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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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그림책을 조금씩 사 모으기 시작했었던, 그 정도로. '그림책'을 검색 키워드로 넣어, 그림책 뿐만 아니라 그림책을 둘러싸고 나오는 많은 담화들을 모두 찾아 읽는(다기보다는 개중 끌리는 것만) 정도로.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작가가 따로 있을 정도로. 그리고 최혜진은 그 중 단연 T.O.P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는 역시, 저자 본인이 그림책을 몹시 사랑하는 애독자로서 팬심을 그득 품고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는 현장의 이야기이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의 설렘을 여전히 기억한다.

목차 페이지에 담겨 있는 작가들 이름 앞에 붙어있는 소제목. 한 작가의 세계를 압축해서 표현할 말을 찾는 데에는, (정말)글 잘 쓰는 분이지만 (정말이지)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것을 배제한다는 뜻이니까. 공존하고 있는 특징이라고 해도, 입체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작품 세계라고 해도 한 면에 빛을 비춘 순간 다른 특성은 잠시 그림자로 덮어둘 수밖에 없으니까. 여하간 한 사람의 작가가 대표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 다른 가치를 모두 소외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저자가 선별한 소제목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개성 외에 내가 '알고 있는' 그 작가의 개성이라든가 지향점 같은 것을 더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그림책 작가 입문서, 소개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성인이 된 후로) 그림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뜻밖에 그림책 한 권의 무게가 그닥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우연히 깨달을 수도 있다.

 

성실함만으로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12쪽

 

저자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이게 제일 궁금했지만 아마도 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양질전화는 여기서도 통할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줬던, 창의력 넘치는 작품들의 창조주들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책이니까.

 

상상력과 창의력. 이 두 단어를 마주하면 가끔씩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박제 동물들이 생각난다. 분명 눈앞에 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것에 대해 말하지만 고유의 영혼, 빛깔, 냄새 같은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 무척 익숙한 말이지만, 그 진짜 뜻을 제대로 알고서 쓰는 건지 아닌지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럴 땐 사전을 펼치면 의외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상상력은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생각으로 그려보는 능력을 의미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상상력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창의력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이 하늘을 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는 게 상상이고, 그 상상에 한 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실현해내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게 창의다. -40쪽 

 

책을 읽다말고 '심봤다'라고 전율하는 때가 몇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내 마음 나도 잘 몰라...'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대혼란 상태의 마음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해줄 수는 없다 싶은 문장들을 만날 때이고, 두 번째가 알긴 아는데 그 개념들 사이에 흐르는 차이의 폭을 몰랐던, 그 우둘투둘한 경계를 날카롭게 갈라줄 때다.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의 기쁨인 줄 알았던 이 현재 진행형의 경험이 절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클로드 퐁티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 외롭고 속상할 때 책이 위로가 되어주었나요?

- 어릴 땐 자신의 느낌과 행동에 어른들의 단어로 이름을 붙이지 못합니다. 늘 책을 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고 책 속 세계에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행위의 의미가 뭔지 몰랐어요. 그게 위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 -107쪽

 

섬세하고, 상처가 많았던 어린시절을 보냈던 클로드 퐁티는 이런 경험을 축적하고 재구성해서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어른이 됐다. 감동적인 성장이고, 외로웠을 그의 성장기에 뒤늦은 다독임을 보내고 싶어진다.

 

책으로 살아 숨쉬려면 독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독자는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때론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습니다. 환상 세계 혹은 상상 세계로 이동하는 거죠. 이 세상은 무한대입니다. 여기에 책의 사차원 속성 '시간'이 있습니다. 이렇듯 책은 고도의 창작물입니다. 영화, 연극, 회화... 모든 예술이 그 안에 있죠. 저는 글 혹은 그림을 이용해 책을 짓는 게 아닙니다. 글과 그림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빈 공간에서 책을 짓습니다. 독자 안에 있는 무언가를 톡톡 건드려서 꿈꾸게 만들려고 책을 만듭니다. 최근 한국에 소개된 <바람은 보이지 않아> 마지막 장에는 독자들이 책 옆구리를 잡고 엄지손가락을 페이지를 한 쪽씩 빠르게 밀어서 바람을 일으키게 만드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책의 마법이죠. 바람을 일으키는 유일한 매체니까요. -229쪽

 

 

안 에르보가 한 말은, 그녀가 만들었던 그림책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빈틈에 상상으로 공간을 불어넣어 의미를 만들어준다. 창의력의 의미 그대로.

 

아이들이 제 책을 좋아하면 읽어주세요.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아무리 제 책이더라도 읽어주지 마세요. 그림책은 조금은 연약한 매체랍니다. 독자가 깊이 관여해서 읽지 않으면 강한 여운을 남기지 않거든요. 대신 능동적으로 즐겁게 읽으면 열정을 쏟은 만큼 보답해주는 매체입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땐 아이들과 함께 줄거리를 살짝 바꿔가며 읽으면 더 재미있어요. 서로가 이해한 내용에 맞춰 조금씩 각색해 보는 거죠. 아이들에게 질문해 보세요.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어느 부분이 제일 재미있는지. 분명 아이들은 어른이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으로 책에 대해 말해줄 거예요. 제 책을 향해 "난 이 책이 별로야. 이 생각에 반대야." 마음껏 말하셔도 좋아요. 능동적으로, 즐겁게. 중요한 건 이겁니다. -304쪽

 

책을 읽는 사람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는 그 당연한 권리, 그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어른들은 자기들이 읽히고 싶은 책을 골라 읽으라고 강요한다. 재미가 있거나 없거나. 이건 폭거야...

이런 멋진 말을 한 사람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라는 이탈리아의 작가다.

 

 

창의적인 사람에 대한 낭만적인 편견을 걷고 보면 땀 냄새와 한숨, 수고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그리 대단치 않은 작은 행위를 끈기 있게 반복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케빈 애슈턴이 <창조의 탄생>에서 쓴 이 문장을 믿고 싶어지며, 완벽함이 아닌 온전함으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어진다.

"훌륭한 글은 잘 편집한 서투른 글이다. 훌륭한 가설은 수많은 실험이 실패한 뒤에 남은 추측이다. 훌륭한 요리는 재료를 선택하고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껍데기를 까고 졸인 결과다." -167쪽

 

12쪽에서 저자가 던졌던 질문의 답은 사실 여기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여 있다. 내가 한 오늘의 사소한 일은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계속하고 또 계속했을 때 뭔가가 된다는 건 역시 진리다. 믿을 것도 별로 없는 오늘날의 세상에 내가 기댈 수 있고, 아이들에게 이것 하나는 믿어도 좋다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진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크나큰 위안이 된다.

 

최혜진 작가님, 꼬옥 계속해서 써 주세요. 작가님의 책을 기다리는 게 정말 큰 인생의 낙 중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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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지 말걸 그랬어 스콜라 창작 그림책 96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유문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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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생은, 해봐서 후회하는 것보다 안해봐서 후회하는 게 더 많대. 네 말마따나 ‘~했을 뿐이지, 남과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까. 시도만으로도 멋진 인생! (과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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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숲 9
사노 요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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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고양이 님. 본성은 어쩔 수 없는거야. 이 제목, 보면 볼수록 암 진단을 받자마자 재규어를 바로 구입했다던 요코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어지는)의 패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제목과 내용이다.
덧. 자매품, ‘그럼, 오늘은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먹어볼까?‘ by 우리집 막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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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왕 바바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3
장 드 브루노프 지음, 김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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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작가가 1937년에 돌아가신 분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도 슬금슬금. 6학년 아이의 말을 빌자면 그 개연성 없음이 이 작품의 매력인 듯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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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쓴 독서록을 타이핑해 올리면서 혼자 붙잡은 물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던져왔던 궁금증이니만큼 많은 생각들이 있고 제가끔의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현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쓴다는 건 뭘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달라지고,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이제 갓 열 살이 넘은 아이들에게 읽은 것들에 대한 글쓰기를 시키는 걸까?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쓴 글은(글은 글이니까) 놀라울 정도로 결이 다르다. 둘째 아이가 쓴 글을 보면 책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거나 풀어나간다든가 하는 식의 종합하는 성향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각개격파인 것도 아닌데, 책을 읽다가 뭔가 본인이 꽂힌 '순간'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특정한 캐릭터의 리액션이라든가, 이런 몹시도 사소한 디테일에 완전히 자신을 쏟아부어 감정과잉의 상태로 그게 그래서 이랬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서두를 열어서, 나라면... 하고 엄청나게 몰입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아이다워서 웃음이 나... 그렇게 본인 감정을 쏟아부어서 쓸 수 있다는 것도 좀 부럽고, 여하간 그래서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이 뭔지는 한 개도 모르겠지만, 뭐가 이렇게 얘를 미치게 만들었나가 궁금해서 그 책을 들춰보게 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인가, 몇 줄 안 쓰는데도 얘는 쓰는 걸 너무 힘들어 한다. 감정적으로 탈진할 것 같다는 짐작만 한다. 기껏해야 만 10세가 담아놓고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커 봤자 얼마나 클까. 그걸 한껏 들고 있다가 와르르 쏟아붓고 헉헉헉, 힘들어하는거지...

 

반대로 고학년 초딩이는 되게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도로) 쿨해질 수 있는 포지션에서 쓴다. 책 읽기를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거리를 두고' 읽는다. 그러니까 써 오는 글도 남 얘기하듯 걔가 오늘 이러저러해서 요랬더랬지... 하는 느낌이 엄청 강하다. 사춘기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 그런가 자신을 겹겹이 포장해서 잘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게, 원래의 성격에 더해져서 더 단단하고 방어적인 문장만 쓰는 느낌... 그걸 내가 억지로 들어내려고 해서도 안 되고 좀 치워줄래?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가끔은 좀 더 날 것의 감정을 보여 써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사실, 그건 나도 잘 안 되는 건데.

내 마음이 이렇더라, 그리고 내 생각은 이렇다, 라고 남이 봐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면서 펼치는 게 수줍고 무서운 사람도 있는 법이잖아. 라고 쓰고보니 이 아이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말은 한다쳐도 그 다음은 수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우연히 독서모임에 나간지 이 년 가까이 되면서 그런 방어적인 태도가 많이 고쳐졌다.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이나 품었던 생각들에 마음을 열고 들어주었고 어떤 때는 공감도 해주었다. 어느 때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받아들여주었는데 그 경험이 흡사 가득 찬 곳간의 빗장을 들어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더 걸릴수도 있겠지만, 어떤 글이든 일단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쓰는 일로 엄마와 의견을 나누고, 대화할 수 있는 또다른 소통채널 하나를 튼 것을 아이가 좋아해 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보람이 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글, 누가 베껴써도 원래 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글, 그런 것이라도 내처 쓰고 쓰고 또 쓰면서 조금씩 내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시작을 조금 더 빨리 앞당기면, 시행착오의 기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좀 있었다. 어릴 때 글쓰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난다. 책 읽는 것은 좋았지만 읽은 것을 가지고 뭘 느꼈는지, 뭘 생각했는지 써오라고 하는 게 진저리가 났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무감각하게 읽은 나이의 어린애에게 뭘 그렇게 요구하는지 짜증이 겹겹으로 쌓였다가 터지곤 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어떻게 쓰든 아이들에게 이만큼이나 쓴 게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어쨌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면서 걷고 있는 길에 표식을 놓는 편이 유익한 건 확실하니까.

 

아이는 엄마, 오늘 내가 쓴 거 올려줬어? 하고 묻고, 자기 방(이라고 부른다)에 글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해하며 웃었다. 자기를 숨기고 쓰는 글이든, 내가 낸데... 하고 쓰는 글이든, 쓰는 사람이 즐겁게 쓴 글이 모여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개인적으로) 근거는 아직 못 찾은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들의 글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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