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self : 1. 자기, 자신 2. 성, 특질, 본성;(어떤 시기·상태의) 자기, 본성, 진수(眞髓), 그 자신 3. 자아


  셀프(self)의 사전적 의미이다. 요즘은 셀프의 의미가 그저 가벼운 자기(사전적 의미의 1번), 자신 정도의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셀프카메라'처럼... 하지만 얀 마텔의 “셀프”를 읽으면서 “셀프” 본래의 뜻(사전적 의미의 2, 3)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저 가볍지만은 않은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전작 "파이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서 "셀프"도 그러려니 하고 무작정 펼쳤다가 보기 좋게 한방 먹은 작품이다. "셀프"가 재미없어서 한방 먹었냐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얀 마텔의 문체와 그의 무한한 상상력, 솔직한 표현력, 그리고 끝 날줄 모르는 그의 어휘력과 사실 같은 줄거리가 읽는 내내 내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했다. 어찌 보면 상당히 무거운 소설이다. 그의 자서전 같기도 하고,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 만큼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심지어는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그리고 다시 남성으로의 성전환 조차도 자연스럽게 - 소설속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 받아들이게 된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셀프”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게, 유아시절의 첫 번째 기억부터 출발한다. 엄마 앞에서의 배설의 기억에서, 가장처음 만난 어른인 - 엄마를 제외한 - 아버지와의 달에 대한 호기심어린 대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눈물과 TV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세밀한 묘사는 읽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하나의 사물을 그리도 아름답게, 세세하게, 그리고 기막히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셀프”를 읽는 내내 그의 멋들어진 표현력에 질투심이 발동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 시기, 그리고 부러움.

  다시 책속으로, 주인공의 나이 여덟 살에 부모님과 파리에서 만난 체코 계집아이한테 첫사랑을 느끼고 이후 줄곧 성장하면서 여자아이에게 호기심 어린 사랑을 느낀다. 그때는 남자로서 여자에 대한 사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과 함께 떠난 포르투갈 여행길에서 하루 아침에 성이 바뀌어버린 주인공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그의 부모가 사고로 돌아 가셨을 때와 마찬가지로....주인공의 나이 열여덟 살이고 그의 아니 그녀의 생일에....그 후 마흔 여섯의 미국 여성과 그리스에서 만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여성과 여성으로서의 사랑.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 에로티시즘이 나타난다. 아니 그보다는 포르노에 가깝게, 하지만 그것들이 전혀 이상하다거나, 불미스럽다거나, 외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만큼 얀 마텔의 글에 대한 재주가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주인공 그녀의 나이 26에 이웃사람으로부터 당한 고통... 4년후 그는 다시 본래의 성으로 돌아온다. 캐나다인으로 다시...

  “셀프”를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얀 마텔은 주인공의 성을 바꾸었을까? 그가 말하고자 한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다시 본래의 성으로 되돌린 이유는 무엇 이었을까? 그것도 가장 중요한 나이에 말이다. 아마도 얀 마텔은 성의 변화를 통해 좀 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여성을 통해 남성이 느끼지 못하는 고통과 감수성과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표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셀프”가 성의 변화 없이 그 - 또는 그녀 - 로 일관되었다면 우리에게 다가옴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한 작가의 허구스러운 자전적 소설로 그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기막힌 성의 변화를 통해,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얀 마텔의 작가적 셀프 - 본질 - 가 아닌가 싶다.

  “셀프”를 읽고 나서 나 자신에게 아쉬웠던 것 하나, “나의 언어적 감각이 남달랐다면”, “나에게 뛰어난 어학 능력이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 “Yann Martel 의 SELF”를 원서로 다시 한번 읽어 보았을 것이다. 절대 한글번역서가 못해서가 아니다. 그저 다른 언어감각으로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일뿐이다. 마치 주인공의 성적 변화처럼, 나는 언어적 변화를 통해 “SELF"를 새롭게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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