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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평점 :
신간서평 2 -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선사시대의 크로마뇽인도, 고대의 그리스인도, 현대의 동아시아인도 모두 불안을 겪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불안의 문제는 “가장 다양하고도 중요한 문제들이 하나로 모이는 교점”이자 “우리의 정신적 실존 전체에 빛을 밝힐 수 있는 수수께끼”다(17쪽). 저자인 스콧 스토셀은 두 살 때부터 공포증과 불안으로 고생했으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열 살 이후에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온갖 방법, 정말 방법이란 방법을 총동원하여 불안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씨름해왔다. 안타깝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그는 불안이 완벽하게 해소되거나 해결되었다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불안극복의 효과를 과장하여 섣부른 비결 따위를 홍보하려는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신뢰할 수 있다. 불안을 해소하거나 해결하는 비결이란 없다는 잔인한 진실 앞에서 다만 키르케고르의 조언처럼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온 경험과 그에 관한 사유를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것이다.
불안이란 무엇인가? 불안을 정의하는 문제에도 다양한 쟁점들이 있지만, 스토셀은 40년간 불안을 전문적으로 치료해온 W박사에게 불안에 대한 간결한 정의로 논의를 시작한다. “불안은 앞날의 고통에 대한 걱정, 곧 막을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참사를 두려운 마음으로 예상하는 것”이다.(83쪽) 인간의 불안은 ‘미래를 향해 있다는 점’에서 ‘죽음’을 두려워할 수 없으며 ‘건강염려증’에도 걸릴 수 없는 동물들의 불안과는 격 또는 결이 다른 것이다. 스토셀은 불안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공황장애와 공포증을 가지고 살아간다. 발표하는 자리에서, 비행기를 타러 앉은 자리에 극도로, 병적으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토를 하지 않음에도 구토할까봐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구토공포증(emetophobia)이나 불안하면 설사가 나고, 설사가 나면 더 불안해지는 과민성 대장증후군도 앓는다. 그는 불안의 반응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다.
스토셀이 이 책에서 이 지독하고 지나친 불안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반복해서 다루는 핵심적인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 몸/뇌의 문제인가, 마음/영혼의 문제인가?’ 하는 물음이다. 만약 불안이 몸의 문제라면 세로토닌 수치를 조절하는 것으로 해소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면 실존적 깨달음을 통해서 해결될 것이다. 평생 ‘불안 장애’로 인한 고통을 숱하게 겪어온 저자에게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한 난제다. “우리가 신의 돌봄 안에서 안전한가, 아니면 차갑고 냉혹하고 무심한 우주 안에서 죽음을 향해 무의미하게 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훨씬 세속적으로, 시냅스 안의 세로토닌 수치를 적절히 조절하면 평온을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이 둘은 어쨌든 같은 것일까?”(82쪽) 하지만 불안은 몸의 문제이면서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령 명상을 하거나 대화를 하면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기도 하고, 세로토닌 수치를 낮추는 약을 먹으면 불안이 가시기도 한다. 스토셀은 “자낙스, 클로노핀, 셀렉사, 알코올 등의 약이 부모보다 L박사보다, 혹은 나 자신의 의지보다(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를 훨씬 더 잘 달래주었다”(411쪽)고 생각하면서도 약물로 불안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는 않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도 병행하며 자전적 투병기록도 집필한다. 그 무엇도 스토셀의 불안을 완전하게 해소해주는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기에 불안을 박멸할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401쪽) 그런데 과연 불안이 있는 것이 나쁜 것일까? 모든 불안이 유해하지 않으며 어떤 불안을 유익하다. 또한 어떤 불안은 지극히 ‘옳은’ 것이다. 적당한 불안과 적절한 두려움은 진화의 과정에서 이로움이 많기에 남은 것이다. 그리고 스토셀처럼 병적인 정도로 불안으로 고생하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조금 더 견디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어쩌면 스토셀처럼 불안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야와 불안을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다루는 능력도 갖게 될런지도 모른다. "고도의 예민함이 고도의 예술을 낳을 수 있듯이"(415쪽), 불안은 견디기 힘든 고통임은 분명하지만,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불안은 남다른 성취를 이룰 자원이 되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스토셀과 같이,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스토셀과 같이 이렇게 불안을 예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불안은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불안 때문에 정말 비참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쩌면 불안은 하나의 선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내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동전의 뒷면일 것이다. 어쩌면 부족하나마 나에게 어떤 도덕감이 있다면 그것이 불안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따금 걱정으로 나를 미칠 지경으로 몰고 가는 상상력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비해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내 발표불안과 나란히 존재하는 빠른 사회적 판단이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사람들을 조정하여 갈등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421쪽)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신의 불안으로 인한 추문들까지 낱낱이 밝혔다는 데 있다. 불안은 모두가 겪는 것이지만, 불안으로 인한 세세한 사연들을 고백하는 사람은 패배자나 겁쟁이와 같은 낙인을 감수하는 용기를 추가로 내야 한다. 가령 알랭 드 보통도 <불안>이란 제목의 책을 썼지만, 불안으로 겪은 자신의 병증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스콧 스토셀은 불안에 대한 일종의 커밍아웃을 통해서 약점과 치부를 탈은폐하는 용기를 가지고 이 책을 집필했다. 물론 어떤 증상을 겪거나 특정한 질병을 앓아온 경험 자체나 그것을 쓰는 행위 자체가 좋은 책을 만든다는 보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투병수기가 넘쳐나는 까닭은 거기에는 사건이나 사연만 있지 이를 반성하고 탐색하는 사유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스토셀의 책은 불안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성찰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덕목이 뚜렷하다. 급작스럽게 엄습한 불안의 문제를 심각하게 맞이해본 사람에게 선뜻 권해줄 만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