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광화문처자 > 인생이란 어차피 수상한 것.
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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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신화의 시작은 이러하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길 바라며 까마득한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을 먹으며 견딘다. 곰은 약속한 날짜를 인내하여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  고조선의 시조 단군을 낳는다. 반면 호랑이는 다 알고 있는 바, 쑥과 마늘을 견디다 못해 동굴 밖으로 도망가고 만다. 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초등학생들도 당연히 받아 들이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인간의 이야기는 시작되어 왔다. 헌데 동굴 밖으로 달아난 호랑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단군신화의 뒷이야기를 더 들을 순 없을까? 인간이 된 곰은 잘 먹고 잘 살았다네~ 하는 이야기만이 끝일까?

   <수상한 식모들>의 발칙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일단 인간이 되길 포기하고 달아난 호랑이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굴속을 탈출한 호랑이가 새로운 방법으로! 그만의 비법을 통해 또 다른 류의 강인한 여인으로 변모하게 되는 모습을 본다. 그 여인이 바로 호랑아낙. 이야기의 주인공인 수상한 식모이다. 그녀들은 연산군 폐위 때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동학혁명의 언저리에도 있었고 10.26 때에도 시퍼런 부엌칼을 손에 들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 중심에 있었다. 그녀들은 부폐한 지배계급 속으로 바람처럼 스며들어 남성중심의 신분사회를 붕괴시키고, 자본주의와 부르주아들의 삶을 농락한다. 어떠한 체계도, 어떤 확실한 집단도  형성하지 않고 바람처럼 전달되어 스며들고 바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선 작은 물줄기처럼, 소리도 없이 거대한 모순들을 조금씩조금씩 해체시켜 놓았다는  어딘지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  

   신인의 장점이란 신선함과 패기일 것이다. 박진규가 택한 소설의 구도와 소재,  소설을 끄는 재미와 힘 등이 그러한 장점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 해 온 신화 속 호랑이를 호랑아낙으로 변모시킨 것도 그러하며.  호랑아낙들의 비장의 무기로 생각해 낸 '꿈을 갉는 쥐' 또한 재미있다. 쥐오줌똥풀 수용액에 담겨있는 쥐를 꺼내어 사람의 귀속으로 집어 넣으면 용수철 같은 꼬리를 귀에 박아 그의 꿈과 환상을 빼앗아 결국 그 사람은 흑과 백의 논리 밖에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신선하다. 놓칠 수 없는 무거운 주제가 있다.  사실 그러한 인간들이 당신과 내 주위에 널리고 널렸으니 꿈을 갉는 쥐의 발상이 황당하기는 하나 딱히 없다고 확신할 순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처럼, 신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우리는 어디선가 수상하게 불쑥 나타난 박진규라는 작가가 넌지시 일러준 소름끼치는 그것에 대해서도 불신할 순 없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 우리 주위의 어디쯤엔가 정말로 수상한 식모들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을... 

   어릴적 나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알아 볼 순 없으나 사람의 모습을 하고 분명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어딘가에 호랑아낙의 피를 이어받은  수상한 식모들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하고 섬뜩한 생각에 내 주위의 사람들을 힐끔 거린다. 또한 내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굳어버린 수많은 생각과  사상들이 어릴 적 언젠가 만난 수상한 식모들의 소행이 아닌가 괜히 찝찝하여 슬몃 과거를 이리저리 더듬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당신도 자신하진 못 할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작은 벌레들이 온 몸을 기어 다니고 있는 듯 스믈거릴 것이며, 오래전 빛 바란 당신의 과거를 괜시리 들추어 보고 싶어질 것이고, 이미 돌처럼 단단히 굳어져 내 것이라고 믿던 자신의 생각과 이념, 사상 따위들이 정말 오랜시간 스스로 구축한 내 것이 맞는가 한번쯤 의심 해보게 될 것이다.

 

아, 수상하다... 박진규의 글을 읽고 나니 모든 것이 수상하고 찝찝하다. 뭐, 그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이란 수상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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