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 한 권의 책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여기서 발견한 읽고 싶은, 읽게 된, 읽고야 말... 책들을 한두 권 발굴한 정도가 아니지만서도 그 중에서도 웬지 꼭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었어요. 어떡합니까 그냥 읽고 싶으면 읽어야죠. 원서로 봐도 좋았겠지만 이 책은 문장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굳이 번역본으로 주문하고 맙니다. 한국 배송 시스템 진짜 놀라워요. 개인적으로 아마존 프라임 멤버쉽 이용중이지만 그래도 한 이틀 걸리거든요. 알라딘에 DHL로 주문하면 정확히 3일만에 태평양을 건너옵니다. 물론 책값과 비등한 배송료가 붙지만, 사실 어떤 쇼핑몰은 같은 나라 안에서도 거의 만이천원에 육박하는 배송료를 청구하거든요. 그런 거 생각하면 또 아예 못 살 건 뭐냐 이런 오기가 생겨서 종종 책을 주문해버리는 (그리고 코로나 덕분에 오른 환율과 수수료가 합산되어 청구되는 카드값을 보면 뒤늦은 후회가 뒤통수를 갈기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줄기차게 받아보는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은 참으로 배신을 땡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름 몇십년 책 끼고 산 경험이 아주 헛되지는 않아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곤 합니다. 이 책이야말로 그 중 갑이라고 할 만 했고요. 오늘 특히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종종 언급하게 되는 친구 가족을 초대해서 오후-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어쩌다보니 친구와 이 책을 펼쳐놓고 머리를 맞댄 채 책에 그려진 커버들을 열심히 연구(?)하면서 서로의 독서경험을 나누게 됐어요.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너 이거 읽어봤어? 나도. 난 그건 아직 안 읽어봤는데 어때, 추천할 만해? 어떤 점이 좋았어?
또는, 아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땐 말야... 내가 몇 살때였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4일간 횡단하는 열차 안에서였는데 사실 그때 내가 거의 죽다 살아난 때였거든, 근데 책 내용도 어떻게 기가 막히게 딱 그런 거지... 왜 그럴 때 있잖아, 어째선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책 속 이야기와 내 상황이 너무 동일시되는 때가 있잖아, 와 같은 이야기.
내가 이름만 알던 작가의 어떤 다른 이야기. 또 그녀가 모르던 어떤 작품에 대해서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떠드는 것이 아니라 듣고, 들려주고, 배우고, 알려줄 수 있는 그 사실이 너무 즐겁고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는 거죠. 이렇게 왔다갔다 주거니받거니하는 대화가 그것도 쌍방이 함께 몰입하는 대화를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건지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이거 좋아. 이 저자는 이 책이 좋다고 했지만 나라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추천했을거야. 아, 이 분이 이렇게 돌아가신 거 너무 슬퍼. 몇 년 더 사셨으면 책 두 권쯤은 더 나왔을텐데(올리버 색스). 난 이 책 정말정말 완독해보려고 노력했는데 한 스무 페이지 읽다가 관뒀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너도? 나도. 여기서 하이파이브 한 번(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와, 그렇지, 이 책! (화씨451).
그렇게 한참을 카탈로그같은, 카탈로그라는 별명을 붙이기엔 훨씬 훌륭한 이 책을 넘겨가며 놀던 우리는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있잖아, 우리는 북클럽을 만들어야 돼. 맞아, 나도 그런 생각 했었어. 물론 그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고 더 이상의 진전은 (아직까지는) 있지는 않지만, 글쎄요 어쩐지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같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본인의 느낌과 감상을 공유하는 모임이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간략 브리핑을 하면서 좋은 책 정보를 서로 나누는 모임이건 말이죠.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참여하는 책모임이 있긴 했는데, 진짜 이 모임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얼마나 책을 충실히 읽어갈 수 있을지 굉장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야말로 다른 문화적, 개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책을 읽는 방식이 얼마나 다를 것이며 책을 이해하고 건져내는 것들은 또 얼마나 풍성할까요. 이쯤되면 역시 언어가 사람이 가장 열심히 다듬고 훈련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되새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제 다른 친구와 잠깐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덧붙여 봅니다.
영어가 아주 능숙하고, 본인의 모국어와 영어 외에 원어민은 못 되어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외국어가 두 개 정도 더 있는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의 아이도 당연히 영어를 아주 잘 하지만,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축약어를 많이 씁니다. 예를 들면 I am going to... 를 I'm gonna, yes를 yeah, 하고 줄여 발음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친구는 아이가 그렇게 발음하는 걸 너무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놓고 한 번 물어봤습니다.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발음하는데 왜 그렇게 싫어하냐고.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언어라는 건 제대로 말하는 방식을 익히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고. 줄임말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건 아주 나중에 천천히 배워도 돼. 사실 그런 건 하루이틀이면 금방 배워. 그렇지만 정석대로 제대로 배우는 건 지금 하지 못하면 나쁜 버릇이 들어버린 뒤에 교정이 안 돼.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절대 제대로 쓸 수 없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거든."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말이었어요. 말하는 법 뿐일까요. 읽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려워도 제대로 읽는 법을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