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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 대한민국에서 질병과 장애는 어떻게 죄가 되는가김민아 지음 / 뜨인돌


누구나 몸이 있고, 누구나 병에 걸린다. 그러나 누구나 그럴 수 있음에도 아픈 몸은 배척된다. 기대여명이 늘어난 동시에 유병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질병과 장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점점 더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곱씹어볼 만할 것 같다. 


출판사 소개글 중 : "국가인권위 활동가인 글쓴이는 바로 이 몸에 깃든 차별에 주목한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팠다는 이유로, 앞으로 아플 가

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입학과 취업에서 배제되고 심지어 진료와 수술마저도 거부당하는 사람들. 아픈 몸보다 더 아픈 이 비인간적 차별의 밑바탕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이 있다. 또한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외면하는 국가의 무책임이 있다." 




2.『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 강내희 지음 


대한민국 문화연구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강내희 교수의 논문선집.  

출판사 소개글 중 : "2016년 2월 말 중앙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강내희 교수가 지난 30년 가까운 기간에 생산한 글 19편을 골라 묶은 '선집'이다. 여기 실린 19편의 글은 저자가 한국의 공적 지식생산 영역 및 공론장에서 제출한 발언들로서, 그가 수행한 지식생산 활동에 대한 요약 결산에 해당한다."






3.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앤드루 포터 지음 


 근대의 신화 중 첨단에 놓여 있는 '진정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박태근 MD의 추천글 중 : "조지프 히스와 함께 <혁명을 팝니다>를 쓴 앤드류 포터는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를 모르면서도 그것이 무엇이든 진정성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정성이 언제 어떻게 생겨나 오늘날 의미 있는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고 현대의 문제를 해결할 방편으로 여겨지는지 추적하기로 마음먹는다. 역시 제목에서 드러나듯 결론은 이러한 진정성이 허구라는 것이다. 진정성에 대한 오해 탓에 이제는 진정성을 추구할수록 진정성을 잃어가는 듯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 거대한 거짓말의 반복, 순환, 확대재생산에서 인간은 과연 진정성(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배신으로 가득한 진정성 찾기의 길에서 벗어날 새로운 질문과 태도를 찾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원하는 것을 찾을 유일한 길일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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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패러다임 - 프로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맹정현 지음 / 위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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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서울정신분석포럼SFP 소식지 FiLUM(2015년 가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이 책은 프로이트를 이해해버리지’ 않기 위해 쓰인 책이다프로이트를 하나의 완결된 프로이트로 이해한다는 것은 더 이상 프로이트를 읽지 않아버리겠다는’ 것과 같다이해된 프로이트의 언어는 다루기 쉬워진 대신에 낡고 고루해져 더 이상 읽을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과연 프로이트를 이해해버릴 만큼 우리는 프로이트를 읽어왔는가부제에서 프로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질문한 맹정현은 1장에서 곧바로 그에 대한 대답을 정식화한다프로이트는 쉽게가 아니라 어렵게’ 읽어야 한다(23).

프로이트를 어렵게 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인간이 통합된 존재라는 환영에 맞서 인간의 분열성을 드러내는 정신분석학적 혁명을 일군 프로이트(9)의 입장에 따르면프로이트 자신도 통합된 하나의 프로이트가 아니라 분열된 여러 프로이트일 수밖에 없다그래서 프로이트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 사이의 이해되지 않는 불연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까다로운 조건을 따라서 읽어야 하는 것이다맹정현은 이 책에서 프로이트를 쉽고 단조롭게 독해하는 방식을 대신하여프로이트들 사이의 단절과 도약을 네 개의 패러다임들로 구분하여 독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꼼꼼하게 분해하여 네 개의 패러다임들로 구성한다각 패러다임들이 구축된 시기와 주된 병리적 증상대표개념열쇳말 등을 간단히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35): 첫 번째 패러다임(1895-1905)은 히스테리 증상을 탐구하면서 구성된 것으로, ‘유혹설이라고도 불릴 수 있고 무의식이 대표개념이며 억압억압된 것의 회귀욕망 등이 열쇳말이다두 번째 패러다임(1905-1911)은 여전히 히스테리를 다루면서 첫 번째 패러다임과 대립하는 환상설을 도출한다여기서는 성욕이 대표개념이고 충동쾌락승화오이디푸스 등이 열쇳말이 된다세 번째 패러다임(1911-1920)에서는 정신병과 멜랑콜리라는 범주를 탐색하면서 나르시시즘이라는 대표개념을 세우고자아 이상충동의 운명전이거세 등이 열쇳말로 삼는다네 번째 패러다임(1920-1940)에서는 멜랑콜리와 강박신경증의 범주를 접하면서 죽음 충동이라는 새로운 대표개념과 함께 이차토픽(초자아)을 정립한다이 네 개의 패러다임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봉착하면서 각기 다른 주요 개념들을 고안하여 새로운 인식의 토대를 형성해나간 것이다.


각각의 패러다임에서 파생된 테제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참고하라. “1895년의 유혹설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입니다. 1905년의 유아성욕설, ‘태초에 성욕이 있었다입니다. 1914년 원초적 나르시시즘, ‘태초에 나르시시즘이 있었다겠죠그렇다면 1924년에는 태초에 마조히즘이 있었다라는 주장이 가능해집니다.”(49)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차용하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다만 생각이 만들어지는 틀”(24)이라는 기본적인 뜻으로 국한되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통해서 합당한 문제들이 설정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한계 지워진다는 통찰이나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도약에 의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통찰 등은 수용되는 것이다하지만맹정현은 쿤이 패러다임을 고안하면서 과학철학의 담론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공동체의 합의하는 규칙에 의해 작동되는 정상과학’ 같은 연관 개념들을 배제한다[토마스 S. /김명자, 홍성욱 옮김과학혁명의 구조』 (서울까치, 2013)]


이때 맹정현의 프로이트 읽기 전략의 전모를 가늠하기 위해서는쿤의 패러다임 개념과의 연속성보다는 맹정현이 기존의 패러다임 규정에서 단절시킨 불연속성에 보다 더 주목해야 한다맹정현의 새로운 프로이트 읽기 모델의 패러다임 개념에서는 이와 결합된 과학성의 뉘앙스가 희석되고프로이트 한 사람이 패러다임 네 개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정상 정신분석이나 정신분석가들의 공동체’ 같은 연관 개념들까지 새로 생성하지 않는다(쿤에게는 필수적인 일이다). 또한 과학사에서는 패러다임 전환 후에 이전 패러다임은 도태되지만맹정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첫 번째 패러다임을 폐기할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아무리 최신 패러다임(네 번째 죽음충동 패러다임)이라도 해결불가능한 문제가 있음을 기술한다이렇게 맹정현(프로이트)의 언어의 결을 타고 맹정현(프로이트)의 문제의식과 추론의 과정을 파악하는 것(15)맹정현의 프로이트 읽기 전략에서 강조하는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로이트 패러다임라는 새로운 개념은 오직 맹정현의 프로이트 읽기라는 맥락과 연관되어서만 이해될 수 있다저자가 프로이트 읽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면서 네 개의 이론이나 담론’ 또는 시기나 단계’ 대신에 굳이 패러다임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물론 그 문제의 맥락이란 프로이트의 텍스트에서 개념들이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양립불가한 모순과 대립이 종합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던져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프로이트의 개념이 모호하고 모순적인 것으로프로이트의 이론이 지루하고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이러한 프로이트 텍스트 읽기의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맹정현은 최소 네 개의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개념을 미리 규정해놓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위치하는 장이나 패러다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읽을 필요”(25)를 강조했던 것이다.



맹정현은 이 책을 통해서 단절적이고 이질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프로이트의 텍스트들을 네 개의 패러다임의 배치 안에서개념과 이론을 통합시키려 하기보다는 개념을 고안하게 만든 문제적 현상과 맥락에 초점을 맞추며 읽는 새로운 읽기의 패러다임을 창안했다고 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 패러다임은 곧 맹정현 패러다임이라고도 바꾸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필로그에서 언급된 것처럼네 개의 패러다임들로 프로이트들 사이의 단절과 도약을 읽어내는 맹정현 패러다임도 결코 완결된 사유가 아니며특히 단절과 도약뿐만 아니라 연속과 교차를 포함해야 할 가능성 또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298). 완결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구성적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을 전수하려고 했던(298맹정현의  기획에 따르면이 책은 철학책이나 심리학책보다는 도리어 요리책이나 여행책과 같은 실용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요리하는 사람에게 요리책의 레시피가 유익하고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이드북의 정보가 유용하듯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도 프로이트를 읽으려는 사람에게는 매우 쓸모 있는 실용서가 될 것이다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나갈 프로이트 읽기의 역사는 이 책부터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프로이트는 오해된 것보다 더 널리이해된 것보다 더 깊이읽혀진 것보다 더 많이 읽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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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 문학과 숨은 신,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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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늘 : 문학과 숨은 신은 상당히 고약한 책이다. 일단 어렵다. 정신분석학과 문학, 신학, 철학, 사회학 등 어느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을 쌓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물리적으로 무거울 것뿐 아니라 지적으로도 육중하다. 가령 전체 논의의 포석으로 깔려 있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가령 주체, 대타자,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증상, 증환, 쥬이상스 등-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면, 십중팔구 라이트급의 독자가 헤비급의 저자를 상대하는 듯한 아찔하고 아득한 경험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쉽고 가벼운 독서로 지적 감량을 거듭하여 매끈하고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 라이트급의 우리 같은 독자들은 김응교 시인이 라캉과 지젝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의 저작을 통하여 우뚝하게 쌓아올린 정교한 관점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산증으로 기진하거나, 장르와 시대, 동서양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다채로운 텍스트의 풍요로운 해석을 따라잡지 못한 채 시차증으로 맥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독자들이 안고 있는 위험은 사실상 김응교 시인의 의도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애초에 독자들을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길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텍스트의 세계를 모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저자이기 이전에 독자였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 헤비급 복서로 보였던 저자는 오랜 시간 슈퍼헤비급의 지적 챔피언들과 힘겨운 대결을 감내해온 독자였다. 그가 바라는 독서는 에세이스트 서경식의 말처럼 도락이 아닌 사명이며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이를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삶이 책이 되는 경지를 겨냥한다. 스스로가 하나의 책이 되기를, ‘심비心碑에 새겨진 글씨가 되기를 욕망한다.

 

하여 김응교가 쓴 책은 또는 김응교라는 책은 문학 속에서 만난 숨은 신에 대한 이야기다. 김응교가 말하는 숨은 신이란 때때로 현존하고 때때로 부재하는 신이 아니라 현존하며 동시에 부재하는 신이다. 그래서 그는 윤동주, 박두진, 이청준, C.S.루이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과 같이 일반적으로 기독교적 작가로 분류되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기형도, 유하, 박지원, 하루키 등 비기독교적 작가들, 레비나스, 보드리야르, 아감벤, 바디우, 지라르, 스피박, 지젝 등 현대사상가들을 통해서 숨은 신을 찾아내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이들과 하나님의 부재를 확언하는 이들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숨은 신이 가장 결핍된 사람들이기에, ‘숨은 신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양극단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더러 읽기를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숨은 신이란, 하나님의 부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기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말했듯 진실한 신은 숨은 신이다. 우리는 성경이나 예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거꾸로 고전이나 시, 소설, 영화 심지어 그다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은 작품 속에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김응교의 책처럼, 김응교라는 책처럼 좀 읽기 고약한 책이라도 읽어보는 고역을 한번쯤은 감수해볼 만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라이트급인 우리 모두가 김응교 같은 헤비급의 저자로 거듭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를 따라서 독서하며 숨은 신을 만난다면, 그래서 거짓된 신이 아닌 진실한 신을 만난다면,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든 변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에겐 분명히 하나의 책으로 읽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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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
류대영 지음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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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의 저자, 류대영은 이 책을 미국 사학계의 지적인 탈식민지화 작업을 염두해두고 집필했다. 미국의 해외 선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70년대 월남전 패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월남전 패배의 충격으로 타민족, 타문화에 가졌던 우월적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해외 선교활동이 미국 사학계의 학문적 관심선상에 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최근에 나타난, 20세기 후반의 세계 역사를 전후시대라고 하지 않고 포스트콜로니얼 시대(postcolonial)라고 지칭하는 관점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여기서 포스트콜로니얼 시대라는 명칭은 식민지 경험을 20세기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으로 보고 식민지 경험을 겪은 식민지 시대의 가해자나 희생자 모두가 세계 역사를 보는 관점을 재점검해보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해자의 경우에 식민지 시대의 왜곡된 세계관을 발견하거나 인정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희생자였던 피식민지권 학자들이 각자의 역사적 경험으로 미국 사학계의 탈식민지화 작업을 통한 역사적인 반성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또한 피식민지권 국가의 한 역사학자로써 이러한 정황을 의식하고 쓰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내에서의 기독교 역사 연구는 민족문제를 중심주제로 놓고 진행되어 온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내한 했던 미국 선교사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 전체를 한 집단으로 일반화 시키고 그 성격을 밝혀내는 작업을 통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선교사”라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핵심 주제를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함께 가졌던 중산층적 종교, 문화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미국 개신교 해외선교가 중산층적 사회종교현상이었다는 최근의 명제에 대한 선교현지의 사례 연구적 성격을 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선교사들이 누구였는지를, 왜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고찰하여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교사들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역추적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논리 전개는 동일한 연구대상을 두고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자의 논지는 미국 선교사들이 근본적으로 미국의 기독교인이었고, 그들이 활동했던 장소가 한국이었음에 주목했다. 그리고 후자는 생활 양식, 종교 행위, 문화적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중산층적 성격을 밝혀내는 데에 주력했다.

진실에 대면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이야기 선교사를 읽으며 성인(聖人) 같이 느꼈던 언더우드,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자랑스러웠던 알랜 등의 미국 선교사들의 환상을 치워내고 그들의 모습을 직시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당혹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전해주었던 복음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더해져서 한국 교회가 뿌리내렸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을 가볍게 볼 수는 결코 없다. 또한 이 연구는 선교사와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함에 있어서 출발점이자 귀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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