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8 매일 시읽기 71일
식물도감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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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자
막막하게 사무치자
매화꽃 피는 것처럼 내리는 눈같이(첫 연)
*
이름에 매달릴 거 없다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마지막 연)
안도현 시인의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에서 제3부 작약작약 비를 맞네 <식물도감>편을 읽었다.
시집을 내지 않은 8년 동안 시인은 ˝돌을 주워 상자에 담는 일과 풀을 뽑아 거머쥐는 일과 새소리를 듣고 담아두는 일에˝(시인의 말 중) 매진했던 모양이다. <식물도감>에는 얼마나 많은 식물과 꽃이 등장하는지, 보았으나 모르겠고 읽었으나 모르겠고 들었으나 모르겠는 생명들로 넘쳐난다.
식물에는 자기만의 시계가 장착돼 있어 피고 지는 시기를 어김없이 알아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거듭한다. 그들의 시계에 사람은 생활을 맞춘다. 가령 이 시집의 제목에 등장하는 능소화는 여름에 피는 꽃이다. 능소화가 피는 무렵엔 악기를 창가에 걸어두면 되나 보다.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매화는 추운 겨울과 따신 봄 사이에 핀다. 송홧가루는 ˝봄을 떼메고˝ 간다. 봄이 둥실둥실. ˝연두가 연두일 때˝ ˝모화꽃이 핀다.˝
˝오동꽃˝ 피면 ˝5월이 간다.˝
6월에 제주 가면 ˝멀구슬나무 꽃˝을 보라 한다. 꽃의 생김을 모르니, 보아도 필시 본 줄 모를 것이다. 갯멧꽃은 바닷가에 산다. 참새떼는 찔레 덤불을 좋아한다. 채송화밭에선 나비들이 ˝점방˝을 차린다. 봉숭아 꽃씨는 ˝꽃의 화력발전소˝란다. 오메, 꽃이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면 이런 표현을 쓸까나.
˝마타리꽃 피었다 / 곧 개강이다 / 나는 망했다.˝ 푸하하. 꽃들의 시계에 맞춰 이런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시인, 왜케 귀여우신가. 참새떼는 강아지풀 씨앗을 우루루 삼킨다. 바랭이풀은 버티고 버티다 ˝서리 내리자˝ 풀썩 ˝무릎 끓었다˝고. 눈 내리기 시작하면 억새들은 고개
돌려 눈을 바라본다. 복수초는 봄철 눈이 녹기 전 설산에서 꽃을 피운다.
이 많은 식물을 내가 어찌 알랴. 설령 공부한들 오래 기억할 리 만무하리. 식물에 관심이 있긴 하나 지그시 바라볼 여유 없는 독자를 왜 이리 괴롭히시나, 하며 시인을 원망하려는데, 마지막 연에서 활짝 웃었다. 알아도 몰라도 꽃은 꽃이다. 그냥 예뻐하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