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으로 아는 것들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우울함은 우울함으로 다스리는게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엔 마음이 고독하고 외롭거나 삶에 지쳐 우울해지곤 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픈 책을 보고 슬픈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왜냐, 저명하신 여러 의사선생님들의 이야기나 칼럼따위에 그렇게 쓰여 있었으니까. 슬픔은 슬픔으로 달래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면 자연히 슬픔의 무게가 줄어들어 그만큼 가벼워진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나는 젊은 시절 일리가 있을것이라고 굳게 믿고 그들의 말을 따랐다. 때론 그렇지 못했지만 어떤때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던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나! 나이가 들고보니 모든것을 알게 되었다. 슬픔을 슬픔으로 달래는 짓은 나이들어서 까지 할 짓이 아님을 말이다. 그것은 그저 탱탱한 젊은 날에나, 세상의 중심이 '나'일 때에야 어울릴 짓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슬픔은 기쁨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야 남아 있는 나날과 내 주위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즐거운 책들에 손이 간다. 특히 독일 작가들이 어쩜 그리 마음에 드는지...  오래전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악에서 빚어진 슬픔때문에 그들도 슬픔을 유머로 승화시키려는 것일까? 악셀하케의 작품, <내 처음부터 이럴줄 알았지>가 그렇고, 루트리프의 연작소설들, <수요일의 여자사우나><전차기관사>가 그러하다. 그리고 호어이스트의 <느낌으로 아는 것들>까지. 즐겁고 발랄하고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때로는 이거 정신병자 아니야? 할 정도로 낄낄대며 웃기도 하지만 그런 점 조차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너무도 인간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사고할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란 즐거우니까 즐겁게 살아야 하고, 슬프니까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귀찮은 잡상인을 천부적으로 따돌리고, 엉터리 전화통화 가능 가방을 팔고, 무거운 널판지를 채가는 도둑에게 빵과음료를 사주며 더 달리라고(자신의 집이 200미터 앞이었다.) 다독이고, 친구들이 올때 집안일을 시키고, 얼떨결에 때로는 호어이스트가 아닌 하인츠가 되어 살게 되는 일들. 길을 일은 자신을 미친듯이 쫒아 다니며 소리치고 끝까지 길을 가르쳐주는 남자까지. 이 모든 일들이 제대로된 이성으로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역시 삶에는 지독한 이성이 아닌 조금은 어정쩡하다 해도 느낌으로 알고 느낌으로 행동해야 하는 때가 있는게 분명하다.

그의 전 작품 <세상은 늘 금요일이 아니지>도 재미나게 읽었던 차였다. 어쩜 제목도 그리 맘에 드는지... 아마 그 제목때문에 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라며 무릎을 쳤었다. 그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이 아니다. 언제나 즐거운것만이 아니고 언제나 슬프지만도 않다,. 그리고 세상에는 "느낌으로'만' 아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브라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역시 유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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