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지식인 - 현대 문화연구에 있어서 개입의 전술 이산의 책 36
레이 초우 지음, 장수현.김우영 옮김 / 이산 / 2005년 2월
절판


1989년6월의 천안문 학살사건은 근대중국의 역사를 정지시켰다. 이것은 파국적 정지이다. 지난 150년 동안 중국역사가 재앙의 연속이었다면, 1989년 6월 4일의 사건은 그 완결편이라 말할 수 있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전통적 부패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던 정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근대성'이라는 지속적 외상 trauma 속에서, 문화의 연속성과 (재)생산에 대한 질문이 중국 지식인을 다시 찾아와 괴롭힌다. 그것은 교육 pedagogy에 관한 질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파국에 이른 문화를 어떻게 전승할 것이며, 누가 무슨 수로 전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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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천안문 17주년이라고 해서 신문에 기사가 난 것들을 봤는데, '홍콩의 지식인(중국인의 핏줄을 타고 났지만 서구적인 가치관에 익숙한)'들이 천안문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구절이다.-113쪽

지식의 위상은 전제주의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어떤 문화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 검토해보자. '강력하다'는 것을 육체적 힘과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여기서 '강력한 사람'은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력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강력한 인격은 성격과 지식의 조화와 일치에서 온다. 그러므로 학문에 헌신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통치의 기본이었는데, 통치는 법적 권력의 규제와 계약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문학적 소양의 수련을 통해 체득되는 인간성에 대한 도덕적 성찰에 의존한다. 문화대혁명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원동력은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정치권력의 이 문화적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은 유교를 공격했고, 전통적인 학문 수양의 길을 차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게 고통스럽긴 하지만, 문화대혁명은 그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다. 중국의 정치사상에서 '지식'과 '강력한 사람'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의 유교적 거점만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오히려 학문적 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강력한 사람'에 대한 감정적 의존도만 증폭되는 결과가 빚어졌다.-124쪽

천안문 학살사건 이후에 나타난 중국 정부에 대한 중국인의 비판은 그러한 감정적 의존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예를 들어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반응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이 그런 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는 식이다. 그런 생각 속에 숨어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항의이다. "당신네 중국의 지배자들은 우리 중국 인민과 고난의 역사를 나누고 있다. 당신들이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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