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현관에 들어서면 엄마는 침실에서 훌쩍 거실로 나와, 오늘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랑 뭘 먹었는지, 라이브는 어땠는지, 공연에는 누가 왔는지를 소근소근 얘기했다. 엄마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아빠가 그제야 한숨 돌리는 듯 보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빠에게는 '긴 하루의 끝에 별거 아닌 일이라도 엄마에게 잠시 얘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아빠가 직접 그렇게 말했으니까 틀림없다. 결혼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그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늘 말했다. "세상에는 별거 아닌 일을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의외로 많지 않거든." 이라며. -39쪽 

 

그런 사람이 꼭 배우자일 필요는 없지만, 있어야 하는 건 맞아. 내가 아무리 시시껄렁하고 사소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잡담을 해도 나를 그냥 그대로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 없으면, 어디 가서 하루종일 받히고 깎인 마음을 누이고 쉬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얘기.

책 사이사이에 밑줄 긋고 싶어질 정도로 공감이 가는 문장들이 떠나고 싶은 눈을 붙잡긴 했지만, 종국에는 혼자 이러고 말았다. 아, 마음이 아니라고 할 때 그만 헤어졌어야 해.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이 책을 끝끝내 붙잡고 있었나 허탈했다. 누구 말마따나 늦은 밤까지 이걸 붙들고 앉아있었던 등짝에 북극빙장을 날리고 싶어지는군. (북극빙장 : 겨울철에만 쓸 수 있는 기술로 냉수마찰한 손을 목덜미 또는 등짝에 내리치는 것을 이름.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므로 남용은 자제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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