대한 원칙을 합의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원수를 현재보다 7명 많은 253명으로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원수를 47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역구의 총수와 각 지역구 경계를 바꾸는 선거구 획정은 199615대 총선 때부터 반복해온 문제이다. 이는 각 지역구간 인구수의 현격한 차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여러 차례 위헌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한 명씩을 선출하는 선거구들 중 어떤 곳은 수 십만 명에 이르는데 반해 어떤 곳은 몇 만 명에 불과해 선거구마다 한 표의 무게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이에 헌재는 선거구간 최대 인구편차를 1995년에는 41, 2001년에는 31, 2014년에는 21로 낮추라고 판결해왔다. 인구에 비례해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동안 정치권이 방치해온 탓에 헌재의 결정은 타당했다.

  하지만 여야는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꼼수를 야합하며 헌법정신을 언제나 그렇듯 다시 조롱하고 있다.

 

지역주의 온존과 반-정치개혁

 

  지역구를 늘리는 데 여야가 모두 공감한 건 그들이 함께 누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헌재 기준대로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21로 낮추기 위해서는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끼리를 통합하거나 인구수가 많은 선거구를 쪼개야한다. 그런데 인구수가 많은 선거구들을 나눌수록 최대 인구수가 내려가므로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선거구 총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여야가 택한 방법이 바로 이러하다.

  이처럼 여야가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의 통합을 피하는 것은 대개 농어촌에 위치하는 이들 선거구들이 자신들의 탄탄한 텃밭이기 때문이다. 이들 농어촌 선거구들이 노회한 국회의원들의 안방이거나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누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곳들이 많으니, 통폐합해 그 수를 줄여 제 살을 깎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놈의 지역주의를 우려먹기 위함이다.

  또다른 문제는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려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인 점이다. 현재와 같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다수 이외의 표심은 민의로 반영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표심리를 야기해 새 정치세력의 진출을 가로막기 때문에 정치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꼽혀온 게 비례대표 증가이다. 그런데 선거구 재획정을 틈타 오히려 비례대표를 줄이는 반-개혁을 여야가 함께 단행한 것이다.

 

같은 뿌리의 여와 야

 

  지역주의 온존, 정치퇴행에 여야가 이해를 같이 하는 건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동일한 지배질서의 두 양상에 불과하다는 증거이다. 지역주의가 온존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선거운동보다 중요한 게 공천이고, 공천과정에서는 당원은 들러리이고 공천권을 장악한 계파 수장이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계파 수장들은 재벌 및 언론과 결탁하여 제 조직을 관리하고, 이런 계파들이 이합집산하며 정당 행세를 한다. 안철수 신당 역시 이런 구태의 반복에 불과하다. 이러니 국회가 민심보다 몇몇 보스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열심이고, 우두머리들은 과반의 표를 만들어내기 위한 편가르기와 선동, 정치공학에 몰두한다. 몇몇 정치인과 재벌, 언론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그 토대가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인 셈이다.

  결국 여야가 공히 자신들이 기생하는 토대를 더 굳건히 하는데 이번 선거구 재획정을 이용한 게 한바탕 소동의 본질이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구닥다리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에는 한 마음이다. 여와 야의 작은 차이를 과장하며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니 야권 연대니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동개혁앞에 흔들리는 노동계급

 

 

86,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경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노동개혁을 으뜸으로 하는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려우니,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한다.

임금피크제와 저성과자 퇴출제, 성과급제를 내세운 정부의 노동개혁 도발에 맞서 양대노총이 함께 투쟁하는가 싶더니,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해 버렸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권의 다짐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어떤 변화도 현재보다는 낫겠지라는 불만 상태

 

투쟁의 형세는 녹록치 않다.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각국의 생존경쟁저성장 고착화”, “고용창출력 약화등의 경제문제가 만들어진 위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문제 있다라는 건 실감하고 있고,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일단은 해결방안을 던져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해결방안이란 게 편가르기와 책임 떠넘기기, 이간질로 국민정서를 자극하며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청년 대 장년, 비정규직·실업자 대 정규직, 민간 대 공공부문으로 편을 나누고, 후자를 기득권 세력으로 몰며 양보와 타협을 종용한다. 반대하자니 기득권 세력이고, 찬성하자니 생계가 달려 있는 답답한 형국이다.

그런데 조직노동자들이 청년,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처지를 가벼이 여겨서는 온갖 불명예와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노동계급이라는 추상적인 동질성 아래의 민낯들이 노동개악 선동의 불씨이자 연료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한 구석에는 연줄로 들어오거나 고용안전을 방패로 상식적인 책임감도 없이 고임금만 챙겨가는 집단이 분명 있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대기업 노동자가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행하는 갑질과 주는 상처가 적다 할 수 없고, 일은 더 하면서 월급은 반도 안 되는 고스펙의 젊은 직원들이 연공서열과 호봉제에 갖는 반감은 클 것이다. 실업 상태인 청년들이 가지는 박탈감과 불안은 이보다도 훨씬 클 것이고, 이런 현실들이 분열과 서로에 대한 몰이해, 불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보듬어지지 않는 피해의식은 어떤 변화도 현재보다는 낫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이어진다. 이 틈새를 박근혜 정부가 치고 들어오고 있다.

 

틈새를 채울 연대와 과감한 대안

 

우리 조합원들만 챙겨서는 바깥에서 욕 먹고 안에서도 소수가 되는 시대가 된지 이십여년째인데, 그간 노동운동의 변화는 더디었고 청년과 비정규직 프레임까지 정부에 내준 꼴이 되었다. 노동운동의 선전 속에서는 비정규직 등의 약자가 우선이었지만 많은 조합원들의 실제 삶에서는 뒷전이었던 탓이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물질적 팽창 속에서 남 못지 않은 생활을 누리는 사이, 어느새 자기 삶을 향하는 부러움과 박탈감에 연대의 손을 건네지 못했던 결과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은 최종 시험대가 될 것이다. 노동계급 내부의 틈새를 실제로 채워가는 연대 없이, 또 정부와 자본에 구실을 내주었던 잘못된 행태들에 대한 자정 없이는 임금피크제와 쉬운 해고, 동료들간의 극심한 경쟁, 노동조합 해체가 모두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그리고 노동개혁이 한국경제가 앓고 있는 중병에 대한 저들의 처방이니만큼 단순히 노동개악 저지가 아니라, 우리도 경제대안을 제출하고 이와 유기적인 전략과 조직을 구성해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오늘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이다. 성장이 느려지고 일자리가 부족해진 건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해서이다. 거대한 물질적 팽창으로 매번 위기를 넘겨왔지만, 이제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자수와 임금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자본 대신 공공부문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야 하고, 공공부문 확대를 위해 시장화를 멈추고 자본의 사회화(·공유화)가 추진돼야 한다. 과감한 대안과 급진적인 의지가 험로를 밝힐 빛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