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부인  Mrs. Dalloway(1997/영국, 네덜란드)  

드라마 | 전체 관람가 (국내), PG (제작국가) | 2006-09-28 (개봉) | 97분

  결혼은 ‘만신창이’라고, 에쿠니 가오리도 그랬고, 존 업다이크도 그랬다. 왜, 사회에서 인정받은 그들이, 지성인이라는 작가들이 결혼을 ‘만신창이’라고 표현 했을까? 살아보면 안다. 나도 살아보고서야 그 말에 동감했으니까. 물론 결혼은 행복하고 사랑과 충만으로 가득한 생활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인 베이스 문제이고 실질적으로 돌아보면 결혼은 ‘만신창이’가 맞다.(너무 과도한 번역인 감도 있지만...) 서로 부딪히고 싸우고 함께 생활하다 무뎌지고 다시 불이 붙고 또 어느 순간에는 다시 덤덤해진다. 결혼은 그런 것이다. ‘저녁 식사 후, 남편은 화장실에 갔다. 그러나 곧 돌아오리라, 그러면 이제 그녀가 화장실에 갈 차례다.’ 보이고 싶은 모습이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건, 원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부부는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고 생활해야 한다. 이를 갈며 싸우고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다시 서로를 이해하며 껴안아주는 그런 관계. 처음엔 겉돌았지만 오랜 시간 눌러 붙어 어느새 옷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색이 바래 이제 온전히 그 색을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옷.


  물론, 영화에서는 댈러웨이 부인이 일반적인 우리들처럼 격하게 싸우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20년대의 고매하고 우아한 여인들은 좋은 남자를 만나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댈러웨이 부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댈러웨이 부인의 겉으로 드러나는 삶은 ‘만신창이’가 아니었지만, 시대의 품격을 지니고 삶을 살아 온 그녀였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격렬한 삶의 에너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강하고 긍정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만신창이’를 원했던 것이다.


   감독은 시종일관 노년의 댈러웨이 부인과, 젊었던 클라리사를 대비시키며 작품을 끌어간다. 그것은 마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일종의 세레나데로 보인다. 젊었던 시절, 선택하지 못한 자신의 열정을 돌아보는 댈러웨이 부인과 자신 속에 잠자고 있던 불같은 열정이 두려웠던 클라리사. 다른 듯하지만 한 여인의 인생을 섬세하게 터치한 감독의 배려가 마음에 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자라면, 한번쯤 느껴보았을 어떤 감정의 기복과 복잡다난한 굴곡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댈러웨이 부인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사용된(물론 버지니아 울프의 기법이지만) 작품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나 같은 남자이고 남편의 입장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조금 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면, 여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밥을 해주고 청소를 해주는 내 아내의 모습 뒤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을 열망과 열정 그리고 그녀만의 달란트를 보아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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