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7 매일 시읽기 90일
눈과 눈
- 김행숙
오늘은 눈과 눈이 같은 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런데 쌤, 칠판에 어지럽게 눈이 내리고 있어요
너는 눈이 싫구나, 눈을 감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내게서 눈을 빼면 뭐가 남을까?
쌤, 뱀처럼 목을 빼서 하늘을 좀 올려다보세요, 저 구름 속에는 눈송이가 천만 관객의 눈동자처럼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네 눈 속에는 구름이 가득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정이 생기고 슬픔이 밀려오고 호올로 눈 속을 걸어 멀리 여행을 떠나게 돼요
눈의 나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발자국은 금세 지워진다. 이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어져버리지
그래서 쌤은 아이를 잃어버렸나요? 눈은 환상을 만들어요
너는 눈이 좋구나, 조심하렴, 더 많이 보는 눈은 비밀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창밖에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어요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거북이보다 느린 달팽이 걸음으로 읽는다.
<눈과 눈>은 ‘눈‘이라는 동음이의어를 가르치는 수업 장면을 그려 놓아 재미있다. 쌤은 가르치려 애쓰고, 아이들은 말장난이라는 미로로 빠지려 애쓴다. 선생과 학생의 박자는 이런 식으로 종종 어긋난다. 엇박자일지언정 언어 유희는 신 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