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전쟁은 세상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든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까지 그 어둠의 파장이 미치는 것이 전쟁이다. 그것은 침략을 당하는 쪽 뿐 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당사자들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아주 몹쓸 역병과도 같은 것이다. 체코의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의 전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체코의 상황. 그러나 좀 더 엄중히 말하자면 이것은 전쟁 소설이 아니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어느 간이역의 식구들. 역장과 그 외의 직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신호를 잘못 보냈다는 이유 하나로 독일군에게 개죽음을 당할 뻔 하고, 도시의 여기저기는 전쟁의 어둠으로 가득하다. 전쟁이라는 비극의 운명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없는 힘없는 시민들. 특출 난 영웅적 주인공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러나 비극을 이기는 것은 바로 희극! 작가는 어두웠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결코 전쟁의 비극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 경험에 실패해 자살을 결심하는 신참, 비둘기들을 자식처럼 기르는 역장,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배차계장. 이들 주인공은 비극의 현실 속에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해 비극을 희극화 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멋지고 영웅적인 주인공은 이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다운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소설. 그리하여 더욱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소설.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을 등장시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그러기에 누가 누굴 죽이고 침략하는 전쟁은 마땅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 바로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이다. 

  결국, 끝에 가서는 이 어리숙하고 바보스러운 자들이 독일인들의 가장 중요한 차량, 즉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폭파 시키며 끝이 난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힘없고 볼품없는 인간들의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는 묘한 소설이다. 슬프지도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도 않은, 어딘지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체코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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