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0 매일 시읽기 83일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오늘도 영하의 날씨. 어제에 이어 오늘은 황지우 시인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를 올린다. 이 시는 1985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같은 제목의 시집에 실려 있다. 김행숙 시인의 시와 달리 메시지가 분명하고 강렬하다.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의 살을 에는 추위에 ˝무방비˝로 서서도 쓰러지지 않고 제 속을 ˝영상 오도 / 영상 십삼도˝로 달궈 위로 위로 싹을 밀러 올려 결국엔 꽃을 피우는 나무의 생명력을 이야기하는
시다.
˝벌 받은 몸으로, 벌 받은 목숨으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들이받으면서˝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는 표현은 고난의 시절을 겨우겨우 통과해온 시인 자신을 빗댄 시적 은유 같다.
1952년생인 황지우 시인은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해 감옥에 수감된 바 있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부정과 부패와 독재에 저항한 피끓는 청년이었던 것이다. 시인의 이런 이력을 알고 읽으니 겨울ㅡ나무에서 봄ㅡ나무가 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의지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영하 이십도보다 더 살벌한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우리, 사람 또한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그러니 이 동토에 뿌리 단단히 박고 ˝대가리 쳐들고 (마스크는 쓰고)˝ 버 티 자. 살 아 남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