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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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개입’ 혹은 ‘개발(독재)’라는 문제를 박정희라는 인간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긴 참 어렵다.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자’ 라는 말 자체가 어떤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정치와 경제를 따로 떼어놓고’ ‘개발독재의 성공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장하준의 노선이다.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나서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인데, 대학 입학 당시 ‘X 세대’라 불렸던 나 같은 사람에게 개발독재 시절의 정치학 같은 것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말하자면 나는 ‘정치와 경제를 따로 떼어놓고 보자’ ‘박정희의 공과를 구분해 말해보자’ 이런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머리 속에 있는데,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께는 이런 식의 구분을 하자는 것 자체가 핏덩이들의 철모르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기 힘든, 그런 처지인 것 같기도 하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던 시절, 그러니까 IMF 경제위기 이전 시기까지는 박정희 시대를 평가하는데에 정치적 자유화 수준이라든가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주요 기준이 됐었지만 지금은 누구 말마따나 패러다임이 변했다. 어떤 시스템 혹은 시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경제, 즉 ‘돈’이 되고 보니 박정희 시절의 경제정책을 칭찬해주고 이런 것들이 힘을 얻는 것 같다. 만일 10년 20년 지나서 예를 들면 ‘환경’이 모든 가치기준을 압도하는 시기가 되면 아마도 또 바뀌겠지만 말이다.

장하준은 한국에서 보면 오른쪽 왼쪽 어느 쪽으로 딱히 판가름하긴 힘들다. 자기 스스로도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우파는 나를 좌파라 부르고 좌파는 나를 우파라 부르는데 나는 아무 쪽도 아니다”라고 썼었다. 왜 여기에 굳이 ‘한국에서 보면’을 덧붙였냐면, 요즘 우리 사회에선 좌인지 우인지 참 헷갈리기 때문이다. 옛날 박정희 예찬론자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김대중 노선, 노무현 노선을 지지하고, 좌파의 후예들은 장하준처럼 박정희식 닫아걸고 키우기 노선을 오히려 더 지지하는 것 같다.

여하튼 “뭐든 다 팔아버려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지킬 것은 지켜서 우리 국민경제 살려야 한다” 하는 장하준의 주장은 먹히는 구석이 많다. 좌파 출신이라는 대통령이 나서서 FTA 지금 안 하면 죽는다고, 세금 펑펑 써가며 캠페인 하는 통에 명문가의 자제라는 똑똑한 한국 학자가 (무려 캠브리지 교수를 하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니깐 듣기에 좋다.

그런데 장하준의 책을 보면서 마음이 찝찝한 것은, 민족주의 넘어서 분배 정의에 대한 문제에서는 역시 언급이 없거나 적기 때문인 듯. 여기서 이제 좌냐 우냐 하는 것이 갈라질 것 같은데, 파이를 키워서 똑같이 나눠먹자! 하지 않고 장하준은 ‘국가는 파이를 키워라!’ 딱 그 얘기만 한다. 그나마 파이를 키우지도 못하는 것보단 낫겠고, 개발독재 기간 파이 많이 키워서(이러니깐 파이가 무슨 애완동물 같다) 그동안 맛나게 잘 먹은 것도 맞긴 하다. 그런데 민족경제 어쩌구 하는 것이 허위가 많다는 걸 이젠 좀 알기 때문에 장하준의 말이 일면 속시원하긴 한데 역시나 모자란다.

이 학자를 도마에 올려놓고 보자면, ‘국가의 역할’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의 내용이 ‘사다리 걷어차기’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장하준이라는 학자에 대해서는 좀 실망. ‘시각’은 의미가 있는데 좀더 정교하고 치밀한 무언가를 제시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또 서양 학자들 상대로 개도국의 입장을 전하려는 것이라면 동아시아 말고 다른 쪽으로도 폭을 넓히던가 아니면 한국의 경우를 케이스스터디로 정말 충실하게 연구하던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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