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8 시라는별 3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 강성은 

잠든 사이 붉은 가로등이 켜졌다
붉은 가로등이 켜지는 사이 달에 눈이 내렸다
달에 눈이 내리는 사이 까마귀가 울었다
까마귀가 우는 사이 내 몸의 가지들은 몸속으로만 뻗어갔다
몸속에 가지들이 자라는 사이 말들은 썩어 버려졌다
말들이 썩어 버려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구두를 신는 사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오는 사이 도시의 모든 지붕들이 날아갔다
도시의 지붕들이 날아가는 사이 길들도 사라졌다
길들이 사라지는 사이 지붕을 찾으러 떠났던 사람들은 집을 잃었다
그사이 빛나던 여름이 죽었다
여름이 죽는 사이 내 몸속에선 검은 꽃들이 피어났다
검은 꽃이 피는 사이 나는 흰 구름을 읽었다
흰 구름을 읽는 사이 투명한 얼음의 냄새가 번져갔다
얼음 냄새가 번지는 사이 나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었다
열두 켤레의 구두를 더 시는 사이 계절은 바뀌지 않았다
구두의 계절이 계속되는 사이
나는 구두의 수를 세지 않았다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강성은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몇 편을 읽었다. 2005년에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지난번에 읽은《Lo-fi》보다 훨씬, 훨~~~~씬 난해하고 모호한 시집이다.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과 상징들을 시 속으로 가져와 낯설고 어두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들려주는 것이다.˝ 라고 출판사 서평에 나와 있는데, 아름다운 건 모르겠고 낯설긴 분명 낯설다.

추천평을 쓴 남진우 시인 겸 문학평론가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하기도 하고 인과율이 파괴된 즉흥성과 기발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강성은 시인의 이야기에 ˝매혹적인 중독성˝이 있다고 평하는데, 아, 나는 이 이야기에 중독되지 못할 것 같고, 않을 것 같다. 시가 내 이해 범위를 너무 벗어나면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시집에 손길이 안 가게 된다는 것.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끝말 잇기 같은 시다. 도무지 잘 모르겠는 연속적인 끝말 잇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마지막행 ˝구두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이다. 화자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고˝ 그 ˝구두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자신을 꽁꽁 가두었다. 가련하다.

《Lo-fi》에서는 막연하나마 물 밖으로 종종 얼굴을 내밀던 죽음의 이미지가 이 시집에서는 물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어둡고 더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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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19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어렵네요 이 시집은 못 봤지만, 《Lo-fi》는 봤어요 그건 괜찮게 보기는 했어요 시집을 볼 때 저는 시가 아주 어렵지 않기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