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아름다운 책들의 세계라고 해도, 서점(직원)의 입장에서는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어쨌든 하나의 상품으로서 취급하게 되니까요. 정신 없이 새로 나온 책들을 받아내고 여기저기에 배치하다 보면, 어쩔 때는 이게 내가 봐 오던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책에 대해 가장 낭만적인 경험 역시 같은 곳에서부터 온다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새로 나온 책으로는 불리우기 힘들게 된 책들이 좀 더 찾기 힘든 곳으로 밀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마음이 싸해지거든요. 가벼운 짝사랑을 앓는 기분과도 비슷합니다. MD가 되기 전에는 제가 원하지 않고서야 책을 떠나 보낼 일이 없었으니까요. 정을 듬뿍 준 책들이 꼭 저 몰래 전학 가듯이 조용히 묻혀가는 걸 보면 참, 그게요.
해서, 고물상 옆 보물창고입니다. 근래 나와서 많이 팔린 책들은 아니지만, 혹여 잊혀지지는 말라고 작은 보물 창고 하나 만들었어요. 소박하게 챙겨 놓았으니 와서 구경하시고, 종종 집어 가시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럼 첫 번째 상자에 담은 책들 한 번 보시죠. ^^
세계 종교 올림픽
-어느 날, 어떤 왕국의 왕과 현자와 광대가 동시에 신이 등장하는 꿈을 꿉니다. 그들은 논의 끝에 그 꿈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세계의 5대 종교와 무신론자의 대표를 불러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하지요.
토론자들과 관객들은 역사 내내 서로 각을 세워 온 각 종교의 핵심이 그토록 닮아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모두가 이름만이 조금씩 다른 궁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 끝에는 관용과 성찰을 포함한 (시공간과 마음 모두에 대한) 거대한 열림이 기다리고 있지요. 책 속에서 줄곧 인용되는 각 경전의 문구 역시 비할 데 없이 아름답습니다. 온 우주의 분자 하나하나가 영원한 빛을 반사하는 셀 수 없는 숫자의 거울이라는 내용의 옛 이슬람 시는 한 송이 꽃으로부터 시작하지요.
그러나 이 책만의 장점은 바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유대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증오를 바라보고만 있는가 라거나 왜 이슬람교는 성전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양산하는가 등등에 대해 각 종교의 대표들이 부끄러워하고 현실의 장벽을 인정하고 있죠. 이 책은 단순한 종교 개론이나 교리 비교가 아니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독자들에게 되묻는 책입니다(심지어 작가는 독자의 편지를 기다리며 편지 주소까지 써 놨습니다).
책의 주제와 이 세상과의 연결 모두를 놓치지 않는 성찰. 저는 이런 책이야말로 어떤 분야에 대한 진정한 입문서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읽기 쉽게 우화로 시작해서 추리물(!!)의 양념까지 톡톡 뿌린 작가의 정성 어린 배려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자전거 말고 바이크
-저는 <완득이>를 좀 심드렁하게 읽었습니다. 그 친구는 운이 좋으니까요. 개인적으로, 행운의 몫이 큰 소설은 성장소설로는 부르기 좀 껄끄럽습니다. 비록 그 의도가 힘 내서 잘 살아 보자고 하는 것일지라도 말이죠.
과거의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은 학생을 돕고 싶지만, 그 고통이 타인의 말 몇 마디로 회복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백하는 내용의 단편 [서랍 속의 아이]는 바로 청소년 문학계에 던지는 화두입니다. 많은 청소년 문학 작가들은 착한 마음으로 역경을 이겨내자고 계몽합니다. 그런데 그 격려는 누구에게 주어지고 있는 걸까요. 정말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걸까요.
이 책의 처음에 실린 [구령대 아이들]의 주인공 수탁이는 완득이랑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아껴주는 사람이라고는 ‘소년원 다녀 와서 갑자기 인간 되겠다고 설치는 18세 짱개집 알바’ 형 뿐입니다. 다들 너무 어렸죠. 결국 타고난 싸움꾼 수탁이는 세상에 부딪히는 방법으로서 평생 당해본 적 없는 다굴 맞기를 일부러 선택합니다. 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인생의 바닥은 직접 닿아 보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저는 수탁이가 더 좋습니다.
<자전거 말고 바이크>는 희망 대신에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높이 뛰기 위해서는 아래를 쳐다보고 땅을 단단히 다져야 하니까요. 청소년 문학계는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으며, 몸이 크는 만큼 이제 그 마음도 커져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요. 저는 이 단편집이 일종의 전환점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책입니다.
*이 책의 TTB리뷰와 내용이 비슷하지요? 작성자가 동일하므로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
엔젤 엔젤 엔젤
-치매에 걸려 '어려진' 할머니와 고등학생 손녀는 매일 밤 마루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 만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그 어두운 곳에서 수족관 속의 다른 모든 것을 죽여 버리는 엔젤 피시의 악마성을 목격하죠. 그 광경은 할머니와 손녀의 머리 속에서 (마치 인간의 뿌리처럼 보이는) 악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내기 시작합니다.
인간 내면의 근본적인 악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입니다만, 단정하고 차분한 전개가 그 주제를 포근히 떠받들고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자괴감, 그리고 손녀의 강박증에 가까운 성격과 그녀의 소박하던 어린 시절이 계속 교차하며 점점 하나의 내용으로 뭉쳐집니다. 어느새 환상과 우화와 추억과 현재가 서로 겹치고 섞여듭니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소녀들의 소소한 추억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과 인류의 원시적 악마성, 마지막으로 구원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플롯의 짜임새가 튼실합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상징들까지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읽는 맛이 쏠쏠하죠. 136쪽짜리 중편급 소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소소한 경험들로부터 성찰을 끌어내면서도 어려워지지 않는 작가의 글 씀씀이 역시 좋았습니다. 완성도나 내용 모두에서 글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나 너무 말랑한 일본 소설에 물리신 분들께는 특히 좋은 선택이겠네요. 작고 귀여운 버전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말씀 드려도 될까요? 아 네, 물론 여기에는 알료샤는 없습니다만…
-이번 주는 여기까지입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책들의 이야기이고 해서, 들러주는 분들 한 분 한 분 뵙고 얘기라도 나누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만… 마음처럼 할 수는 없죠(하하). 근래 읽었던 책들 중에 알려지지 않아서 아까운 책이 있다거나 하시면 리플로 달아주세요. 기회가 되면 읽고 나서 창고에 함께 쟁여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 주 행복하게 보내시고,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