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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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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나질 못할 사람들 속에 묻혀 우리도 그렇게 잊고 사는 것 -내 꿈 中

1996년 1월은 참 이상한 달이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곧 2집을 낼 거라던 서지원과 5집을 준비한다던 김광석이 5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5일이 지나고는 룰라의 이상민이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20일이 지나고는 서태지와아이들이 해체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김성재 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10대 소녀팬들의 정신적 충격이 크고…' '베르테르 신드롬이 사회적으로 우려되며…' 운운하며 온갖 기사를 쏟아냈다. 수많은 뒷얘기와 소문이 시끄럽게 떠돌았다. 


매년 다시 맞는 1월, 이후의 삶을 계속해 나가는 이들을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 벌써 18주기를 맞게 된 이들이 떠오를 뿐이다. 1976년생인 서지원은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스무 살 미소년이고, 1964년생인 김광석은 영원한 서른 셋 청년이다. 그들을 떠올리거나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안타깝고 아쉽지만, '결코 늙지 않을 그들'에 대한 경외감이 가슴 한 구석에 고개숙인 채 숨어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제프 버클리와 커트 코베인과 히스 레저를 떠올릴 때 그렇듯이.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깊은 주름살이 이마에 패인 김광석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올해 쉰 살이 되었으리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서른 셋, 기타를 메고 하모니카를 건, 미소 띤 얼굴로 조근조근 말을 하고 물기가 많은 목소리로 쓸쓸하게 노래부르는, 가객.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 날들 中

김광석의 에세이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는 내내,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쓸쓸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이를 바라보는 듯 했다. 내가 읽고 있는 글을 쓴 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음을 계속 실감하며 글자를 읽어내려갔기에, 말할 수 없이 심란해지곤 했다.


 속의 그는 매우 예민하고 여리고 약하고 많이 아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계속 다짐하는 것 같았는데. 잘 살아야겠다고, 열심히 노래해야겠다고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것 같았는데.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은 쓸모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정신을 더 깊게 만드는 필요 조건임을 잘 아는 것 같았는데. 산다는 건 괴롭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걸 잘 알면서도 버텨내는 사람 같았는데.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 같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삶은 때로 일정 부분 만족하며, 일정 부분 아쉬워하며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P.68)


그때 내가 좀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 내 음악이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젊었을 때 많이 사랑하고/ 많이 이별하세요./ 방황과 고민은 젊음의 특권이니까요. (P.94)



눈을 감으면 흘러 내릴까 눈 못 감는 내 사랑 -외사랑 中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책 속 여기저기에서 무언가에 대한 사랑으로 할퀴어진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랑 때문에 참 많이 아팠구나 싶었다. 어떤 사랑이었을까.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 사랑 때문이었을까.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단 한 번도 눈 마주친 적 없는 그리운 는, 내 속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고 토로했던 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궁금했다. 솔직히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내 말고 사랑하는 이가 따로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도 잠시 했다(어떤 의미에선 불경한 생각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예전 기사를 검색해 보다가 그의 딸이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딸에 대해 적어내려갔던 글들이 새삼 찡했다. 서연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서연이와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 무조건 그 아이를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다짐, 서연이가 자신의 자랑이라 참 좋고 참 행복하다는 고백…왠지 숙연해졌다.


너무 가까이 있어 자주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지치고 괴로워져 곁에 없는 누군가, 완벽히 나를 이해하는 누군가, 내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갈구하고 원하지만, 결국은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길을 비춰주겠다고, 가난한 살과 영혼이라도 모두 주고 싶다고, 삶의 끝자리를 지켜 주고 싶다고, 내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이. 그가 누구였을까. 여전히 조금은 궁금하고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것이겠지만, 서연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아니더라도.



내 노래는 허공에 퍼지고 내 노래는 끝나지만 내 맘은 언제나 하나뿐 -말하지 못한 내 사랑 中

가장 마음 편히 페이지를 넘길 수 있던 순간은 김광석의 노래에 숨겨 있던 사연들을 읽어내려갈 때였다. 어릴 때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노래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김민기를 어떻게 만났고, 노래를찾는사람들 1집을 어떻게 발표했는지, 사랑했지만과 서른 즈음에와 이등병의 편지와 그녀가 처음 울던 날과 나른한 오후는 김광석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노래인지…이런 얘기들을 그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그 노래들의 뒷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더 컸다.


책의 전반적인 글이 노랫말 같았고, 3부에 실린 그의 미발표곡 가사들을 읽을 때는 곡조도 모르는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환청이었을까. 어떤 가사들은 아깝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이 특히 그랬다.


지금은 아무 말 할 수 없어요

지금은 아무 말없이 걸어요

눈 감으면 지난 바람

사무치도록 아쉬웁지만

지금은 아무 말 할 수 없어요

지금은 아무 말없이 그저 걸어요


중간에 실린 '날 사랑했다면'의 가사를 읽으면서 박학기가 부른 노래를 떠올리고, 그 노래를 김광석이 불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김광석 버전의 '날 사랑했다면'도 아름다울 것 같은데. 또 아쉬워지려 해서, 아니라고, 고마운 거라고, 이렇게라도 그가 남기고 간 가사들을 읽을 수 있어 고마운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나의 노래 中

김광석의 앨범 한 장도 없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세대도 아닌 나까지도, 나이를 먹고 삶을 계속해나가는 동안 자주자주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그의 노래를 찾아듣는 것은, 그의 노래가 결국 삶과 사랑에 대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목소리에는 근본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지만, 결코 절망적이지도 암울하지도 않다. 고통을 손바닥 위에 놓고 펄쩍펄쩍 뛰는 대신,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듯한 처연함. 결국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받아들이고 마는 담담함. 왜냐하면, 그런 게 살아가는 거니까. 산다는 건 그런 것들과 함께 가는 거니까. 그 절절한 애틋함이 그가 만들어 부른 노랫속의 삶에 깃들어 있기에, 누구나 삶의 어떤 지점에서 김광석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나의 노래가 힘이고 삶이라고 했던 김광석을.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은 후 한동안 김광석을 검색해 보고, (종편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음에도) '히든싱어 김광석편'을 찾아 보았다. 왠지 김광석이라는 사람을 좀더 알게 된 듯한 느낌이다. 한 번 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이번엔 그의 노래를 차례대로 들어봐야겠다. 1집부터 마지막 앨범까지, 라이브앨범까지.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오경필 중사가 그를 그리워하며 한숨을 쉬었듯이, 나도 그를 그리워해보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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