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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라운의 정의


노예제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이 터지기 전인 1859년 12월 2일에 59세의 한 남자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는 백인이면서 흑인 노예를 위해 백인들에게 총을 쏘고, 노예제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실행했다가 버지니아 주 법정에 의해 교수대에 섰다. 두 해 후 버지니아 주는 남부연합의 수도가 위치하는 곳이 된다. 남부 한복판에서 노예를 위해 총을 뽑았다가 사형 당한 이의 이름은 존 브라운이다. 훗날 말콤 엑스가 자신이 대표하는 급진적 흑인해방조직에 백인이 가입할 수 있냐는 질문에 “존 브라운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라는 답변 속의 인물이다.


존 브라운과 그를 따르는 21명이 버지니아에서 실행하려한 계획은 하퍼스 페리 병기창에서 대량의 무기를 탈취하고, 인근 노예들을 무장시켜 산악지대로 옮긴 다음, 게릴라전을 벌이며 해방전쟁의 거점을 세우는 것이었다. 흑인 노예들의 무장 반란을 조직하여 노예제를 끝장내려 한 대담한 시도는 그러나, 병기창에서 연방 부대에 의해 진압당하고 말았다. 감옥에 갇혀 작성한 마지막 메모에서 그는 자기 행동의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존 브라운은 이제 확신한다. 이 죄 많은 땅의 범죄들은 피로써가 아니고서는 결코 씻겨 나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 일이 그리 많은 피 흘림 없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헛되이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그의 확신은 남북전쟁에서 70여만 명이 죽고 나서야 노예제가 폐지되었다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납치와 인신매매, 노예화, 가혹한 폭력으로 부를 쌓아온 반인간적 체제는 스스로 멈출 수도, 평화적인 해체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오직 또 다른 폭력만이 노예제를 파괴할 수 있었다.


남부 노예제를 파괴한 북부의 전쟁을 죄악을 끝내기 위한 불가피한 정의로 받아들인다면, 노예에 총을 들려 노예제를 전복하려 했던 존 브라운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남부 노예주의 법정은 존 브라운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폭력을 멈추기 위한 반폭력의 저항으로서 그 정의와 정당성은 훼손될 수 없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존 브라운을 단죄했던 이들은 고대 스파르타쿠스의 용기와 무자비함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73년, 이탈리아 카푸아의 검투사 양성소에서 동료 검투사들과 함께 탈출하며, 로마 역사상 가장 거대한 노예반란의 지도자가 되었다. 베수비오 산에서 토벌군을 기습해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전역을 이동하며 여러 차례 로마 군단에 승리했고, 반란군은 한때 수만 명 규모로까지 커졌다. 그러나 결국 로마의 대대적인 공세 끝에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는 최후의 전투 가운데 죽고, 이후 사로잡힌 수천 명은 아피아 가도에 줄지어 만들어진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했다.


반란군의 투쟁에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의 열망과 로마에 대한 복수의 욕구가 뒤섞여 있었다. 노예는 인간이 아닌 사고파는 재산이었고, 채찍질과 낙인, 족쇄, 광산노동, 공개처형 같은 처벌에 노출되어 있었다. 검투사 역시 대중의 오락을 위한 노예였으며, 그들의 생사는 경기장의 환호에 달려있었다.


로마는 끊임없는 팽창과 전쟁을 통해 노예를 만들어냈다. 원로원 의원 같은 유력자들은 쏟아지는 노예들로 대농장(라티푼티움)을 경영하고 부를 쌓았다. 유력자들이 대규모 노예들을 유지하고 자신의 지위와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계속되어야 했고, 로마의 승리는 지중해와 그 주변의 수많은 종족들을 노예로 전락시켰다.


개선식과 대량의 노예를 안겨준 전쟁기계의 중추는 왕이 없는 공화국에 대한 주권자의 의무를 부담하기 위해 스스로 무장을 하고 참여한 평민들이었다. 공화정의 로마는 시민병제였고, 자신의 토지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짓다가, 공화국의 부름에 따라 수 년 간의 해외원정에까지 나서야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팽창과 노예제 호황 과정에서 다수의 소농들은 그 결실을 나누지 못했고, 그들이 의무를 다하는 사이 토지는 대농장으로 병합되고, 자신들은 빈민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이처럼 노예제는 평민들의 삶까지 망가뜨리는 독이었으나, 평민들로 이뤄진 로마 군대는 노예반란을 무너뜨렸다. 반대로 노예제 폐지와 토지분배, 평화를 걸고 평민이 노예와 함께 싸워 귀족의 지배를 무너트릴 수는 없었을까? 실제로 일부 자유민들이 스파르타쿠스 반란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참여가 더 넓은 연대와 새로운 공동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식민지의 노예들이 스스로 봉기하여 해방을 쟁취하고, 식민제국 중심의 민중과 혁명정부는 노예제 폐지를 선언하는 극적인 순간은 훨씬 나중에야 가능했다.

 

최초로 성공한 노예혁명


1804년에 독립하기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생도맹그는 유럽으로 수입되는 설탕의 약 40%, 커피의 약 60%를 공급했던,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던 식민지였다. 높은 수익성의 비결은 생도맹그 인구의 90%를 이루었던 노예에 대한 가혹한 착취였다. 과중한 노동과 영양실조, 질병, 폭력 때문에 플랜테이션 노예의 사망률은 높았고,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 수입으로 죽은 노동력을 대체했다.


그런데 1789년 식민제국의 중심이었던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혁명에 나선 부르주아지와 도시 민중, 농민들은 신분과 출생에 따라 특권을 쥐어주는 구체제를 역사에서 지우려 했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선언한 혁명은 해방이 특정 집단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라 말하였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생도맹그를 비롯하여 식민지에서의 노예제는 계속 건재하였다.


하지만 혁명의 언어는 결국 노예제의 모순과 결합하였다. 1791년 생도맹그 북부 평원의 농장들에서 대규모 노예봉기가 일어나, 백인 농장주들의 지배를 무너뜨렸다. 이에 대한 파리의 처음 반응은 진압군의 파견이었다. 그런데 1793년 국제정세가 일변하였다. 유럽에서 군주국들 사이에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고, 전선은 식민지로도 확대되었다. 생도맹그에서 프랑스 공화국군은 내부에서는 노예반군과 반혁명적 백인 식민자들, 외부에서는 영국군과 스페인군에 맞서야 했다. 공화국 파견위원은 열세를 뒤집기 위해 일부 노예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러한 제한적 해방은 노예들의 계속된 투쟁과 전쟁의 압력 속에서 확대되어, 1793년 생도맹그 전역의 노예제 폐지로 이어졌다. 1794년 파리 국민공회는 이를 추인하고, 나아가 모든 식민지에서의 노예제 폐지를 선언하며, 공화국과 그 대의의 방어가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제로 구현해가는 길에 달려 있음을 결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반대로 쿠데타로 집권하며 결국에는 공화국을 질식시키는 나폴레옹은 1802년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생도맹그에서 노예제를 복구하려 했다. 흑인 군대는 이에 맞서 독립전쟁에 나섰고, 1803년 원정군을 최종적으로 격파하며, 이듬해 1월 1일 아이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생도맹그의 봉기는 노예들이 스스로 노예제를 무너뜨리고 반혁명적 군대를 물리쳐 독립국가를 세운, 역사상 최초의 성공한 노예혁명을 완성시켰다.


스파르타쿠스 반란과 아이티 혁명에 대한 국내서적으로는 베리 스트라우스의 <스파르타쿠스 전쟁>, 시 엘 아르 제임스의 <블랙 자코뱅>, 로런트 듀보이스의 <아이티 혁명사> 등이 있다. 존 브라운에 대해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이 있고, 에단 호크가 존 브라운을 연기한 드라마, <The Good Lord Bird>가 흥미롭다. 가장 억압받는 자들의 자기 해방을 향한 투쟁을 읽으며 우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순간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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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3. 작성


  2026년 3월 1일(이란 기준, 한국 시간 3월 2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다. 전쟁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정치자도자의 선택을 넘어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가 낳은 역설과 제국주의적 경쟁의 문제가 드러난다.

 

이들을 어찌하오?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에서 비롯됐다는 건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이다. 트럼프가 대표하는 MAGA 프로젝트가 얼핏 해외문제 불개입으로 읽힐 수 있는 미국 우선주의(국내문제 우선)를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마두로 납치와 쿠바 위협, 이란 공격의 최근 연이은 결정들은 자기모순으로 보인다. 상호관세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판결, 그리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계속 낮아지는 지지율 추이 같은 정치적 위기 상황을 일련의 군사적 모험으로 타개하려 한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트럼프 일가가 이란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설득이 유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타냐후부터가 뇌물 수수와 배임 혐의로 인한 사법적, 정치적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해왔다는 비판을 받는 정치인이다. 2023년 하마스 전쟁부터 헤즈볼라와의 충돌과 이란 공습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멈추기보다는 ‘저항의 축’을 완전히 부러트린다는 위험한 도박으로 이스라엘을 거칠게 몰아 왔다. 도박에 걸린 판돈에 자신의 사면까지 포함돼있다는 듯이 말이다.


  트럼프가 전 세계에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고 고집하는 동안 미국 의회가 어떤 제동도 걸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충격적이었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위태한 민낯이 드러났는데, 얼마 전 계엄 선포를 겪은 한국에서는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복원과 확장이라는 의제가 다시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이 실패를 부르다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의 한 축이 이스라엘 건국으로부터 시작한 네 차례의 중동 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라면, 다른 한 축은 이란-이라크이다. CIA 공작에 힘입은 친위쿠데타 이후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왔던 팔레비 왕조가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몰락하면서, 이란은 반서방 이슬람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를 틈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기회주의적 공격으로 1980년부터 8년 동안 이란-이라크 전쟁이 지속됐다.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미국은 겉으로는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비밀히 이란도 지원했는데, 균형 유지를 통해 신뢰할 수 없는 양면을 함께 약화시키려 했던 것 같다. 미국의 의도대로였는지 오랜 전쟁으로 약해진 두 국가가 자신의 취약성에 대응하기 위해 행한 결정들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사담 후세인은 8년 동안 잃어버린 판돈을 한 번에 되찾으려는 듯 다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아버지 부시에게 패배하고, 12년 후인 2003년에는 아들 부시에게 이라크를 빼앗기고 처형당했다. 후세인이 사라진 이라크에서는 중앙정부가 힘을 잃으며 IS가 준동하고, 시아파 민병대는 독자적인 친이란 세력을 이룬다.


  반면 이라크와의 전쟁 및 혁명 수호 과정과 이어진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서 이란은 사회를 더 옥죄는, 군사화되고 경직된 국가로 변모해왔는데, 경쟁하던 이라크가 부시 부자에 의해 붕괴된 공간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적대하는 이슬람주의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이란으로부터 시작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지금은 몰락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축’이 형성됐다.


  저항의 축이 견고해지고 이스라엘이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 상시 분쟁을 겪으면서, 이와 같은 이란발 안보 위기를 이란을 직접 타격함으로써 최종 종식시킨다는 게 이스라엘의 전략이 되었다. 한편 미국은 불량 국가가 튀어 오르면 이스라엘을 앞세우거나 직접 나서서 두드린다는 해묵은 습관을 이번에 다시 꺼내든 셈인데, 지난 역사에서 보듯이 미국의 개입은 단기적으로 성공할지라도 결국은 새로운 적들과 저항에 부딪쳐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기적 성공조차 거두지 못할 것 같다.

 

제국주의 전쟁


  미국은 왜 중동에 개입해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은 보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오래된 친교가 암시하듯 이스라엘과 미국내 유대인 사회의 미국 정가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비설을 음모론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게 국제정치학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이루어져 온 주제이며, 국제정치이론 중 공격적 현실주의의 대가인 미어샤이머 교수가 공저한 <이스라엘 로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연구 중 하나다.

  

  다른 설명은 미국의 석유 통제 야망이다. 석유는 현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플라스틱과 비료의 원료이다. 저렴한 석유는 경제성장에 필수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서방 중동 왕정국가들이 달러로만 석유를 팔고, 벌어든 달러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미국 패권에 크게 기여해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라크 점령과 이란 제제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목적에 논리적으로 부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경제가 탈제조화·금융화되고, 셰일혁명에 힘입어 에너지 생산이 증가하면서 중동 석유의 중요성이 감소한 까닭에 이란 전쟁은 석유 통제의 목적 때문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반박하면서 더 포괄적인 관점이 있는데, 제재를 우회하여 중국으로 값싸게 팔려나가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석유를 미국이 통제할 수 있을 경우 중국의 에너지 수입망을 손에 쥐고 압박할 수 있다는 기회에 주목한다.


  트럼프의 최근 일련의 군사 행동을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맥락으로 읽다 보면 불안한 미래로 이어진다.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관세와 공급망 분리에 이어 군사력 사용으로까지 수단을 넓혀가고 있다. 상대가 우위를 점하는 지역으로 침투하고 세력권을 넓히려는 패권 경쟁이 혈투로 번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곳은 대만이 될 수도,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식민지와 금융자본의 세력권을 분할·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으로 규정했었다. 제국주의는 자본 가운데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금융자본(금융을 매개로 산업자본이 결합하여 독과점적 지위에 도달한 자본 형태를 말한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팽창적·군사적 국가체제이다. 그래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본을 멈추고 조국을 뒤엎으라고 했다. 이러한 접근법이 현재에도 유효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단일 패권이 저물고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지금의 세계는, 과거의 제국주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불안을 남긴다. 이 불안과 혼란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보려 할 때, 몇 권의 책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박노자의 <전쟁 이후의 세계>, 존 리즈의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니콜라이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그리고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같은 책들이다. 이 책들이 당장의 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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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 대한 치유없는 환상 : 재벌개혁

 

 

재벌개혁론과 민주노총, 그리고 새사연

 

오늘 8월 22일과 23일에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가 개최된다. 각 사업장과 지역, 산별에서의 현장토론을 거쳐 정책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의 새로운 20년”을 만들어갈 조직혁신전략안을 채택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중앙은 현장토론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전략투쟁 및 조직강화, 조직확대, 정치전략 방안이 담겨있다. 이글에서는 이중 전략투쟁 방안에서의 “재벌체제 극복”에 대한 민주노총 중앙의 담론을 비판한다.

 

토론자료에서는 재벌체제 극복의 방향으로 전략산업에 대한 공공 개입구조 확보 및 재벌 통제 강화, 세습 타파, 사내유보금 환수와 함께 “재벌개혁 정책 실현”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는데, 다른 요구와 달리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이 내용은 2012년에 민주노총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함께 개최한 「재벌체제 개혁과 경제민주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토론회 발제문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당시 토론회 발제문의 작성자는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이었다.

 

재벌개혁의 문제의식과 본질

 

발제문에서 김병권은 재벌개혁을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을 강력히 규제”(이하 따옴표 안은 발제문에서 인용)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재벌이 “막강한 경제 권력으로 등장하여 이익을 독식하고 중소기업을 포함한 여타 경제주체들의 생존환경을 파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절히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그리고 출자총액제 확대, 계열분리 명령제, 재벌세 신설 등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런 대안의 본질은 “재벌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무차별하게 국민경제를 독식하려는 재벌체제에 대해 일정한 규제의 틀을 씌우자”는 것이다.

 

모두 기억하다시피 2012년은 대선이 있었던 해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국민들이 낚시질을 당했었다. 현재 경제민주화 약속은 완전 휴지조각이 됐고, 새누리당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함께 춤을 추던 자칭 민주진보세력은 어떤 진전된 논의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왜 경제민주화 담론이 말짱 도루묵이 됐는지 성찰은 없이 함께 헛들떠 떠들던 이야기를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데 호출한 건 직무태만이다.

 

환상으로의 투항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나서 서둘러 경제민주화를 망각한 건 그것이 한국경제의 정상적인 작동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점을 누군가가 올바로 일깨워준 이유도 있을 것 같다. 한국경제를 “국민경제”와 “균형”의 틀로 바라보아서는 그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재벌이 지휘하는 생산체제이고, 이 생산체제는 글로벌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이 땅과 그 위의 사람과 사회를 모두 씹어 삼키고 있으며, 또 그래야만 증식해나갈 수 있다. 대기업에게 자원(우수인력, 자금, 사업기회 등) 몰아주기, 쥐어짜내기 좋은 하청구조,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운동 봉쇄, 해외진출 목돈 마련 또는 해외손실 보전에 편리한 국내시장 등 이런 것들은 재벌체제가 원할하게 성장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정상적인 풍경이다. 이제까지 한국경제가 남달리 성장해온 방법이고, 이러한 양극화·불균형은 재벌체제의 자연스런 일부이다. 그런데 양극화 없는 재벌체제? 균형 잡힌 동반성장? 이는 칼로리 없는 음식에 대한 욕망과도 같다.

 

진리는 전체다. 양극화를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재벌체제는 한국자본주의의 성장논리가 도달한 현재 모습이며, 재벌과 양극화는 동일한 실체의 양면이다. 따라서 규제되고 개혁된 재벌, 그래서 양극화 없는 재벌체제에 대한 요구는 환상으로의 투항이다.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해체이고, 사회화와 노동자통제가 해체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운영원리에 대한 상상력이 지난 30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고, “생산의 주역이며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주체”라는 민주노총의 선언을 실현하는 길이다.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20년”은 자본주의 극복과 노동해방의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이 많아짐으로써만 실제로 가능하다. 그러나 재벌개혁론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계급의식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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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양적완화인가?

 

 

한국판 양적완화의 출현

 

세계경제를 쓸어버릴 것 같았던 2008년 금융위기를 저지했던 건 미국 연준(FRB)의 양적완화였다. 연준은 달러 발권력을 동원하여 악성채권을 제한 없이 사들이는 방법으로 금융기관들의 파산을 막아주었다. 그간 중앙은행의 역할은 기준금리를 정하거나 정부의 재정적자를 지탱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었는데, 이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금융상품을 사들인 건 초유의 사태가 만들어낸 “비전통적인” 행동이었다.

 

2016년 한국, 조선 해운 구조조정이 이슈가 되자 한국판 양적완화가 해법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양적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부 채권을 인수할 수 있게 하여 기업과 가계부채의 구조조정을 돕는다는 정책이었다. 총선에서 패배한 새누리당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4월 26일 박 대통령은 언론에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말을 처음 꺼냈다. 이에 안철수 당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라고 이죽거리자 대통령의 다른 말실수처럼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조선 해운 구조조정 실탄을 한국은행 발권력으로 마련한다는 구상으로 청와대가 한은을 압박하면서, 양적완화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속셈

 

정부가 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가 원판과 다른 점은 심각한 경기후퇴를 막기 위한 무제한적 화폐공급이 아닌, 구조조정이 긴요한 부문에 대한 제한적 수혈이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전문가들은 구제금융이라고 부르면 될 것을 양적완화라고 이름 붙여 불필요한 논란을 낳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굳이 양적완화라고 표현하는 건 구제금융 자금을 정부가 부담했던 이전의 방식과는 달리 한은이 직접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추경예산을 편성(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하지 않아도 되고, 향후 구조조정의 성패에 대한 책임도 한은과 나눌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정부의 계획에는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한데 꼼수에 야당이 호락호락 동의해줄 것 같지 않다. 또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의 정책목표에 따라 이리저리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예사가 되면, 화폐가치의 안전성 유지를 위해 독립성을 보장받은 한국은행의 위상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2008년 이후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동하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입장이다. 보다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손실의 사회화”에 대해 비판한다. 화폐가치 하락이라는 전국민적 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재벌이 저질러놓은 손실을 메워주겠다는 친기업적 발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

 

양적완화와 관련한 논쟁에서 기발한 참고점이 있다. 바로 영국 노동당 당수인 제레미 코빈이 주창하고 있는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이다. 코빈은 민간 금융기관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의 미국과 EU의 양적완화가 실물경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점을 비판하며, 대규모 공공투자에 직접 화폐를 공급하는 방식의 양적완화를 주장한다. 양적완화라는 경제현실을 인정하되, 이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말하는 셈이다.

 

중앙은행이 자신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양적완화는 그간 경제시스템에서 일종의 금기였지만, 전통적인 경제조절기제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한계 즉, 국가부채 폭증과 제로금리에 도달해서도 경제를 살려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호출되었다. 뉴딜정책 이후로 정부지출 없는 자본주의가 가능하지 않게 된 것처럼 앞으로는 양적완화 없는 자본주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이다. 복지 확대와 긴축 사이에서 벌어진 계급투쟁이 앞으로는 양적완화로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할지를 놓고 새롭게 벌어질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가역적 변화와 민주적 통제라는 관점 하에서 우리도 민중을 위한 양적완화를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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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재획정과 구닥다리 정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 23일에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에 대한 원칙을 합의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원수를 현재보다 7명 많은 253명으로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원수를 47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역구의 총수와 각 지역구 경계를 바꾸는 선거구 획정은 1996년 15대 총선 때부터 반복해온 문제이다. 이는 각 지역구간 인구수의 현격한 차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여러 차례 위헌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한 명씩을 선출하는 선거구들 중 어떤 곳은 수 십만 명에 이르는데 반해 어떤 곳은 몇 만 명에 불과해 선거구마다 한 표의 무게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이에 헌재는 선거구간 최대 인구편차를 1995년에는 4대 1, 2001년에는 3대 1, 2014년에는 2대 1로 낮추라고 판결해왔다. 인구에 비례해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동안 정치권이 방치해온 탓에 헌재의 결정은 타당했다.

  하지만 여야는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꼼수를 야합하며 헌법정신을 언제나 그렇듯 다시 조롱하고 있다.

 

지역주의 온존과 반-정치개혁

 

  지역구를 늘리는 데 여야가 모두 공감한 건 그들이 함께 누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헌재 기준대로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2대 1로 낮추기 위해서는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끼리를 통합하거나 인구수가 많은 선거구를 쪼개야한다. 그런데 인구수가 많은 선거구들을 나눌수록 최대 인구수가 내려가므로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선거구 총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여야가 택한 방법이 바로 이러하다.

  이처럼 여야가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의 통합을 피하는 것은 대개 농어촌에 위치하는 이들 선거구들이 자신들의 탄탄한 텃밭이기 때문이다. 이들 농어촌 선거구들이 노회한 국회의원들의 안방이거나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누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곳들이 많으니, 통폐합해 그 수를 줄여 제 살을 깎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놈의 지역주의를 우려먹기 위함이다.

  또다른 문제는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려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인 점이다. 현재와 같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다수 이외의 표심은 민의로 반영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표심리를 야기해 새 정치세력의 진출을 가로막기 때문에 정치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꼽혀온 게 비례대표 증가이다. 그런데 선거구 재획정을 틈타 오히려 비례대표를 줄이는 반-개혁을 여야가 함께 단행한 것이다.

 

같은 뿌리의 여와 야

 

  지역주의 온존, 정치퇴행에 여야가 이해를 같이 하는 건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동일한 지배질서의 두 양상에 불과하다는 증거이다. 지역주의가 온존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선거운동보다 중요한 게 공천이고, 공천과정에서는 당원은 들러리이고 공천권을 장악한 계파 수장이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계파 수장들은 재벌 및 언론과 결탁하여 제 조직을 관리하고, 이런 계파들이 이합집산하며 정당 행세를 한다. 안철수 신당 역시 이런 구태의 반복에 불과하다. 이러니 국회가 민심보다 몇몇 보스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열심이고, 우두머리들은 과반의 표를 만들어내기 위한 편가르기와 선동, 정치공학에 몰두한다. 몇몇 정치인과 재벌, 언론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그 토대가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인 셈이다.

  결국 여야가 공히 자신들이 기생하는 토대를 더 굳건히 하는데 이번 선거구 재획정을 이용한 게 한바탕 소동의 본질이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구닥다리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에는 한 마음이다. 여와 야의 작은 차이를 과장하며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니 야권 연대니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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