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다가 어느 모녀와의 대화에서 그녀들이 이사벨 아옌데를 매우 싫어한다는 표현이 나와서 순간 책의 맥락에서 튕겨져 나와 한동안 돌아가지를 못했다. 이사벨 아옌데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얼마 전 그녀의 신간 [The Island Beneath the Sea]가 나온 것을 보고 찜해두었던 탓에 움찔했던 것도 있고.. 그보다는 어느 작가를 "싫어한다" 라는 것이 내개는 그닥 익숙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흔하다.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던지,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가 부족하다던지, 심지어는 너무 뻔하게 상업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 경우 그 작가의 책을 다시는 손에 들지 않게 되기는 하는데.. 그건 싫어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책이 아닐 수는 있지만, 그건 그저 작가와 내가 서로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좋아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한테도 싫어하는 작가가 몇 있긴 하다. 이문열이라던가 김진명, 혹은 토머스 프리드먼 정도?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후에 "영웅시대"를 읽으면서는 코웃음을 쳤었고, 그보다 훨씬 나중에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는 그의 치졸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 후로 이문열은 나에게 아웃 오브 안중 격의 작가다. 김진명은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이용한 상업소설을 쓴다는 이유고, 토머스 프리드만은 자신의 편견을 객관적 사실인 양 포장해내는 뻔뻔함 때문.

그 외에는.. 뭐 대부분 그냥 그렇다. 좋아하는 작가를 나열하는건 나름 고르는 맛이라도 있는데, 싫어하는 작가를 나열하는게 더 힘이 드네. 사실. 싫어하는 이유도 순수하게 문학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더 강한 것 같다.(그게 어디 쉬이 분리가 되는 문제겠냐마는) 예컨데 김훈의 작품은 좋아하지만 그의 정치적 입장, 혹은 삶의 자세는 내가 선호하는 쪽은 아니라서 어디가서 절대 김훈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싫다는 감정을 쉬이 표출 못하는 일종의 착한 독자 컴플렉스일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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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구꼴통 이문열이 싫어요!

turnleft 2010-05-12 02:20   좋아요 0 | URL
수구꼴통보다도 치졸해서 더 싫어요!

반딧불이 2010-05-1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싫어하는 작가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턴님과 같은 이유로 저 역시 이문열과 김훈이 순수하게 좋아지지가 않아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지금도 감탄하면서 읽지만 '선택'을 읽고 집어던졌고 그의 양비론자 같은 발언들이 정말 싫어요. 김훈의 글 역시 감탄하면서 읽으면서도 읽고나면 읽지 말아야지.읽지 말아햐지..하고는 또 읽곤 읽곤하게되요.

서정주는 문학과 정치가 분리되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들이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그런 잣대가 적용이 안되더라구요.

turnleft 2010-05-12 02:23   좋아요 0 | URL
이문열은 순수문학적으로도 퇴조했다고 봐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훌륭했던건 시골학교 교실을 통해 세상을 절묘하게 은유해 냈다는건데, 근래의 그의 소설들은 은유는 사라지고 직설화법만 남았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배설해 버리는. 그게 무슨 문학이랍니까.

김훈이야말로 갈등하게 만드는 작가죠. 사실 그게 그의 매력이기도 해요. ㅎㅎ

웽스북스 2010-05-1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에 대한 감정이 저와 비슷하시군요. ㅜㅜ 그런데 그조차 김훈과 어울리니 참 뭐라 말할 수도 없고요. 게다가 김훈은 실제로 보니, 멋있기까지 하더란 말입니다. 그렇지만 전 김훈을 좋아할 수 없어요. ;;;;

turnleft 2010-05-12 02:33   좋아요 0 | URL
김훈이 한겨레 신문 사회부 시절에 서초역 사거리에 있는 까페에 매일 같은 시각에 들러 연필을 깎아 기사를 썼다고 해요. 까페 주인 아주머니가 그 모습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는 후문이.. ㅎㅎ

Kitty 2010-05-12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싫어하는 작가가 생기면 마구마구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고 싶으니 천성이 못됬나봐요 -_- 역시 안티심은 팬심만큼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냥 체질적으로 안맞는 작가들이 있어요. 그런 작가들의 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든다고 해도 짜증나거든요;; 게다가 한 번 낙인찍으면 그 사람 작품은 두 번 다시 안보는 나쁜 버릇이;; 전 나쁜 독자인거죠!

turnleft 2010-05-12 09:08   좋아요 0 | URL
그래서 그 작가가 누규~?

무해한모리군 2010-05-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경숙 싫어했습니다. 취향에서 오는 거니 확실히 '싫다'고 표현해도 될 듯 합니다. 최근작은 안읽어봤지만 그 우울하고 축축한 여성의 삶을 보는 시각이 싫고, 그런게 여성작가 작품의 대표경향으로 뽑히는 것도 싫더라구요.

turnleft 2010-05-12 09:11   좋아요 0 | URL
저도 신경숙을 좋아하진 않아요. 80년대의 이념 소설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개인의 내면으로 지나치게 퇴행한 느낌이죠. 신경증적인 불안도 크게 와 닿지는 않구요. 그렇다고 싫어한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여성 입장에서는 싫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2010-05-24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7 0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8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2 0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05-2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쿤요. 전 아직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읽지 않아서. 읽으려고 사 놓고 다른 것부터 읽는지라. 6월에는 꼭 읽도록 해야 겠습니다. 이문열은 저도 싫어합니다. 그래도 왠만한 것은 참았는데 선택은 정말...

turnleft 2010-06-02 06:08   좋아요 0 | URL
[희망의 인문학] 훌륭합니다. 클레멘트 코스라는 결과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미뤄왔었는데, 그보다 훨씬 풍부한 철학적 깊이를 가진 책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