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6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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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8 매일 시읽기 61일

내 청춘의 영원한
-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거의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 한 권의 시집에 실린 시를 몽땅 읽는 경우가 잘 없는데(얇은데도 쉽지 않다) 이 시집은 다 읽고야 말리라는 투지를, 까지는 아니고, 읽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시인의 내적 정서가 마음을 울렸고 기억해두고 싶은(물론 기억 못할) 시구들이 정말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사랑>>을 요약해주는 시가 위의 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이 세 가지 감정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이자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1981년 출간된 이 시집은 시인의 나이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까지 쓴 시들을 역순으로 배치해 놓았다. 1부는 1981년에, 2부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3부는 대학 3학년때부터 대학 중퇴까지 쓴 시들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파릇파릇한 이십대 청춘의 시기를 기록한 것인데, 이 시집은 청춘의 풋풋함이나 낭만보다 청춘의 괴로움과 절망에 완전히 치우쳐 있다.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 여자 버전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기형도보다 절망의 나락이 더 깊어 보인다.

나무위키에는 최승자 시인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 ˝가족이 없었고, 서울의 세 평짜리 고시원에서,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 직전의 단계까지 가기도 하였다.˝ ​

시들을 보면 시인이 유복함이나 행복함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아주 먼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사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 . .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일찍기 나는) ˝애비는 역시 전화도 주지 않았다.˝(‘슬픈 기쁜 생일)

시인의 삶은 외롭고 슬프고 괴롭고 아프다. 많이도 가련하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고,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셔 보지만(‘외롭지 않기 위하여), 외로움과 괴로움은 시인의 몸에 ˝장전되어˝ 시인의 ˝뇌리를 겨누고 있다˝(‘외로움의 폭력‘). 외로워서 슬프고, 슬퍼서 외로운데, 슬픔은 도돌이표처럼 부메랑처럼 ˝튕겨져 나갔다 다시/ 튕겨져˝ 들어온다(‘청계천 엘러지‘). 시인의 어깨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슬픔의 외투˝가 걸쳐져 있다.

시들을 읽다 가슴이 얼마나 저릿저릿해지던지, 서른의 시인이 내 눈앞에 있다면 꼭 부둥켜안고서 등을 토닥이며 ˝힘들었구나, 애썼구나, 장하구나˝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시인처럼 나 또한 그 시절을 그렇게 힘겹게, 그렇게 꾸역꾸역 관통해왔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십 대는 ˝뼈아픈 사랑˝이 ˝한의 못˝을 이루고(‘버림받은 자들의 노래‘), 외로움이 ˝불침번˝처럼(‘과거를 가진 사람들‘) 서 있고, ˝고독의 핏물˝이 ˝골수 사이에서 출렁이고˝(‘외로움의 폭력‘), ˝절망의 골수분자˝가 ˝구더기처럼 꿈틀거리˝고(‘어느 여인이 종말‘), ˝저승의 물결 같은 선잠˝이 ˝머릿골을 하얗게˝ 씻긴다(‘선잠‘).

이 모든 감정들의 귀결은 그리움이다. 거머쥐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것들을 쥐고 싶은 간절함. 그 ˝그리움의 그림자들은/ 짓밟히며 짓밟히며/ 다시 일어˝선다(‘부질없는 물음‘). 그리하여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 배워야 했다. / 다르게 사랑하는 법 / 감추는 법 건너 뛰는 법 부정하는 법, /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올 여름의 인생 공부‘ 중)

내 이십 중반부터 삼십까지는 아주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그 어둠 속 빛이 되어 준 것 중 하나가 책이었다. 시인에겐 시를 쓰는 것이 저 시절의 어둠을 통과하게 만든 빛이 아니었을까. 52년생인 시인이, 2020년에 예순아홉의 할머니가 된 시인이 ˝아이처럼˝ 웃고 살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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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77)
겉보기에만 괜찮은 표정으로 /남 좋은 일 시켜줍니다(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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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 효?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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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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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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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매일 시읽기 60일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 
Lines Written In the Days of Growing Darkness
- 메리 올리버(Mary Oliver) 

해마다 우리는 목격하지 
세상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풍요로운 곤죽이 되어가는지, 
그러니 그 누가 ​
땅에 떨어진 꽃잎들에게 

그대로 있으라 
외치겠는가,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과 결합된다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을 알면서, 
그게 쉬운 일이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러니 오늘, 그리고 모든 서늘한 날들에 
우리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비록 해가 동쪽으로 돌고, 
연못들이 검고 차갑게 변하고, 
한 해의 즐거움들이 운명을 다한다 하여도. 


메리 올리버 시집을 출간과 거의 동시에 샀다. 좋다. <<천 개의 아침 Thousand Mornings>> 원서는 2012년 시인의 나이 일흔일곱에 출간되었다. 거의 평생을 자연과 교감하고 산 노시인의 달관과 해학이 느껴진다.

나는 밝아오는 아침보다 어둠이 짙어가는, 하늘이 검푸르게 물들어가는 저녁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 시부터 읽었다. 

모든 것이 어둠에 버무려지는 모양새를 시인은 ˝풍요로운 곤죽˝이라 표현했다. 영어로는 ˝rich mash˝. 좋은 번역이다. ˝존재했던 것˝과 ˝존재할 것˝이 ˝결합되는˝ 시각. 나는 이 시각의 고요를 사랑한다. 세상이 푸른빛 품은 먹물에 젖어들 때 잠시 숨들이 멈춘 듯한 고요가 찾아든다.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무엇에 대해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으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있다. 나는 하늘을 본다. 삶이 서늘해도 시인은 ˝쾌활하게˝ 살아가라 한다. ˝해가 동쪽으로 돌고, / 연못들이 검고 차갑게 변하고, / 한 해의 즐거움들이 운명을 다한다 하여도.˝ 그러니까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전복이 뭐 별거랴. 쾌활함으로 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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