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8 #시라는별 20
위령의 날 Zaduszki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
회한을 맛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그보다는 나뭇잎에 묻는 축축한 얼룩을 털어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잎새가 훨씬 아름답고 가벼워지니까.
싸우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그저 미약한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해,
바람으로부터 그 흔들림을 막아주기 위해서다.
공간은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전나무와 과꽃 장식으로
보기 싫은 무덤으로 덮어버릴 테니까.
그 순간 더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 위로 공포가 아니라 적막이 내려앉을 테니.
그것은 수많은 시도가 깃든 적막일 테니.
여기서 시詩를 기다린 건 아니다;
내가 온 건
찾아내고, 낚아채고, 움켜쥐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다.
쉼보르스카가 타이프라이터로 남긴 원고에는 <위령의 날>을 쓴 해가 1946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쉼보르스카가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세계 각국의 출판사들이 그의 시를 번역, 출판하기 위해 저작권을 요청했을 때의 일이다. 쉼보르스카는 출판사들에게 한 가지 전제 조건만 지켜 준다면 자신의 시집을 출판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조건이란 1950년대 전반기에 출간된
두 권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번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난 호에 말했듯이 쉼보르스카는 젊은 시절 자신이 쓴 시들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보다는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집 <<검은 노래>> 에 수록된 시들 중 미발간 원고들은 1950년 이전에 쓰인 것들이다. 그러니까 시인이 사회주의 사상 검열을 자기 검열하기 전이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린 날이었다. 당시 쉼보르스카는 열여섯 살이었다. 사춘기 소녀 쉼보르스카는 창문으로 붕대를 감은 채 피 흘리는 부상병들이 짐수레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은 소녀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46년 쉼보르스카는 그날의 기억을 토대로 <9월에 관한 기억>이란 시를 썼다.
<위령의 날>은 쉼보르스카의 미발간 작품들 중 내 마음에 가장 스며든 시다.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고, 쓰고 있는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위령(慰靈)‘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함‘이다. 쉼보르스카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름 모를 전사자들의 영혼을 어루만짐과 동시에 그 일로 상처 입고 아픔을 겪어야 했던 자신의 마음까지 위무한다.
여기서 시詩를 기다린 건 아니다;
내가 온 건
찾아내고, 낚아채고, 움켜쥐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다.
쉼보르스카는 시詩를 기다리지 않고 시詩를 썼다. 그에게 시는 절대 놓지 말아야 하는, 살게 하는 동아줄이었다. 어둠 속 빛이었다. 그랬기에 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썼다. 묵묵히, 꾸준히 말이다. 에밀리 디킨슨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쉼보르스카를 검색해 보던 중 2018년 봄날의책 출판사에서 출간된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를 발견했다. 기쁘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집
<아버지의 여행가방>에서도 쉼보르스카를 발견했다.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