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랜드마크(Land Mark) - 어떤 지역을 식별하는 데 목표물로서 적당한 사물()로, 주위의 경관 중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쉬운 것

랜드마크의 사전적의미이다. 요시다 슈이치가 이번에는 색다른 주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사람들은 모두 두드러지기를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타인에게 존재가치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사회의 단면을 이 작품에서 풀어내고 있다. 어느날 도시에 35층의 초고층 빌딩을 착공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잘 나가는 설계사 이누카이. 그 이면에 또 다른 사내가 있다. 바로 하야토라고 하는 35층 랜드마크가 될 빌딩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나르는 키 180여센티미터의 평범한 남자. - 꼭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늘 정조대를 차고 다니니 말이다.

이야기는 10개의 장으로 되어있는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카운트 다운을 세는 것 처럼 No. 10, No.9, No.8.......No.1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는 주인공 두명의 일상이 교차하듯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 안면식도 없이 단지 랜드마크가 될 건물을 매개체로 한 사람은 설계를, 또 한사람은 철근을 나르는 어찌보면 관계가 있을 듯고 하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고독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늘 회사일로 집에는 가끔들어가는 설계사 이누카이. 그는 같은 직장의 어린 여직원과 그렇고 그런 사이이다. 아내는 늘 집에서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지쳐 친정으로 가버리고 만다. 벽에는 각종 동물의 표피를 붙어놓고 말이다. 오랫만에 들어온 남편은 이러한 벽에 걸려있는 동물의 가죽을 보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게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또다른 주인공인 하야토는 재미삼아 중국집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심심할때 만나곤 한다. 그에게 있어 별다른 취미라면 정조대를 차고 다니는 것. 그러면서 우연히 정조대의 열쇠를 그 랜드마크가 될 건물의 각 층마다 시멘트속에 묻어버리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이 만나는 여자에게 달려가 무조건 결혼하자고 말해버린다.

두 주인공 외에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A, B, C 씨. 그들도 역시 하루하루가 그저 그렇고 그렇다. 그러다 마지막에 A라는 사람이 한참 건설되고 있는 건물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아무 이유도 없이. - 아니 이유는 있을터인데 독자에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작품 랜드마크는 읽다보면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스멀스멀 빠져나가 듯 이야기의 핵심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 알 듯도 한데 어느새 아무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그러다 카운트다운이 다가올 수록 '아, 왜 작가가 이렇게 구성을 해놓았는지를 알겠구나'로 변하게 된다. 요시다 슈이치는 현 사회에서의 소통의 부재를 두명의 주인공의 일상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엮어내고 있다. 무엇을 하여도 신경도 쓰지않고, 별것도 아닌 그저 대화로 충분히 풀수 있음에도 어느새 만성이 되어 상대와 소통을 거부하는 양상은 바로 현- 당시 일본의 -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요시다 슈이치는 절묘하게 건물을 중심으로 소통부재에서 오는 부작용을 잘 꿰어내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다소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역시 요시다 슈이치 답게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고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은 다른 어떤 사람들의 현실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들면 인부가 현장에서 목을 매달았는데 그 건물을 설계한 설계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떠올린다. 예전에 산 DVD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말이다.

이야기속에는 다소 엉뚱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속속 등장하지만 이 작품을 읽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동화됨을 느낄 수 있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인물의 묘사라던지 상황의 묘사에 있어 꽤 공감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더욱 좋은 듯 싶다.

"...인간이란 존재는, 어쩌면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생물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어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나 해서 결국 필사적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게 아닌가....." (p.166)

상대에게 'Good morning!' 하고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Good evening!'하고 받는다. 그래서 그제야 '아, 그런가. 벌써 밤이구나!'하고 깨닫는 것과 비슷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답 같기도 하고, 정말로 심각한 문제 같기도 했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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