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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30대는 어땠는지...정신없이 일을 하던 그 시절. 결혼은 다른 사람들의 일인양,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 일에 미쳐 매일 매일 밤을 지새던 나날들. 언젠가 문득 떠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다. 대낮에 회사를 나와 무작정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학창시절은 공부하느라,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일에 치이다 보니 정작 가본곳도 없고, 생각나는 곳도 없었다. 그러다 생각난 곳은 경춘가도 - 경춘가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산소가 있어 버스타고 몇번 가본것이 생각나 선택한 곳이다. - 가속패달을 밟았다. 정신없이. 계기판은 18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작정 떠날때는 '에이, 될대로 될라!' 라는 식이었다. 한참을 달리면서 회사가 떠올랐다. 동료가, 선배가, 상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찾고 난리가 났을터 - 당시야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다 -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떠나왔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음날 사표를 낸다거나 하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일상이 싫었다. 춘천 어디쯤에서 한참을 해메다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을 걱정하며...내 단한번의 일상탈출은 이렇게 끝이났다. 다음날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출근을 했고, 나를 많이 생각해 주던 상사는 아무것도 묻지않았다. 거짓말조차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도 그런 상사가 되고 싶었다. 멋진 상사가, 선배가...
'거짓말의 거짓말'속 주인공의 일상탈출도 그러했을 것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속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 이유없이 말이다. 때로는 이해못할 일을 우리는 하게된다. 어떤 말로서도 설득할 수 없는 그런 일. 주인공은 정신없이 달려 한 호텔에 도착해 아무생각없이 멍하니 몇시간을 호텔로비에 앉아있는다. 그리고 늦은 시간 -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 -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여기는 어디의 호텔이라고...곧 돌아갈 것이라고...
얼마후 호텔지배인이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리고 말한다. '방금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고, 호텔을 예약해 놓았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편하게 쉬라'는 말을 전한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설명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아내는 묻지않는다. 단지 호텔을 예약해줄 뿐...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때가 있다. 때로는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때가 있다. 때로는 멀리 떠나고 싶을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하게된다. 묵묵히 기다리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된다.
나에게 과거에는 기다려줄 사람도, 맞이해줄 사람도, 호텔에 전화를 해서 가슴뭉클한 감동을 전해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있다. 굳이 일상에서 탈출을 하지 않아도 좋을 가족이 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질 때 - 내가 아닌 아내여도 좋다 - 가슴찌릿한 감동을 선물해 줄지...
P.S. 책은 생각보다 얇다. 넓은 행간에...페이지를 늘리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냥 얇으면 얇은대로 솔직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차피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구입하게 될 텐데 말이다. 그나마 요시다 슈이치의 매력이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