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라고 파스테르나크가 말했다지.

 

'이번 생은 망했어, 다음을 기약하자'는 자조적인 블랙유머의 기면증에 취해 있는 시대에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망한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갖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진 사람의 특권일 수도 있다. 정말 힘든 사람은 숨 쉬는 것도 가쁠지도 모르니까.

 

신간목록에 떴을 때에도 목차조차 살펴보지 않았던 책이다. 열심히 쓰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굳이 찾아 읽을 책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TV도 시간이 아까워서 못 보는 사람이라, 가능하면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매체도 내용도 묵직한 것을 늘 선호했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종류의 연이 아니었으면 전혀 만날 일이 없었을 책이다.

 

함께 요리하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요리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구절구절 꺼내놓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살면서 어떻게 고마운 사람들만 있을까. 하지만 고마운 사람만 기억하는 게 몸에 좋다. 나쁜 음식을 먹었다면 다시는 안 먹으면 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좋은 음식을 대접해 준 사람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책이든, 그 책에 대한 인상을 가름하는 건, 내가 평론가가 아닌 까닭에 지극히 사소하다. 이를테면 책 표지(표지 평론가도 아니다... ㅎㅎㅎ), 출판사, 오탈자의 갯수, 심지어 본문의 가독성 같은 것이다. 당연히 문장도 들어간다. 이 책에서는 밑줄 그은 저 문장이었다. 저 문장 하나로 인해 나는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인생에서 크게, 오랫동안 기억할수록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연륜이 빛나는 가르침이 아닌가. 굳이 나한테 해를 끼친 사람을 두고두고 기억해주는 수고를 내 스스로에게 끼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동급생들을 주동해 짧은 시간이나마 내게 왕따의 경험을 안겼던 ㄱㄴ을 지금도 간혹 떠올리고 있다는 경험으로부터 처절하게(!) 깨우침받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출발점부터가 다르니까.

 

삶은 한 번 뿐이다. 남들이 우러러보건 낮추어보건 상관없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고,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된다. 남한테 상처는 주지 말고, 그냥저냥 우직하게 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꽤 높이 올라갔을 거다. 훨씬 더 먼저 그 길들을 걷기 시작한 사람들보다야 늦될지 몰라도, 여기가 빠르겠다 저기가 높겠다, 이리로 가면 먼저 간 사람들 추월할 수 있겠다, 저리로 가면 뒤에 오는 누구한테 따라잡히겠다, 여기가 쉽겠다 여기로 가다 안 되면 이쪽 샛길로 빠져 가자, 이렇게 갖은 잔머리를 다 굴리느라 출발도 못 하고 있는 사람보다야 훨씬 많이, 멀리 갔을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