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교
EBS 미래학교 제작진 지음 / 그린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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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한다>

변했다, 변할 것이다도 아닌 변한다는 말 속에는 진행형의 풍랑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우리의 불안과 혼란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들이 대다수이고, 심지어 그 변화의 바람이 우리를 어디까지 불어젖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불안한 예측만 할 뿐이죠. 변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을 거고요. 변해야만 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학교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가정 다음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보다 평가의 기준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평가의 기준을 따지기에 앞서 학교의 존립 자체가 부분적으로나마 흔들리고 있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하는 때인데... 


학교란 과연 무엇일까요. 학교는 어떤 곳으로 존재해 왔으며, 현재에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목고가 언제 없어지고, 학종이 어떻고 저떻고, 중요하지만, 그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주름살 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요. 학교는 뭐 하는 곳이고, 학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또 뭐고, 이것들이 현재 정의되는 방식과 앞으로의 방식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바로 그 고민과 탐구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학교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고민의 여정이죠.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도 그저 하나의 '길'로 봐야 한다는 점 정도 아닐까요.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답은 많아질 겁니다. 


서문에서 이런 물음이 등장하면서 읽는 사람의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토다이라는 일본의 AI는 2013년부터 대입시험에 응시해 왔다고 해요. 첫해 연구진의 고민은 이런 거였다네요. '인간이 쉽게 푸는 것을 왜 AI는 풀지 못할까?' 

그러다 2016년에 이르면 이들의 고민은 좀 더 어두워집니다. '인간이 AI와 경쟁할 수 있을까?'

토다이가 틀린 추론류의 문제를, 일본 중학생의 1/3 가량이 마찬가지로 맞추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질문은 이런 고뇌에 가 닿습니다. 

인간을 AI처럼 교육시키는 현상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건 아닐까? 이해와 해석, 추론 능력까지 상실한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방법은 있을까?

사실이건 아니건 이런 고민이 대두됐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제 손으로 제가 들어갈 구덩이를 파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거잖아요. 인공지능보다 월등한 인간의 어떤 지적인 능력을 개발하기보다 묻어버리고, 절대 쫓아갈 수 없는 기계적 능력을 배양하는 데 어린 세대들의 소중한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현실에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최근에 러시아에서 온 어떤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무슨 이야기 끝에 나온 화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죠. 본인이 학생 시절 역사라면 아주 치를 떠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험 때문에 외워야 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핵심 내용과 발생 시기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회상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역사에 아주 깊은 흥미를 느껴서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을 만들어 낸, 어찌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의 바닥에 깔려있는 인간의 마음과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들이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관점을 갖고 역사를 다시 접하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었나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 호기심의 싹이 좀 더 어릴 때 자랄 수 있도록,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는 마음을 스스로 키우도록 배려해 주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왜 모두가 다 수학을 잘 해야 하고 영어 도사가 되어야 하나요. 아니 막말로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 놔도 입 한 번 열기를 어려워하는 것도 참 문제고. 


아무튼,

원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추린 것이라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진 않습니다. 그래도 꼭 알려야 하겠다 싶은 내용을 핵심적으로 추려서 꾸린 책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이건 좀 중요하구나 생각했던 부분만 조금 간추려 볼게요.



영국 UCL 로즈 러킨 교수는 미래의 AI는 지능지수가 500-10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미래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판단할 때의 기준을 학교 성적 잘 받아오는 아이 vs. 못 받아오는 아이로 삼고 있었다면 반성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러니까 이제 정말 중요한 능력은 시험 잘 보는 게 아니라 학습능력 그 자체인 겁니다. 무엇엔가 관심을 갖고 알려고 덤벼들고,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지적 실험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논리력을 훈련할 수 있는 능력. 어떤가요,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아이에게 이런 환경이 주어져 있을까요? 


책에 따르면 싱가폴에서는 SLS- Student Learning Space, KF- Knowledge Forum 이라는 두 종류의 디지털 포럼이 활성화돼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과목의 학습자료가 제공되며, 뿐만 아니라 교사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고 하고요. 

인도는 Tinkering Lab이라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언제든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태블릿을 이용한 읽기와 쓰기 교육이 현재로서 이루어지고 있고요. AI교사가 바른 읽기를 지도합니다. 짜증과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반복 학습을 시킬 수 있으니 이런 부분에서 AI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습니다. 


시대의 부름도 그러하거니와 학생 중심의 교육이 실행되려면 디지털 기기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학생 개개인의 학습 진도와 속도, 또 흥미와 이해도, 원하는 학문적 폭과 넓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의 개인화가 불가피하니까요. 이러한 학습 개인화를 실제 교육 현장에 투입하려면 어마어마한 자원이 투입돼야 함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불신과 투쟁과 기타등등의 불편한 감정적 소모가 몹시 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우려로는 학습이 이렇게 디지털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시력손실도 어마무시하지 않을까... 짐작만 해 보고요.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는 아이들이 적어도 40대는 되어야 건강 측면에서의 유의미한 데이터가 축적될 것 같아 이 부분은 정말 불안하기만 하네요. 


미래학교를 설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커리큘럼을 짜는 일이었다고 해요. 많은 논의 끝에 지식 전달 - 실생활과의 연계성 - 자발적 설계/탐구 과정을 아우르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군요. PBL project based learning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실제로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미래역량에 해당하는 창의성 - 협업능력 - 의사소통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달시킵니다. 더하여 디지털 기반 교육과정에서는 현 교육환경에서 사실상 쉽지 않은 교사와 학생간 소통채널이 아주 활성화되었으며, 학생간 소통도 원활했다고도 하고요. 또한 개인 맞춤화라는 말이 무색치 않게 각 개인의 진도와 관심사에 따라 교과서 내용을 자유롭게 추가 및 편집하게끔 유연하게 구성했다고 합니다. 클라우드를 적절히 할당해 스스로 자신만의 교과서를 만들게 했다고 하니, 자료를 모으고 적절하게 편집하는 능력 또한 발달했겠지요. 


후반으로 가면 학교의 존재와 교사의 역량에 대한 고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러니 이 지점에서 교사들도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교사의 존재의미를 리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역량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는데, '그걸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헌직 교사들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들 역시 과목별로 전문성을 키운 사람들이잖아요. 교과목 내에서는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학습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건 교사로서도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과목별로 '이 과목은 소통이 중요하다' '또 다른 과목은 창의성이 중요하다'라는 식의 구분법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이죠. 


디지털 네이티브는 대부분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에 대해서 '얼마든지 온라인 강의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학교에 대해 '다닐 필요를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게 없어서 질문이 없다'라고 평가했던 디지털 네이티브가 '미래학교는 다르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래학교의 교사들은 지식 전달이 아닌 미래 역량을 키우는 수업 디자인과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70-171쪽


선생님들이 항상 배우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이라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배우는 즐거움보다 '해보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왜 해보는 즐거움을 경험하면 안 되죠?

-181쪽


수업을 듣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건 학교에서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활동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코딩을 정말 잘하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건 신청 안 했어요. 이걸 어떻게 내 실생활과 연결하고, 변화시키느냐 그걸 생각해보고 싶어서요. 미래학교에서도 실생활과의 연계를 모색할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182쪽


학교의 변화 속도는 더디고, 한동안 계속 더딜 겁니다. 가정에서 - 아웃소싱할 수 없는 교육이라는 게 있는 법이예요 - 아이들에게 조금씩 알려줘야 합니다. 새 시대를 향해 열릴 문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을요.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을 보면 다 아는 거네, 별 것도 아닌 걸 참 대단한 것처럼 포장했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뻔하고 쉬운 방법일수록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가 건강한 다이어트의 정석을 알고 있어도 그 방식으로 성공하는 다이어터는 극히 소수인 것처럼요. 그러니 시시하고 별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실천이라도 해 볼 일입니다. 원래 큰 변화는 일상의 작은 습관으로부터 비롯하기도 하고요. 


조금이지만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미리 미래를 경험한 거잖아요. 제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세상이 이렇게 바뀔 거고, 이런 게 가능해질 거다'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돼요. 예전에는 '중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버텨낸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말이죠. 미래가 그렇게 머지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지금 공부하는 걸 조금씩 융합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게 항상 머릿속에 있죠.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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