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흥은 고등어 같다. 처음 고등어가 성질이 급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5분 전에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고, 점점 힘이 빠지는 고등어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느낌들이 곧 완전히 죽어버릴까 봐 겁을 내면서 빠르게 노트북을 켰다.어떤 책은 읽기를 마치고 나자마자 윤슬처럼 반짝이는 그 무엇을 건져놓지 않으면 사라질 듯 아주 일시적으로 반짝거리는 여운을 잠시 흩어 두었다가 조금의 자비도 없이 싹 거두어 가 버린다. 심금이라는 이름의 예민한 악기를 잠시나마 울릴 수 있는 것은 지독하게 예리하게 벼린 문장만이 할 수 있다. 마음은 베였을 때만 울 수 있다. 마음을 베어내는 것은 그럴싸하게 꾸며낸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서 건져낸 경험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날것의 감정이다. 감정을 박제한 문장이 아니라 몇 번이고 되살 수 있도록 숨결을 불어넣은 문장이 그런 일을 한다. 그런 문장을 쓰는 작가를 나는 몇 알고 있고, 그중에서도 이슬아는 아주 신뢰하는 작가다. 그의 진솔함과, 겸손함과 타인을 존경하는 시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글은 책을 덮고 나서 시간을 두고 익혀야 올라오는 감동이 있다. 반대로 어떤 글은 어수선할지라도 생생하게 날뛰는 문자 그대로의 讀後感을 어설프게라도 붙잡아놓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까 봐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눈동자는 사전적 의미의 눈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눈이기도 하다. 눈이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을, 세계를 받아들이는 관문이다. 필연적으로 눈은 어떤 방향성을 형성하고 가치관의 화각을 조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야가 좁다든가 단견이라든가 하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닐 테다. 다양한 눈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이슬아의 눈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의 시선과 시야를 글과 말을 통해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중앙에서 비껴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고 그러한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글을 쫓아가며 읽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발병할 수 있는 불치병만큼은 피해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로또 맞은 것만큼 운이 좋아 소위 정상인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늘 부족한 배려와 인식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끔 하는 데 이만큼 좋은 글이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