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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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시라는별 7 

나무에 대하여 
- 이성복 

때로 나무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도 잎새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것이다 무슨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왼종일 마냥 서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곳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몸통과 가지와 잎새를 고스란히 제 뿌리 밑에 묻어 두고,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래여애반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으로 <아, 입이 없는 것들> 이후 십 년만인 2013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의 나이는 61세. 내가 이 시집을 정확히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에 없다. 알라딘 구매력을 훑으면 찾을 수 있겠으나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 사기만 하고 펼치지 않은 책이 여러 권이다.

<남해금산>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구매해서 읽었다 생각했으나 책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읽은 줄 여기나 내용이 기억에 없다. 이것이 시 읽기의 맹점이다. 기억 상실에 따른 기억 부재.

발음도 힘든 시집의 제목 ‘래여애반다라‘는 신라 향가인 ‘풍요‘(혹은 공덕가)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풀이하면 ‘오라, 서럽더라.‘ 라는 뜻이라고. 이승에 와서 울고 웃고 넘어지고 깨지고 엎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생이라고, 그런 생의 서러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집도 그러하다. 이순에 이른 시인의 시어들은 어렵지 않고 어조는 무겁지 않다. 그저 담담할 뿐이다. 생아, 이제 나는 너가 그런 줄 알겠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읽고 있음 눈에 자꾸 물이 고인다. 안구 건조증 탓인지, 시어에 젖은 물기 탓인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어쨌든, 이 시집 좋다.

‘나무에 대하여‘는 푸른 잎새들 모두 벗고 앙상한 가지들 고스란히 드러낸 채 제 몸뚱이 하나로 시린 겨울을 버티는 나무들 이야기다. 이것은 겉보기 해석이다. 나무라는 시어에 ‘사람‘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다. 우리도 때로 그렇지 않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지 않나.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싫을 때가 있지 않나. 내 속이 얼마나 엉켜 있길래 이리도 안 풀리나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는 영양분을 저기 위, 가지 끝까지 밀어올리는 일을 삼가는 겨울나무처럼 사는 것이 더 낫다. 자기 안으로 침잠해 내 속의 엉킨 뿌리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천천히 풀고 있는 편이 더 낫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온다. 나는 그 시기를 통과했다 여겼는데, 그런 시기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돌아 또 오는 모양이다.

풍요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다여
서럽다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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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2-01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복을 몰아서 읽고 나면 다음 시집 고르기가 만만치 않으실 거 같아요.
초콜릿 한 바가지 먹은 직후 먹는 수박맛...

행복한책읽기 2021-02-01 14:32   좋아요 0 | URL
대략 그럴 듯한 느낌이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