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C. 클라크)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  

          

 언어 너머의 시 

  

 "이제 커다란 판은 아무런 특징 없이 똑같은 색으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어둠 속에 서 있는 빛의 기둥이었다. 원숭이인간들은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고개를 흔들고는 곧 오솔길을 따라 자신들의 은신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고, 자신들을 집으로,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로, 별들이 빛나는 우주로 인도해 주는 이상한 빛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p.42 

 SF계의 그랜드마스터 중 한 명인 아서 클라크가 문장의 마술사라고는 부르기 어렵다. 그러나 아서 클라크는 발상 자체가 시詩다. 문장은 평이하게 그 발상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서 클라크는 시인이다. 다만 시는 글 속에 있지 않고 글이 전달하는 아이디어의 상태로 존재한다. 시는 글을 통해 드러나지 않고 글 속에 숨어 있다. 그렇게 치면 모든 글이 다 시가 아니냐고? 물론 모든 글을 시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렇다. 그러나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더라도 아무나 시인이 되지는 못한다. 아서 클라크는 역사에 남을 시인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시인들처럼 신에 대해, 초월적인 존재(신이 아닐 수 있음)와 우주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본성에 대해 썼다. 아서 클라크는 과학과 감각과 상상을 동시에 저글링할 줄 알았던 고대 시인들의 후예다.

 그리고 이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하나의 경지다. 이 작품 속에 클라크의 시들이 모두 들어가서 서로 얽혀들었다. 인류는 초월적 존재로 인해 재창조(급속 진화)되고, 인류 역시 AI를 창조하며, AI는 우주에 대해 고찰하다가 초월적 존재 양식을 예감하고 '자신을 창조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간파한다. 다시 (불완전함이 간파당한) 인류는 초월적 존재와 마주친다. 각 소재들은 떼어놓고 보아도 흥미롭지만, 시간축에 맞추어 순환 구조를 취하는 구성으로 인해 한 권의 굳건한 장편소설로 '이루어졌다'. 보기 드물게 우아한 나선형 상승 곡선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거대하고 느린 시다. 호메로스를 읽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사랑할 것이다. 이 소설이 한물 갔다거나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서 클라크의 발상이 사실상 고전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거나, SF가 스타워즈인 걸로 착각한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전쟁도 로맨스도 없다. 더없이 우아한 사고와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 역시 두말할 것 없는 걸작이다. 사실 이 영화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형 스크린에서 보아야 한다. 시야를 메우는 스탠리 큐브릭의 강박적인 세트 구성은 현란한 특수효과 없이도 이미 스펙터클하다. 적극적인 음악의 사용, 대사를 통해 '서술'하는 대신 등장인물과 배경의 움직임을 통해 미래를 '보여주기'. 이 시청각의 스펙터클은 "거의 말하지 않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원작의 핵심을 분명히 잡아내고 있다는 증거다. 소설과 거의 동시에 작업이 진행된 이 영화는 소설의 결과물, 즉 '글'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아서 클라크의 아이디어에 매개체 없이 거의 곧바로 접근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큐브릭 역시 시를 쓴 셈이고, 결국 원작보다 더욱 축약되고 신비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영화 속의 모노리스는 원작과 달리 일말의 설명도 주어지지 않는 신비 그 자체이며, 이 영화는 그 절대 신비를 둘러싸고 음악과 시각 효과와 꼼꼼히 짜여진 미술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 제의, 탐색(고대에 그것은 하나였다)이다. 

 이만큼 위대한 소설-영화 콤비도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원작'이 없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두 쌍둥이가 모두 밝은 빛을 발하는 기적을, 한 번 뿐인 인생이 끝나기 전에 꼭 느껴보시기 바란다. 

-외국소설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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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3-2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어머무시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글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
MD님의 혈관 어디쯤에도 고대 시인들의 뭔가(?)가 숨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3-22 17:12   좋아요 0 | URL
저는 감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눈물 좀 닦고... 스페이스 오디세이 만세! ㅠㅜ

카스피 2011-03-2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스페이스 오딧세이 4부작중 왜 나머지 3권은 재간 혹은 첫간행을 하지 않는답니까? 버럭 3:< 외국소설/예술MD 출판사에 압력좀 너주세용^^

외국소설/예술MD 2011-03-23 11:30   좋아요 0 | URL
그게, 장사가 잘 되느냐 아니냐는 약간 어려운 문제니까요 ㅎ. 아 자랑하자면 저는 3001 오디세이(어디서 만들었는진 아시죠?)를 갖고 있습니다. ㅎㅎ

카스피 2011-03-24 12:12   좋아요 0 | URL
아니 그 100명중의 한분이신가요.MD님도 상당히 SF팬이시네요.넘 부럽습니당^^

외국소설/예술MD 2011-03-24 18:59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 1퍼센트- 보다 더 희귀하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