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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많은 작가중 최근 우리에게 최고의 인기를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오쿠다 히데오'가 아닌가 싶다.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더니, 작년에는 '남쪽으로 튀어'로 한국내에 확고한 독자층을 형성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 그의 출세작인 '공중그네'의 후속작을 들고 우리곁으로 찾아왔다. 이번에 찾아온 '면장선거'는 '공중그네', '인더풀'에 이어 세번째 시리즈 작품.
'면장선거'는 앞선 작품 '공중그네', '인더풀'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사 '이라부 이치로'와 그의 유일한 간호사 '마유미'의 황당하면서도 유쾌한 그들만의 치료법을 다룬 단편집이다. '면장선거'에는 책의 제목인 '면장선거'와 3편의 이야기가 더 들어있다. 앞선 2편과 차이가 있다면, '공중그네' 와 '인더풀'의 이야기들은 모두가 가상의 인물을 다룬 작품이라면 이번 '면장선거'의 세편은 실존하는 인물을 패러디했다는 정도. 그래서 인지 기존의 이야기와는 약간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가 있는데 아마도 당시 일본내 최고의 이슈가 되었던 인물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좀더 현실감을 찾을 수가 있어서일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역시 다른 작품과도 마찬가지 이지만 - 특히, 남쪽으로 튀어 -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는 무겁고, 우울하고, 일본사회가 앉고 있는 문제점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한바탕 거름망으로 걸러내고, 핵심을 살짝 우화시켜 들려주는 힘이 있다. 바로 이러한 무거운 사회의 문제를 가볍게 승화시켜 전해주는 것이 오쿠다 히데오식 이야기 보따리인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힘이 바다건너 우리에게도 먹혀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 '면장선거'의 처음 세작품은 각각 패닉장애를 겪고 있는 요미우리신문사의 구단주와, 청년성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젊은나이에 유명해진 IT업계 CEO의 이야기를, 세번째는 안티에이징에 대한 강박관념에 걸린 일본내 유명한 영화여배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래도 역시 오쿠다식 이야기의 백미는 가상의 인물과 장소가 등장하는 네번째'면장선거'가 아닌가 싶다. '면장선거'를 읽다가 문득 연말이면 여기저기서 멀쩡한 보도블록을 죄다 뒤집어 엎는 모습이 떠올랐다. 예산을 모두 소진하기 위해 그래서 그 다음해에도 예산을 받아내기 위해 애쓰는 불쌍한 모습이 말이다. 또한 업무를 빙자한 해외관광을 하는 어이없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떠올라 이맛살이 찌뿌려졌다. 다음 선거에서는 이런 정신나간 이들이 당선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이렇게 정신나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을 모두 모아 이라부의사에게 커다란 주사한방 놓아달라고 청하고 싶어졌다.
유쾌한 이라부의사만의 치료법과 늘 방관자로서의 역할을 도맡아 하는 그이지만, 이면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넘쳐 흘러난다. 무조건 '주사한방'을 표방하는 그이지만 그 주사는 치료를 시작하는 챠임벨같은 의미이며, 결국은 그 주사한방의 효과는 완쾌로 가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참으로 가볍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 이러한 점이 오쿠다 히데오를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재미없고, 어이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 읽고나면 가슴 한켠에 와닿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무거움을 무겁지 않게, 가볍지만 경솔하지 않게 풀어내는 그의 방식. 바로 그러한 방식때문에 나는 또다시 그의 작품에 매료되고 중독되는지도 모르겠다.
네작품중 첫번째 작품 '구단주'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야기에서처럼 죽기전에 실시한다는 자신의 '생전 장례식'처럼, 나도 죽기전에 '장례식'을 치른다면 과연 나를 찾는이는 얼마나 될 것이며, 그들은 나에게 어떤 말을 남겨줄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엉뚱한 작가의 발상이지만 '생전 장례식'의 대목에서는 책을 잠시 미뤄두고 생각에 잠겨보았다. 아마도 '생전 장례식'을 거행한다면 나머지 나의 인생이 조금도 헛되지 않게, 알차고, 미련없이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쿠다 히데오가 만들어낸 이라부의사와 마유미 간호사의 좌충우돌 환자치료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었으면 한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치료받고, 완쾌되어야할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제발 이라부의사가 나이먹어 더이상 치료할 수 없을때까지 그의 황당한 치료가 계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