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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대행 주식회사
피터 W. 싱어 지음, 유강은 옮김 / 지식의풍경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아프리카에 가면서 들고 갔었다. 시에라리온 방문 때 몇몇 사람들이 “유엔이 주장하는대로 반군들은 정말로 모두 무기를 버렸는가”라는 질문들을 했었는데, 공식적으로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반군들을 무장해제시킨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대행사’들이 들어와서 압도적인 무장력으로 전황을 ‘정리’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책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 때 설치던 군바리들이 아파르트헤이트 무너진 뒤에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라는 전쟁대행사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들어와서 정부군을 대신해 반군들을 정리(어떻게 하는게 정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인 저자가 여러 자료와 ‘소문’들을 종합해 전쟁대행회사들 실태를 정리해보려 애썼는데, 이 책에서 제시된 ‘시각’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민간군수회사’ 따위로 불리는 전쟁대행사들이 전장을 주름잡고 작전 수립에 전투까지 ‘대행’하는 것이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전쟁 양상으로 굳어졌는데, 2003년 이라크전 때 여기에 관한 신문기사들이 좀 나오긴 했지만 아직은 거의 모든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저자는 냉전이 끝난 뒤 무기와 병력이 ‘시장’에 풀려나온 것과 전반적인 ‘민영화 바람’ 등등의 원인 때문에 전쟁까지 민영화되면서 ‘국제정치와 전쟁 규칙이 바뀌고 있다!’(책 겉표지에 시뻘겋게 써있는 문장이니 느낌표라도 하나 때려줘야 될 것 같은 기분)고 진단한다. 물론 유사 이래 용병은 있었다지만 오늘날의 전쟁대행사들이 근대 이후 전쟁에 대한 상식의 틀을 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제정치 돌아가는 것이 어디 전쟁대행사들 때문 만이겠느냐마는, 어쨌건 국가 혹은 비국가행위자(반군이라든가 하는 정치세력들)들의 다이내믹한 에너지장 속에 대행사들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끼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감춰진 부분이 워낙 많고 속성상 확인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저자가 인정하듯이 책은 사례들 모음과 ‘이제부터는 이런 부분도 좀 분석을 해보자’ 하는 제안들로 차 있다. 저자는 전쟁대행사라는 실체들을 인정하고 이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전쟁론 전쟁학 전쟁분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을 왜 인정하느냐??고 따져 묻기 전에, 전쟁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이런 책은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책이 좀 어설퍼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고 국제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판 남의 일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남의 일은 분명 아니다. 김선일이라는 사람이 선교하러 이라크 간다더니 어느 회사 하청일 하다가 납치돼 피살됐다고 했는데, 그때 뉴스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났더랬다. 켈로그브라운&루트(KBR)의 하청 일도 했었다고 하는데 이 케이비알은 미국 핼리버튼(딕 체니 부통령 빽으로 정경유착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에너지-군수기업) 계열사인 대표적인 전쟁대행사로 '죽음의 기업'으로까지 불리는 업체다. 선의와 무지가 비극을 부른 케이스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남북한 화해가 이뤄지면 비무장 지대에 지뢰 제거해야 하는데 요즘 세상에 젊은 군인들 들여보내면 국민들이 가만있을리 없고 대행사들 들어갈 공산이 크다(지뢰 제거는 대행사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지뢰제거 뿐 아니라 '화해'의 와중에 저런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민영화'된 영역에서 일을 떠맡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래저래 전쟁대행사들이라는 것이 남의 일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