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모임 - 책, 수다에서 토론까지
강원임 지음 / 이비락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 들어 유난히 독서 동아리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그런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회원을 모집하는 공고글도 꽤 많이 보았고, 심지어 서점에서 이러저러한 책모임을 운영중인데 나와보지 않겠냐는 영업(!)도 받아 봤거든요. 아, 이건 좀 당황스럽긴 하더군요. 나잇값 못 하고 낯가림을 하는지라...

 

지금까지 읽었던 책모임 관련 책들은 이미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구체적인 운영과 실천 지침을 안내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딱 하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빼고.

어쨌거나 이 책은 첫 단추를 끼우는 방법부터 설명합니다. 저자 본인의 경험을 풀어서요. 운영 방식과, 책모임을 운영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위기와 해소법 등에 대해 스스로 부닥쳐가며 얻은 생생한 깨달음의 말들이어서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모임을 통해 자신이 겪은 변화들도 소개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나는 풍경묘사가 많은 글을 힘들어한다. 낯선 어휘와 질리도록 섬세한 풍경묘사에 갑갑함을 느꼈다. 대체 왜 이리 길어! 소리 지르며 남은 쪽수를 괜히 들춰봤다. 「파이」,「빨간머리 앤」,「마담 보바리」등을 읽으며 나는 점점 이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이 더 이상 건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묘사에 담긴 주인공의 심리와 분위기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이젠 사실적 묘사 뒤에 숨겨진 작가의 주관적 시선을 발견하는 희열로 읽어 내려간다. 내가 우울한 날 바깥 풍경이 우울해 보이듯 어느 배경묘사 하나에도 작가가 신경 쓰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57쪽

 

묘사가 많은 글이 읽기 힘들었는데, 그 지루한 문장들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죠.

 

한참 책을 읽을 때 모든 책에 만점을 주고 싶을 만큼 무조건적 수용이 컸다. 특히 비문학은 작가의 전문성과 지식에 압도당하곤 했다. 비판적으로 읽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읽었다. 책을 점점 더 읽을수록 헷갈리기 시작했다. A라는 책을 읽고 가진 생각을 B라는 책에서 반박하자,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저자는 그저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고, 비판적 사고 없이 읽다가 독서의 위험을 경험했다. -135쪽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의 중심을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선택적 수용을 하려면 그 기준이 될 생각과 질문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말해요. 이 이유 뿐만 아니라 평이한 친목모임처럼 이야기의 머리가 엉뚱한 화제로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발제와 토론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관련해 논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들도 남겨놓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빠질만한 '얼마나 많이 읽었나'의 덫에 빠졌던 경험을 털어놓으면서는 '아껴 읽는 마음'에 대해서 썼어요. 그것도 좋았지만,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거다' 생각했던 것은 취향은 근거가 아니라는 글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각자의 취향 고백만 한다면 책에 대한 얘기보다 자신의 호불호만 전달한 시간이 되고 만다. 내 취향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경험, 생각들을 조금 더 말해준다면 서로의 공감도 생기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126쪽

 

 

정말 그렇잖아요. 사실 취향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왜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덧붙여 설명한다면 훨씬 상대방의 말을 납득하기 쉬울 것 같아요. 밑도끝도없이 난 이건 아닌 것 같아, 저는 이게 완전 와닿던데요, 이런 것보다. 동의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거 알지, 그런 과제를 내주고 간 문장이긴 했습니다만 orz

 

4장에 이르면 같은 책을 읽고 회원들 각각의 생각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갈래도 다르고 결도 다르구요. 톤이 다른 의견을 말할 때의 용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러므로 나와 다른 의견을 듣는 법에 대해 한 번 더 고려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도 인용했던 C.S. 루이스를 재인용하자면 이렇고요.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민감함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막아주는 민감함이지, 자기가 툭하면 상처를 받는 민감함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165쪽

 

말하자면 태도죠. 말하는 법보다 듣는 법에 강세를 두어. 앞서도 말한 취향의 근거에서처럼, 다른 이의 말이 다소 동의하기 힘든 방향성을 갖고 있어도 그 근거를 들어주는 태도가 필요함을 읽습니다. 물론 그 태도는 늘 중립적이어야하죠.

 

거칠게 요약하면 책모임을 통한 모두의 성장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왜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책이구요.

문체라는 것에 인격을 부여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단정하게 무릎꿇고 앉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참 이상한 것이, 분명 같은 소재에 대해서 쓰고 말해도 어떤 책은 꺾이지 않는 심지가 느껴지고 또 어떤 책은 낭창낭창하게 휘어지지만 부드럽게 쓸어주는 느낌을 줘요. 딱히 왜라고 설명은 못하겠지만 겸손하고 예의바른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예요. 부디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다음 책을 쓸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응원을 보내는 마음으로 리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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