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2월
품절


나는 쓴다. 그게 다다. 그건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나와 대화한다.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 나는 사람들의 초상을 낱낱이 기록한다. 손도 더럽히지 않고 무덤을 판다.-76쪽

"개새끼도 성자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완전히 시커먼 것도 없고, 완전히 새하얀 것도 없어. 있는 건 회색뿐이야. 인간들도, 그들의 영혼도, 다 마찬가지지. 너도 회색 영혼이야. 우리 모두처럼 빼도 박도 못할 회색이지."-122쪽

그는 자신의 회한 속으로 떠났고, 나는 나의 회한 속에 남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마 그도 알 것이다. 사람은 어느 땅에 속해 살 듯, 회한 속에서도 살 수 있음을.-183쪽

코미디의 마지막 장은 언제나 피비린내 난다. 그 전 장이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우리는 결국 머리 위로 흙을 덮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되풀이된다.(파스칼 <팡세>중에서)-221쪽

죽은 자들을 죽이기란 너무 힘들다. 그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도 힘들다. 나 역시 얼마나 숱한 시도를 했던가. 다른 종류의 일이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 이보다는 훨씬 쉬이 풀릴 것을.-245쪽

요컨대, 이건 결국 복수다. 손톱으로 땅을 후벼 파며 죽은 자들의 말을 들으려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나 자신에게 말하는 방식이다. 아무리 공허해도,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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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구판절판


그리고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췄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121쪽

때때로 당신은 사흘 전에 이 언덕을 넘었고, 어제 이 시냇물을 건넜으며, 오늘 하루만도 벌써 두 번씩이나 이 쓰러진 나무를 타넘었다고 거의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이제 움직이는 선의 세게 속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머리는 줄에 묶여 있는 풍선과 같다. 당신과 같이 가지만, 실제 더 이상 그 밑에 있는 몸의 일부분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 수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특별할 게 없다. 글자 그대로 자동적이다. 하루의 산행이 끝난 뒤 당신은 더 이상 "이봐, 오늘 25km를 해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봐, 오늘 8,000번을 호흡했어'라고 말하지 않듯이……. 그렇게 된다.-122쪽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 준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201쪽

우린 3,520km를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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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0
콜린 덱스터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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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스 경감을 만났다. 전부터 계속 읽으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제서야  만나게 된 모스 경감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던 두 여자가 있다. 이들은 오지 않는 버스에 지쳤고 결국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한채 발견되고, 다른 한 여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건 해결에 나선 모스 경감은 루이스 형사 부장과 만나  그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현대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중 가장 인기 높은 탐정이라는 모스 경감은 예전의 탐정들과 같이 완벽하지 않다. 직관에 의한 추리를 하고 그 추리가 무너지고 다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이런 시행착오 끝에 범인을 찾아내는 모스 경감은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모스 경감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고  유머와 로맨스, 미스터리를 섞어 넣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소설을 만들어 냈다.   

빠트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십자말 풀이를 즐겨 하며 괴팍한 성격의 모스 경감의 모습과 충직한 루이스 부장 형사의 모습의 대비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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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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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한테 사랑을 보여주면 우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약점이 있어도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가 있으면 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관심을 가져주면 우리는 번창한다.-16쪽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38쪽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불평등을 고려할 때 질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우리가 모두를 질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58쪽

또 어떤 일에서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모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가치관을 걸고 어떤 일을 했는데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경우에만 수모를 느낀다.-70쪽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80쪽

우리의 지위의 문제를 우연적 요소들에 맡긴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그러나 합리적 통제라는 관념에 완전히 물들어, '불운'이 실패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관념을 폐기해버린 세상에 산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127쪽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끔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136쪽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의 물질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세상이 실패를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지목하는 집요한 경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202쪽

따라서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득하며, 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224쪽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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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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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쳐다 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 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20쪽

고달픈 삶을 벗어난 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 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 떠남을 생각하며 아줌마는 사라진 버스 쪽을 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135쪽

슬픔. 그렇다.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187쪽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꼬?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224쪽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 변할지 모르며 특히 젊은이를 변심하게 만드는 일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상대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 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타인을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을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모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304쪽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해가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힐 것인가. 이제 나는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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