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처럼 일한다는 것 - 위기에서 빛나는 스티브 잡스의 생존본능
리앤더 카니 지음, 박아람.안진환 옮김 / 북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스티브 잡스가 죽고 이를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처음으로 스티브 잡스에 대한 흥미가 일어, 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집어온 책이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책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무협지를 읽는 정도의 집중력이면 적당한 책이다. 누가 극찬했다던 지 어디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표지의, 얄팍한 일반화로 도출되고 분류된 몇 개의 교훈들이 각각의 장들을 이끌고, 일화와 인터뷰가 주를 이루며, 찬양으로 도배된 그런 책들 말이다.
 
  그래도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유익한 지식들도 있었다. 잡스가 어떤 이유들로 찬양받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잡스는 불황에 빠졌던 IT업계를 향후 30년은 먹여 살려줄 ‘디지털 라이프’ 시장을 개척했으며 이 새로운 시장에서 기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사용자 경험의 최우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통합’, ‘일관 제품군’ 등의 개념들을 통해 보여주었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혁신을 이끌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자인에 대한 잡스의 접근법이었다.
 
  “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디자인이 외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사실 작동 방식을 의미하지요.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외관을 의미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작동 방식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적절하게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본질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애기입니다. 무언가를 그냥 꿀꺽 삼키지 않고 철저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열정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잡스에게 디자인은 (신)기술을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러한 접근법에 따르면, 제품으로 구현되기 이전의 기술은 전문가만의 영역에 속하며, 일반 소비자에게는 그 복잡성으로 인해 사용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을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형태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외관의 문제를 넘어서며, 사용자가 제품의 작동원리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동작시키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잡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탁월했다.
 
  이전에는 전문가들이 직접 부품을 조립해 사용해오던 컴퓨터가 플러그만 꽂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의 형태로 처음으로 시장에 등장한 게 애플Ⅱ였고, 초소형 하드디스크와 디지털음원 재생기술은 이미 존재해왔지만 비로소 CD플레이어보다 쓸 만한 간편한 휴대용 음악재생기로 변환시킨 게 아이팟이었다. 또한 매킨토시가 최초로 구현했던 GUI 역시 복잡한 명령어를 직접 입력하는 수고 대신 작고 귀여운 아이콘들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으로 대신하여 사용자 이용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잡스식 디자인의 한 사례다. 즉 디자인은 외관 더하기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그런데 잡스가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은 외관과 인터페이스를 통일적인 것으로 다룬 점이다.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시킨 매킨토시의 디자인은 모니터와 본체를 코드로 직접 연결해야 하는 사용자 수고를 덜고 플러그 앤 플레이라는 애플Ⅱ의 정신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잡스의 디자인 정신은 애플의 독특한 경영방식으로 확대 적용되는데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여 소비자가 애플의 제품을 쉽고 편안하게 사용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요소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사실 잡스의 디자인관이 얼마나 훌륭한 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그의 디자인관이 확인해주는 다른 사실은 잡스가 헨리 포드에 견줄 수 있는 탁월한 제품기획자였다는 점이다. (헨리 포드는 잡스가 존경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IT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 잡스는 이를 대중적인 제품과 돈으로 바꿔내는 데에 탁월했던 것이다. 마치 헨리 포드가 혁신적인 T형 자동차로 떼돈을 벌었듯이 말이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점은 헨리 포드와 스티브 잡스의 차이점이다. 포드가 자동차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에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과 생산성연동임금제라는 노동과정 상의 혁신이 필요했고, 이러한 혁신을 최초로 확립시킨 포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단순반복노동으로 악명 높은 포드주의라는 새로운 생산규범을 후대에 남겼다. 반면에 우리는 다행이라고 할지 잡스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낼 필요를 전혀 못 느낀다. 그렇다고 IT산업의 번창에 생산과정 상의 혁신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애플이 제품 제조를 폭스콘에 통째로 하청 주었듯이 현대 IT산업 번영의 이면에는 ‘생산의 세계화’가 존재한다. 후발공업화지역의 값싼 인력과 병영식 공장 없이는 첨단기술이 값싼 IT제품으로 손쉽게 둔갑해왔을 리가 만무하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 대해서 보도했던 대부분의 언론에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언론은 애플의 혁신적 제품에서 잡스 개인의 창의력만을 보려 하고 그가 이룬 성공의 정당성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안다.
 
  “누가 일곱문을 가진 도시 테베를 건설하였는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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