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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 문학과 숨은 신 -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2012 우수문학도서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9월
평점 :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늘 : 문학과 숨은 신』은 상당히 고약한 책이다. 일단 어렵다. 정신분석학과 문학, 신학, 철학, 사회학 등 어느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을 쌓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물리적으로 무거울 것뿐 아니라 지적으로도 육중하다. 가령 전체 논의의 포석으로 깔려 있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가령 주체, 대타자,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증상, 증환, 쥬이상스 등-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면, 십중팔구 라이트급의 독자가 헤비급의 저자를 상대하는 듯한 아찔하고 아득한 경험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쉽고 가벼운 독서로 지적 감량을 거듭하여 매끈하고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 라이트급의 우리 같은 독자들은 김응교 시인이 라캉과 지젝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의 저작을 통하여 우뚝하게 쌓아올린 정교한 관점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산증으로 기진하거나, 장르와 시대, 동서양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다채로운 텍스트의 풍요로운 해석을 따라잡지 못한 채 시차증으로 맥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독자들이 안고 있는 위험은 사실상 김응교 시인의 의도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애초에 독자들을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길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텍스트의 세계를 모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저자이기 이전에 독자였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 헤비급 복서로 보였던 저자는 오랜 시간 슈퍼헤비급의 지적 챔피언들과 힘겨운 대결을 감내해온 독자였다. 그가 바라는 독서는 에세이스트 서경식의 말처럼 “도락이 아닌 사명”이며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다. 이를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삶이 책이 되는 경지’를 겨냥한다. 스스로가 하나의 책이 되기를, ‘심비心碑에 새겨진 글씨’가 되기를 욕망한다.
하여 ‘김응교가 쓴 책’은 또는 ‘김응교’라는 책은 ‘문학 속에서 만난 숨은 신’에 대한 이야기다. 김응교가 말하는 숨은 신이란 “때때로 현존하고 때때로 부재하는 신이 아니라 현존하며 동시에 부재하는 신”이다. 그래서 그는 윤동주, 박두진, 이청준, C.S.루이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과 같이 일반적으로 기독교적 작가로 분류되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기형도, 유하, 박지원, 하루키 등 비기독교적 작가들, 레비나스, 보드리야르, 아감벤, 바디우, 지라르, 스피박, 지젝 등 현대사상가들을 통해서 ‘숨은 신’을 찾아내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이들과 하나님의 부재를 확언하는 이들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숨은 신’이 가장 결핍된 사람들이기에, ‘숨은 신’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양극단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더러 읽기를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숨은 신’이란, 하나님의 부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기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말했듯 ‘진실한 신은 숨은 신’이다. 우리는 성경이나 예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거꾸로 고전이나 시, 소설, 영화 심지어 그다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은 작품 속에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김응교의 책처럼, 김응교라는 책처럼 좀 읽기 고약한 책이라도 읽어보는 고역을 한번쯤은 감수해볼 만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라이트급인 우리 모두가 김응교 같은 헤비급의 저자로 거듭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를 따라서 독서하며 숨은 신을 만난다면, 그래서 거짓된 신이 아닌 진실한 신을 만난다면,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든 변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에겐 분명히 하나의 책으로 읽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